2023년 2월호

그 시절 할머니 몸에서 냄새가 났던 이유

[난임전문의 조정현의 생식이야기]

  • 난임전문의 조정현

    입력2023-02-1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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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실금은 여성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남성도 과민성방광증후군, 전립샘비대증 때문에 소변을 참지 못하고 흘리는 경우가 생긴다. [Gettyimage]

    요실금은 여성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남성도 과민성방광증후군, 전립샘비대증 때문에 소변을 참지 못하고 흘리는 경우가 생긴다. [Gettyimage]

    사람마다 특유의 느낌이 있듯이 체취(體臭)도 지문처럼 각기 다르다. 사람의 몸에서 풍기는 체취는 피부에 서식하는 미생물의 작용, 땀과 성호르몬 분비량 등에 영향을 받는다. 식습관부터 생활습관, 피부 상태(땀·각질·피지선 활동)에 따라 체취가 달라져 사람마다, 인종마다 특유의 체취를 지닌다.

    나이가 들면 자신의 몸에서 풍기는 체취에 바짝 신경을 쓰게 된다. 혹시라도 좋지 못한 체취로 인해 첫인상부터 불쾌한 느낌을 주고 싶지 않고, 나이 든 증거를 체취로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아서다. 중년 이후 향이 짙은 향수를 선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체취 얘기가 나왔으니 예전 할머니들을 떠올려보자. 과거에는 쉰 살만 넘어도 노인 냄새가 나는 이들이 많았다. 명절에 고향집에 가면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에게 안기지 않으려는 철부지 손주도 많았다. 할머니 몸에서 나는 체취가 원인이었다.

    그때 그 시절, 할머니 몸에서는 왜 냄새가 났을까. 혼자 사는, 잘 씻지 않는 홀아비라면 이해가 되지만, 할머니의 몸에서도 심하게 냄새가 난 이유가 뭘까. 샤워 시설이 여의치 않던 그 시절의 생활 여건이 원인이었을까.

    다산했던 어머니들의 요실금과 노인 냄새

    요실금 혹은 변실금이라는 병명을 들어봤을 것이다. 여성비뇨기 배뇨장애 질환이다. 여성은 신체 구조상 방광염에 걸리기 쉽고 요실금에 더 취약하기 때문에 예전 할머니 세대에서는 흔한 부인과 질환 중 하나였다. 요즘도 출산을 경험한 여성 가운데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기침이나 재채기, 줄넘기, 뜀뛰기, 윗몸일으키기 등을 하며 배에 힘을 줄 때 소변이 조금씩 새는 요실금을 호소하는 이가 많다.



    본래 요도라는 조직은 소변이 샐 수 없도록 설계돼 있다. 정상인 경우, 방광이 꽉 차지 않으면 괄약근 요도를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있어 요(尿)가 새어 나갈 일이 없다. 그런데 이 기능이 떨어지면 소변이 새어 나오는 실금이 생기게 된다.

    자기도 모르게 소변이 나오면서 몸이나 옷에 묻는다면, 상상만 해도 당혹스러운 일이 아닌가. 다산(多産)을 했던 우리네 증조, 고조 할머니들 몸에서 지린내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과거 1960~70대 여성들에겐 소변 자주 보기(빈뇨), 갑작스러운 마려움(절박뇨), 자다가 소변보기(야뇨)가 예사로운 일이었다. 하복부 통증을 유발하는 기질성 방광염, 과민성 방광염(절박뇨)으로 고생하는 할머니도 많았다. 항상 완전히 소변을 본 것 같지 않고, 소변을 보고 나서 일어설 때 똑똑 떨어짐까지 있었을 테니 과거 할머니들의 고충이 얼마나 심했을까.

    요즘은 조기에 치료하거나 수술로 거의 완치된다. 요실금 수술은 예전에 비해 정교해졌다. 요(尿)를 저장했다가 일정량이 되면 배출시키는 주머니 모양의 장기인 방광목(방광경부·bladder neck)을 고정하는 수술을 주로 하던 예전과 달리, 요즘은 방광 밑 요도 중부(호스가 달린 부분)를 위로 올리는 방법으로 발전했다. 망사로 된 테이프를 요도 중부에 붙여 요도를 들어 올려 방광과 각도가 생기게 해서 자연스럽게 요도가 막히게 하는 수술 방법(TOT)은 간단하고 재발률이 낮다. 요실금이 심하면 U자형 끈으로 요도를 좀 더 위로 들어 올려 소변이 새는 것을 방지하는 수술(TVT)을 하면 된다.

    요실금 증세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평소 하루 물을 얼마나 마시는지, 커피를 달고 사는지, 당뇨병이 있는지, 이뇨제를 복용하는지, 요도의 감염 여부 등을 체크해야 한다. 알코올, 카페인, 유제품, 매운 음식이 요실금을 악화시킨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비만도 복압을 올려 간접적 악화 요인이 된다. 소변을 지리지 않기 위해서는 방광 훈련이 필요하고 심할 경우 반드시 비뇨기과 의사의 도움을 받아 치료해야 한다.

    ‘밑이 빠지는’ 자궁탈출증과 케겔운동

    요즘은 드문 일이지만 예전에는 할머니들에게서 “밑이 빠진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할머니들은 며느리와 딸이 무거운 물건을 들면 밑이 빠질 수 있다고 조심시켰다. 골반장기탈출증을 걱정하는 것이다. 요즘 여성은 결혼하지 않거나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고, 낳는다 해도 질식 분만(자연분만)이 아닌 제왕절개를 많이 하니까 자궁탈출증 사례가 현저히 줄었지만 과거에는 다산(多産)으로 인해 정말이지 피할 수 없는 질환이었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한번은 뉴질랜드 교포 여성이 찾아왔다. 그녀는 50m 정도만 걸어도 밑이 빠진다고 하소연했다. 초음파 검사 결과 왼쪽 난소에 3cm 정도의 단순 물혹이 있었고, 난소의 기능은 정상이었지만 자궁의 크기는 약간 작아진 상태였다. 밑이 빠지는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서 그녀에게 “숨을 크게 들이쉬고 대변을 보듯이 힘을 주라”고 했다. 그러자 세상에나, 질강 내에 안 보이던 자궁경부가 외음부로 쑥 나타나는 거였다. 마치 일그러진 배구공에 구멍을 내어 속을 뒤집어 꺼냈을 때의 모양으로 자궁이 질 밖으로 빠져나온 것이다.

    ‘자궁탈출’이란 자궁이 외음부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을 말한다. 자궁탈출은 정도에 따라 다르다. 둥그런 선박 바닥 모양의 일부가 외음부 위쪽에서 빠져나오면 방광 쪽이 빠지게 돼 ‘방광류’, 아래쪽에서 빠져나오면 ‘직장류’라고 한다. 자궁 전체가 빠지면 공기가 빠진 배구공을 뒤집어 놓은 듯한 모양이 된다. 외국 여성들은 자궁탈출이 된 상황을 ‘공 위에 앉아 있다(sit on the ball)’고 묘사한다.

    자궁탈출, 방광류, 직장류는 임신·출산과 관련이 깊다. 출산 당시 아기가 좁은 산도로 나온 후 골반을 지탱하는 밑바닥인 골반 격막(pelvic diaphragm)이 늘어나거나 약해져서 생기는 질환이라고 보면 된다. 요즘도 출산 후 요실금이 심한 여성은 주의해야 한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출산 경험이 있는 40대 이상 여성 10명 중 3명이 골반장기가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산부인과에서는 출산한 여성에게 케겔운동을 적극적으로 권한다. 한마디로 항문 오므리는 동작으로 골반 근육을 강화하는 운동이라고 보면 된다. 케겔운동을 자주 하면 요실금도 줄고 자궁탈출 빈도도 떨어지게 된다. 특히 질 수축을 강하게 해서 부부 생활의 만족도도 높아진다.

    남성도 케겔운동을 자주 하면 전립선 건강에 한결 도움이 된다. 노화가 되면 우리 몸 어느 곳이라도 신축성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남성은 여성처럼 기침이나 재채기, 줄넘기를 한다고 소변이 새어 나오진 않지만, 남성도 방광·요도 괄약근 노화로 전립선비대와 과민성 방광염에 노출돼 절박뇨에 걸릴 수 있다.

    시대가 변하고 문화가 달라졌다. 1인 가구가 늘고 싱글 남녀가 넘쳐난다. 서로 만나 대화하고 스킨십을 하며 얽히고설키어 살기보다는 각자의 공간에서 자기 삶을 살아가는 쪽을 선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앞으로 명절에 손주 없이 부모 자식만 단출하게 모이는 집이 더 많아질 것이다. 그래서일까. 살 비비며 살던 시대에 여럿이 모여 앉아 대화하던 것이 그립고, 나를 낳고 길러주신 어머니와 할머니 몸에서 풍기던 체취도 불현듯 그리워진다.


    조정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 前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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