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상사 만나면 행운, 좋은 후배 만나면 대박”
- 경쟁을 피하면서 이기는 법 “단디 잘하소!”
- 운(運)에 기대면 파벌을 만든다
- 삼성 사장단 중 최고 골퍼… “뜬구름 잡으면 백전백패”
- 이건희 회장의 3大 명품 ‘상상력, 집념, 심리학’
- 집에 그림 하나 걸면 인생은 ‘스토리’가 된다
- “이사하면 혼자 술 마실 데부터 찾아요”
그러나 어느 날 불쑥, 차이를 찾는 것에 의문이 들었다. 다르다는 인식은 상대와 나를 구별하기 위한 ‘말장난’처럼 느껴졌다. 다름을 찾고 인정하는 즉시 그와의 관계는 끝난다. 이런 의문이 든 후엔 차이를 찾기보다 ‘공통점’을 찾겠다고 생각했고, 신기하게도 상대를 더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 같았다. 찾지 않으니 비로소 보인다고 해야 할까.
‘무색’
5월22일과 23일 이틀 동안, 한용외(韓龍外·61) 삼성사회봉사단 사장과 울산과 경주를 여행하면서 이 같은 시각의 변화가 이뤄졌는지, 아니면 그전부터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그와 나눈 대화를 통해 그가 33년 동안 한 그룹에 근무하면서 사장 자리에 오르기까지 남과의 차이를 강조하기보다 공통점을 찾으려고 노력했다는 것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김포공항에서 만난 그의 첫인상은 색깔로 표현하자면 ‘무색’이었다. 누구의 모습에서도 엿볼 수 있는 ‘공통분모’를 본 느낌이랄까.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는 색깔 같았다.
울산까지 비행시간은 40여 분. 초면이라 가벼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삼성의 CEO들은 대개 언론에 나서는 것을 꺼려 기자를 만나면 말을 극도로 아낀다. 기자 만나서 득(得) 볼 게 없다는 생각에서다. 사실이 그렇기도 하다. 게다가 전세계가 삼성을 주시하기 때문에 한 사람의 말실수는 커다란 오해를 낳을 수도 있다.
애당초 한 사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는 삼성 사장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알고 싶다는 ‘가벼운’ 이유를 들었다. 이 때문에 무거운 질문을 꺼낼 수도 없었다. 그래서 약간의 너스레를 떤 기억이 난다. 기자는 무당과 같아서 ‘자의식’이 없어야 작두를 탈 수 있다든지, 올해 대통령선거는 개인을 지지하는 것보다 집단을 지지하는 쪽으로 전개됐으면 좋겠다든지, 일본 메이지유신 때 사실상 정치를 좌지우지했던 ‘겐로(원로)’들처럼 이런 집단이 한국을 통치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그러면서 한 사장에게 “삼성의 경쟁력은 사장단으로 구성된 집단지도체제에 있다”며 “실무의 99%를 이들이 해결하니까 이건희 삼성 회장은 마음놓고 상상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한 것 같다”고 했다. 이에 한 사장은 “내 생각도 같다”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생각의 공통점을 하나 찾은 것 같아 여행에 대한 예감이 좋았다.
어느덧 울산공항에 도착했고, 비행기 문이 열리자 서울보다 3~4℃ 더운 기운이 훅 하고 다가왔다. 마중 나온 차를 타고 삼성정밀화학 공장으로 향했다. 공장으로 가면서 울산의 태화강을 봤는데, 삼성이 오랫동안 태화강 샛강을 정화해 지금은 물고기가 뛰어노는 1급 하천수가 됐다는 설명을 들었다.
사회를 바꾸려면 힘이 필요하다. 조직적인 힘이 뒷받침될수록 변화는 크고 확실하다. 삼성그룹엔 수많은 봉사단이 조직돼 있다. 계열사에 흩어져 있는 봉사단을 묶어 방향을 정하고 힘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삼성은 1994년 삼성사회봉사단을 창단했다.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이 나온 직후였다.
“운이 좋았다”
한용외 사장(가운데)과 시민단체, 삼성봉사단 멤버들이 울산 십리대숲 살리기 캠페인에 나서기 전 기념식수하고 있다.
이런 사회현상을 염려한 이 회장은 서울의 달동네를 둘러보며 복지재단을 설립하기로 결심한다. 서울 미아동에 처음으로 서민을 위한 어린이집을 세웠을 때만 해도 1919개에 불과하던 어린이집이 2005년 2만8000개로 늘었다. 그의 철학은 장남 이재용 전무로 이어져, 이 전무도 때때로 보육원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1994년, 그룹 비서실에서 근무하다 삼성SDS 상무로 옮긴 지 2개월도 안 돼 한 사장은 삼성문화재단 전무로 발령을 받는다. 삼성문화재단은 복지재단, 호암재단 등 재단을 총괄하는 곳. 한 사장은 각 재단의 역할과 기능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개혁을 진두지휘했다. 이를 통해 그는 재단의 위상을 높이는 일뿐 아니라 재단이 그룹의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기업의 성장은 사회의 성장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 이 회장의 철학이었고, 그의 생각이었다.
철학을 공유한다는 것은 머리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으면 공유의 고리는 끊어지고 만다. 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본 적이 없으면, 그 도움을 진정으로 고맙게 생각한 적이 없으면, 누가 시킨다고 남을 돕겠는가. 한두 번은 가능해도 계속할 수는 없다. 한 사장이 제일합섬, 그룹비서실과 감사팀, 삼성전자에서 경력을 쌓았지만, 가장 오랫동안 근무한 곳이 사회공헌 관련 재단이라는 점은 그가 지향하는 삶이 무엇인지, 그룹에서 그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증거다. ‘적재적소(適材適所)’는 삼성의 인사원칙이 아닌가.
그가 삼성에 입사한 1974년, 공채 14기 동기는 450명이었다. 그중 7명이 현재 사장에 올랐다. 유석렬 삼성카드 사장, 김징완 삼성중공업 사장, 이수창 삼성생명 사장이 동기다. 역대 공채 기수 중 사장을 가장 많이 배출했는데, 운도 좋았고 상황도 좋았다.
삼성에서 사장이 된다는 것은 탁월한 능력은 기본이고 보통의 운(運)을 갖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실력으로 1% 안에 든다고 해도 상황이 허락하지 않으면 그날로 옷을 벗어야 하는 것이 샐러리맨의 운명이다. 한 사장은 스스로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밤길 조심하슈!”
경남 합천에서 태어난 한 사장은 삼성에 취직할 때까지 생활 형편이 어려웠다. 그 시절, 누군들 어렵지 않았을까마는 그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입학금을 내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다. 영남대 상대를 졸업할 때까지 그는 돈과 싸워야 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갔는데 입학금이 없었어요. 셋방살이를 하고 있었을 땐데, 하루는 주인집 어른이 나를 불러 자기 아들도 학교에 들어가는데 공부도 함께 하고 잘 지내면 입학금을 대주겠다고 해요. 그렇게 해서 고비를 넘겼지. 근데 경북중학교 들어갈 때도 입학금이 없었어요. 그때 초등학교 친구가 함께 경북중학교에 합격했는데, 그 아버님이 제 입학금과 등록금을 대주셨어요. 너무 고마웠지. 내 초등학교 선생님이기도 하셨는데. 지난해 돌아가실 때까지 꼬박꼬박 찾아뵈었죠. 그때 그 분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다고 봐도 돼요.
하여튼 어려울 때마다 귀인(貴人)을 만났어요. 서울대 법대에 떨어져 실의에 빠졌을 때, 어떤 친구가 영남대 원서를 가져다줘서 입학했죠. 제일합섬 경산공장에서 일할 때는 폐결핵에 걸렸는데 당시 서주인 공장장(삼성코닝 사장이던 1992년 작고)의 도움으로 약을 싸게 살 수 있었어요. 그때는 어머니도 수술을 받아 함께 누워 있었는데 내 월급으로는 두 사람의 병원비와 약값을 댈 수 없었어요. 공장장이 일개 사원의 건강까지 챙겨주셨으니 얼마나 고맙습니까.”
서울대 섬유공학과를 나온 서주인 전 삼성코닝 사장은 뛰어난 인재였지만 안타깝게도 요절했다. 당시 53세, 회사에서 꽃을 피워야 할 나이였다. 서 사장은 후에 부회장으로 추대됐다. 그와 한 사장은 끝까지 좋은 인연으로 남게 되는데, 중간에 고비가 한 차례 있었다. 한 사장이 그룹비서실 감사팀에 있을 때, 서 사장이 맡고 있던 회사에 감사를 나갔다. 그리고 문제를 발견했다.
한용외 사장이 삼성사회봉사단 멤버들과 저녁을 먹다가 직원들의 요청으로 찰칵!
당시 감사를 담당했던 한 사장으로선 서 사장과의 인연이 마음에 걸렸다. 회사 초년병 시절, 큰 도움을 준 은인이었다. 그러나 한 사장이 조심스럽게 감사 지적 사항을 설명하자 서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느그들이 미안해할 것 없어. 다 내 잘못이야.”
서 사장은 즉시 상황을 받아들이고 오히려 한 사장을 격려했다. 한 사장은 “평소 존경한 분이었지만, 그 말씀을 듣고는 더 존경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만의 처세법
직장생활에서 좋은 상사를 만나는 것만큼 행운은 없다.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는, 용기를 주는, 믿음과 신뢰를 주는, 때론 인생의 길잡이가 되는 상사를 만나면 그때부터 직장생활은 행복의 시작이다. 그럼 반대로 상사가 좋은 부하를 만날 확률은?
“그건 더 힘들어요. 좋은 부하를 만나면 대박이죠. 더 좋은 것은, 부하는 좋은 상사를, 상사는 좋은 부하를 만나는 겁니다. 둘이 일치할 경우는 확률로 10%나 될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좋은 상사를 만나지 않으면 회사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겁니다.”
한 사장은 좋은 상사를 많이 만났을 것이다. 그에게 좋은 상사는 누구였는지 물어보자 한동안 뜸을 들이다가 이름은 밝히지 말아달라며 한 사람을 꼽았다.
“직접 모신 건 몇 년 되지 않지만, 사람을 보는 안목이나 판단력이 매우 좋으신 분이죠. 부하들이 늘 신나게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같이 일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무엇보다 내가 승진하거나 자리를 옮길 때마다 꼭 먼저 이야기를 해줬어요.”
고마운 상사에게 고맙다고 표현하는 것, 중요한 데도 방법을 몰라서 못할 때가 많다. 상사에게 뭘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고 싶을 때도 있는 법이니까. 한 사장은 어떻게 할까.
“염화미소(拈華微笑·말로 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뜻을 전하는 것)지. 상사가 몰라줘도 괜찮고. 원래 경상도 사람이 그래.”
그가 생각하는 좋은 후배들은 어떤 사람일까. 삼성의 CEO들은 어떤 후배를 좋아할까.
“현직에 있기 때문에 그런 거 말하면 안 돼요. 이런 얘기는 할 수 있지. 후배들은 일을 좇아야지 선배를 좇아서는 안 된다고. 상사가 누구든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해야지. 사람을 좇으면 파벌을 만들게 되는데, 삼성에서 가장 싫어하는 게 파벌입니다.”
한 사장이 말하는 직장 처세법을 이렇게 정리하면 될 것 같다. 좋은 상사를 만나는 건 운이다. 운에 기대면 파벌을 만든다. 그러다 보면 일을 놓친다. 회사에서 아웃된다.
우리는 삼성정밀화학 공장을 둘러보고, 한 시민단체의 행사에 참여했다. 울산에 대나무가 있는 곳으로 유명한 데가 십리(十里)대숲인데, 이곳의 죽순을 보호해서 대숲을 가꾸자는 시민단체였다. 요즘엔 이처럼 자신의 고향을 가꾸는 데 열성적인 시민이 많다. 뭐 하나 얻는 것 없는데도 열심이다. 기업은 이 같은 시민단체와 함께 환경운동에 참여하면서 지역사회와 함께 사는 법을 실천하고 있다.
한 사장과 시민단체 회원들, 그리고 삼성 계열사 봉사단원들은 오후 내내 십리대숲에서 ‘숲 살리기’ 캠페인을 벌였다. 산책하는 시민들에게 꽃씨와 음료수를 나눠주었다. 대숲 옆으로 흐르는 태화강엔 종종 물고기가 물 밖으로 머리를 내미는 것이 보였는데, 한가롭고 평화로웠다.
균등과 평등의 차이
저녁은 바다가 보이는 횟집에서 먹었다. 한 사장과 삼성SDI, 삼성정밀화학, 삼성석유화학, 삼성BP화학 등에서 온 20여 명의 삼성 봉사단원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 사장은 그가 즐겨 마시는 양주 ‘패스포트’를 서울에서 가져왔다. 그는 패스포트를 일컬어 “한국인의 몸에 가장 잘 어울리는 술”이라며 “단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고, 다음날도 머리가 아프지 않다”고 했다. 봉사단 멤버들은 한 사장이 건네는 패스포트를 한 잔씩 받고, 소감을 한마디씩 말했다.
그들은 삼성의 미래에 대해 한 사장에게 묻기도 했고, 또 다른 봉사활동을 제안하기도 했다. 시민들이 보는 삼성의 모습을 전했고, 한 사장과 일했던 한 임원은 옛 추억을 회상하기도 했다. 모두 유쾌하고 즐거워 보였다.
삼성처럼 큰 조직에선 직원이 사장과 함께 술잔을 기울일 기회가 흔치 않다. 어느 대기업이든 그렇겠지만, 사장은 회사에선 신(神)이다. 가장 꼭대기에 올라 있는 사람이 사장이다. 그가 가장 많은 것을 보고, 가장 멀리 본다. 어쩌다 사장과 함께 술잔을 나누면서 삶을 이야기하다 보면 막혔던 것이 확 뚫리기도 한다. ‘지혜의 말씀’을 간구하는 후배들에게 한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일은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디 잘해야 한다.”
일을 잘하는 것. 특별한 게 없어 보이지만 많은 내용이 녹아 있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 일을 ‘단디’ 잘하면 치열한 경쟁을 피하면서도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법! 그럼 어떻게?
“나는 조조보다는 유비에 가까운 것 같아요. 조조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밀고 나가는 스타일이라면 나는 덕망으로 리더십을 발휘한다고 할까요. 경쟁에 집착하는 것이 조조라면 나는 경쟁을 피합니다. 경쟁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난 빠져요. 나더러 사장이 되기 위해 경쟁을 했냐고 묻는다면,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일을 어느 누구보다 잘하고 싶었다고 말할 겁니다. 어느 누가 해도 나만큼은 못할 것이란 자신감으로 살았죠.”
그러나 경쟁은 하기 싫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한 사장이 최고의 자리에 오를 때, 이미 많은 동기가 삼성을 떠났다. 그들을 밟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다. 이런 점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균등(均等)과 평등(平等)은 달라요. 균등은 산술적 평균이지. 1000원을 열 사람에게 똑같이 나눠주면 균등이죠. 그런데 열 사람의 사정을 따져가면서 돈을 나눠주면 그건 평등이죠. 능력이 있는 사람이 사장이 되고, 그 다음 능력 있는 사람은 부사장이 된다면 그건 능력에 따라 적재적소에 간 거예요.
그런데 경쟁은 상대편의 약점을 이용해 나의 강점이 부각되도록 상황을 인위적으로 만들 때 벌어집니다. 남을 헐뜯어서 나를 유리하게 하는 거죠. 그러지 말고 스스로 잘하면 되잖아요.”
그러나 자신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직장 전체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세상에는 나를 밟고 일어서려는 경쟁자가 있게 마련이다. 세상이 진흙탕인데, 어떻게 흙을 묻히지 않는다는 말인가. 꼭대기에 서 있는 한 사장의 경우엔 권모술수를 통해 경쟁에서 이기려는 후배가 많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후배들은 어떻게 다스리는가.
“은연중에 이야기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오해해요. 선의의 경쟁까지 부정하게 되니까. 그러나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 거짓말하는 것은 옳지 못해요. 나에게 다른 사람 헐뜯는 말을 하는 후배가 있어요. 그럼 일단 그의 말이 맞는지 확인합니다. 사실이 아닌 경우, 본인에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줘요. 아낄수록 잘못된 것은 지적해주죠. 근데 잘 안 고쳐져(웃음).”
직장생활은 어쩌면 불합리한 것을 참는 것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승진해야 할 사람은 물먹고, 물먹어야 할 사람이 승진하는 경우, 많지 않은가. 그러나 처지가 달라지면 상황을 해석하는 기준도 달라진다. 막상 그 자리에 올라서보면 합리적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합리와 불합리를 판단해야 할까.
“그건 사물을 보는 깊이의 차이에 따라 달라지는데, 경영은 불합리한 부분을 합리적인 부분으로 바꿔 나가는 것이에요. 불합리하다고 말하는 직원들의 목소리를 듣고 개선의 방법을 찾아서 여건을 바꿔주는 것이죠. 불합리한 부분을 참기보다 설득해서 바꿔 나가는 게 좋아요.”
과음한 탓인지 이튿날 아침은 시원한 복국으로 속을 달랬다. 근처 바닷가에서 복을 직접 가져온다는 말을 들어서 그런지 복 맛이 싱싱했다. 한 사장은 멀쩡했다. 술을 가장 많이 마셨을 텐데 끄떡없는 것을 보니 과연 ‘패스포트’가 좋긴 좋은 술 같다. 그러나 술 덕분이겠는가. 건강한 체력 덕분이겠지.
2003년 6월, 처음으로 삼성 사장단 골프대회가 열렸다. 뭐든 악착같이 하는 기질이 있기 때문에 삼성 사장 출신들은 대개 골프 실력이 좋다. 절대 봐주지 않는 ‘살벌한’ 게임의 결과, 74타를 기록한 한 사장이 1등, 자타가 공인하는 골퍼 황영기 당시 삼성증권 사장이 76타로 2등을 기록했다. 대회가 끝난 뒤 황 사장은 그에게 “아이고 형님, 오늘은 좀 참아주시지” 하면서 투정을 부렸다고 한다.
“골프 잘 치는 사람을 보면 자신의 연습량과 체력을 감안해 목표를 설정합니다. 거리 욕심을 내지 않죠. 실수를 적게 하는 것이 중요해요. 한마디로 뜬구름 잡으면 실패해요. 잘 치려면 연습도 해야 하고, 남의 충고도 귀담아듣고, 자기 나름대로 연구도 해야 합니다.”
골프 실력? 그건 정확하게 연습량과 비례한다. 모든 운동이 다 그렇다. 한 사장은 1988년 이사로 올라섰을 때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다. 새벽 4시45분에 일어나 5시부터 골프 연습장에서 연습했다. 정확하게 1시간10분을 연습하고, 8시까지 회사에 출근했다. 3년 동안 매일 공을 쳤으니 1000일을 연습한 셈이다. 이 때문에 골프 배운 지 1년3개월 만에 싱글이 됐다. 대단한 연습벌레다.
이뿐인가. 그의 스키 연습 스토리는 혀를 내두르게 한다. 2003년 겨울, 이건희 회장은 삼성 사장 몇 사람을 보광 휘닉스파크 스키장으로 불러냈다. 대부분 스키는 처음이었다. 한 사장은 그때 처음으로 스키 부츠를 신었다. 평지에서 몇 분 연습을 하더니 바로 리프트를 타고 코스로 이동, 내려오면서 수없이 넘어졌다.
그때부터 한 사장은 겨울이면 토요일마다 스키장에 가서 스키를 탔다. 회사 스키 동호회에도 가입했고, 일본에 스키 원정도 다녀왔다. 그 결과 지난해 사장단 중 처음으로 ‘챔피언 코스’를 정복했다. 대단한 열정이 아닐 수 없다. 아니 회장이 하란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회장님의 의도는 대략 이런 것 같아요. 우선 나이가 들면 스키를 타던 사람도 그만둔다고 하는데, 역발상으로 나이 들어서 도전해보라는 뜻이 담겨 있고. 또 나이가 들면 왜 스키를 타지 않는지 궁금하기도 했나 봅니다. 뭐든 직접 알아봐야 직성이 풀리시는 분이니.
또 나이 든 사람들에게 마땅한 겨울 스포츠가 없잖아요. 아내와 스키를 타라고 하신 것으로 봐서는 부부간에 대화의 시간도 많이 가지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고 봐야죠. 1거5득은 돼야 일을 추진하는 분이니, 내 해석이 맞을 겁니다(웃음).”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불쑥 이건희 회장은 한 사장에게 좋은 상사였는지 궁금해졌다. 언론에도 잘 나오지 않는 국내 최고의 경영자를, 그는 자주 봤을 것이다. 그러나 기자를 두고 오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내키지도 않을 것이고, 또 진심을 이야기할 것 같지도 않았지만 내친김에 물어봤다.
“탁월한 경영자죠. 회장님의 상상력과 집념,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안목은 경탄할 만합니다. 특히 전문경영인이 빠질 수 있는 오류를 제때 찔러주는 데 탁월하죠. 가끔 비상을 거는데, 그날은 그야말로 정신이 없어요. 이럴 때는 회장님이 지적하는 부분만 봐서는 안 돼요. 전체를 봐야죠. 왜 비상을 걸었는지 의미를 파악해야 합니다.”
언론에 비친 이 회장은 늘 무뚝뚝한 표정이다. 언론에 비칠 때만 그런 것일까. 이 회장 앞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아할까. 그를 웃게 하는 비결은 없는가.
“실패 사례를 들고, 그걸 성공시킨 이야기를 하면 좋아하시죠. 성공했기 때문에 좋아한다기보다는 실패의 원인을 알았다는 측면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그걸 알면 다 된 거죠.”
문리가 트일 때까지
그럼 이 회장은 격려해주는가. 그는 직원들을 어떻게 칭찬하는가.
“좀처럼 칭찬 안 해요. 물론 회장만의 칭찬하는 방식은 있죠. 예를 들어볼게요. 어떤 제품의 시장점유율을 5%에서 10%로 올리겠다고 보고합니다. 그럼 어떤 방법으로 올리겠냐고 물어요. 그에 대해서 대답하면, 언제쯤 되냐고 물어요. 그럼 언제쯤 된다고 답합니다. 그리고 대화가 끝나면 그건 대단한 칭찬이에요.
(정리하면) 내가 하는 일을 보고했다, 회장이 관심을 가졌다, 대책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능하냐고 물었다, 꼭 해내겠다고 했다, 언제까지 하겠느냐고 물었다, 언제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해보라고 했다…이렇게 되면 아주 훌륭하죠. 회장과 내가 약속을 한 거니까. 그런데 묻는 질문에 이리저리 변명하고, 말이 엉키면 그건 혼나는 거예요.”
이 회장의 집념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다. 골프 연습장에서 하루에 1000개의 공을 친다든지, 한 비디오테이프를 100번씩 본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문리(文理)가 트일 때까지 파고 또 파는 것이다.
비디오 영상물을 처음 보면 스토리, 내용 위주로 보이지만 이를 50번, 100번 보게 되면, 장면마다 작가의 생각, 연출자의 의도, 의상, 조명, 음악 감독의 생각을 다 읽어낼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실수한 부분도 알 수 있다. 한 비디오로 수백 가지, 수천가지 내용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누구는 이를 두고 부자니까 가능하고, 오너니까 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구조를 만들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의 심리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해 일을 잘하도록 하면 회사 걱정을 덜게 된다. 그 시간에 자신은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키우는 데 집중할 수 있다. 하나를 잘 풀어내면, 그 다음은 술술 풀 수 있는 것,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수밖에.
복국으로 속을 다스리고, 우리는 불국사로 향했다. 다음날이 석가탄신일. 입구에서부터 늘어선 연등 행렬, 수학여행 온 학생들, 불공을 드리러 온 불자들 때문에 불국사는 북적북적했다. 우린 한적해 보이는 석굴암 가는 길로 방향을 틀었다. 석굴암까지는 4km 남짓, 선계(仙界)로 온 듯 신비스럽고 조용했다. 우린 오르막길을 오르면 땀을 흘렸고, 물을 나눠 마셨다. 머리가 한결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삼성문화재단에서 오래 근무한 덕분인지 한 사장은 그림에 대한 조예가 깊다고 한다. 그의 집을 방문한 사람들 얘기로는 그림과 조각이 집안 여기저기 놓여있다고 했다. 문화재단에 있을 때 구입했냐고 묻자 “그땐 사지 않았다. 일에 사(私)가 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감사팀장을 5년간 역임한 사람다운 말이다.
수많은 작품을 보고, 수많은 예술인과 사귀고 있으니 좋아하는 작가를 물어볼 수는 없었다. 괜히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발상이 뛰어난 것, 특이한 재료를 사용한 것, 형태나 질감이 좋은 것은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에 구입한 조각품 ‘태’(최만린 작)는 느낌이 너무 좋아 출퇴근하면서 꼭 입맞춤을 한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그림을 한 점 집에 걸어놓으면 그때부터 인생은 ‘스토리’가 된다고 한다. 작가의 작품을 한 점 사는 행위는 작가의 분신을 데려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떤 작가라도 자신의 그림을 사준 사람에게는 전시 때마다 초대장을 보내 새로운 작품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이를 계기로 갤러리를 방문하고 그림을 보고, 다른 작품에도 눈을 돌리게 된다.
이뿐인가. 작품에 대한 관심은 작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작가들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작가들과 어울리면서 술도 한잔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예술계 인사가 된다. 한 사장도 이렇게 참여하는 모임이 몇 개 있고, 이들과 어울리다보면 절로 흥겨워진다고 했다. 술집은 작은 무대가 되고, 그 위에서 무용가는 즉석에서 춤을 추고, 시인은 핸드백 속에서 시를 꺼내 읽는다. 이보다 더 근사한 풍경이 있겠는가. 그는 “세상은 놀이터요, 인생은 놀이”라고 말했다.
그림을 걸어놓는다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미래의 이미지를 걸어놓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걸 아침, 저녁으로 보면서 자신에게 최면을 걸면 그 미래는 현실이 된다. 그게 그림을 한 점 집에 걸어놓았을 때 시작되는 ‘마술’의 원리다.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는가. 그럼 그걸 표현한 그림을, 진품이 아닌 포스터라도 붙여보라. 그 미래는 좀더 확실한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기자도 몇 년 전 한 달치 월급을 털어 그림을 한 점 샀다고 하자, 한 사장은 그 작가의 이름이 뭐냐고 물었고, 수첩에 적었다. 오르막길을 오르면서도 수첩을 꺼내 적을 정도면 그림에 대한 관심이 ‘진짜’ 대단하다고 볼 수밖에.
집 앞의 술집
살다 보면 이렇듯 근사하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때론 외로움을 안주 삼으며 혼자서 술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한 사장도 혼자 가는 술집이 있을 법하다.
“어디든 이사 가면 한 달 동안은 혼자서 술을 한잔할 수 있는 곳을 찾아요. 집 근처 술집을 돌면서 분위기를 보는 거지. 맥주 한 병을 시켜도 주인이 싫어하는 기색이 있는가, 너무 시끄럽지 않은가 살펴봅니다. 그럼 마음에 드는 데가 있어요. 물론 술 한잔 생각이 날 때는 직원들과 가거나 친구들을 부릅니다. 근데 어느 날은 약속이 안 잡히는 수가 있어. 그럼 어떻게 해. 혼자라도 가야지.
혼자 간다고 혼자 마시지는 않아요. 고민은 혼자 풀어서는 위험해. 문제를 키우기 쉽고 쓸데없는 상상을 보태. 함께 풀어야 돼. 그래서 주인하고도 얘기하고, 술집에 혼자 온 사람과도 사귀어요. 몇 년 전에는 술집에서 한 젊은 친구를 사귀었지. 혼자 마시고 있기에 함께 마시자고 했더니 삼성생명 다니는 친구야. 그래서 나도 삼성 다닌다고 했더니, 그때부터 좋은 술친구가 됐어요. 그 친구는 좋겠지. 술값은 내가 다 내잖아(웃음).”
조선 팔도에 온리 원!
한 사장은 세상을 거꾸로 사는 사람이다. 나이 60을 넘기면 새로운 친구, 새로운 사업, 사진 찍기를 멀리하라고 했는데, 그는 오히려 더 가까이 한다. 그때가 되면 사귀던 친구도 만나기 어렵고, 하던 사업도 관리를 잘 못할 나이고, 있던 사진도 정리해야 하는 나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그는 사진에 흠뻑 빠져 있고, 디지털 사진을 다루는 포토샵 기술은 전문가 수준을 뛰어넘는다. 친구 사귀는 데 문을 막지 않고 있으니 거꾸로 가는 것이고, 회사 은퇴 이후엔 어떻게 살 것인지 계획도 세우고, 사회복지사업을 준비하려고 뒤늦게 사회복지 정책 전공으로 석사학위도 취득해두었다. 그의 인생엔 한계가 없어 보인다. 존경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 그의 열정에 기가 질리기도 한다.
우리는 마지막 여정인 경주 교동으로 향했다. 그곳엔 경주 최 부잣집이 있다. 그 집으로 가자는 것은 기자의 제안이었는데, 알고 보니 한 사장이 올해 초 삼성사회봉사단 사장으로 부임한 뒤 경주 최 부잣집의 이야기를 엮은 책을 직원들에게 돌렸다고 한다. ‘조선 선비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무엇인가’라는 내용을 담은 책은 그가 삼성사회봉사단에 온 이유를 말없이 설명하는 것이었을 터다.
경주 최 부잣집은 12대를 연이어 만석을 했던 가문이다. 부자 3대 가기 힘들다는 말이 있지만, 이곳은 12대 연속 부자였다. 조선 팔도에 ‘온리 원.’ 마지막 부자였던 최준씨는 일제 강점기 독립투사를 지원하기도 했고, 동아일보 발기인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가진 자의 책임을 보여준 사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만석꾼이자 존경받는 부자로 400년의 역사를 지켜온 비결은 무엇일까. 최 부잣집 스토리를 담은 책에는 이런 말이 씌어 있다.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말라. 재산은 만석 이상 모으지 말라. 만석 이상 넘으면 사회에 환원하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이런 시스템으로 재산을 관리하기 때문에 전국에서 그의 소작인이 되려고 몰려들었을 것이다. 최 부자의 재산이 늘어날수록 소작인에게 더욱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시스템. 그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 되는 구조. 상생(相生)은 이런 것을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최 부잣집이 있는 교동은 신라의 요석공주가 살던 요석궁 터라고 한다. 원효대사가 요석공주를 만난 곳이고, 그 사이에서 설총이 태어났다. 이두문자를 만든 신라의 대학자, 설총의 탄생지, 12대 부자를 낸 교동에서 우리는 점심을 먹었다. 1인당 3만원짜리 한정식이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원래 여행은 좋은 음식점을 찾아 잘 먹으면 성공한 것이다.
한 사장과 함께 울산공항으로 돌아왔다. 1시간 뒤면 서울에 도착할 것이다. 겨우 이틀을 함께 다녔는데도 오랫동안 함께했다는 착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누가 삼성을 이끌어갈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어떤 사람이 삼성에 필요한 것일까.
“예지력이 가장 필요할 것 같아요. 기술의 예측은 어느 정도 가능한데, 기술의 변화가 몰고 올 사회의 변화는 예측하기 힘들어요. 생활 패턴이나 산업에 끼치는 영향을 예측하는 사람이 사장이 되겠지. 변화에 민감하라고 하는데, 그럼 늦어. 따라가면 늦어요. 예측해서 준비하고 있어야지. 예지력을 키우는 데 가장 중요한 밑바탕은 사람에 대한 이해가 아니겠어요. 미래는 사람의 욕망이 만들어가니까.”
‘소중한 인연’
그와 함께한 즐겁고 유쾌한 여행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온 며칠 뒤, 그와 관련해 새로운 소식을 들었다. 회갑 기념으로 직장 후배들이 그에게 보내는 편지를 모아 책을 냈다는 것이었다. 내가 아는 한 이런 일은 이례적이다. 노교수의 제자들이 스승을 위한 논문집을 냈다는 얘기는 들었어도, 직장 상사를 위해 글을 모았다는 말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그에 관해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궁금했다. 책 제목은 ‘소중한 인연.’ 편지를 보낸 사람들을 세어보니 얼추 200여 명이다. 그중 누군가 그에게 이런 편지를 보낸 게 눈에 띄었다.
“당신이 참 자랑스럽습니다. 당신은 나의 귀인(貴人)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