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 사망한 오군…어린이집 잦은 결석, 머리 꿰매기도
文 정부 들어 40억 투입한 예방 시스템, 학대 징후에도 무용지물
3년간 시스템이 찾아낸 아동 학대 건수 0.3%
“데이터 입력 안 되고 수집한 데이터도 부적절”
아동 보호 관련 업무 여러 부서에 흩어져 혼란
낮은 처우·인력난, 입양 업무까지 떠맡은 보호전담요원
“근본적 문제 해결 없이 성과 내기 어려워”
서울 강동구 자택에서 아들 오모(3) 군을 떄려 숨지게 한 이모(33) 씨가 2021년 11월 23일 구속 전 피의자 신문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이러한 사태를 방지하려고 개발한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은 무용지물이었다. 복지부는 2018년 3월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을 개통하며 “빅데이터를 활용해 보호가 필요한 아이가 보내는 위험신호를 찾아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 시스템 작동 방식은 국가기관이 생산한 데이터 가운데 아동 예방접종 및 건강검진 실시 여부, 보육·교육기관 장기결석 여부, 양육수당 및 아동수당 신청 여부 등 44개 내용을 종합 분석한다.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거주지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한다. 내용을 전달받은 담당 공무원이 직접 가정을 방문해 상황을 파악하고, 아동학대 등 문제가 확인되면 수사기관 신고 등 후속 조치를 진행한다.
그러나 오군의 경우 경찰 수사 결과, 2020년 9월부터 어린이집을 수시로 결석했고, 지난해에는 머리를 꿰매야 할 정도로 심한 상처를 입는 등 여러 번 외상으로 병원을 방문했다. 그러나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은 ‘아이가 보내는 위기 신호’를 포착하지 못한 것이다. 오군 거주지 관할 지자체에 통보된 ‘위기 아동 명단’에 오군 이름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뚜렷한 징후에도 아동학대 잡아내지 못한 빅데이터
2018년 3월 19일 서울 중구 사회보장정보원 대강당에서 열린 아동학대 예측 인공지능 ‘e아동행복지원시스템’ 개통식에 참석한 박능후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제공]
e아동행복지원시스템 개발 당시 자문을 맡은 홍창표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사무국장은 “정부 안에서 정보가 잘 공유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홍 사무국장 설명은 이렇다.
“2013년 울산에서 발생한 아동학대 사건을 계기로 위기 아동 발굴을 위한 빅데이터 구축 논의가 시작됐다. 그런데 정부 각 부처가 관련 정보 제공에 비협조적이다. e아동행복지원시스템 출범 초기부터 필요한 정보가 제대로 입력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는데 여전히 이 문제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정부 내 각 부서가 칸막이를 내리고 ‘아동보호를 위해 협력하자’는 자세로 나오지 않는 한 빅데이터 예측률을 높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데이터 수집 문제를 지적했다.
“이 시스템이 활용하는 데이터는 기초생활자 탈락, 단전·단수 여부 등 빈곤 쪽에 치우쳐 있다. 그런데 경험상 아동학대는 빈곤과 상관관계가 높지 않다. 위기 아동 발굴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니, 전문성 있는 인력을 현장에 배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동아’ 취재 결과 2018년 3월 복지부는 e아동행복지원시스템 구축에 예산 19억6925만 원을 사용했다. 사회보장정보원이 매년 발행하는 ‘사업운영계획’에 따르면, 구축 이후 매년 운영비로 2억 원이 들었고, 2021년에는 시스템 고도화를 위한 예산 14억1200만 원이 추가 책정됐다. 현재까지 40억 원에 가까운 예산이 투입된 것이다.
하지만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의 예측률 ‘성적’은 낙제점이다. 2021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사회보장정보원이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3년간(2018~2020년) 경찰에 신고된 아동학대 사건 4만3000건 중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으로 찾아낸 학대 아동은 134건(0.3%)에 그쳤다.
그렇다면 e아동행복지원시스템 정보를 받아 현장을 방문하는 인력은 어떻게 관리되고 있을까. 현재 위기 아동 발굴은 아동 상담을 진행하는 ‘아동학대전담공무원’과 현장에서 가정을 방문해 학대 아이들을 찾아내는 ‘아동보호전담요원’이 전담한다. 그러나 이 요원 상당수가 지자체에서 고용한 계약직 공무원인 데다 열악한 처우 탓에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혼자서 200명이 넘는 아이를 담당하고 있는 한 아동보호전담요원은 “2021년 6월부터는 아동보호전담요원이 홀트아동복지회 같은 민간기관 입양 업무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까지 떠맡게 됐다”며 “지금 상황에서 모든 아이를 세세하게 신경 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월급은 적고 업무량은 많은데 지자체에서는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을 돕는 ‘보조 도우미’ 정도로 취급해 여러모로 힘들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빅데이터 부진할 때 아동학대는 증가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이 제 구실을 못하는 사이, 아동학대 사례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복지부가 2021년 8월 발표한 ‘2020 아동학대 주요통계’에 따르면, 아동학대 사례는 2018년 2만4604건에서 2019년 3만45건, 2020년에는 3만905건으로 꾸준히 늘었다. 아동학대를 10년 넘게 담당해 온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아동학대를 근절하려면 정책 전반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아동보호 관련 업무가 복지부 안에서도 여러 부서로 쪼개져 있다. 과거 아이 한 명을 돕는 과정에서 복지부 내 20여 개 부서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눠야 했던 경험이 있다. 현장 지원도 제대로 안 돼 아동보호전담요원 퇴사자도 속출하고 있다. 그런데 보건복지부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않고 빅데이터 구축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정부는 2022년 7월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에 복지 서비스 지원, 돌봄 보호 이력, 입양 정보 등 다양한 정보를 더해 통합 관리하는 ‘아동통합정보시스템’을 만들 계획이다. 김 변호사는 이에 대해 “정작 해야 할 일은 안 하면서 면피용으로 빅데이터를 내세우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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