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위 20%? 내 정치 인생 훼손
한동훈 진정성에 마음 움직여
비명횡사, 친명횡재에 공감
이재명 판단 잘못 입증하겠다
[영상] 이재명과 한동훈 차이점은요
김영주 국민의힘 서울 영등포갑 후보. [홍태식 객원기자]
“이제 민주당을 떠나려고 합니다. 오늘 민주당이 저에게 의정 활동 하위 20%를 통보했습니다. 영등포 주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서 모멸감을 느낍니다.”
그의 탈당 소식이 전해지자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직접 영입에 나섰다. 한 위원장은 3월 1일 만찬 회동을 하고 “함께 정치하고 싶다”는 뜻을 그에게 전했다. 한 위원장은 언론을 통해 “경륜 있고 상식 있고 합리적인 정치를 하는 큰 정치인”으로 그를 평가했다.
노동계 뜨거운 지지받은 입당
1955년 서울 태생인 김 후보는 한국노총 전국금융노동조합연맹(이하 금융노련) 최초의 여성 상임부위원장 출신이다. 1999년 새천년민주당 창당 발기인으로 정치에 입문해 2004년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다. 19∼21대 총선에서 서울 영등포갑 지역구에서 내리 당선한 4선 의원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고용노동부 장관, 국회부의장으로 일했다.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택시노련)은 김 후보가 3월 4일 국민의힘에 입당하자 지지 선언으로 화답했다. “우리 연맹과 40만 택시 가족은 당당한 노동자의 지위와 보람찬 노동환경을 되찾아줄 적임자인 4선 김영주 의원의 행보에 전폭적 성원과 지지를 보낸다”는 내용이다. 전국섬유·유통노조연맹(섬유·유통노련)도 같은 날 “김영주 의원의 원칙과 소신 정치를 환영한다”는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국회의원의 탈당에 노동계가 이처럼 적극적 지지를 나타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민의힘에서 새출발을 시작한 김 후보는 3월 5일 영등포갑 후보로 단수 공천됐다. 영등포구 영등포동6가에 서둘러 차린 선거사무소에는 선거 유니폼인 빨강 점퍼를 입은 그의 포스터가 대문짝만 하게 걸려 행인의 시선을 끈다. 인터뷰를 위해 기자와 마주한 그는 “이번 선거에서 최선을 다해 승리하도록 하겠다. 힘 있는 여당 국회의원으로 지속 가능한 영등포 발전을 이뤄내겠다. 영등포가 서울 3대 도심에 걸맞게 문화 인프라와 주민 편의시설이 풍부한 미래 첨단 도시로 거듭나게 하겠다”고 말했다. 검은색 재킷 안에 받쳐 입은 빨간색 터틀넥 티셔츠가 결연한 그의 의지를 엿보게 했다.
민주당을 탈당한 결정적 이유가 뭔가.
“비례대표로 정치를 시작해 16년째 국회의원을 하는데 돈 봉투라든지, 비리라든지, 뇌물이라든지, 정치자금법 위반이라든지 하는 스캔들을 일으킨 적이 한 번도 없다. 지난해 전국 지역위원회 평가를 중앙당에서 했는데 서울 49개 지역 중 6군데가 상을 받았다. 그때 내 지역구인 영등포갑이 상을 받았을 정도로 국회의원으로서 의정 활동이나 지역 민주당을 위한 활동에 최선을 다해왔다. 그렇기에 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로부터 의정 활동 하위 20%라는 통보를 받는 순간 굉장한 모욕감을 느꼈다. 공천관리위원장이 전화했을 때 그 자리에 우리 보좌진이 있었다. 전화를 받으면서 ‘민주당을 떠나겠다’고 말했다. 앞뒤를 재며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았다. 딱 끊고 나서 보좌진에 ‘기자회견을 준비하라’고 했다. 무엇보다 내가 살아온 삶을 훼손당했다는 생각이 컸다”
1급 포상 2회, 우수의원상 2회 받았어도 하위 20%?
김영주 의원이 21대 국회 임기 중 받은 당대표 1급 포상과 국정감사 우수의원상. 왼쪽부터 1급 당대표 포상(이재명), 1급 당대표 포상(이해찬), 국정감사 우수의원상(홍익표), 국정감사 우수의원상(김태년).
하위 20%를 정하는 기준이 뭔가.
“모르겠다. 내가 그 기준을 공개하라고 했는데 안 했다.”
후보의 지지자들은 “김영주가 변심한 게 아니라 민주당이 변했다”고 지적하더라.
“택시연맹이라든지 노동조합은 이해관계, 또 조합원 성향에 따라 찬반이 많이 갈린다. 근데 그분들은 내가 노동조합에서 일할 때나 노동부 장관을 할 때나 국회의원을 할 때 어떻게 처신했는지 잘 알기에 지지를 보낸 것이다. 내가 민주당을 탈당하고 일주일 사이에 1500명이 함께 탈당했다. 어떤 분은 내가 강요한 줄 아는데 전혀 아니다. 그런 지지자가 곁에 있다는 걸로 요즘 위안을 삼고 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비판의 소리가 나왔다.
“공감한다. 이번에 기존 의원이 의정 활동 하위 20%, 10%에 든다는 명목으로 공천을 받지 못한 지역을 보면 영락없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연관이 있는 후보가 갔다. 본인이 영입한 인재든지 아니면 성남시장이나 경기도지사를 하던 시절 인연이 있는 인사가 대부분이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다 그렇기 때문에 사천(私薦)이라고 보는 거다.”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고려하진 않았나.
“무소속 출마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무소속을 감수하면서까지 출마하는 건 국회의원을 하려는 집착으로 보인다. 입당 제안이 여러 번 왔어도 바로 결정할 수 없었다. 내가 국민의힘을 택하기까지 열흘 이상 잠을 못 자고 고민한 가장 큰 이유는 하위 20% 통보에 정치를 그만둘 순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리고 나와 함께해 온 주변 사람들을 명예롭게 해야 한다는 소신을 내려놓을 수 없어서다. 나는 김대중 대통령이 새천년민주당에 영입해 (당선과 거리가 먼) 비례대표 39번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1999년부터 지켜온 이 당을 떠나는 것과 계속 남아 있는 것 중 어느 쪽이 내게 더 가치가 있는지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가족과 많이 의논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내가 국민의힘에 입당한 것은 이재명 대표가 공천을 잘못했다는 것, 하위 20% 통보가 잘못됐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은 생각도 한몫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만나고 입당을 결정했다. 무엇이 마음을 움직였나.
“누구를 만나 30분에서 1시간 정도 얘기하다 보면 상대의 진정성이 느껴진다. 한동훈 위원장도 그랬다. 얘기를 나누며 나를 영등포갑에 출마할 국민의힘 후보로 영입하려는 진정성을 보여줬다. 첫 대면한 자리에서 한 위원장이 ‘여의도 사투리를 안 쓰겠다’고 했는데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랐다. 나에 대해 주변 평판도 듣고 어떤 법안을 냈는지도 공부해 왔다. ‘지금 민주당은 너무 좌측에 가 있고 국민의힘은 너무 우측에 가 있다. 국민의힘에도 좌측에 가 있는 의원이 있듯이 민주당에도 우측에 와 있는 인사가 있다. 나랑 함께 새 정치를 하자’고 설득했다. 그날은 내가 답을 못 주고 귀가해 이틀 동안 고민했다. 한쪽에서는 저를 버렸고, 한쪽에서는 내 능력이 아직 남아 있으니 함께하자고 했다. 그 차이가 내 마음을 움직였다.”
노동자 ‘삶의 질’은 포기할 수 없는 가치
일각에선 보수정당 정책과 결이 다른 행보를 보인 후보가 국민의힘과 한식구가 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는다.“당론이라면 자기와 정체성이 달라도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이 자기를 뽑아줬고 공천을 줬으니 민주당에서도 그렇게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의원들 개개인의 자율에 맡긴다. 국민의힘에서도 내가 지금까지 지켜온 가치를 지킬 수 있으리라고 본다. 내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노동이다. 고용주 외에는 다 대한민국 노동자라고 생각한다. 내가 어디에 있든 노동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역할에 소홀함이 없을 거라고 자신한다.”
“지금 그건 생각하지 않는다. 내 진정성을 우리 영등포 유권자들이 알게 되고, 내가 해온 의정 활동을 한번 돌아보면 나를 믿고 선택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민주당은 영등포갑 후보로 채현일 전 영등포구청장, 개혁신당은 국민의힘 비례대표 출신 허은아 당 수석대변인을 전략 공천했다. 두 후보와 다른 차별화된 경쟁력을 묻자 김 후보는 “누구보다 영등포를 잘 아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진 그의 말이다.
“허은아 의원은 국민의힘에서 서울 동대문 당협위원장 신청도 했고 여러 가지를 했다. 채현일 후보는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한 바 있다. 경기 안양에서 이종걸 전 의원, 서울 동작에서 전병헌 전 의원을 보좌했다. 서울시에서 근무했고, 청와대에서 일했다. 영등포에 뿌리가 있지 않은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할 때 영등포구청장이 됐는데 그때는 청와대에서 행정관을 했으면 ‘묻지마 투표’가 될 정도였다. 구청장을 4년 했어도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영등포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본다. 나는 택시노조 40만 명이 지지 선언을 해주고, 섬유노조가 지지해 줄 정도로 신뢰를 중시해 온 사람이다. 한번 인연을 맺으면 그 사람들과 특별하게 어긋나지 않는 한 오래간다. 1987년 영등포에 이사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1999년 새천년민주당 창당 발기인 추진위원으로 정치권에 들어와 25년 동안 나와 함께한 사람들은 내 진정성을 안다. 그게 다른 후보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신동아 4월호 표지.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방송,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대중문화를 좋아하며 인물 인터뷰(INTER+VIEW)를 즐깁니다. 요즘은 팬덤 문화와 부동산, 유통 분야에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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