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호

20년간 입었던 판사 법복 벗은 것은 ‘자유’ 때문

[에세이] 패키지여행 같은 공직 벗어나 자유여행 하는 즐거움

  • 정재민 변호사·前 법무부 송무심의관

    입력2026-02-12 0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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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에 넘치는 대우받던 판사 시절

    • 재량 없이 유무죄만 판단하던 삶

    • 유능한 선배 많았으나, 부러운 선배는 드물어

    • 변호사 된 뒤 찾은 자기결정권

    재판을 마친 후 피곤한 표정으로 법정을 떠나는 한 판사의 모습. AI 생성 이미지

    재판을 마친 후 피곤한 표정으로 법정을 떠나는 한 판사의 모습. AI 생성 이미지

    별다른 일정이 없으면 아침에 동네 헬스장에서 간단히 운동을 한 뒤 차를 몰고 사무실로 출근한다. 공직에 있을 때는 출근길에 차에서 항상 뉴스를 틀어놓았지만 지금은 주로 음악을 듣는다. 제일 좋아하는 건 밴드음악이다. 퀸, 오아시스, 콜드플레이, 라디오헤드, 너바나를 학생 때도 지금도 좋아한다. 넬, 카더가든, 검정치마, 잔나비 같은 한국 밴드도 좋다. 인간이 위대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수많은 어리석은 전쟁과 늘어가는 핵무기, 오염된 환경, 고양이들 싸움보다 이해가 안 가는 정치인들 싸움을 떠올리며 코웃음 치는 편이지만, 인간이 만든 멋진 음악이 음원 사이트 가득 쌓인 것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 사무실은 서울중앙지방법원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한가운데 난 왕복 8차선 도로변 건물에 있다.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5층 버튼을 누르면 비로소 변호사로서의 하루가 시작된다. 방에 가방을 놓아둔 뒤 디퓨저 향기가 은은하게 퍼지는 상담실로 들어가 음악을 틀고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내다본다. 비록 5층이지만 건물에서 제일 높은 층이고 비탈길 위에 자리하고 있어서 시선을 왼쪽으로 돌리면 서초동의 수많은 변호사 사무실이 보인다.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까만 블랙박스처럼 생긴 서울중앙지검 청사도 보인다. 늘 같은 크기였을 텐데 최근 검찰권이 약화하면서 왠지 예전에 비해 작아 보인다.

    “이젠 감방에 가자?” 시위대의 난감한 노래

    내 사무실은 서울중앙지법, 서울중앙지검과 걸어서 5분이면 도착할 정도로 가깝고 주차 공간도 넉넉한 편이어서 변호사들에게 인기가 많다. 단점은 서초동에서 집회가 있을 때 너무 시끄럽다는 것이다. 2019년 이른바 ‘조국 사태’ 이후부터는 굵직한 정치인의 재판이 있는 날마다 사무실 앞의 8차선 도로에 수천, 수만 명씩 모여 깃발을 휘두르고 확성기로 구호를 외치는 정치 집회가 열린다. 

    시위대의 레퍼토리 중 가장 신경 쓰이는 노래는 “가자~ 가자~ 가자~ 이젠 감방에 가자~” 하는 노래다. 상담자 다수가 감옥에 갈까 봐 불안해서 나를 찾아오는데 상담 중에 그 노래가 반복해서 들리면 피차 민망하다. 

    흔히 상담실에 밝은 형광등을 달고 업무용 테이블과 의자들을 둔 것에 비해 나는 형광등을 모두 없애고 검정 갓을 쓴 주황색 등을 달았다. 딱딱한 회의용 의자 대신 거실에 둘 법한 소파를 놓았고, 테이블도 마주 보는 사람들이 더 가까이 앉을 수 있도록 좁고 낮은 것으로 골랐다. 벽은 붉은색 벽돌이 층층이 쌓인 모양으로 꾸몄다. 그 벽에는 내가 직접 만든 우리 사무실의 주황색(열정과 풍요를 상징한다) 로고가 그려진 황금색 철판을 걸어놓았다. 그 아래에 하얀색 스피커를 설치해 두고 재즈, 팝, 피아노 연주곡 같은 음악을 항상 틀어둔다. 천장은 (우리가 가장 꼭대기 층인 점을 이용해서) 구멍이 송송 나 있는 흰색 합판을 다 걷어내고 세련된 연회색으로 칠했다.



    이 방에 들어온 분들은 대개 “이곳은 변호사 사무실이 아니라 좋은 카페 같아요”라고 말하는데 그 인테리어는 카페보다는 몸을 비스듬히 기대는 소파가 있는 정신분석가의 상담실을 떠올리며 설계한 것이다. 너무 환하지 않고 아늑하고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어야 속마음을 털어놓기가 수월하다. 

    그동안 이 자리에서 나를 찾아온 분들이 눈물과 한숨을 쏟으며 토해 내는 솔직한 이야기들을 들어왔다. 배우자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 상속 분쟁 중에 터져 나오는 형제자매에 대한 원망, 자식 옥바라지하며 겪는 애증, 조직의 일에 대해 모든 책임을 혼자 떠안고 가는데도 조직으로부터 홀대받는 사람의 섭섭한 마음, 남편이 감옥에 가 홀로 자식을 키우며 살아야 하는 처의 불안한 심경…. 만약 이 자리가 하얀 형광등 불빛이 비추는, 사무용 테이블이 놓여 있고 음악이 흐르지 않는 일반 회의실이었다면 이 모든 말을 그토록 생생하게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패키지여행에서 자유여행으로

    예전에 함께 일했던 판사 동료들은 요즘 나를 보면 하나같이 “변호사 되니 뭐가 좋아?”라고 묻는다. 그러면 나는 “패키지여행 하다가 자유여행 하는 것 같아서 좋아”라고 답한다. 판사일 때는 정해진 날짜에 재판을 했고, 그 재판 일정에 맞춰 기록을 읽고 판결문을 써야 했다. 행정부 공무원일 때도 내 의사와 무관하게 세워진 연간 계획, 월간 계획, 주간 계획에 따라 일했다. 그러나 지금은 매일 일정을 내가 정한다.

    자유여행을 하면 직접 이동 순서를 선택하고 각 지역의 숙소를 검색하고 숙소별로 평을 찾아보고 가격도 비교해야 한다. 결제 사이트도 숙소마다 다르다. 이동할 때도 일일이 교통수단이나 버스 노선, 버스 시간 같은 것을 알아봐야 한다. 그렇지만 좋은 점도 많다. 깃발을 들고 다니는 가이드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놓칠세라 신경 쓸 필요 없고, 더 머물고 싶은데도 다음 장소를 향해 단체로 버스를 타고 떠날 필요도 없다. 원치 않는 음식을 먹을 필요도 없고, 가고 싶지 않은 쇼핑몰에 들를 필요도 없고, 계속 똑같은 한국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거나 간혹 그들 중 누구로부터 오지랖 섞인 말을 들을 필요도 없다.

    2023년 1월 28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 밖에서 이재명 대통령(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처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모여 집회를 하고 있다. 동아DB

    2023년 1월 28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 밖에서 이재명 대통령(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처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모여 집회를 하고 있다. 동아DB

    20여 년을 공직에 있다가 갑자기 변호사가 돼 자유여행하듯 살게 됐다. 매일 모든 일정을 내가 정해야 하니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출근 시간이 9시라는 것도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만큼 당연한 일이었는데 변호사가 되고서는 당장 몇 시에 출근할지부터가 고민이었다. 

    처음에는 그간 9시까지 출근하기 위해 늦잠 자고 싶은 마음을 뿌리치고 집을 나선 것에 대한 보상 심리로 잠들 때 알람도 설정하지 않았다. 공직에 있을 때는 평일에 갈 엄두도 내지 못했던 헬스장으로 (이혼당하는 사람이 가정법원에 가는 발걸음처럼) 느릿느릿 걸어가서 하고 싶은 만큼 운동을 하고 텅 빈 목욕탕 욕조 안에서 “그래, 이렇게 살아야 사는 듯 사는 거지!” 하며 정신이 이상한 사람처럼 씨익 웃기도 했다. (공직에 있을 때는 해본 적이 없었던) 대낮에 거리를 활보하고 있으면 마치 교도소에 갇혀 있던 사람이 출소한 것 같은 어색한 해방감을 주었다.

    자유여행은 패키지여행이 따라갈 수 없는 본질적 장점이 있다. 여행 기간 내내 시시각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면 지루할 틈이 없다. 야구나 축구를 구경만 하고 있으면 하품이 나오다가 깜빡 잠이 들 수도 있지만 직접 선수로 뛰면 졸릴 수가 없는 것과 같다.

    요즘 주변 지인들이 “일이 지겹고 사는 게 재미가 없다”며 호소하는 경우가 늘어간다. 개중에는 현직 부장판사도, 고위공무원도 있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라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일터에서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기회가 적어서 그렇다. 많은 공직자가 공직에 있는 동안 ‘무난하게’ 사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그저 선례를 따르고 다수가 하는 처신에 묻어가면 안전하기는 하겠지만 일에서 재미와 의미를 느끼기 어렵다. 결과가 뻔한 스포츠 경기를 장시간 보면서 누워 있으니 활력이 없다. 심지어 젊은 시절부터 윗사람이나 구성원 다수가 무난하게 좋아하는 모습에 자신의 성격이나 정체성을 끼워 맞추기도 한다. 이렇게 ‘가짜 자기’로 살면 신이 날 리가 없다. 우울증이 안 찾아오면 다행이다. 내 삶을 사는 듯 살기도 짧은 인생을,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허비할 순 없다.

    판사를 그만둔 이유

    판사를 그만둔 이유도 남의 잘못을 지적하고 처벌하는 수동적인 일을 넘어서 능동적으로 내가 사는 공동체를 위해 뭔가를 만들어내는 일을 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지만, 계속 판사로 있으면 자기결정권 행사가 제한되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실 판사는 분에 넘치는 직업이었다. 나이와 능력에 비해 과분한 대접을 받았고, 실제보다 더 반듯한 사람인 것처럼 신뢰받았다. 거짓말이 난무하는 법정에서도 판사만큼은 거짓말할 필요가 없었다. 언제나 믿는 대로, 다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재판할 수 있었다.

    그러나 판사의 삶은 고급 패키지여행 같은 것이었다. 판사의 일정은 미리 세세하게 정해져 있고 대부분의 판사가 거의 똑같은 방식으로 엇비슷한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재판을 받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자신의 운명이 판사의 판결에 크게 좌우되므로 판사의 재량이 아주 넓다고 느낄 수 있지만 판사의 판단은 대부분 기존부터 존재하는 법령과 판결례에 따라서 이뤄진다. 당사자가 어떤 판사를 만나는지에 따라서 판결 결과가 상당히 다르다면 그것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라는 정의의 본질에 반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다 고려하면 판사가 펼칠 수 있는 재량의 여지는 골대 곳곳에 선수들로 벽을 세워 막아놓고 프리킥을 차는 스트라이커처럼 좁아진다.

    게다가 판사의 선택지는 첼리스트가 연주하는 음악 선율이나 화가가 구사하는 색조처럼 풍부하지도, 다양하지도 않다. 유죄 아니면 무죄, 합법 아니면 위법, 기각 아니면 인용처럼 이분법적이고 단선적이다. 사람의 눈동자 하나에도 온 우주에 있는 별보다 더 많은 수의 원자가 들어차 있다. 그렇게 복잡한 인간을 놓고 유죄 아니면 무죄, 합법 아니면 위법, 기각 아니면 인용처럼 이분법적 판단을 하다 보면 지나가는 나그네를 침대에 묶고 몸이 침대보다 길면 잘라 죽이고 짧으면 늘여 죽이던 그리스신화 속 프로크루스테스가 된 것 같았다.

    판사 개인의 앞날도 컨베이어벨트의 움직임처럼 정해져 있다. 모든 판사가 서울, 수도권, 지방을 3~4년 단위로 이동하고 법조 경력 16년 차가 되면 일제히 부장판사가 된다. 그런데 선배들이 그리 멋있어 보이지 않았다. 성실하고 똑똑하게 처신하면서도 경쟁에서 우위를 빼앗기지 않는 유능한 사람은 많았지만 삶의 방식이나 언행으로 영감을 주거나 ‘아,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선배는 잘 보지 못했다.

    판사와 행정부에서 부서장으로 20년 이상 일하는 동안 비품을 사고 방문 수리를 신청하는 등 작은 일들은 대개 직원들이 대신 처리해 줬다. 그러나 지금은 벽에 걸 그림을 고르고, 로펌 로고를 만들고, 홈페이지를 설계하고, 명함에 들어갈 글을 적고, 찻잔과 커피머신, 스피커와 소파, 디퓨저 향을 고르는 일을 직접 한다. 아이가 세상을 처음 경험하는 듯이 신기하고 재미있다.

    변호사가 된 뒤 ‘내 것’이 많아졌다. 공직에 있을 땐 책상도, 컴퓨터도, 연필도, 심지어 슬리퍼도 내 것이 아니었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도 내가 뽑은 분들이 아니었다. 판사일 때 재판에서 만나는 당사자도 내가 선택한 사람이 아니었고 그들과 ‘관계’라는 것이 형성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설립한 로펌에서, 내 돈으로 인테리어한 사무실에서, 내 스피커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내가 산 소파에 앉아서, 내가 고른 잔에 커피를 마시고, 내가 뽑은 직원들에게 매달 월급을 준다. 대형 로펌의 고객들은 특정 변호사가 아니라 대형 로펌 간판을 찾아온 것이지만, 지금 내 고객들은 내 이름을 신뢰해서 온 것이다. 언젠가는 큰 직함보다 작은 명패일지언정 내 이름 석 자로 살기를 원했는데 그 소망이 이루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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