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교통사고를 ‘테러’인 것처럼 하기에 ‘분노’
40~50명 ‘성접대 강요 리스트’ 실체 있나
윤지오를 ‘악마를 죽일 무기’로 생각하는 ‘진영논리’
나는 거짓 선동과 싸운다…파시즘이 걱정된다
尹 비호한 안민석 의원, 사건 본질 묻히게 해
[뉴스1]
박 변호사는 판사에게 석궁을 쏜 이른바 ‘부러진 화살’ 사건의 김명호 전 교수와 가수 고(故) 김광석의 아내 서해순 씨 변호를 맡은 인물. 정봉주 전 의원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여성의 법률대리인을 자처했고, 배우 곽도원과 이재명 경기지사와의 논쟁 등 언제나 논란의 중심으로 파고든다.
행적으로 보면 박 변호사는 도전적이고 투쟁적이다. 격렬하다. 그의 페이스북에는 욕설도 눈에 띈다. 그런데 거침없는 비판과 핵심을 찌르는 절제미는 사안을 단순하게 만든다. 그는 이제 작가 김수민을 대리해 윤지오를 겨누고 있다.
고 장자연 씨가 사망 전 작성한 문건.
기자가 탄 택시는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 맞은편에 있는 박 변호사 사무실에 도착했다. 박 변호사가 웃으며 인사를 했다.
생각을 정리하는 습관
- 경남 창원에 사무실을 낸 지는 얼마나 됐나.“2004년 5월이니, 만 15년 됐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때 마창노련(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에 센 조직이 많았다. 대기업 노조 중심인 울산과 달리 작은 기업 노동자가 많아 연대 정신이 굉장히 높았던 곳이기도 하다. (민주노총 금속노조연맹 법률원 상근변호사로 있다가) 조합원들의 요청으로 내려와 눌러앉았다.”
- 박 변호사 이름 앞에는 ‘노동변호사’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사법시험(사법연수원 30기)에 합격하고 어떤 삶을 살 것인지를 놓고 굉장히 고민했다. 법률지식을 가진 사람 편에 설 것이냐, 아니면 가지지 않은 편에서 (지식을) 사용할 것이냐. 나는 스무 살 이후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한 사람이다. 1991년 소련이 망하고 (운동권 인사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때 나도 (대기업에) 취직했다가 돌아왔다. ‘하루를 살더라도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자’ 하고 생각했다. 돈 못 벌 거라는 건 뻔히 알았다(웃음). 무료로 수임하거나 적게 받기도 하고, (소송비용을) 못 받은 사건도 많고….”
- 이슈가 되는 사건에 뛰어들어 설전을 벌이거나 논란을 증폭시켰는데.
“생각을 정리하는 습관이랄까. 나는 호기심이 있다.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는 사건은 조사를 해보고 의견을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변호사는 사실관계에 의구심을 품어야 한다. 상반된 주장 속에서 ‘상식에 어긋나는 주장’을 하는 사람을 보면 ‘이 건은 조사해서 내 생각을 가져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장자연이 리스트를 만들었다니…
- 그렇다면 윤지오는 상식에 어긋난 주장을 했나.“나는 오래전부터 ‘장자연 사건’ 소송 진행 과정을 보고 있었다. 여러 판결문도 찾아봤다. 성접대 강요 등은 심증만 있다고 해서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해하고 넘어갔다. 물론 2009년 검경 수사에서 검찰이 관련자 통신기록 조회나 계좌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하거나, 수사의 폭을 좁힌 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 9년 만에 검찰 과거사위가 다시 조사에 나섰는데.
“그렇다. 작년에 재조사 요구가 일면서 조사위원회가 꾸려졌다. 그런데 10여 년이 지나서 증거 멸실도 많았을 거고, 통신기록 조회도 어렵다. 수사관 처지에선 참 곤란한 사건이다. 다만 여러 사람이 힘을 모으면 뭔가 나오지 않겠는가, 관련자 처벌은 못 해도 실체를 밝힐 수 있겠다는 생각은 문득문득 하고 있었다.”
- 그런데?
“갑자기 윤지오가 등장했다. 굉장히 뜬금없이 ‘(장자연) 리스트를 봤다’고 말하더라. ‘기존 장자연 문건 외에 또 다른 리스트가 있다? 누가 작성했다는 말인가’ 하고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장씨는 2009년 2월 ‘장자연 문건’을 쓸 때 ‘이름은 밝히지 말아달라’며 신원이 노출되는 부분을 지운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실명 리스트를 작성했다니….”(247쪽 상자 기사 참조)
- 알려진 장자연 문건에는 매직으로 까맣게 칠한 부분이 있다.
“그 부분이다. 그런데 윤지오는 앞뒤 맥락 없이 40~50명의 (명단을 공개한) 리스트를 봤다는 주장을 했다. 문제가 있어 보였다. 3월 4일 입국한 윤지오가 얼마 뒤에 낸 책도 보고, 사건 기록도 살펴봤다. 그러던 중 윤지오가 장씨 죽음을 팔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굉장히 강한 의구심이 들었다.”
- 강한 의구심?
“기존 판결문이나 조서에서 윤지오는 ‘성접대나 술접대를 강요받은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도 ‘매번 언니(장씨)와 자기는 (술자리에) 불려갔다, 자신은 (술접대) 강요받은 적 없는데 언니는 강요받은 거 같다’는 취지로 말을 한다. ‘유일한 목격자’라고 하면서 술자리에서 장자연이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서는 얼버무린다. ‘장자연 리스트’ 얘기하면서 결정적으로 얘기한 건 없다.”
그는 오른쪽 손날로 여러 번 책상을 내리쳤다. 말이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2009년 2월 작성한 장자연 문건에 나온) ‘조선일보 방 사장’ 부분에 대해 아는 것처럼 얼버무리더니, 새로운 ‘리스트’를 언급하면서 ‘법 위에 군림하는 30명과 혼자 싸우고 있다’ ‘주변 위협에 10년 숨어지냈다’고 한다. 한국에 입국한 뒤 임시 숙소(호텔) 환풍구의 끈이 떨어져 있고, ‘비상호출용’ 스마트워치가 작동이 안 된다며 꾸준히 ‘신변 위협’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경호비용 운운하며 모금 활동을 했다. 그런데 결과는 어땠나. 스마트워치는 그의 작동 미숙 탓이었고, 신변 위협 관련 범죄와의 연관성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경찰은 밝혔다.”
“마치 뭔가 알고 있는 것처럼…”
윤지오는 지난해 12월 JTBC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리스트 맨 위에 ‘성상납을 강요받았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40~50명의 이름이 적힌 리스트를 봤다”고 언급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그의 책 108쪽에는 ‘직위만 간단히 적혀있는 장자연 리스트를 봤다’ ‘B성의 세 사람이 연달아 적혀 있었는데 족히 40, 50명은 되는 거 같다’고 적었다. 윤지오는 4월 12일에도 “30명에 가까운, 법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 불특정 다수에게 공격받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명단에 나오는) 그분을 직접 언급하면 명예훼손으로 걸릴 수 있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이 얘기를 한 것이다.“특이한 성씨 운운하며 언론에 나오는데, 정작 검찰 과거사위에서도 그런 식으로 진술한 적이 없다고 하더라.”
- 진술서를 봤나.
“여러 정보 루트를 통해서 확인했다. 그런데도 마치 뭔가를 알고 있는 것처럼 얼버무린다.”
- MBC 뉴스데스크 앵커는 3월 18일 윤지오가 봤다고 주장하는 리스트 속 유력 인사 실명 공개를 거듭 요구했다가 다음 날 사과하기도 했다.
“리스트 관련 아는 게 많이 없으니 말을 할 수 있을까. 윤지오는 또 같은 소속사였던 배우(이미숙, 송선미)에게 ‘진실을 밝혀달라’고 요청하던데, 오래 함께 있었으니 많이 알고 있을 거라는 식이다. 그런데 두 배우는 (장씨와 관련된) 술자리가 없었다. 억울하게 당하고 있다고 본다. 그 또한 윤지오가 아는 게 별로 없다는 방증 아닌가. 자신이 아는 걸 명확히 밝히면 되는데, 그 증언을 하지 않아 고개를 갸웃했다. 마치 ‘차량 테러’를 당한 것처럼 말하니 명확해지더라.”
단순 교통사고 vs 차량 테러
윤지오가 지난 1월 김수민 작가에게 보낸 사진. 위가 윤지오 차량, 아래가 가해 차량이다.
“그렇다. 눈길에 뒤에 오던 차가 받은 거다. 당시 윤지오는 김수민 작가에게 ‘뒤 차가 눈길에 미끄러져 접촉사고를 당했는데, 애들 데리러 가던 아빠가 사고를 냈다’며 파손된 차량 사진을 보내왔다. 그런데 4월 11일 JTBC에 출연해서는 두 번의 ‘차량 테러’를 당한 것처럼 말한다. TV 화면에 방영된 사진도 김 작가에게 보낸 사진이다. 그런데 사고 가해 차량과 피해 차량을 각각 보여줘 각기 다른 사고를 당한 것처럼 방영됐다. 일반적인 교통사고를 신변에 위협이 있는 것처럼, 마치 ‘테러’로 둔갑시킨 거 아닌가. 윤지오는 장자연 사건에 대해 뭔가를 아는 것처럼 ‘목숨 걸고 증언’한다고 하더니, 장씨 죽음에 관해 어떤 얘기를 했나. 이는 고인의 죽음을….”
이후 이 사건이 논란이 되자 윤지오는 5월 13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김수민 씨에게도, JTBC 측에도 (사진에 나오는) 첫 번째가 제 차고 두 번째가 사고 차량이라고 말했다”라며 “공교롭게도 책 출판을 준비한 후부터 제 과실이 아닌 사고가 두 번 있었다. 이번 한국 방문 시에도 경호원 과실이 아닌 차 사고가 지하 주차장에서 있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 그럼 윤지오가 봤다는 ‘리스트’는 뭘까.
“예단할 수 없지만 4월 16일 김 작가가 윤지오와의 인스타그램 메신저 내용을 알리면서 퍼즐이 맞춰졌다. 윤지오가 말하는 리스트는 경찰 수사 서류 같아 보인다.”
- 경찰 서류?
“윤지오가 경찰에서 조사를 받던 중 갱지로 된 수사서류가 있었는데, 경찰관이 그걸 놓고 간 사이 그 서류를 잠시 봤다고 김 작가에게 말했다. 2009년 경기지방청의 대대적인 수사로 장씨에게 100만 원 이상 준 총 32명, 3억4000만 원의 수표 발행자들이 등장한다. 당시 조현오 경기지방경찰청장은 ‘장자연에게 돈을 300만 원, 500만 원씩 준 사람이 7, 8명 되는 것 같은데 하나같이 장래성을 봐서 줬다고 해서 수사할 수가 없다’고 인터뷰를 했다. 참고인 조사를 받으면서 경찰이 (수사를 위해) 만든 계좌 확인용 리스트를 우연히 잠깐 봤을 개연성은 있다. 그런데 김 작가가 대화 내용을 공개하니 윤지오는 ‘허위사실’ ‘조작’이라고 비난했다. ‘누가 허위사실을 퍼트리는지 수사기관에서 밝혀보자’고 생각했다. 김 작가는 4월 23일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고, 후원금 모금에 대해선 내가 총대를 메고 (4월 26일) ‘기망을 통한 재물 편취(사기)’ 혐의로 고발했다.”
윤지오의 공익 활동
- 윤지오의 공익적 활동은 없었다고 보나.“3월 18일 조모 씨(전 언론인) 재판에 재정증인(소환장 발부 없이 법정에 있는 사람을 증인 채택하는 것)으로 참여해 (당시 술자리 상황을) 증언한 건 공익적인 일이었다. 강제 추행당한 내용을 진술했으니까. 그러나 그 외에는 자신의 책을 내고 선전을 했다.”
조씨는 2008년 8월 서울 강남구의 한 가라오케에서 열린 장씨 소속사 대표 김모 씨 생일 파티에 참석해 장씨를 강제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 변호사는 다시 손날로 책상을 치며 말했다.
“이 친구(윤지오)가 입을 열면 ‘조선일보를 잡을 수 있다’는 기대감만 부풀려놓았다. 그래서 내가 ‘윤지오가 뭘 아는지 밝혀라’ 하고 공격하니 ‘조선일보의 민낯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훼방 놓고 있다’고 나를 공격하더라.”
- 최초 장자연 문건에 ‘조선일보 방 사장’과 ‘잠자리’ 얘기가 나오니 국민들은 뭔가 ‘권력형 성접대 사건’을 은폐한다는 생각에 그런 거 아닌가. 정치적으로 조선일보 반대 측에 있는 사람들이….
“기자회견에서 밝혔지만 이미 ‘악마’를 설정해놓고 거기에 악마를 죽일 수 있는 무기인 것처럼 윤지오를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한 얘기다. 음모론이다. 마치 국정원, 안기부를 끼우면 뭔가 엄청나게 그들의 생각대로 만들어질 것처럼. 음모론을 퍼트리면서 먹고사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런 음모론과 싸운다. 있는 그대로 사실관계를 보면서 이 사회를 개선해야 하는데 음모론은 이 사회를 변하지 못하게 한다.”
- 김 작가는 윤지오와 어떻게 인연이 됐나.
“윤지오가 인스타그램 메신저를 통해 김 작가에게 먼저 연락을 해왔다. 지난해 6월부터 올해 3월까지 거의 매일 대화를 했다. 둘의 문자 내역을 다 봤다.”
- 윤지오가 책 출간 관련 도움을 받으려고 연락했나?
“그 당시 김 작가는 팔로어가 6만여 명에 달했다. 윤지오는 김 작가를 만나보고 싶어 했고, 지난해 12월에는 저녁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함께 술을 마시기도 했다. 나이는 김 작가가 2살 연상이다.”
진영논리, 반독재와 민주주의
- 책을 낼 때 어느 정도 관여했나.“윤지오는 지난해 6월부터 책 출판 계획이 있었다. 그래서 김 작가는 출판사를 소개해주거나 책 인세와 북콘서트 진행 등에 대해 조언했다. 물론 실제 책을 낸 출판사는 김 작가가 소개한 곳이 아니다. 책 내용은 언급하지 않고 응원을 해줬다. 그 외에는 일상적인 대화가 많았다. 오늘은 뭐 했고, 뭘 만들었다거나 고민 상담 등이다. 장자연 사건 얘기는 전혀 없다가 윤지오가 지난해 11월 말 한국에 올 때부터 조금씩 나온다.”
- 결정적으로 김 작가와 사이가 틀어진 계기는 뭔가.
“3월 4일 한국에 온 이후 윤지오의 언론 인터뷰를 보다가 ‘어 나한테 얘기한 건 다른데’라고 느끼면서다.”
- 어떤 점에서?
“예를 들면 그동안 윤지오는 ‘장자연 사건에 대해 모른다’고 했는데 엄청나게 아는 것처럼 말을 하고, 단순 교통사고를 ‘차량 테러’라고 얘기했다. 장씨 유가족들에게 ‘책 출간을 허락받아야 한다’고 충고하니 ‘유가족은 돈만 아는 사람 아니냐’고 답하는 걸 보고 적잖이 놀랐다. 3월 8일 이후 관계는 끝났다.”
- 최근 한 여성 변호사는 라디오에서 ‘김 작가가 윤지오 책을 대필했고, 박 변호사의 개입으로 장자연 사건 본질이 흐려질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우선 김 작가는 대필해준 적도, 그런 말을 한 적도 없다. 그 여성 변호사가 그렇게 말해서인지, 윤지오는 김 작가를 ‘거짓말하는 사람’이라고 몰아붙였다. 나와 (2009년 장자연 문건을 최초 보도한) 김대오 기자가 이 사건을 묻기 위해 함께 일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진영논리로 이 사안을 바라보고 그런 맥락에서 공격하는 거 같다. 응징하겠다.”
- 이상호 기자, 정봉주 전 의원, 윤지오 등을 ‘공격’하니 좌파진영에서 그렇게 보는 건가.
“모든 진실을 드러낼 수 없지만, 어쨌든 진실을 찾아가려고 하는 그런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나의 확고한 신념이다. 만 20세 이후로 34년 동안 반독재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왔다고 생각하는데 나에 대해 모르거나, 아니면 알고 싶지 않던가. 아 나 이거.”
‘나꼼수類’의 득세, 붕괴된 지적 풍토
- 그런데 왜….“2009년 이후 이른바 ‘나꼼수’(2011년 4월~2012년 12월까지 방송한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류가 득세하면서 진보진영의 지적 풍토가 완전히 무너졌다. 민주노동당도 2008년 분당하면서 사분오열했고, 민주당에 독자적 목소리를 냈던 진보진영이 와해된 틈을 ‘나꼼수류’가 파고들었다. 알고 싶지 않으면 의도적으로 피하고, 자기 진영에 맞지 않으면 ‘나쁜×’ 취급을 한다.”
- 지적 풍토는 무엇을 말하나.
“자신의 사유 기반이 있어야 하고, 치열하게 공부하고 고민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걸 버리고 말초적인 말과 음모론으로 무장해 오로지 자한당(자유한국당)과 조선일보를 ‘까는 데’서 위안을 삼는다. 진실의 편이 아니라 누구 편이냐는 걸로 취사선택하는데, 이는 파시즘의 근원이다. 파시즘은 한쪽 진영을 악마나 적으로 내몰면서 공격하는 걸 당연한 임무로 여긴다. 이런 풍조에선 언제든 파시즘을 선동하고, 지도이념으로 삼는 무리가 정치권력을 잡을 수 있다. 굉장히 두렵다. 그러니 가짜 진실을 제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 정치권 인사들은 ‘윤지오와 함께하는 의원 모임’을 만들었다. 안민석 의원은 “의로운 싸움을 지켜주고 동행할 것”이라며 윤지오를 치켜세웠다가 출국 후에는 “그녀에 대한 ‘백래시’(backlash·대중의 반발)가 본격화됐다. 이젠 과녁의 초점을 장자연으로 맞춰야 한다”고 했다.
“국회의원이 왜 그런지 모르겠다. 특히 안 의원은 이상호 기자가 (고 김광석의 부인) 서해순 씨를 살해범으로 몰아갈 때 김광석법(의문사의 진실규명이 명확해졌을 때 그 사건의 공소시효를 없애는 법)을 만든다고 하더니 이번에는 상임위 차원에서 윤지오를 돕겠다고 선언하고 사진 찍고…. 의원이라면 검증을 해야지, ‘이제 장자연을 보자’고 한다. 윤지오만 보이게 했던 장본인 중 한 사람이다.”
한참을 직설적으로 말하던 박 변호사는 인터뷰 말미 착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당신이 음모론에도 맞서고 선동에 맞서 노력한 결과가 무엇이냐’는 취지로 물을 때였다. 답변 대신 그는 지난해 펴낸 시집(‘기억을, 섬들에 새기는 눈물들’)에서 ‘세월’이란 제목의 시 한 구절을 읊었다.
“비통한 나날이었지/ 지금도 비참하고/선한 독재자도 못되고/ 상갓집 개가 되어/ 입가에 묻은 밥풀떼기나/ 떼어먹고 사는 인생이니…”
“이 사회는 더욱 더 안 좋은 방향으로 간다. 치열하게 도전하는 문화도 없어지고, 노동자들이 자기만의 노동문화를 형성한 것도 아니다. 폐허가 됐다고 생각했고, 그런 심정을 써내려간 게 이 시집이다.”
- 원래 시를 썼나?
“시보다는 선동문이나 이론 문건을 많이 썼다.”
장자연 사건일지
2009년△3월 7일 장자연 씨, 오후 7시 40분께 경기 성남시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
△3월 10일 장씨 문건 일부 언론에 공개.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 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3월 12일 장씨 유족과 매니저 유모 씨 등 서울 봉은사에서 ‘장자연 문건’ 소각.
△3월 13일 KBS, ‘장자연 문건’ 보도. 자살 원인 의혹 제기.
△3월 14일 경찰 장자연 사건 전면 재수사 착수.
△3월 17일 장씨 유족, 유씨와 문건 보도한 기자 등 3명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 문건에 나온 인물 등 4명은 성매매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고소.
△3월 20일 경기지방경찰청, 수사전담팀 41명으로 증원.
△3월 21일 경찰, 장씨 전 소속사 대표 김모 씨 사무실 압수수색.
△6월 24일 김씨, 일본 도쿄서 일본 경찰에 의해 불법체류 혐의로 검거.
△7월 10일 경찰, 최종 수사 결과 발표. 구속 1명, 사전구속영장 신청 1명, 불구속 5명 등 7명 사법처리. 13명은 불기소 또는 내사종결.
2013년
△10월 11일 대법원, 대표 김씨 폭행 혐의·매니저 유씨 모욕 혐의만 유죄 선고.
2018년
△4월 2일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원회, 대검 진상조사단에 장자연 사건 사전조사 권고.
△7월 2일 과거사위원회, 본조사 결정.
2019년
△3월 12일 윤지오 씨, 진상조사단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
△3월 14일 윤씨, ‘13번째 증언’ 북콘서트.
△3월 12~15일 여성가족부, 윤씨 숙소 지원. 비용 논란.
△3월 18일 윤씨, 후원계좌 오픈, 문 대통령 철저한 조사 지시, 조모 씨 재판 출석.
△3월 30일 윤씨, 국민청원 게시판에 경찰 스마트워치 문제 등 신변 위협 호소.
△4월 23일 경찰, 윤씨 스마트워치 문제 ‘조작 미숙’ 결론. “숙소 외부 침입 흔적 없어.”
△4월 23일 김수민 작가, 윤씨를 명예훼손과 모욕 혐의로 고소.
△4월 24일 윤씨, 캐나다로 출국.
△4월 26일 박훈 변호사, 윤씨를 사기 혐의로 고발.
△5월 31일 검찰 과거사위원회 활동 종료 예정.
판결문으로 본 ‘장자연 사건’
윤지오 “술자리 강압 없었다” 진술
‘장자연 사건’은 배우 장자연 씨가 2009년 3월 7일 사망한 뒤 그가 생전에 쓴 문건이 3월 13일 KBS에 보도되면서 큰 후폭풍을 일으킨 사건이다. 이른바 ‘장자연 문건’에는 기업인과 언론인 등에게 잠자리와 술접대를 강요받았다는 내용이 담겼다. 법원은 이 문건이 장씨 소속사(더컨텐츠엔터테인먼트)에서 매니저로 일한 유모 씨가 소속사 대표 김모 씨를 압박하고 전속 배우 영입에 따른 소송에 대비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판시한다. 유씨는 2008년 9월 새로운 연예기획사를 설립하고 더컨텐츠 소속 송선미와 이미숙을 영입했다. 이듬해 2월 소속사에 유일하게 남은 장씨가 전속계약 해지 문제로 유씨에게 도움을 청하자, 유씨는 이미 영입한 여배우들이 작성한 김 대표 비리 관련 문서를 보여주며 문건 작성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소송을 하거나 소송이 예상되는 배우를 도와 다양한 방법으로 김 대표를 압박하는 데 사용할 목적으로 장씨를 도와줄 것처럼 말해, 장씨로 하여금 (소속사) 김 대표에게 불이익을 당한 내용을 문서로 작성하도록 하고 이를 보관하였다(2011년 11월 7일 수원지법 판결문).”
김 대표가 유씨와 송선미, 이미숙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판결에서도 법원(서울고법 제13민사부)은 “김 대표를 공격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므로 유씨가 장씨에게 (문건의) 문구와 형식 등을 알려주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시했다.
“장씨의 경험·의사에 의해 작성된 것인지 의문”
“문건 문구나 형식이 평소 장씨가 사용하는 문구가 아니고 민·형사 재판에서 증거로 제출되는 사실확인서 내지 진술서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장씨 스스로의 경험과 의사에 따라 작성된 것인지 의문이 들기는 한다.”
법원은 이 문건이 100% 장씨의 의지로 작성됐다고 보지는 않았다.
재판부는 또 “유씨는 경찰에서 장씨가 문건을 작성했는데 문맥이나 글씨가 이상해 다시 작성하자고 해 새로 작성했고, 또 실명을 빼자고 말해 매직으로 (문건에 나오는) 이름을 지우기도 했다”고 판시했다. 문건을 작성한 장씨의 고민도 엿보인다. 장씨와 평소 친하게 지내던 언니 A씨가 “문건을 돌려받으라”고 했지만 장씨는 “유씨가 돌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A씨는 “장씨가 문건 때문에 힘들어했고, 문건 작성 이후에는 집에만 있었다”고 진술했다.
한편 판결문에는 윤지오의 진술도 눈에 띈다. 장씨 유가족이 소속사 김 대표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법원(서울중앙지법 제34민사부)은 “윤지오는 강압은 아니었으나 심리적으로(식사·술자리에) 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존재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사실은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윤지오의 진술로는 술자리에서) 노래와 춤을 출 때도 있었지만 강압적으로 한 것은 아니고, 피고(김 대표)가 술 접대를 요구한 적이 없고, 성접대를 하라고 강요한 사실이 없다고 증언한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술접대나 성매매를 알선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윤지오의 입장은…
“김수민이 원하는 엔딩 아닐 것”
윤지오는 5월 7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혔다. “사건에 대한 본질을 위해서는 당신(김수민) 그런 행동 자체가 잘못이다…사건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 해도 정도껏 해야 한다. 조사는 당신이 받게 될 거다. 연극이 언젠가 막을 내린다. 당신이 써 내려간 시나리오의 끝은 당신이 원하는 엔딩이 아닐 거다. 선처는 없다.”
‘신동아’는 고소·고발 건과 책 대필과 관련, 윤지오의 추가 반론을 듣기 위해 그가 책(13번째 증언)을 낸 가연출판사 김모 대표와 5월 15일 전화통화를 했다. 김 대표는 “(윤지오, 김수민) 양측 모두 ‘대필’을 주장하지 않았는데 왜 이런 대필 얘기가 나오는지 잘 모르겠다”며 “이에 대해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윤지오의 직접 반론을 듣기위해 캐나다 현지 연락 방법을 물었으나 “현지 연락 방법은 절대 알려주지 말라고 해 알려줄 수 없다”며 “최근 출판사와도 연락을 하지 않고 있고, 연락을 해도 잘 안 된다. 가끔씩 갑자기 ‘카톡’을 해와 물어보면 답변을 해줄 정도”라고 말했다.
배수강 편집장
b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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