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매출, 전년보다 10배 넘게 성장
폐플라스틱의 의류화로 자원 선순환 추구
제작 공정 줄여 원가 절감, 경쟁력 제고
“친환경? 우린 우아함과 품질로 승부낸다”
아이템보다 가치에 목적 둔 창업이 장수
박준범 대표는 옷을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소 공간으로 여긴다. [홍태식 객원기자]
지난해 매출, 전년보다 10배 넘게 성장
“처음에는 백화점 측이 식품코너 인근에 작은 매대를 내주려 했어요. 몽세누의 제품 라인이 담긴 룩북과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를 확인하고 나서 계획을 바꿨죠. 국내외 명품 브랜드들이 입점한 6층 럭셔리 남성복 매장에 보름간 팝업스토어를 열 수 있게요. 반응이 명품 브랜드에 밀리지 않아 저희는 물론이고 백화점에서도 흡족해했어요.”2월 5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 로데오거리에 있는 몽세누 본사에서 만난 박준범(29) 대표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몽세누는 지난해 9월 현대백화점 온라인쇼핑몰 ‘더현대닷컴’에도 입점했다. 현재는 판로를 더 넓혀 온라인 몽세누 공식스토어를 비롯해 무신사, 29cm, 서제스티 등의 온라인몰과 서울 용산구 이태원, 경기 가평에 있는 오프라인 편집숍에서도 제품을 팔고 있다.
몽세누 제품은 재활용 소재로 원단을 만드는 제작공정에 비용이 들어 여느 디자이너브랜드에 비해 가격이 싼 편이 아니다. 동절기 셔츠는 온라인몰에서 7만~8만 원대, 롱코트는 30만~40만 원대에 팔린다. 재활용 소재로 만든 의류는 품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편견도 제품 판매를 어렵게 하는 요소다. 그럼에도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 규모는 2019년보다 10배 이상 성장했다. 박 대표는 “버려진 자원을 재생해 옷을 만드는 환경친화적인 면으로 소비를 유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좋은 품질과 감각적인 디자인을 앞세운 것이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친환경 브랜드라서 옷을 사는 사람도 있지만 천연 원단을 능가하는 소재에 감각적인 디자인을 입힌 패션이어서 몽세누를 선택하는 이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전했다.
몽세누는 꿈 몽(夢)자와 새로운 세상이라는 뜻의 순우리말 ‘새누’의 합성어로,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박 대표에게 몽세누는 한마디로 “환경과 개발이 상충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사회”다. 2시간 동안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지켜본 그는 자신이 지향하는 세상을 구현하려고 하루를 25시간처럼 쓰는 열혈 청년이었다. 서울과학기술대에서 글로벌기술경영(GTM)과 산업·시각 디자인을 복수 전공한 데 이어 지금은 몽세누를 운영하며 카이스트에서 사회적기업가(SE) MBA 과정을 밟고 있다.
썩지 않는 플라스틱을 옷으로 변형
- 어떻게 버려진 페트병으로 옷을 만들 생각을 하게 됐나.“2017년을 즈음해 버려지거나 바다로 유입되는 플라스틱 폐기물이 수백 t에 달한다는 논문과 기사를 접했다. 플라스틱 폐기물 중 비닐과 페트병이 전체 비중의 3분의 1을 차지한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됐다. 특히 페트병이 해마다 5000억 개가 생산되지만 재활용되는 비율이 9%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에 큰 충격을 받아 이를 재활용할 방안을 공부하고 연구했다. 페트병은 소재 자체가 의류산업에 많이 쓰이는 합성섬유인 폴리에스테르와 동일하고 열가소성이 있어 가공하기 쉽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 창업 초기에는 페트병을 직접 수거했다고 들었다.
“열정과 진정성은 있지만 효율성이 떨어지는 작업이었다. 대신 그렇게 단계별로 직접 해보며 제작 사이클과 물류 체인들을 이용하는 법을 배웠다. 제작공정을 훤히 아니 업체들을 핸들링해 원단을 직접 개발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또 불필요한 단계를 생략해 원가를 절감하고, 시간 낭비 없이 조율하는 운용의 묘미도 발휘할 수 있게 됐다.”
- 버려진 페트병이 옷으로 완성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나.
“수거한 페트병을 종류별로 선별해 라벨과 뚜껑을 분리한 후 세척한다. 이후 페트병은 플레이크라는 형태로 분쇄되고 이를 팰릿(폴리에스터칩) 형태로 가공해 재생재료를 만든다. 이 팰릿에서 리사이클 폴리에스터 원사(실)를 추출한다. 이 실을 사용해 원단을 짠 다음 원단에 디자인을 적용해 옷을 만든다.”
몽세누는 제품 특성에 따라 리사이클 폴리에스터 원사의 혼합 비율을 달리한다.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100%까지 리사이클 원사가 들어간다. 박 대표에 따르면 셔츠 1장을 만드는 데 500㎖짜리 페트병 25~35개가 쓰인다. 몽세누가 2020년 한 해 동안 재활용한 페트병은 500㎖를 기준으로 약 90만 개에 이른다.
- 제작공정이 복잡해 가격경쟁력을 갖기 어려운 문제를 어떻게 해소하나.
“2018년부터 원단 개발에 주력해 품질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 원가가 더 드는 리스크를 감수하고 미리 대량 생산해 가격 합리성도 가질 수 있었다. 또한 땅에 묻어도 500년 동안 썩지 않는 플라스틱 폐기물을 옷이라는 또 다른 유용한 형태로 바꾸는 작업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그런 일을 하는 소셜 벤처가 있어야 자원의 선순환이 가능하지 않다.”
지구 살리기 돕는 파타고니아 벤치마킹
버려진 페트병과 재고 원단을 재활용한 몽세누 제품은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홍태식 객원기자]
다양한 것을 꿈꾸는 삶에서 행복을 찾은 그는 자신을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재미있고 멋있게 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지속 가능한 우아함으로 사람들에게 행복과 영감을 주자’는 몽세누의 정신에는 이런 그의 가치관이 녹아 있다.
1인 기업으로 출발한 회사는 어느덧 구성원이 7명으로 늘었다. 이들에게 박 대표가 필독을 권하는 책이 있다. 미국 아웃도어 회사로 유명한 파타고니아 설립자 이본 쉬나드 회장의 저서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이다. “학부 때 교수가 추천한 권장도서인 이 책을 지금까지 10번 넘게 읽었다”는 박 대표는 창업에 영향을 끼치고 영감을 준 멘토로 이본 쉬나드 회장을 첫손에 꼽았다.
“파타고니아는 탄소를 빨아들이기 위해 긴 뿌리 식물을 심는다든지 자연사한 동물로 육포를 만든다든지 하는 모든 활동의 궁극적 목적이 지구 살리기와 맞닿아 있죠. 몽세누는 그런 파타고니아의 정신과 철학을 벤치마킹하고 있어요. 파타고니아와 결은 비슷하지만 저만의 경영철학과 메시지가 담긴 회사로 몽세누를 키우고 싶어요.”
몽세누는 원래 재활용 소재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유럽에서 먼저 브랜드를 론칭할 계획이었다. 박 대표의 표현을 빌리자면 “해외 각국에서 론칭해 브랜드를 널리 알린 후 한국에 금의환향할 생각”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등장은 돌발변수였다. 결국 이 계획은 미뤄졌지만 대신 지난해 신세계백화점에서 팝업스토어를 열며 국내 유통 파트너를 찾았다. 박 대표는 “힘들지만 의미 있는 성과였다”고 평했다.
- 행사용 기념품을 주문하는 기업이나 정부기관이 많을 것 같다.
“2019년 이탈리아 프로축구팀 유벤투스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선수가 한국에 왔을 때 축구연맹이 주문한 굿즈를 만든 적이 있다. 얼마 전에는 의뢰를 받아 만든 몽세누 넥타이를 (문재인) 대통령이 착용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0일 청와대에서 2050 탄소중립 선언을 하는 자리에 친환경 넥타이를 매고 나왔다. 몽세누는 이날 ‘대통령 넥타이 브랜드’로 알려져 지대한 관심을 모았다.
- 어디서 의뢰했나.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나.
“처음 연락이 온 곳은 어떤 업체다. 환경 프로젝트에 쓰일 거라며 넥타이를 주문했다. 몇 개를 보냈더니 대통령이 (그중 하나를) 착용하셨다. 관련 기사를 보고 나중에 청와대 직원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기도 사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아이템보다 가치에 목적 둔 창업이 장수
몽세누는 설립 이후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박 대표 역시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청년 CEO로 꼽힌다. 창업을 위해 그가 달려온 길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힘들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하루 차이로 통장 잔고 ‘빵(0)원’을 면한 적도 있고, 대놓고 무시당한 때도 부지기수죠. 뭔가를 보여주고 인정받기 전까지는 제 생각을 조롱하거나 비웃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고요. 해결하기 힘든 문제에 부딪힐 때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동료들을 생각하며 버텼어요. 제가 지탱해야 동료들의 행복을 도울 수 있으니까요.”
구직이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취업 대신 창업을 꿈꾸는 청년이 꾸준히 늘고 있다. 이들에게 건네고 싶은 조언을 묻자 박 대표는 “공유하고 싶은 내용”이라며 자신의 경험담을 꺼냈다.
“창업 동아리를 시작할 때 30팀 정도가 있었어요. 그중 저만 지금까지 살아남았어요. 지향점의 차이가 그런 결과로 나타난 것 같아요. 명랑핫도그, 대왕카스테라처럼 잘될 아이템을 좇으면 장사가 안 될 때 견디기 힘들어요. 대신 저같이 가치 있는 일에 지향점을 두면 아이템은 하나의 도구일 뿐이어서 장사가 안 돼도 쉽게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아요. 정답은 없어요. 어떤 선택을 하든 그 결과는 본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에요.”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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