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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사기열전(史記列傳)’⑪

영행열전

아첨꾼으로 찍히면 말년 안 좋고 비참한 평가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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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이우정

악어의 이빨 사이에 낀 고기조각을 뽑아 먹고 사는 악어새는 권력자 곁에서 기생하며 부와 권력을 누리는 인물을 상징한다. 아첨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러나 어떤 권력자는 아첨꾼에게 많은 사랑과 혜택을 준다. ‘아첨하여 출세하기’의 이면을 들여다봤다.

원재훈│시인 whonjh@empal.com│

사람의 마음이 항상 뽀송뽀송하고 밝고 환한 것만은 아니다. 중국 고대 인물을 이야기하면서 간혹 ‘옛날에는’이라고 회상하는 사마천은 아첨하여 출세한 자들의 인생유전을 열전에 소개한다. 중국 한나라 시절에 ‘옛날’이라고 하던 그 시절에도 이런 인물들은 ‘충신열사’보다도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절대 권력자 곁에는, 한여름 밤 가로등에 모여드는 날벌레들처럼 아첨꾼들이 맴돈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변화 없는 인간유형 중 하나다.

아첨은 칭찬의 왜곡된 형태다. 우리는 누구나 칭찬을 듣고 싶어한다. 유아기의 칭찬은 아이의 인성을 바르고 힘차게 한다. 성장기의 칭찬은 인생의 목표를 향한 젊은 피에 에너지를 공급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칭찬을 듣는 사람은 성공할 확률이 높다.

아첨과 칭찬의 공존



가만히 세상일을 들여다보면 행복과 불행이 한 자매라는 불교 우화처럼, 선과 악이 함께 기록되어 있는 성경 창세기처럼, 아첨과 칭찬도 아슬아슬하게 공존해왔다. 남녀를 불문하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칭찬을 듣고 싶어한다. 이 속성에서는 우리가 위대한 인물이라고 존경하는, 즉 범인과는 다른 탁월한 권력자도 벗어나질 못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떠돌던 때도 있었다. 칭찬과 아첨은 서로 다른 의미이지만 아첨도 타인을 칭찬하는 행위 중 하나다. 그것이 바르지 못할 때 우리는 아첨이라고 하고, 바르게 가면 칭찬이라고 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경계선이 어디인지 모호할 때가 있다. 확연하게 표시만 나지 않는다면 아첨인지 칭찬인지 듣는 사람은 알 수 없다. 인간은 자신에게 아첨하는지 알면서도 진정인 것으로 생각하고 좋아한다.

한나라 효문제 때 황제의 총애를 받는 세 명의 신하가 있었다. 사인(벼슬을 하지 않는 선비)으로 등통과 조동과 북궁백자라는 환관이 그들이다. 북궁백자는 인자한 풍모가 있었고, 조동은 망기술(구름 모양을 보고 점치는 것)이 뛰어나 황제의 관심을 끌었지만, 등통은 별다른 재능이 없었다고 한다. 세 사람은 황제의 수레를 함께 타고 외출했다. 등통은 어떠한 사람이기에 별 재주도 없이 황제의 총애를 받게 되었을까.

등통과 황제는 기이한 인연이 있었다. 황제를 만나기 전 등통은 노를 가지고 배를 젓는 ‘황두랑’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황두랑은 선주가 노란색 모자를 쓰고 있어 붙은 이름이다. 어느 날, 효문제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효문제는 하늘을 오르려고 애를 썼는데 잘 오를 수 없었다. 그런데 어떤 황두랑이 뒤를 밀어주어 오를 수 있었다. 누가 이렇게 기특한 짓을 하니 싶어 살펴보니 등 뒤로 띠를 맨 곳에 솔기가 터져 있었다. 잠에서 깨어난 효문제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황두랑들의 모습을 살펴봤다.

기이하게도 황두랑 중 ‘등통’이라는 자가 꿈속에서 본 모습 그대로였다. 효문제는 그때부터 그를 가까이 두고 지냈는데, 등통 또한 행동을 삼가면서 신중한 성품으로 황제의 곁에 머무는 것을 좋아했다. 심지어 휴가를 주어도 조용히 왕의 곁에 머물기를 좋아하니 효문제의 총애는 깊어졌다. 등통은 자신이 재주가 없음을 잘 알고 있어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왕을 모시는 진정한 ‘왕의 남자’로서 행동했다. 심지어 효문제가 종기를 앓아 고생할 땐 인상 한번 찌푸리지 않고 종기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냈다.

‘황제의 혀’처럼

말 그대로 황제의 혀처럼 굴었다. 황제는 관상쟁이에게 자신이 총애하는 등통의 관상을 보게 하니 “가난해서 굶어 죽을 상”이라는 답변이 나왔다. 황제는 “내가 있는데 그런 일이 있겠느냐”면서 등통에게 촉군 엄도현에 있는 구리 광산을 주고 마음대로 돈을 만들어 쓰라고 명했다. 등통이 만든 돈인 ‘등씨전’은 온 나라에서 쓰였다. 부자도 이런 부자가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굶어 죽을 상이라는 예언은 점쟁이의 오판이었을까? 정치권력과 관련된 부는 그 권력과 더불어 지는 법이다. 등통의 몰락은 아주 사소한 일에서 비롯됐다.

어느 날, 황제는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나를 사랑하는가?”라는 동화 같은 질문을 등통에게 한다. 등통은 주저 없이 “물론 태자를 따를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한다. 등통은 별다른 재주는 없었지만, 정치권력의 속성을 잘 알고 있었다. 황제가 세상을 떠나면 태자가 천하의 주인이 될 것이니 그에게 미리 잘 보여 두려 한 것이다. 황제는 태자가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지, 등통의 말이 맞는지 궁금해졌다.

효문제는 태자가 문병을 오자 자신의 종기 고름을 빨아내게 했다. 태자는 등통처럼 잘 빨지는 못했다. 또한 단 한 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태자는 등통에게 앙금이 남았다. 요즘에도 아첨 떠는 행위를 시쳇말로 ‘빨아준다’고 표현한다. 이 말의 기원이 등통이 효문제의 고름을 빨아준 것에서 직접적으로 연유된 것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 ‘고름 빨기’와 ‘아첨’은 의미가 상통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장자’에도 고름을 빨아주는 우화가 나온다. 자신도 더러워하는 고름을 입에 넣어 빨아주니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느끼는 것이다.

효문제가 죽자 태자인 효경제가 즉위했다. 효문제 사후 등통은 모든 벼슬을 그만두고 조용히 집에서 살았지만, 돈을 주조하는 일이 빌미가 되어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고 많은 빚까지 지게 됐다. 등통을 아꼈던 효경제의 누나인 장공주가 등통을 먹고살게 해주려고 재산을 주었지만 그마저 관리가 몰수해버렸다. 그래서 결국 등통은 재산 한 푼 없이 남의 집에서 얹혀살다 죽었다. ‘가난해서 굶어 죽을 상’이라고 한 점쟁이 말은 사실이었다. 솔기가 터져 비단옷이 다 찢어지고 맨살이 드러난 형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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