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9월호

다함이 없어 융화하는 땅, 전북 무주·진안

물빛 머금은 山海 비경, ‘축지법’으로 다가서다

  • 글: 강지남 기자 사진: 김성남 기자

    입력2003-08-26 13: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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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부터 오지 중의 오지라 불렸던 ‘무진장(무주·진안·장수군)’.
    • 그러나 2년 전 대전-진주간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무진장은 서울과 대구에서 2시간, 부산에서 3시간 남짓이면 다다를 수 있는 ‘생활권 관광지’가 됐다. 무진(無盡)은 불교에서 덕이 광대하여 다함이 없음, 혹은 잘 융화하여 서로 방해하지 않음을 뜻한다.
    • 산과 물, 하늘과 호수가 조화를 이루는 무진의 땅, 무주와 진안을 돌아보았다.
    다함이 없어 융화하는 땅, 전북 무주·진안

    마신(馬神)이 숨은 걸까, 묘신(猫神)이 숨은 걸까. 백성들의 한 많은 사연을 모두 들어주기라도 할 듯 큰 귀를 쫑긋 세운 마이산.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기 전인 7월 중순. 시원하게 뚫린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니, 대전을 지나 무주읍내까지가 ‘단숨(2시간 10분)’이다. 2001년 11월 개통된 대전-진주간 고속도로가 대전에서 무주까지 30분에 주파할 수 있도록 ‘축지법’을 써준 덕분이다.

    소백산맥 산악지대에 안겨 있는 무주군은 덕유산국립공원, 무주구천동, 그리고 무주리조트로 잘 알려진 고장. 관광정보를 얻기 위해 들른 무주군청은 8월22일부터 열리는 ‘무주 반딧불 축제’ 준비로 분주했다. 무주군 설천면의 남대천 일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반딧불이 서식지. 이곳은 열흘간의 축제 동안 반딧불이가 환하게 수놓은 여름밤의 장관을 구경하러 온 손님들에게 개방된다.

    무주의 진가를 알려면 먼저 무주구천동 33경을 따라가봐야 한다. 구천동 33경이란 나제통문(羅濟通門)에서 덕유산 최고봉인 향적봉에 이르는 36km 길을 말한다. 30번 국도를 타고 동으로 달려가면 기암절벽이 절경을 만들어내는 나제통문이 나온다. 이곳은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의 국경이었는데, 일제 때 기암절벽을 뚫어 동서로 통하는 길을 냈다고 한다.

    나제통문을 지나 37번 국도를 달리면 짙푸른 나무들이 호위하는 맑은 물이 갖가지 형상의 폭포와 소(沼), 담(潭)을 이루며 흐른다. 구천동 비경들 중 특히 인상적인 곳은 비파담이다. 선녀들이 내려와 비파를 타고 놀았다는 비파담은 바위로 둘러싸인 물가 또한 비파처럼 둥그렇게 생겼다. 물빛 머금은 나무들이 살포시 그늘을 만들어줘, 널찍한 바위에 팔베개를 하고 누워 하늘 구경하기에 그만이다. 구천동 계곡물은 서에서 동으로,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데, 이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반역의 땅’이라 하여 이곳 출신들의 벼슬길이 막혔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다함이 없어 융화하는 땅, 전북 무주·진안

    암마이봉 남쪽 절벽에 자리잡은 탑사

    구천동 33경을 되짚어 내려온 다음 무주의 별미를 찾아 내도리를 찾았다. 어죽으로 유명한 섬마을식당(063-322-2799)이 뒤로는 금강을, 앞으로는 널찍한 텃밭을 끼고 한가로이 서 있다. 어죽이란 민물고기인 자가미를 삶아서 갖은 양념을 하고 쌀과 수제비, 야채 등을 넣어 끓인 것. 생선맛이 비리지 않고 얼큰해 꿀떡꿀떡 잘도 넘어간다. 해장국으로도 더 바랄 게 없다. 빙어튀김과 모래무지 구이 등, 따라나오는 푸짐한 반찬이 더욱 입맛을 돋운다. 백명녀 사장은 “자가미는 1급수인 금강에서 잡아오고, 텃밭에서 직접 기른 오이, 깻잎, 파, 호박 등으로 맛을 낸다. 상차림에 쓰인 재료 중에 밖에서 사온 것은 팽이버섯뿐”이라고 자랑한다(1인분에 4000원).

    1990년대 중반부터 무주에는 새로운 관광명소가 생겨났다. 무주군 중앙에 솟은 적상산(해발 1032m)에 자리한 무주양수발전댐이 그것. 산 정상의 상부댐 적상호까지 산길을 따라 구불구불한 도로가 나있는데, 한눈 파느라 운전이 위험할 만큼 주변 풍광이 멋들어지다.

    그러나 진짜 장관은 산 정상에 있는 전망대에서 만나게 된다. 해질 무렵 전망대에 올라서니 석양에 빨갛게 물든 구름으로 얼굴을 살짝 가린 이름 모를 봉우리들이 동서남북으로 펼쳐져 산해(山海)의 파고를 높인다. 서·남·동쪽의 너른 바다를 잊고, 북쪽의 대도시를 잊고 그저 무주땅에 푹 파묻히는 느낌이다.

    이튿날 이른 새벽, 19번 국도를 타고 진안을 향해 달렸다. 새벽 안개가 잔뜩 긴 용담호의 서늘한 바람이 반갑게 맞아줬다. 그런데 진안의 명물인 마이산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이리저리 둘러보던 차에 서서히 세상이 밝아오고 안개가 걷히자 마이산의 신묘한 자태가 눈앞에 확 드러났다. 두 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솟아올라 마치 한 쌍의 부부가 마주보는 듯, 혹은 마신(馬神)이 땅 속으로 급히 숨다가 귀를 미처 숨기지 못한 것 같은 자태. 마이산은 그렇듯 신비롭다.



    다함이 없어 융화하는 땅, 전북 무주·진안

    ①굽이굽이 흘러가는 무주구천동 계곡<br>②담백하기로 소문난 진안 새끼돼지로 만든 애저찜<br>③무주의 별미 어죽

    마이산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따라 아름다운 옷으로 갈아입는 데다, 산을 보는 각도에 따라 분위기도 달라지기에 사진가들에게 특별한 사랑을 받는단다. 진안군민 전두용씨는 “진안 사람 치고 제 마음에 드는 마이산 사진 하나 집에 걸어두지 않은 이가 없다”고 호언한다.

    암마이봉 남쪽 절벽 아래엔 유명한 ‘탑사’가 있다. 거친 돌들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쌓아올린 것인데, 조선 태조 때 마이산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 쌓았다는 설도 있고, 19세기에 이갑룡이란 사람이 평생을 들여 쌓았다는 설도 있다. 맨 꼭대기에 마이산을 닮은 천지탑(혹은 부부탑)이 우뚝 서 있고, 그 아래로 80여 개의 크고 작은 돌탑들이 늘어선 모습이 독특한 정취를 자아낸다.

    진안을 찾은 날은 마침 장날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읍내 장터는 여느 시골 장터처럼 북적거린다. 노란 삼씨 흥정이 한창이라 눈길을 끌었다. 한 노인은 “이게 150만원어치”라며 한 말쯤 되어 보이는 포대자루를 손주나 되듯 껴안았다. 인삼 하면 충남 금산을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 금산에서 유통되는 인삼의 80%가 진안 인삼일 정도로 진안에선 인삼을 많이 재배한다. 진안 산천을 달리다 보면 검정 차단막을 곱게 쓴 인삼밭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전국 인삼 생산량의 15%를 진안 인삼이 차지한다고 한다.

    진안읍내에서 마이산을 향해 달리는 길 중간에 애저찜으로 유명한 금복회관(063-432-0651)이 있다. 애저란 새끼돼지를 뜻하는데, 생후 20일 정도 된 애저를 한약재를 넣고 푹 쪄낸 요리가 애저찜이다. 4분의 1마리가 상에 올랐는데, 4명이 먹어도 푸짐할 만큼 양이 많다. 돼지고기인 데도 마치 삼계탕에서 건져 먹는 닭고기처럼 부드럽게 살이 발라진다. 이옥례 사장은 “진안 돼지는 고랭지역에서 자라 지방질이 없고 담백하다”며 “애저에 신김치를 곁들이면 고기가 입에서 녹는다”고 했다.

    무주와 진안을 함께 둘러보려면 여장은 무주에 푸는 것이 좋다. 무주에는 무주리조트를 비롯해 호텔과 콘도시설이 있고, 리조트 주변과 덕유산국립공원 관광단지에도 30여 개의 깔끔한 숙박시설이 들어서 있다. 하지만 진안에는 10여 개 여관이 눈에 띌 뿐, 외지 관광객을 위한 숙박시설은 아직 부족한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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