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호

환상극장

시인 이언진의 유언

  • 윤채근 단국대 교수

    입력2023-04-19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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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채근 단국대 교수가 우리 고전에 기록된 서사를 현대 감성으로 각색한 짧은 이야기를 연재한다. 역사와 소설, 과거와 현대가 어우러져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할 것이다.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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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어 역관이던 이언진이 스물일곱 젊은 나이에 요절하자 그의 죽음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한양 문단으로 퍼져나갔다. 평소 지병 없이 건강하던 그가 갑자기 한양을 떠나 경기도에 칩거한 과정도 의문이었지만, 숨을 거두기 직전 자신의 원고를 모조리 불태우게 했다는 소식은 세상에 대한 그의 깊은 원한을 짐작게 했다. 비록 중인 출신의 재야 시인이었지만 그 나름대로 한 시대를 풍미하며 문학적 삶의 절정에 올라 있던 젊은이의 최후라기엔 뒷맛이 영 개운치 않았다.

    동료의 장례를 집상했던 역관 남중거는 한양으로 돌아가기 직전 언진의 아내로부터 이상한 말을 들었다.

    “남편이 죽기 전에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누구에게 이걸 전해야 할지는 알려주지 않았어요.”

    파리하게 말라 병기가 역력한 옛 동료의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중거는 다 쓰러져 가는 남루한 초가집 툇마루에 걸터앉으며 물었다.

    “언진이는 무슨 일이든 똑 부러지게 하는 걸로 유명했어요. 저승길 떠나며 남기는 말을 그리 얼렁뚱땅 처리하진 않았을 텐데….”



    중거 앞에 서서 한참을 망설이던 언진의 아내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죽기 직전 모습이 끔찍했어요. 눈과 코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몸은 막대기처럼 뻣뻣해져서 침 삼키는 것도 힘겨워했거든요. 유언도 헐떡대다 간신히 마쳤어요.”

    중거는 눈을 감았다. 자신이 유언을 들을 자격이 있는지 불분명했다. 설령 듣는다 한들 이제 와서 망자를 위해 무슨 일을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양반으로 태어나지 못한 불운이라면 그 역시 언진 못지않게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었다. 중거는 진심으로 듣고 싶지 않았지만 입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벗의 마지막 말이라니 우선 들어는 보겠습니다.”

    언진의 아내가 시선을 땅에 떨군 채 조용히 속삭였다.

    “이렇게 말했어요. ‘나 이언진은 누구인가? 죽고 나면 진실이 밝혀질 거야. 그걸 알아봐 달라고 부탁해.’ 그 말까지 하곤 절명했어요. 누구에게 부탁해야 하느냐고 소리쳐 봤지만 이미 소용없었습니다.”

    스승 이용휴의 증언

    경기도 안산의 이용휴 저택에 들어선 중거는 정원을 거닐며 잠시 기다려야 했다. 남인을 대표하는 학자이자 문인이던 용휴는 젊은 시절 진즉에 벼슬을 포기하고 재야인사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말년을 즐기고 있었다. 그의 집은 저명한 문인들과 서화가들로 늘 북적였다.

    “그게 유언이었다고?”

    환갑을 앞둔 노학자는 중거를 예리한 눈빛으로 쏘아보며 천천히 물었다.

    “그렇습니다. 언진의 아내가 그리 말하더군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중거는 맥없이 헛웃음을 흘리며 상대를 올려다봤다. 뭔가 근사한 말이 돌아오리라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한때 스승이었던 사람보다 언진을 더 잘 아는 자도 없을 거라고 중거는 되뇌었다.

    “이미 죽었거늘, 누군가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게 과연 의미 있으려면 이언진이 귀신이 돼 지금 여기 와있어야만 할 텐데?”

    용휴의 말투는 냉랭했지만 눈빛에는 따스한 화기가 감돌고 있었다. 적이 안심한 중거가 속삭이듯 나지막한 음성으로 입을 뗐다.

    “그 유언의 수령자가 혹시 제가 맞는다면 말입니다. 벗인 제가 훗날 죽어서 자신에게 알려달라 뭐 그런 뜻 정도가 아니었을까요?”

    빙그레 미소를 띤 용휴가 안석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죽고 나서 자신이 어떻게 평가될까 궁금해하는 건 딱 두 부류지. 후대의 평가를 두려워하는 희대의 간신이거나, 현세에서 너무 박하게 평가받아 억울한 자거나. 자네 보기엔 언진은 어느 편인가?”

    상대가 드러낸 훈훈한 온기에 마음을 놓은 중거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더 물은 것도 없이 후자겠지요. 언진이는 타고난 재능에 비해 제대로 누려보질 못했거든요.”

    “문단에서 명성이 자자했지 않나?”

    “그게 꼭 유명세만은 아니었지 않습니까? 중인 나부랭이가 시를 꽤 쓴다는 조롱 섞인 칭찬도 많았지요. 심지어 양반들 시회에는 말석에조차 초대받은 적이 없습니다. 한양 저자에서 벌인 기행으로 더 알려졌던 셈이거든요. 아무도 언진이를 진지하게 대우하질 않았지요.”

    “처음 날 찾아올 때부터 언진이는 혈기가 과했어. 문학에 대한 열정은 너무나 간절했지만 어쩐지 조급해 보였네. 근데 그게 또 시인의 천분이기도 하지. 문제는 세상을 글로 정복하겠다는 그 의욕을 적당히 조절할 줄 알아야 했다는 걸세.”

    “언진이처럼 많은 시를 쓰는 자를 본 적이 없습니다. 업무가 비는 날이면 하루 종일 쓰고 고치기를 멈추질 않았지요. 한데 그가 수작이라 자부한 시를 세상은 번번이 외면했습니다. 개성 없이 밋밋하게 옛 시들을 흉내 내면 그제야 ‘중인 놈이 제법인데’ 하는 평가가 겨우 돌아왔거든요.”

    한참을 눈을 감고 있던 용휴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언진에게 천재의 기미가 있었던 건 분명하네. 태어난 자리가 조금만 번듯해 무명의 설움을 견딜 진득함만 있었다면, 그랬다면 날 능가했을지도 모를 일이지. 이제 그토록 좋아한 문학이 그의 명을 앗았으니 뭘 원망하겠나? 훗날 자네가 죽어 언진을 만난다면 이렇게 전하게. 용휴와 언진은 스승과 제자로 만났으나 실은 벗이었고, 벗이었으나 벗인 척 못 하는 악업을 겪었노라. 고로 언젠가 처지를 뒤바꾸어 다시 태어난다면 이번엔 그대가 내가 누구인지 설명해 달라고!”

    골목길 사람들

    벗의 삶을 따라가며 증언을 채집하던 중거는 언진이 살던 한양 저잣거리들을 둘러보고자 했다. 생전에 언진은 저물녘 여항 구석구석 걷기를 즐겼다. 그 속에서 다양한 시적 소재를 발견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가 먼저 찾은 곳은 서촌 내수사 골목의 시장이었다.

    “돌아가셨다굽쇼? 에고 아까워라! 이 골목 단골이셨습니다요!”

    시장에서 육류를 다루는 털보 박 씨가 울상이 돼 말했다. 이언진은 어떤 사람 같으냐는 중거의 질문에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그가 마침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희 같은 천한 것들이 어찌 감히 그런 평을 하겠습니까마는, 이 역관께선 부처셨습니다요! 이상한 말입죠? 골목길에서 부처 난단 말 못 들어보셨습니까? 나이도 젊으신 분이, 게다가 저 연경이나 왜국을 들락거려 큰 세상을 보신 분이 이 지저분한 시장터를 하나도 더럽게 여기지 않으시더라 그 말입니다요. 그게 하루나 이틀은 쉬워 보여도 날이 쌓일수록 어렵지 않겠습니까? 생선 비린내에 골목 구석에선 똥오줌 냄새가 진동하는데 거기서 웃으며 농을 걸고 또 그걸 시로 지으시더란 말입니다. 거친 술 한두 잔이라도 걸치게 되면 저희랑 어깨를 걸고 춤도 덩실덩실 추시기도 하고요. 한마디로 사람 냄새 좋아하셨던 특이한 분이셨다, 전 그리 봅니다요!”

    중거는 종루거리 뒷골목의 유명한 전 가게 주인도 만났다. 영월댁 꺾실이라 불린 중년 아낙은 이렇게 말했다.

    “미인박명이라더니, 그리 가셨구먼! 그 양반, 아니 중인이니 양반이라 하면 안 되겠고, 암튼 그게 그거 아니냐고요? 안 그래요? 양반이면 다 양반이지, 뭐 또 중인을 만들어 차별을 둔담? 안 그런가? 내참, 이놈의 세상 요지경 속을 도통 모르겠단 말이지. 여기 자주 왔었지 뭐. 술을 잘은 못했어. 근데 울적하면 화를 냈고 지나가는 양반 아무나 잡아 상투잡이를 하곤 했는데, 몸이 가늘고 약해서 늘 얻어맞았다오! 역관 패를 보여주고서야 싸움이 끝났어. 신기한 것이, 그러다가 또 서로 죽이 맞아 친구가 됐어! 야금이건 뭐건 날이 새도록 돌아다니며 마시다 아침에 이 자리로 돌아온 적도 있어요. 나 글쎄, 그런 미친 양반은 봐도 봐도 못 봤어! 신기한 분이었어요.”

    중인들이 몰려 살던 소공주동 인근 사쾌는 이렇게 대답했다.

    “여기서 집 사고판 지 어언 20년이외다. 내 나이가 곧 70이오. 이언진 선생은 잘 기억하는데, 왜 그러하냐? 그 젊은 역관이 참으로 욕심이 적어서 또렷이 기억하외다. 이 동네 꽤 부촌인 건 아시지? 남 선생도 역관이시라며? 그럼 잘 아실 텐데? 죄다 여기서 살고 싶어 안 합니까? 청나라 서너 번만 다녀오면 거 밀무역인지 그걸 해서 몇 십 배 이문을 남겨먹지 않소? 그 이언진 선생은 선배 역관들 집들이 때 이 동네를 자주 왔었소. 그럴 때면 젊은 역관들이 내 업무소로 떼로 몰려와 집값 시세를 묻곤 했소이다. 그럴 때마다 이언진 선생이 동료들을 나무랍디다. 그 말이 하나같이 사리에 딱 들어맞고 훌륭했다 그 말이오! 정승에라도 오르면 나라에 큰일 할 분인데 참 아깝다 생각했었지. 또 가끔 시도 써서 줬는데, 내가 까막눈이라 알아보진 못했고 저 어디 넣어놨소이다.”

    중거는 사쾌가 건네주는 언진의 유작시를 소매에 소중히 집어넣었다. 헤아려보면 그 자신도 언젠가 선배 집들이에 나섰다가 언진과 함께 사쾌의 업무소에 들렀던 것도 같았다. 하지만 나이는 비슷해도 역관이 된 것으론 한참 후배인 그로선 그 모든 게 처음 듣는 이야기에 가까웠다.

    집으로 돌아온 중거는 언진이 사쾌에게 선물했다는 시 한 수를 천천히 읽어보았다. ‘집’이라는 제목이었다.

    사방을 가로막아 빈 곳을 만들어 집이라 부르지
    달팽이 뿔 위에도 지을 수 있다는 집
    잘해봐야 나와 세상을 가로막는 것인데
    무얼 염려해 서로 가지려 싸우는가
    아무래도 이 세상이 큰 감옥이라면
    감옥 속에 다시 감옥을 지어 숨으려 드는 건데
    나는야 가지거나 감출 게 전혀 없어
    발가벗은 노인네로 골목길에 머물리라

    일본에서 온 답신

    중거가 일본의 문인 미야세 류몬의 답장을 받은 건 언진이 죽고 난 이듬해였다. 그때까지 언진 주변 인물들을 취재하던 중거에게 류몬의 답신은 놀랍고도 반가운 기적이었다. 류몬은 언진이 일본통신사 수행원으로 오사카에 머물 때 교분을 튼 인물이었다.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았다.

    “친애하는 남중거 선생! 소인은 오사카에서 글과 그림을 쓰고 그리며 아울러 이를 애호하는 남루한 학인 미야세 류몬이라 합니다. 이언진 역관께서 하직하셨다니 애통함을 금할 길 없습니다. 삼가 조의를 표하오니 그분 친족들께 전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언진이 과연 누구인가?’라고 하는 질문을 처음 접하고 저는 말할 수 없는 감개와 더불어 이상한 흥분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제가 전해 듣기로는 이언진 역관께서 이곳 오사카에서 얻으신 빛나는 명성이 귀국 후 조선에서의 출세에는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실제 그러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그분과 처음 조우했을 때, 저는 그분 자신이 매우 초라한 삶을 살아왔음을 직감적으로 알아봤습니다. 문인은 다른 문인이 지닌 삶의 기척을 귀신처럼 알아보는 그런 본능이 발달해 있으니까요.

    이언진 역관께선 두 가지 점에서 저를 자극했습니다. 통상 고루하고 전통적이었던 조선통신사 관원들과 비교해 이 역관께선 놀랍도록 분방하며 비정통적이었습니다. 조선통신사 일행은 에도를 다녀오며 잠깐 오사카에 들를 뿐입니다. 여곽에 묵는 그들에게 우리 일본 문인들이 흔히 바라는 건 다소의 서화 기념품입니다. 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미야세 류몬은 뭔가 진정성 있는 타국 삶의 모습, 자신의 혼을 갈아 넣은 조선 문학의 본령을 터럭만큼이라도 느껴보고자 했습니다.

    고작해야 주자학이나 당나라풍 한시의 메아리를 보여줄 것으로 예견했던 저는 이 역관의 시와 입담에 차츰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분은 혼신을 다해 저나 다른 일본 문인들과 소통하고자 애쓰고 또 애썼습니다. 게다가 그분이 발신한 문학 이야기는 당대의 그만그만한 규칙들을 초월한 방달한 것들이었습니다. 놀랍고 또 놀라웠습니다. 문학과 생을 일치시켜 가며 관습적 삶에 쇄신을 가하려는 조선인이 존재하는구나 놀랐다고 한다면 과장일까요?

    다음으로 놀라웠던 건 그분의 슬픔이었습니다. 저와 다른 일본 문인들은 이 역관이 그토록 비상하게 우리와 교류하려 하는 원인으로 그 내부에 조선에서 인정받지 못한 외로움이 있을 거라고 분명히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낯선 이방인이라는 존재는 본국에서 부당하게 기가 꺾인 문인이 자신의 존엄을 확인하기에 아주 좋은 대상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그런 역할을 해냈다는 데 자부심을 느꼈다고 말한다면 실례가 될까요?

    아무튼 이 역관께선 오사카에서 얻은 명성 덕분에 조선에서도 일정한 유명세를 얻으셨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한편 뿌듯했고 언젠가 다시 오사카에서 만날 것을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만 불행한 결말을 듣게 되니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다만 그 질문, 이언진이 누구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확실히 말해 둬야 할 의무감을 느낍니다.

    이언진은 조선 문학의 미래입니다. 조선의 누군가가 계속 질문한다 해도 저는 반복해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앞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될 것입니다. 과거의 자기를 집어던지는 특별한 근성 없이는 그 변화를 감내하기란 불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이언진에게는 역사의 관성에 일격을 가하려는 새로운 심성과 기세가 갖춰져 있었습니다.”

    잘못된 선택

    언진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평가를 대부분 수습한 중거는 이를 가지고 연암 박지원을 방문하고자 했다. 그것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언진 내부에는 중인이라는 신분적 한계만으로는 다 설명할 길 없는 또 다른 내밀한 결핍이 도사리고 있었다. 언젠가 언진은 중거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원고를 박지원에게 보내 평가받고 싶네. 그를 질투하거나 존숭해서는 전혀 아닐세. 나는 내가 이 시대를 제대로 통과하고 있는지 정말 알고 싶다네. 난 외톨이로 혼자 걷고 있질 않나? 이 길이 과연 의미 있는 길인지 확인하고 싶어 미칠 것 같다네. 내가 중인이어서 그럴지도 몰라.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러나 난 내 신분의 부끄러움은 거의 극복했다네.”

    중거는 그가 설령 반가의 자제로 태어났더라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 짐작했다. 벗 언진은 문학 창작과 연관된 일엔 비상하게 활달하고 영민했지만, 나머지 현실 생활 속에서는 극히 내성적이었으며 그저 철없는 어린애로만 보이기 일쑤였다. 자신의 욕망을 능숙하게 다룰 줄 몰랐던 그는 한편으론 몹시 미숙하고 위태로운 인물이었다. 중거는 당시 이렇게 대답했다.

    “난 반대일세! 박지원과 자넨 나이 차이도 거의 없고, 설령 상대가 자넬 칭찬한다고 한들 그게 뭐 대수겠는가? 어차피 스승과 제자의 연도 아닐 터인데, 그만두게!”

    중거의 만류에도 언진은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탁월한 독창성에도 불구하고 늘 누군가의 심리적 지지를 받아내야만 견딜 수 있었던 벗의 경박함이 끝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너무나 뻔해 보였다. 언진과 달리 어린 나이에 문단에 화려하게 등단한 박지원은 다른 누굴 북돋워 키우기엔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데다 자기 세계가 너무나 확고했다. 마지막으로 중거는 이렇게 말했다.

    “난 자네가 이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올랐다고 믿네. 그건 조선의 누구도 자넬 모방할 수가 없어서야. 진흙탕 위에서 연꽃을 피워놓고 어찌 자넨 그걸 모르나?”

    쓸쓸한 표정의 언진은 퉁명스레 대답했다.

    “그저 시험해 보려는 거네. 같은 시대에 태어난 검객끼리 구태여 경쟁할 게 뭐가 있나? 각자 다른 경지에서 선의로 경합한다면 그건 오히려 아름다운 일 아닌가?”

    결국 박지원에게 자신의 원고를 보낸 언진은 한동안 꽤나 들떠 보였고 매사에 자신만만했다. 직전 일본을 방문하며 얻은 문학적 명성이 통신사 일행들의 입을 거쳐 장안에 파다해져 있었기에 내심 그것에 크게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결과는 중거가 짐작한 대로 참담했다. 박지원은 오래도록 답신 없이 언진을 무시했다. 조바심이 난 언진이 원고를 돌려달라 청하자 아주 짧은 논평이 함께 딸려 왔다. 언진의 글이 지지부진하며 연약한 감성에 기대 있다는 혹평이었다. 처음에 언진은 상대의 평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이렇게 말했다.

    “내 글이 그저 감미롭고 나긋나긋하기만 하다고 하는군. 그럴 수도 있겠지. 박지원 그 친구 문장의 골경미랄까, 아무튼 뼈대를 중시한다고 하니 말일세.”

    언진의 심드렁한 반응을 본 중거는 그 평온함이 외려 걱정도 됐지만 벗이 자신의 문체를 벼릴 좋은 기회일 수도 있겠다고 여겼다. 하지만 겉으로 내보인 침착함과는 달리 언진의 자존심은 안에서부터 썩어들어 가고 있었다.

    이후 역관 업무에 맹렬히 몰두한 언진은 창작에 손을 놓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나마 중인들 한시 모임에 참석해 듬성듬성 시를 짓던 그는 마침내 붓을 던지더니 경기도로 이사해 버렸다. 그게 중거가 기억하는 언진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연암의 후회

    중거를 마주한 박지원은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덩치가 크고 비만한 그는 연신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좌불안석이었다. 중거가 물었다.

    “이게 이언진에 대해 모은 품평 전부입니다. 하나하나 읽어보시고 부디 한 말씀 얹어주셨으면 합니다.”

    연신 바지춤에 손바닥 땀을 닦으며 자료를 읽어나가던 지원이 이용휴의 평이 담긴 부분에서 빙그레 미소 짓더니 입을 열었다.

    “혜환 선생 평이 아주 좋소! 이분 제자였구먼. 내 그걸 미처 몰랐네. 쯧쯧.”

    중거는 아무 대답 없이 지원의 살집 좋은 몸을 우두커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마침내 모든 글을 읽은 지원이 이마를 긁적이며 물었다.

    “남 역관께서도 시를 쓰시오?”

    중거가 한참 망설이다 대답했다.

    “조금 씁니다. 저희 중인들이란 본디 바탕이 천해 배전의 노력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양반들 하시는 건 죄 따라 하니까요.”

    두 눈을 껌벅이며 중거를 멍하니 바라보던 지원이 다시 물었다.

    “이 글들을 이언진 역관 묘소 옆에 묻어주겠다고 하셨소?”

    중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침묵한 후 지원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난 뭘 적어드릴 수 없구려. 오해는 마시오. 망자에게 뵐 면목이 없어서 그러오.”

    “면목이 없다니, 무슨 뜻입니까?”

    길게 한숨을 뱉은 지원이 서류들을 중거에게 돌려주며 대답했다.

    “당시 난 이언진 역관의 원고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었소. 실은 밤을 새우며 깔깔대며 읽었다오. 그토록 해학 넘친 시들을 읽어본 적이 없거든! 아무튼 매우 참신하고 기발했소. 다만, 다만 말이오. 지나치게 감정에 휩쓸려 있다고나 할까. 칼을 휘두르는 것과 칼춤을 추는 건 서로 다르지 않겠소? 뭔가 부족해 보였소.”

    고개를 천천히 끄덕인 중거가 말했다.

    “그렇다면 그 부족했던 면에 대해 짧게나마 적어주셨으면 합니다. 언진의 혼이 기뻐할 겁니다.”

    양 손바닥을 무릎에 비비며 땀을 닦아낸 지원이 정색을 하고 입을 뗐다.

    “싫소.”

    놀란 표정을 한 중거가 급히 물었다.

    “방금 싫다 하셨습니까?”

    크게 고개를 끄덕인 지원이 대답했다.

    “그렇소. 싫소!”

    “왜 싫으십니까?”

    “내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이오.”

    “어떻게 바뀌셨습니까?”

    “내 혹평은 반은 진심이 아니었소. 놀라운 솜씨긴 했지만 더욱 갈고닦으면 더 놀라워질 그런 솜씨로 보였소. 짐짓 무시하면 더 맹렬한 기세로 타오를 줄 알았던 거지. 어쩌면 격려라고 믿었는지도 모르겠고. 한데 그게 이런 결과를 빚을 줄 어찌 알았겠소?”

    잠시 허공을 바라보던 지원이 덧붙였다.

    “무엇보다 우상 이언진의 시는 이미 그것으로도 충분했음을 내 이젠 깨달았소. 그는 완성된 상태였던 거요. 거기에 무얼 더 보태라고 주문한 내가 치졸하고 어리석었소. 오늘은 그만 돌아가시오. 나중에 다시 만나 과연 이언진이 누구였는지 자세히 이야기 나눴으면 하오.”

    *이 작품은 박지원의 ‘우상전’을 모티프로 창작됐다.


    윤채근
    ● 1965년 충북 청주 출생
    ● 고려대 국어국문학 박사
    ● 단국대 한문교육학과 교수
    ● 저서 : ‘소설적 주체, 그 탄생과 전변’ ‘한문소설과 욕망의 구조’ ‘신화가 된 천재들’ ‘논어 감각’ ‘매일같이 명심보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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