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식품 분야 명인 1호’로 꼽히는 청매실농원 대표 홍쌍리씨가 오랫동안 장독에서 숙성시킨 매실절임을 맛보고 있다. 청매실농원 앞마당에는 2500여 개의 장독이 줄지어 서 있다.
섬진강가의 한적한 섬진마을을 오늘날과 같은 매화마을로 탈바꿈시킨 사람은 고(故) 율산 김오천(1902~1988)씨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머슴살이로 번 돈을 밑천삼아 17세 되던 해에 일본행 연락선에 몸을 실었다. 그후 일본 광산에서 13년 동안 광부로 일하며 모은 돈으로 매화나무와 밤나무 묘목을 각각 5000그루씩 사서 서른 살 되던 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마을 주변의 야산을 모조리 개간해서 일본에서 가져온 묘목을 심었다.
3년에 걸쳐 정성껏 묘목을 심고 관리하던 김씨는 나무 키우는 기술을 더 익히고 돈을 구하기 위해 1934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후 10년 동안 고향과 일본을 수없이 오가면서 묘목 재배 기술을 익혔다고 한다. 1944년에 완전 귀국한 그는 나무 심는 일에만 매달려 고향마을 주변의 야산을 매실밭과 밤나무 동산으로 일궈냈다.
김씨는 전쟁 중이던 1952년부터 매실의 상품화에 적극 나섰다. 해마다 수십 가마니 분량의 오매(烏梅)를 직접 만들어 구례, 순천, 하동 등지의 한약방에 공급했다. 당시 그의 매실밭에서는 150t 가량의 매실이 수확됐다. 그중 100t을 모두 오매로 만들어 한약방에 납품하고, 약 30t은 부산의 대선소주 공장에 매실주 원료로 팔았다고 한다.
김오천씨가 주춧돌을 놓은 청매실농원(061-772-4066, www.maesil.co.kr)의 매실 농사는 며느리 홍쌍리(63)씨가 잇고 있다. 부산에서 성장해 1965년에 김씨 가문으로 시집온 홍씨는 처음에는 생소한 시골생활로 인해 마음고생을 적잖이 했다고 한다. 그러나 따사로운 봄빛 아래 만개한 매화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뒤로는 섬진마을에 고향 같은 푸근함과 남다른 애착을 갖게 되었다.
홍씨는 매실의 효능을 직접 보고 느끼고 체험하면서 매실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가 매실의 효능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도 시아버지인 김오천씨 덕분. 김씨는 해마다 얼마간의 매실을 오랫동안 불에 고아서 ‘매실고’를 만들어 뒀다가 설사, 식중독, 복통으로 고생하는 가족이나 마을 사람들에게 먹였다. 그럴 때마다 언제 그랬나 싶을 정도로 배앓이가 사라졌다고 한다.
시아버지 뒤이어 매실 연구
홍씨는 고운 새색시 시절 관절염으로 꽤 고생하기도 했다. 관절염으로 고통이 심해지자 어느 한의사가 매실을 먹어보라고 권했다. 그때껏 매실을 그저 배앓이에나 먹는 단방약 정도로 알던 그는 자신이 손수 농사지은 매실을 먹은 지 석 달 만에 굳은 팔꿈치가 살며시 펴지는 놀라운 효능을 체험했다. 지금도 ‘매실박사’, ‘전통식품분야 명인1호’로 유명한 홍씨는 “매실은 몸속에 쌓인 노폐물이나 피로물질을 깨끗이 씻어주는 ‘인체 청소부’”라고 강조한다.
오랜 경험과 일상생활에서 매실의 효능을 체득한 홍씨는 매실의 저장성과 효능을 높이고, 언제라도 손쉽게 먹을 수 있는 매실 건강식품의 제조방법을 수년에 걸쳐 연구했다. 그 결과 오늘날에는 농축액, 절임, 장아찌, 고추장, 된장, 식초, 매단 등 20여 가지에 이르는 제품을 개발해 시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