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덜란드의 남성 성(性)과학자가 쓴 여성 성기 혹은 여성의 성적 욕망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기록. 책 맨 앞쪽에 귀스타프 쿠르베의 그림 ‘세상의 근원’이 실려 있다. ‘교양과 문화로 읽는 여성 성기의 모든 것’이란 부제가 달린 이 책의 원제가 ‘The Origin of the World’다. 비유와 상징으로 에둘러 표현해야 했던 여성 성기에 대한 깊고 방대한 통찰이 인상적이다. 전반부는 여성 성기의 해부학적 구조와 생리학적 기능을 다루고, 후반부는 여성 성기의 역사를 돌아본다. 정조대가 있던 중세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가 하면, 클리토리스 절제나 음부 봉쇄, 처녀성 검사 같은 세계 곳곳의 성문화를 소개하고, 성교에 대한 프로이트 이론을 살핀다. 동아시아/488쪽/2만2000원
그라운드 제로 복거일 지음
‘목성잠언집’(2002)에서 햇볕정책을 비판했던 소설가 복거일씨의 새 장편 소설. ‘목성잠언집’의 시공(時空)과 정신을 공유한다. 두 작품의 배경인 개미니드는 ‘웨스트 개미니드 인민공화국’과 ‘이스트 개미니드 공화국’으로 나뉘었다. 웨스트 개미니드의 실세들은 핵무기 개발이 ‘자주국방’의 본질이며 여기에 필요한 자금을 이스트 공화국 정권이 ‘스스로 바치도록 하는’ 방안을 짜낸다. 동서(東西) 정상회담을 열어 이스트 개미니드 정권의 지지율을 올려주고, 그 대가로 불법송금을 유도하는 것이다. 결국 웨스트 인민공화국은 핵무기를 성공적으로 개발하고, 이스트 공화국에 개발분담금을 내지 않으면 핵무기가 터질 것이라고 위협한다. 끝내 가공할 핵무기가 폭발해 개미니드는 ‘그라운드 제로’가 되고 만다. 경덕출판사/248쪽/1만3000원
징비록 유성룡 지음, 이재호 옮김
설득과 통합의 리더 유성룡 이덕일 지음
서애 유성룡(1542~1607) 서거 400돌을 맞아 여러 행사가 치러진 가운데, 그와 관련된 책들도 속속 출간됐다. 유성룡은 임진왜란이 벌어진 7년 동안 도체찰사로 군무를 총괄하고, 명나라 이여송을 맞아 평양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으며 이순신을 등용해 국난을 극복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징비록’은 유성룡이 임진란 이전 국내 정세에서부터 전쟁의 실상과 전쟁 후 상황까지 기록한 것으로 조선·중국·일본 세 나라의 외교관계와 전쟁의 추이를 간결하게 기술했다. 역사학자 이덕일씨가 쓴 ‘…유성룡’은 임진왜란뿐 아니라 당쟁까지도 성공적으로 치러낸 유성룡의 삶을 통해 조선 중기를 재조명하고, 리더가 갖춰야 할 역량을 간추려낸다. 역사의 아침/각 416쪽, 424쪽/각 1만7000원, 1만9000원
스파르타쿠스의 죽음/네로의 비밀/티투스의 승부수 막스 갈로 지음, 이재형 옮김
비잔티움 연대기(전3권) 존 줄리어스 노리치 지음, 남경태 옮김
로마사를 색다른 방법으로 읽어볼 수 있는 기회. ‘나폴레옹’의 저자로 유명한 프랑스 역사학자 막스 갈로의 로마 인물소설 시리즈 세 권과, 476년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뒤로도 1000년이나 역사를 이어간 동로마, 즉 비잔티움제국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다룬 ‘비잔티움 연대기’가 비슷한 시기에 출간됐다.
로마 인물소설 시리즈는 로마 속국 출신으로 노예들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킨 검투사 스파르타쿠스와 탐미적 광대이자 폭정을 일삼은 네로 황제, 로마제국 말기 유대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점령한 티투스 황제를 다루고 있다. 작가는 고대 로마를 “극도로 세련되고 기술적으로 매우 앞섰지만 한편으로는 최고로 사악한 야만 행위를 저지를 수 있었던 사회”라고 정의한다.
‘비잔티움 연대기’는 존 줄리어스 노리치의 유머가 담긴 우아한 문장이 돋보이는 흥미로운 역사서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옮긴 330년부터 1453년 오스만투르크에 의해 멸망하기까지 긴 생명을 이어온 비잔티움제국의 비밀을 추적한다. 이슬람 세력과 슬라브족, 게르만족 사이에서 각각의 문화와 종교를 인정하고 받아들여 세력의 균형을 맞춘 것과 위대한 황제들의 기묘한 외교술을 비잔티움의 긴 생명력의 원천으로 꼽는다. 2000년에 ‘종횡무진 동로마사’로 축약 번역된 적이 있다.
예담/각 326~399쪽/각 9800원, 바다출판사/각 672~852쪽/1, 2권 각 2만8000원, 3권 3만원
맑은 타미르 강 1, 2 게세르 칸 유원수 옮김
몽골을 대표하는 문학 작품이 잇따라 번역됐다. 먼저 1960년대에 출간된 소설 ‘맑은 타미르 강’(차드라발 로도이담바 지음)은 20세기 초 타미르 강 골짜기를 배경으로 몽골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한 유목민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게세르 칸’은 ‘몽골 비사’ ‘장가르’와 함께 몽골 고전문학의 3대 고봉으로 불리는 영웅 서사시다. 혼란한 인간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하늘에서 현신한 게세르 칸의 무용담인데, 주인공이 심술궂고, 무고한 사람을 괴롭히는 악동으로 묘사된다. 이 작품은 원본 입수가 불가능해 목판본을 찍은 사진을 한컷 한컷 들여다보며 3년여에 걸쳐 번역했다고 한다. 민음사/각 452쪽, 515쪽/각 1만3000원, 사계절/584쪽/2만9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