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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치 사운드’ 고군분투기

‘도이치 사운드’ 고군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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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갑수 시인에겐 ‘줄라이홀’이라는 작업실이 있다. 명품 오디오가 가득 찬 음악감상실이다. 그에게 음악 듣기는 업보이자 생의 목적이고 매혹적 범죄다. 소리에 사로잡힌, 그래서 명품 스피커를 찾아다니는 그에게 집, 강연, 방송, 원고는 허깨비의 삶일 뿐이다. 오직 도이치 사운드를 찾기 위해 떠난 가시밭길.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가지가지 에피소드.
‘도이치 사운드’ 고군분투기

김갑수 시인의 작업실 ‘줄라이홀’

출판사 다니는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야, 너 마누라랑 이혼했다며? 스물여섯 살짜리하고 재혼해서 룰루랄라 산다며? 오호호호!”

“엥?”

일단 그 친구는 여자다. ‘오호호호’ 하는 반응으로 보아 그럴 리가 없다는 표시다. 그런데 소설가 김훈에게서 들었단다. 세상에나. 김훈이라면 왠지 분위기가 진득한 게 헛말 따위는 절대 하지 않을 것 같다. 대체 얼마나 많은 인간이 ‘남한산성’의 말씀에 ‘오홍!’ 했을라나. 평소 그와 척진 일도 없었으니 어딘가에서 헛소리를 건네 들었을 것이다. 마누라 직장에 곧장 전화를 걸었다.

“헤이, 나 당신하고 이혼했대. 스물여섯 살짜리 꼬셔서 잘 산대. 작업실이 집이래.”



아내의 답변은 언제나 간단명료하다.

“축하해. 근데 집에도 좀 오고 그러시지.”

결혼한 자가 별 이유도 없이 집 놔두고 작업실에서 거의 산다. 이혼 소리가 돌 법도 한 것 같다. 스물여섯 살짜리는 몰라도 아내와 ‘웬수’ 사이에 속칭 ‘딴 년’을 숨겨놓고 있으리라는 추측들. 하지만 그건 독신자를 동성애자로 간주하고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너무나 기계적인 연상이고 편견이다. 실상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은 덕택에 아내와 나는 서로 그리워하며 산다. 그리움이 사무치면 집에 들어가서 잔다. 그게 일주일에 두어 번쯤인데, 왜 그래야 하느냐고?

동거 혹은 별거

몇 해 전 일본의 어떤 중학생이 학교 앞에서 살인을 저질렀다. 기자들 앞에서 녀석이 했던 말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나요?”

‘하류지향’을 쓴 우치다 교수 같은 훈고파는 “죽기 직전까지 녀석의 목을 졸라보면 왜 안 되는지 알 것이다”라고 했다. 우치다는 세계의 ‘이쪽’에 소속된 사람이리라. 그는 ‘저쪽’의 언어와 사고를 이해할 수 없다.

사람을 죽일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나도 이런 말은 할 수 있다.

“왜 부부는 언제나 붙어 지내야만 하나요?”

이런 반문이 별문제 없는 부부의 간헐적 동거, 선택적 별거에 대한 변이 될까? 되거나 말거나, 그러거나 말거나, 아내는 직장에서 돌아온 뒤의 시간 전부를 책 읽는 데만 쓴다. 구경시켜주고 싶을 만큼 필사적이다. 물론 살림은 도통 하지 않는다. 가령 밥은 원하는 사람이 해서 먹고 씻어놓아야 하고, 단추가 떨어지면 세탁소에 가는 식이다. 불만? 물론 나로서도 왕 같고 성주 같은 세상의 남편들이 부럽다. 이청준 선생과 여행 중이었는데, 밥도 안 해주는 마누라 섬기는 자랑을 했더니 사근사근 온화한 노작가께서 주위가 놀랄 만큼 큰소리로 발끈한다.

“기럼 × 빨라고 장가갔냐?”

역시 이해불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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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 시인, 문화평론가 dylan@unitel.co.kr
연재

김갑수의 ‘지구 위의 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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