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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의 무덤에 파인 욕망의 구멍

결혼의 무덤에 파인 욕망의 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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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은 끝없이 생성되는 욕망에 의해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계약이나 계산만으로 지탱할 수 없는 삶의 구멍이 있는 셈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결혼이라는 무덤 곁에
  • 나름의 출구를 만들고 싶어한다. 욕망이 숨 쉬고 드나들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애인’이라는 듯이 말이다.
결혼의 무덤에 파인 욕망의 구멍

‘애인’

실패한 사랑은 대중가요 가사에 남고, 이뤄진 사랑은 결혼사진으로 남는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사랑이 이뤄진다는 그때, 그러니까 결혼하는 순간 사랑은 생활이 된다. 그토록 가슴 뛰게 잡았던 손에 무감해지고, 마음 졸였던 첫 키스의 순간이 뇌리에서 사라진다. 집에 돌아가면 가구처럼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 연인이라기보다는 가족이나 혈연으로 느껴지는 사람, 생활에 꼭 필요한 필수품처럼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사람. 그렇게 ‘부부’는 서로에게 익숙해지면서 낯설어진다.

‘연애’라는 말이 유부남, 유부녀들 사이에서 ‘다른 이성’과의 만남으로 변질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부부 사이에는 연애가 주는 짜릿함이 없다. 서양에서는 부부 간의 정절을 두 사람만의 침실을 유지하는 것으로 여긴다. ‘침실’이라는 상징적 공간에 다른 누군가가 끼어드는 것 자체가 바로 불륜이자 외도가 되는 셈이다.

결혼하는 순간 싱싱했던 청춘남녀는 시스템의 일원이 되어 급속히 늙어간다. 적금 붓고, 아이를 키우며 나날의 삶에서 자신을 지워나간다. 결혼이 지루한 새장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사랑하고 연애하고 결혼하려 한다. 권태롭기도 하지만 이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제도, 결혼, 그리고 부부. 사람들은 도대체 왜 지긋지긋해하면서도 결혼하고 또 유지하는 것일까? 그리고 결혼이라는 제도 바깥으로 흘러나오는 욕망을 어떻게 처분하고 사는 것일까? 인류의 오래된 습관, 결혼에 대한 영화적 시선을 따라가본다.

영화 ‘애인’의 메인 카피는 ‘남모르게 갖고 싶은, 애인’이다. 영화를 보기 전 눈길을 끈 것은 바로 ‘남모르게’라는 수식어다. 애인이라는 말 앞에 붙은 비밀스러운 협약, ‘남모르게’라는 말에서, 영화는 관객에게 공모의 혐의를 제공하며 유혹의 손길을 건넨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애인을 그린 영화는 숱하게 많지 않았던가? ‘어깨 너머의 연인’ ‘연인’ 등을 비롯해 연애 혹은 애인을 그린 영화는 수도 없이 많다.

결혼 앞둔 여자의 일탈



영화 ‘애인’이 이런 영화들과 구분되는 점은 바로 주인공인 여자가 결혼을 앞둔 사람이라는 것이다. 요약하면 대략 이렇다. 결혼을 앞둔 한 여자가 다음날이면 이 나라를 떠날 남자를 만난다. 남자는 매력적이고 또 거침없다. 그는 여자에게 하루 정도의 일탈이라는 달콤한 제안을 해 온다. 여자는 그 단 하루를 욕망에 대한 충실한 응답으로 보낸다. 그들은 미술관이라는 개방된 장소에서 선 채로 섹스를 하고, 밀실에서조차 상상하기 힘든 대담한 사랑을 나눈다. 그들은 서로의 이름도 묻지 않은 채 말을 낮춘다. 충동적인 섹스는 하룻밤에 대한 계약으로 연장된다.

여자를 흥분시키는 것은 약혼녀라는 제약 그 자체다. 그녀는 한 달 후면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법적으로 구속될 것이라는 것, 상식적으로 제한받을 것을 알기에 싱글로서의 자유를 최대한 누리고자 한다. 그러니까, 아직은 성적으로 방종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마음껏 소모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격렬한 소모가 ‘결혼’이라는 제도가 지닌 구속을 강렬하게 대비해서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그녀가 보내는 뜨거운 밤은 결혼 후에는 결코 없을, 아니 있어서는 안 될 어떤 열정으로 합의된다. 그녀의 머릿속에 결혼은 열정과 정반대의 단어로 정의돼 있다.

‘애인’은 ‘비포 선 라이즈’가 보여준 시한부 데이트에 대한 정반대의 극점이라고 할 수 있다. ‘비포 선 라이즈’의 연인들이 변치 않을 추억을 남기기 위해 하루를 보내는 것과 달리 그들은 곧 감금될 육체적 욕망을 조금이라도 더 소진하기 위해 애쓴다. 그들은 대화를 나누다 갑자기 싸우고 싸움은 강간과 같은 섹스로 끝맺음된다.

그런가 하면 갑작스레 입었던 옷을 벗어던지고 쇼핑을 한다. 쇼핑을 하고 나오니 소나기가 내린다. 흠뻑 젖은 옷을 입고 키스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남자와 여자, 그들이 나누는 일탈의 행로는 어디에서 본 듯한 장면과 너무도 닮아 있다. 남자와 여자는 말 그대로 부부가 아닌 애인이기 때문에 이런 일탈을 감행한다. 결혼이 안정이라면 연애는 일탈의 출발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하룻밤의 일탈을 마무리하고 산뜻하게 ‘일상’으로 되돌아간다. 그녀가 되돌아간 일상은 바로 예비남편이 기다리고 있는 약혼녀로서의 삶이다. 하룻밤 안에 급하게 탕진하는 그녀의 욕망에는 결혼이 결코 허용하지 않는 어떤 욕망에 대한 간절함과 아쉬움이 있다. 결국 결혼이라는 제도에는 욕망이 아닌 생식과 안정의 요구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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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 영화평론가 noxk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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