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버트 그레이프’
공익광고에서는 가족이야말로 힘의 근원, 행복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가족만큼 개인의 인생에 큰 상처를 주는 집단도 없다. 가장 행복한 순간도 가족에게서 비롯되지만 도저히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깊은 상처도 가족에게서 기인하곤 한다. 어린 시절 무심했던 아버지나 폭력적인 어머니, 다정다감했지만 경제적으로 무능한 부모처럼 가족의 모습은 그 경우의 수가 너무도 다종다양하다. 가족의 모습이 각기 다르다는 것은 원체험의 순간, 그리고 1차적 사회집단으로서 최초의 경험이 각기 다를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늘 비교될 수밖에 없는 형제이기 때문에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있었고 유산 상속이나 왕위 계승과 맞물려 가족사가 피로 얼룩지기도 한다. 자신이 낳은 자식을 죽여 남편에게 복수하는 어머니도 있고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이야기도 존재한다. 가족은 인류의 영원한 이야깃거리이자 숙제이며 또 짐인 셈이다.
사람들은 5월을 가족의 달, 가정의 달이라고 표현한다. 5월5일 어린이날, 5월8일 어버이날 등 유독 5월에는 가족을 챙길 행사가 많다. 하지만 궁핍한 아이에게 크리스마스가 가장 슬픈 날이 될 수 있듯이 5월은 넘쳐나는 ‘가족’ 때문에 우울할 수 있는 달이기도 하다. 5월5일 어린이날을 맞아 하루쯤 멋진 아빠가 되려던 남자가 붐비는 놀이공원에 가서 겪는 당혹감은 아마도 가족의 달의 숨겨진 이면을 잘 설명해줄 것이다. 가족은 일회성 이벤트로 복구되고 회복되는 그런 단순한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족영화의 가장 큰 효용성은 이런 것이 아닐까? 우리 집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집안이 다 거기서 똑같은 고민을 하면서 산다는 것. 불화와 갈등으로 얼룩진 가정사가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 말이다. 5월 가정의 달에 가족영화를 되살펴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 헤라는 질투의 화신이다. 남편 제우스가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뭇 여성을 유혹하고 겁탈할 때 헤라는 무서운 질투로 그 여성들을 단죄한다. 간혹 헤라의 질투는 비이성적이며, 지나쳐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바로 헤라가 가정의 여신이라는 것이다. 이는 돌려 말하자면 여성의 질투 없이 가정의 화목이 유지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내의 질투가 없다면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자식들로 이뤄진 단란한 핵가족의 모습은 상상할 수 없다. 남편은 끊임없이 가정 바깥의 여자를 넘실대는데, 그 넘실대는 욕망에 울타리를 쳐주는 것이 바로 아내의 질투다. 하지만 때로 아내 혹은 남편에 대한 의혹과 질투는 걷잡을 수 없는 파국을 불러오기도 한다. 질투와 단란한 가족, 그 가운데에는 인류가 오랜 시절 시행착오를 겪으며 찾아온 균형의 중점이 놓여 있다.
여동생 약혼자와 사랑에 빠지다
배우 이미숙의 복귀작으로도 유명했던 영화 ‘정사’는 결혼과 가정, 행복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대학교 때 사귄 첫 번째 남자친구와 결혼해서 살고 있는 서현은 청결하게 가꿔진 어항 속 열대어 같은 여자다. 정갈한 식기에 식사를 준비하고 단정하게 단발머리를 유지하는 여자. 중산층 이상의 생활을 제공하는 남편의 경제력과 깔끔한 인테리어. 서현의 주변을 수식하는, 그녀가 누리는 삶의 풍경은 그녀가 바로 행복의 대명사임을 짐작케 해준다. “여자라서 행복해요”라며 냉장고 앞에서 웃고 있는 광고모델처럼 그녀는 그렇게 완벽하게 갖춰진 가정 안에서 화룡점정(畵龍點睛)처럼 자리 잡고 있다. 문제는 그녀의 완벽함이 가꿔진 어항, 잘 관리된 청정지역처럼 인공적이라는 데에 있다. 인공 수목림처럼 그녀가 머무는 삶의 공간은 완벽하지만 어딘가 불안정해 보인다. 그녀의 행복조차 인위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