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 미제라블(전5권)<br>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민음사, 6만1000원
60세의 위고가 64세의 들라크루아에게 흥분에 차서 써 보낸 이 작품이란 ‘레 미제라블’을 가리킨다. 편지를 쓴 시점은 1845년 시작했으나 15년 동안 방치했다가 1860년 다시 쓰기 시작해 1862년 4월 제1부를 대중에게 내놓기 직전이었다. 소설의 첫 장을 펼치기 전에 위고는 1862년 1월 1일자로 유배지 건지 섬의 오트빌 하우스에서 다음과 같이 헌사를 쓴다.
법률과 풍습에 의해 인위적으로 문명의 한복판에 지옥을 만들고 인간적 숙명으로 신성한 운명을 복잡하게 만드는 영원한 사회적 형벌이 존재하는 한, 무산계급에 의한 남성의 추락, 기아에 의한 여성의 타락, 암흑에 의한 어린이의 위축, 이 시대의 이 세 가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어떤 계급에 사회적 질식이 가능한 한, 다시 말하자면, 그리고 더욱 넓은 견지에서 말하자면, 지상에 무지와 빈곤이 존재하는 한, 이 책 같은 종류의 책들도 무익하지는 않으리라.
35년 구상, 17년 집필
출간된 지 150년이 지난 2013년 새해 벽두, 한국에서 다시 ‘레 미제라블’이 연일 화제다. 소설을 뮤지컬 형식으로 만든 동명 영화가 대중으로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얻은 결과다. ‘레 미제라블’은 위고가 35년간 마음에 품고, 장장 17년(1845~1862)에 걸쳐 집필한 대작이다. ‘레 미제르’로 시작한 뒤, 방치했던 15년 동안 위고는 정계에 진출했고, 민주주의자가 되어 혁명을 이끌었고, 혁명이 실패하자 영국령의 섬으로 유배를 갔고, 그 유배지에서 완성했다. 레 미제르(Les miseres)와 레 미제라블은 모두 ‘가난한 사람들’, 또는 ‘불행한 사람들’이라는 뜻. 한국에서는 소설 주인공의 이름을 내세운 청소년판 요약본 ‘장 발장’으로 널리 알려져왔고,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조차 장 발장 정도는 알 정도로 익숙한 인물이다.
1815년 10월 초순, 해가 지기 한 시간쯤 전에 걸어서 길을 가던 한 사나이가 소도시 디뉴로 들어오고 있었다. 때마침 이 집 저 집에서 창이나 문 앞에 더러 나와 있던 사람들은 불안한 눈빛으로 나그네를 바라보았다. 이보다 더 초라한 모양을 한 행인은 좀처럼 볼 수 없었다. 그는 중키에 뚱뚱하고 실팍진 한창때의 사나이였다. 나이는 마흔여섯에서 마흔여덟쯤 되었으리라. -제 1부 팡틴 2장‘추락’ 중에서
세계 소설사에 ‘레 미제라블’뿐만 아니라 ‘파리의 노트르담’(1827)으로도 이름난 위고는 프랑스 동부 프랑슈-콩테 지방의 주도 브장송 출신으로 프랑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극작가다. 브장송은 문학자들에게 스탕달의 ‘적과 흑’의 무대로 각인되어 있고, 음악가들에게는 세계 지휘 콩쿠르가 열리는 음악도시로 알려져 있다. 영화인들에게는 뤼미에르 형제가 태어난 영화의 산실로, 또 근처 오르낭에서 태어난 화가 쿠르베가 학창생활을 한 고장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소설 ‘적과 흑’의 주인공 줄리앙 소렐이 브장송에 온 이유는 신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다. 곧 브장송은 예부터 신학의 도시. 동시에 스위스 국경지대인데다가 두 강이 도시를 에워싸듯이 흐르는 지리적 특성으로 시타델(요새)이 구축된 군사의 도시다. 위고의 아버지는 나폴레옹 휘하의 장군 출신, 위고가 브장송에서 태어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장 발장의 귀에 “너는 자유다”라는 그 이상한 말이 들렸을 때, 그 순간은 거짓말 같고 이상야릇했다. 강렬한 광명의 빛이, 산 사람의 진정한 광명의 빛이 갑자기 그의 속에 스며들었다. 그러나 그 빛은 머지않아 희미해졌다. 장 발장은 자유라는 생각에 현혹되었다. 그는 새로운 생애가 열리리라 믿었다. 그러나 그는 곧 노란 통행권이 첨부되는 자유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제 1부 팡틴 2장‘추락’ 중에서
소설 ‘레 미제라블’엔 시와 소설, 신학과 철학, 역사와 정치를 뼛속 깊이 체득한 노작가 위고의 인간과 사회, 법과 종교에 대한 신념이 총 5부에 걸쳐 순차적으로 구현되어 있다. 뮤지컬 형식의 영화 ‘레 미제라블’은 소설로 전하지 못하는 현지의 자연과 사람, 마을과 도시, 골목과 광장, 가옥과 수도원의 형태들을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소설과 영화에서 압권은 센 강 좌우로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파리의 지하세계, 곧 시궁창(하수도) 탈출 장면이다. 인간 삶의 양태를 정밀하게 관찰하고 대변하는 장르가 소설인 만큼 원작의 이 대목은 의미심장하게 따로 찾아볼 정도로 놀라운 지식과 정보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