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독재권력의 중추는 조직과 선전”이라고 그는 말했다. “노동당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가 각각 조직과 사상 관리의 핵심”이라면서 “조직지도부가 물리적 독재를 뒷받침한다면 선전선동부는 감성 독재의 첨병”이라고 덧붙였다. 통일전선부에서 일하던 장씨는 2004년 탈북했다. 통일전선부는 북한의 대남공작기구다.
랜덤하우스에서 책을 낸다는 말을 듣고 처음엔 의아했다. 서구인이 북한 출신 한국 작가가 쓴 책에 관심이 있을까. 누가 그 책을 사볼까. 오랫동안 알고 지낸 터라 필력의 출중함은 알았으나 책이 주목받을 것 같지는 않았다. 책 제목은 ‘경애하는 지도자에게(Dear Leader)’라고 했다. 그가 밝힌 계약금과 인쇄부수는 파격이었다.
“즉각 고전(classic)이 됐다”
5월 9일 CNN에 출연한 장씨를 TV로 보면서 2월 7일 그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책을 출간하면 인터뷰하기로 약속한 것을 까맣게 잊은 것. CNN 간판 앵커 크리스티안 아만푸어가 진행하는 뉴스쇼에 초대받은 한국인은 가수 싸이에 이어 그가 두 번째다. ‘경애하는 지도자에게’가 시쳇말로 대박이 난 것이다. 다만, 시청률은 싸이 때보다 낮았다.
5월, 6월엔 그를 만나기 어려웠다. 그가 주로 해외에 체류해서다.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에서 인터뷰, 간담회, 북 콘서트, 의회 증언, 강연 등으로 바빴다.
책 출간 후 미국 NBC와 CNN, 영국 BBC에 출연했다. 더타임스, 파이낸셜타임스, 가디언, USA투데이, 이코노미스트 등 서구 언론이 그의 책과 삶을 앞다퉈 다뤘다.
더타임스는 일요판 매거진 표지인물로 그를 소개하면서 “독자를 지구상 가장 무시무시한 곳으로 데려간다. 역사적 문헌으로도 아주 중요한 책이며, 출간 즉시 고전(classic)이 됐다고 할 만하다”고 썼다.
그는 앞으로도 한동안 바쁠 것 같다. ‘경애하는 지도자에게’ 한국어판을 7월 말 출간할 예정이다. 9월에는 미국과 캐나다로 북 투어(Book Tour)를 떠난다. 7월 8일 서울 강북의 뉴포커스(북한 전문 인터넷 매체)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 외국에서 더 유명한 것 같다. 책에 대한 반응이 어땠나.
“서구에서 내 책에 이렇듯 주목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랜덤하우스도 이 정도일지는 몰랐다더라. 책 덕분에 해외 언론에서 칼럼을 써달라는 요청도 많이 온다. 북한 인권에 관심 가져준 게 고마울 뿐이다. 영국 권위지 더타임스가 나와 나의 책을 다루면서 북한을 ‘나치’라고 표현했다. 유럽 사람이 국가 시스템과 관련해 가장 혐오하는 낱말이 나치다. ‘경애하는 지도자에게’를 읽은 이들은 어떻게 나치 같은 정권이 21세기에도 살아남아 있을 수 있느냐고 안타까워했다. 서구인이 북한의 잔악한 실상을 문학으로 접하고 충격 받은 것 같다. 북한 정권이 유럽과의 관계를 개선하려 노력한다. 그 같은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것도 같다.
덧붙여 말하고 싶은 게 있다. 유럽에서 놀란 것은 인권에 대한 관심이다. 신문 1면에 가나의 인권 문제, 리비아의 현황 같은 기사가 실린다. 언론이 인권, 평화, 자유 같은 보편적 가치에 주목한다. 1면에서 외국의 인권 문제를 다루는 한국 언론을 본 적이 없다. 정치인이 비생산적으로 다투는 얘기나 누가 돈 받았느니 하는, 궁극의 삶, 나아가야 할 세상과는 무관한 주제가 주로 다뤄진다. 한국이 아직 후진적이어서 그런 것 같다. 한국 언론과 서구 언론을 비교하면서 선진 사회가 되려면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보편적 가치에 무게중심을 두는 게 선진국이다. 한국 언론은 같은 민족인 북한 인권에 대해서도 무관심하다. 아직 선진 사회가 되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경애하는 지도자에게’는 영국 랜덤하우스에서 10만 부, 미국 사이먼앤슈스트에서 26만 부를 출간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영국에서는 출간 직후 온라인서점 아마존 아시아 전기물 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책은 통일전선부에서 근무할 때의 경험과 주민의 실상을 다룬다. 선전선동 문학을 쓰던 문필가가 실상에 눈뜬 후 새 삶을 선택하는 과정도 담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