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호

수많은 사연들이 사연댐에 잠겨있고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한실마을

  • 글·김동률|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empas.com 사진·권태균|사진작가 photocivic@naver.com

    입력2012-12-28 09: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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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사연들이 사연댐에 잠겨있고
    “그 때는 10원만 건네줘도 암말 못하고 떠났심더, 요즘과 달라 찍 소리 할 수가 있슴니꺼? 가난한 백성들 먹여 살리는 공업단지 만든다 카는데.”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속칭 한실마을은 사연 많은 오지 마을이다. 한때는 100호가 넘던 넉넉한 마을, 그러나 지금은 대여섯 가구 남짓한 작디작은 마을이다. 그게 다 ‘사연 많은’ 사연댐 때문이다.

    세월을 한참 거슬러 올라간다. 5·16군사정변을 통해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정권은 이른바 조국 근대화의 첫걸음으로 울산공업단지를 조성하기로 결정한다. 문제는 공업용수, 온갖 궁리 끝에 1962년 울주군 범서면 사연리 대곡천 일대 물줄기들을 모을 수 있는 거대한 인공 댐을 건설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래서 생긴 댐이 사연댐이다.

    마을로 통하는 좁디좁은 외길

    1962년부터 1965년 사이에 건설된 댐은 높이 46m, 길이 3000m에 달하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규모였다. 울산공업단지에 필요한 공업용수, 식수, 생활용수를 공급했다. 오늘날 울산이 누리는 풍요는 사연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한실마을 사람들의 얘기다. 그러나 댐 건설로 졸지에 터전을 잃게 된 100여 호 600여 명의 주민은 뿔뿔이 흩어졌다. 너른 들판 위에 우뚝 서 있던 대곡초등학교는 차오르는 물과 함께 아득한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고 기름진 문전옥답도 깊은 물속에 잠들었다. 그뿐인가, 대대손손 전해 오던 옛이야기도 검푸른 물속에서 숨을 거뒀다.

    한실마을은 이처럼 사연댐이 낳은 사생아 같은 곳이다. 댐 건설로 인해 마을로 통하는 길은 외길이다. 마을이 숨어 있는 댐 상류에 가려면 승용차 한 대가 아슬아슬하게, 아니 덜덜 떨며 운전해야 할 만큼 좁은 도로를 한참 달려야 한다. 과장이 아니다. 간이 작은 소심한 운전자는 운전하기 힘들 정도로 길이 좁다. 행여 마주 오는 차를 만나면 그날 볼 일은 끝났다고 보면 된다.



    그뿐인가. 언젠가 버스가 들어서다 꼼짝달싹 못하고 갇혀 크레인이 동원된 웃지 못 할 사건도 발생했다. 그래서 도로 입구에 ‘버스(소형 포함) 출입금지’라는 입간판까지 내걸었다. 도로가 얼마나 좁고 굴곡이 심한지 알게 해주는 이야기는 끝이 없다. 도로가 끝나 산골짜기에 다다르면 몽땅 꼽아봐야 열 가구가 안 되는 집들이 띄엄띄엄 흩어져 있다. 그나마 두 집은 울산 등 도회 사람들이 별장으로 지은 집이다. 나머지 집들은 남루하다 못해 궁색하기만 하다.

    수많은 사연들이 사연댐에 잠겨있고

    반구대 암각화 학그림.

    찾아간 날은 동짓달 추위로는 53년 만이라는 혹한의 날씨에 코가 얼얼한 날. 때마침 한실마을 골목 배미에 한 무리의 중노인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묘사(墓祀·시제(時祭)와 같은 뜻)를 지내고 오는 길이란다. 묘사 날이라…. 아득한 시절, 노란 콩고물을 묻힌 인절미를 먹을 수 있는 날, 그래서 묘사 지내러 간 아버지를 기다리는 그 봄날은 얼마나 길었던가. 뻐꾸기 소리가 잦아들고 땅거미가 질 무렵 돌아온 아버지가 신문지에 쌓인 묘사 떡과 과일들을 내놓는다. 아련한 유년의 기억이 묘사란 말과 함께 잠시 왔다가 사라져간다.

    월성 박씨 죽와공파의 묘사 날이란다. 두루마기 입은 할아버지가 객의 손을 덥석 잡고 끌고 들어간 재실은 냉방이다. 재실은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조상님 귀신이 사는 집, 그래서 구들장도 없고 전기조차 아예 들어와 있지 않다. 바깥은 영하 10도를 훌쩍 넘긴 강추위, 방바닥은 냉골로 엉덩이를 붙이기가 불가능하다. 쪼그리고 화장실 자세로 앉아 있노라니 묘사를 지낸 푸짐한 상과 함께 얼음 같은 정종을 종이컵에 가득 부어준다. 실로 수십 년 만에 맛보는 묘사 떡과 음복(飮福) 정종이다. 재실을 세운 월성 박씨 죽와공파 중시조에게 감사라도 표해야 할 것 같다.

    냉방 재실에서 정종 한잔

    수많은 사연들이 사연댐에 잠겨있고

    묘사를 지내고 재실 앞에 모인 월성박씨 집안 사람들.

    묘사는 이제 과거에만 존재하는, 지난 시대의 풍속이 되어가고 있다. 집안 어른들이 죄다 모여 조상의 묘소에서 지내는 제사에서 비롯됐지만 요즈음 시골에서조차 보기 힘들다. 그래서 시골에서 묘사를 지내면 민속학자들이 일부러 구경하러 올 정도하고 한다.

    간만에 재실에 모인 월성 박씨 죽와공파의 어른들도 모두 늙었다. 지금은 울산에, 대구에, 부산에 흩어져 살고 있지만 모두 옛날 좋았던 시절 한실마을에서 살았다. 모두 대곡초등학교 동창생이었다.

    “저기 보이는 저 튀어 나온 낭떠러지 아래에 우리 학교가 잠겨 있슴니더. 마 여기 올 때마다 옛생각이 사무치지만 그래도 울산공단이 성공했다 아임니꺼. 많은 사람들 묵여 살리는 걸 보면 그래도 뿌듯한 자부심도 느낌니더.”

    월성 박씨 죽와공파의 묘사를 모신 박두원 옹(86)의 목소리에는 슬픔과 체념이 교차한다. 중시조들이 임진왜란을 피해 이 골짜기로 숨어들었고 그때 이후 이곳에 똬리를 틀어 집성촌을 이루어왔다. 그러나 사연댐 건설로 이제는 재실 하나가 달랑 남아 그 옛날의 융성했던 문중의 역사를 증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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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가 가마솥에 물을 데우고 있다. 처마 밑 곶감.

    수몰된 대곡초 동창생들

    한실마을에 가려면 덤으로 보게 되는 풍경들이 있다. 차가운 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형형색색 등산복을 차려 입은 탐방객들이 보인다. 저 유명한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 때문이다. 반구란 거북이가 반쯤 엎드린 모습이라는 의미인데 현존하는 세계 최초의 포경 유적이라고 한다. 암각화는 포경 장면은 물론 육지의 사냥 모습까지 사실적으로 묘사해 놓았다. 원시 고대시대의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 그 가치가 높다고 문화해설사가 한껏 목청을 높인다.

    암각화를 볼 수 있는 시기는 겨울로 한정돼 있다. 또 설사 본다고 해도 멀리서 어렴풋이 짐작으로만 볼 수 있을 따름이다. 사연댐으로 인해 연중 대부분은 물속에 잠겨 있고 갈수기인 겨울철에만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겨울에도 십여 m 떨어진 물 건너편에 있는 평평한 돌 벽면만 볼 따름이다. 댐으로 생긴 물로 더 가까이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많은 탐방객은 왔다가 실망만 하고 돌아간다. 그나마 울산시가 만든 모형을 보고 아쉬움을 달랠 뿐이다.

    절대 오지인 한실마을을 찾는 이의 눈길을 끄는 것은 또 있다.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반고서원 유허비(遺墟碑)다. 한실마을로 들어서는 입구, 기암절벽을 마주한 댐 상류에 있다. 유허비란 한 인물의 옛 자취를 밝혀 후세에 알리고자 세우는 비석으로, 이 비는 고려 말 충신 포은 정몽주 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있다. 포은은 고려 우왕 2년(1376) 성균관 대사성의 벼슬에 있으면서 명나라를 배척하고 원나라와 친하게 지내려는 이른바 친원배명(親元排明) 실리 외교정책에 반대하다가 이 곳에서 1년 남짓 귀양살이를 했다.

    장작불과 산골의 적요함

    수많은 사연들이 사연댐에 잠겨있고

    반구서원.

    한실마을은 춥다. 댐 건설로 생긴 이상기후라고 한다. 볼펜 잉크가 얼어 글씨가 써내려가지질 않는다. 실제 얼마 되지 않은 다랭이논 농사의 작황도 좋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에서 만난 또 다른 박모 할아버지(75)는 외지인에게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낸다. 문전옥답 고향 마을이 댐으로 물에 잠긴 데에 대해 거친 원망을 쏟아낸다. 그러나 필자와 같은 외지인은 토박이 할아버지의 오래된 분노를 잠재울 그 아무것도 없다.

    고향을 잃은 할아버지의 지청구를 귓전으로 들으며 자그마한 체구의 할머니는 연신 가마솥을 행주로 훔친다. 오랜만에 보는 원단 무쇠 가마솥이다. 문득 가마솥을 보니 온전히 잊혀졌던 유년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소여물을 헤집고 차가운 물을 담은 대야를 쑤셔 넣어 데운 물로 세수를 하던 그 어린 날은 얼마나 남루했던가. 그러나 그런 남루함이 오히려 그리운 세상이 되었다.

    가마솥 아궁이에서 장작불은 이글거리고 산골짜기 마을은 외롭고 적요하다. 한나절을 보냈건만 찾아오는 이도 나가는 이도 없다. 사람의 기척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해는 아직 중천이지만 강을 끼고 있는 대숲엔 이미 짙은 어둠이 들었다. 그 거대한 대나무 숲 옆으로 거대한 인공호수가 동짓달 추위에 웅크리고 있다. 대숲은 영하의 바람을 이기지 못해 윙윙 휘파람만 불고 있다. 그 깊은 호수 바닥에 한실마을의 역사가 잠들어 있고 산골짝 겨울은 깊을 대로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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