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말이다. 전쟁에 참전한 외동아들이 전사했다 치자. 불행히도 아들이 미혼이라면, 대(代)를 잇기 위해 그 아들의 고환에서 정자를 채취해 동결보존(냉동)하는 걸 결심할 수 있을까.
최근 이스라엘 부모들 사이에 사고나 전쟁터에서 죽은 자식의 정자를 채취해 대리모를 구해서라도 자손을 이으려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팔레스타인 쪽도 만만치 않다. 몇 년 전 팔레스타인 난임의사가 이스라엘 교도소에 수감된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의 정액을 채취해 그들의 아내에게 체외수정시켜 5명을 임신시켰다는 외신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인과 아랍인들의 자식에 대한 욕심은 전쟁만큼 치열한 듯하다.
이스라엘 출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3.03명)로 매년 총 인구의 2%(17만6000명)를 차지하는 신생아가 태어난다. 국방 의무 2년을 위해 입대까지 하는 이스라엘 여성들을 떠올리면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846만여 명인 현재 이스라엘 인구가 2035년에는 1140만 명으로 늘어나리라는 전망이 나왔다.
이스라엘 출산율이 어떻게 이토록 높을 수 있을까. 출산 정책이 남다른가? 그렇지도 않다. 이스라엘 정부는 유아 한 명당 매달 평균 200세겔(6만1000원)을 지급한다. 출산지원금도 1500세겔(45만8000원)이 전부다. 그런데 난임학회에 발표되는 이스라엘 의사들의 보고서에는 ‘출산·양육 지원금이 줄수록 출산율은 오히려 상승 곡선’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이스라엘이 다산(多産) 국가가 된 근원은 민족의 우월성이나 종교 같은 정신세계에 있는지 모른다.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로부터 비롯된 유대인(둘째 아들 이삭)과 이슬람인(첫째 아들 이스마엘)들은 지금도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명한 성서를 굳건히 믿으며 자손 낳는 일은 선행이며, 애국이자 민족 번영을 위한 기본 의무라고 말한다. 각종 출산장려 정책을 내놓아도 도무지 출산율이 오르지 않는 우리로서는 새겨들을 말이 아닐 수 없다.
이참에 세계 각국의 출산장려 정책을 짚어보자. 프랑스의 경우 아이를 낳고 싶게 만드는 정책에 초점을 뒀다. 비혼가정의 출산육아교육도 인정을 해준 것이다. 동거 커플이 늘고 있는 점을 감안해 결혼과 관련된 각종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허물고 남녀가 합의한 동거계약서만으로도 난임시술비와 출산 후 육아비 지원(3세까지 월 1000유로)을 보장했다. 교육비와 의료비는 대부분 무료다. 독신녀들에게 정자은행의 문도 활짝 열어줬다. 난임치료 및 시술비 지원도 10회까지 전액 무료다. 이를 통해 프랑스는 5가구당 1가구는 아이가 3명 이상이 되었다. 물론 여기엔 동거부부에 대한 불쾌한 시선이 없는 프랑스인만의 사랑 절대주의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정부의 경제적 지원은 각 국가의 출산장려 정책에서 빠지지 않는 부분 중 하나다. 실제 출산장려 복지비용을 가장 많이 지출하는 북유럽 국가의 출산율이 다소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 한계도 분명하다. 싱가포르는 7400달러(약 840만 원)의 장려금 지급에 더해 출산휴가를 대폭 늘려주고 자녀 있는 부부에게 공공임대주택 우선 분양 등 각종 우대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효과를 못 보고 있다. 2016년 기준 싱가포르의 인구 증가율은 0.1%를 기록해 14년 만에 최저치를 경신했다.
난임의사로 23년간 수십만 명을 만나면서 느낀 게 있다면 종족 보존의 욕망은 돈과 환경을 넘어서는 정신세계에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경우 보릿고개를 겨우 넘긴 1970년대에 평균 출산율이 4.53명이었다. 과연 그들이 단칸방에 살았고 피임할 줄 모르는 무지한 부부였기에 어쩔 수 없이 줄줄이 자식을 낳았을까? 아닐 것이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경험한 세대(부모)로부터 ‘그래도 피붙이가 있어야 외롭지 않고 서로 의지하며 고통을 견뎌낸다’는 경험담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기 때문이리라.
유대인도 마찬가지였을 게다. 1948년 건국한 이스라엘은 2000년 만에 되찾은 가나안땅(팔레스타인)에 돌아와 ‘자자손손 생육하고 번성하기’ 위해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대인들을 모았다. 1950년에 귀향법을 제정하고 이민부를 둬 다산(多産) 정책과 함께 인구 늘리기에 총력을 다했다. 단순히 정책보다는 유대인만의 우월한 의식을 불어넣는 데 주력했다. 오랜 고난과 가시밭길의 역사로 인한 당연한 귀결이었을 것이다.
한국처럼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인구 정책도 없었다. 낳겠다는 아이를 못 낳도록 한 게 바로 정부였다. 1960년대에는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많이 낳아 고생 말고 적게 낳아 잘 키우자’였다. 1970년대에는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로 바뀌었다. 1980년대에는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이더니 1990년대에는 ‘사랑 모아 하나 낳고, 정성 모아 잘 키우자’로 바뀌었다. 어쩌면 저출산 시대를 정부가 강제적으로 부추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정부가 결자해지(結者解之)해야 한다. 이제 와서 ‘가가호호 아이 둘 셋, 하하호호 희망 한국’이라는 표어로 노래를 불러본들 국민은 콧방귀도 안 뀐다. 우리 사회에 언제부터인가 역사도 민족도 국가도 없는 개인 우선 행복주의가 만연해 고착화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의 행복이 아(我)가 아니라 타(他)에 영향을 받는다는 데 있다. 경제력이든 직업이든 남과 비교하고 경쟁하다보니 스트레스 속에 살게 되었다. 민족이니 국가란 게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가 돼버린 것이다.
최근 저출산 해결을 위해 정부가 발 벗고 나섰다. 10월부터 난임시술과 치료에 건강보험이 적용돼 여성은 44세까지, 인공수정 3회와 시험관아기 시술 7회까지 시술비용의 30%만 본인이 부담하면 된다. 나이·횟수 제한, 기존 지원 횟수 연계 등 각종 제한 장치를 걸어놓긴 했지만 어찌 되었거나 보험이 적용되는 건 기쁜 일이다. 이스라엘처럼 난임부부에게 둘째아이까지 횟수 제한 등을 두지 않고 난임시술비 보험 혜택을 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생명유지와 종족보존은 본능의 영역이다. 현실에 본능이 눌려선 안 된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책과 경제적 지원만큼이나 정신세계도 중요하다. 한국 국민으로 태어난 것에, 내 어머니와 아버지의 아들·딸임에 자긍심을 느껴야 미래를 꿈꾸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중장년층이 젊은이들에게 국가와 한민족의 우월감, 그리고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신적 일깨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바로 예비 엄마 아빠들이며 한국의 미래이니까 말이다.
이성구
● 1961년 대구 출생
● 서울대 의대 졸업
●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전공의
● 대구마리아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