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호

“나의 탈북은 수령문학 탈출해 현실문학 뛰어든 것”

세계가 주목한 탈북작가 장진성

  • 송홍근 기자│carrot@donga.com

    입력2014-07-22 13: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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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유럽서 26만 부 발행
    • 美 CNN·英 BBC 출연
    • 통일전선부서 시인으로 일해
    • “北 주민 ‘감성 독재’의 노예”
    “나의 탈북은 수령문학 탈출해 현실문학 뛰어든 것”
    탈북 작가 장진성(43) 씨가 2월 7일 기자에게 ‘물리적 독재’와 ‘감성 독재’를 구분해 설명하면서 “북한이 보통의 독재국가와 달리 감성 독재로 주민을 억압하는 현실을 알리는 에세이를 썼다”고 말했다. “세계적 출판사 랜덤하우스와 계약했다”면서 “미국, 유럽의 유력 언론과 인터뷰도 약속돼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 독재권력의 중추는 조직과 선전”이라고 그는 말했다. “노동당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가 각각 조직과 사상 관리의 핵심”이라면서 “조직지도부가 물리적 독재를 뒷받침한다면 선전선동부는 감성 독재의 첨병”이라고 덧붙였다. 통일전선부에서 일하던 장씨는 2004년 탈북했다. 통일전선부는 북한의 대남공작기구다.

    랜덤하우스에서 책을 낸다는 말을 듣고 처음엔 의아했다. 서구인이 북한 출신 한국 작가가 쓴 책에 관심이 있을까. 누가 그 책을 사볼까. 오랫동안 알고 지낸 터라 필력의 출중함은 알았으나 책이 주목받을 것 같지는 않았다. 책 제목은 ‘경애하는 지도자에게(Dear Leader)’라고 했다. 그가 밝힌 계약금과 인쇄부수는 파격이었다.

    “즉각 고전(classic)이 됐다”

    5월 9일 CNN에 출연한 장씨를 TV로 보면서 2월 7일 그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책을 출간하면 인터뷰하기로 약속한 것을 까맣게 잊은 것. CNN 간판 앵커 크리스티안 아만푸어가 진행하는 뉴스쇼에 초대받은 한국인은 가수 싸이에 이어 그가 두 번째다. ‘경애하는 지도자에게’가 시쳇말로 대박이 난 것이다. 다만, 시청률은 싸이 때보다 낮았다.



    5월, 6월엔 그를 만나기 어려웠다. 그가 주로 해외에 체류해서다.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에서 인터뷰, 간담회, 북 콘서트, 의회 증언, 강연 등으로 바빴다.

    책 출간 후 미국 NBC와 CNN, 영국 BBC에 출연했다. 더타임스, 파이낸셜타임스, 가디언, USA투데이, 이코노미스트 등 서구 언론이 그의 책과 삶을 앞다퉈 다뤘다.

    더타임스는 일요판 매거진 표지인물로 그를 소개하면서 “독자를 지구상 가장 무시무시한 곳으로 데려간다. 역사적 문헌으로도 아주 중요한 책이며, 출간 즉시 고전(classic)이 됐다고 할 만하다”고 썼다.

    그는 앞으로도 한동안 바쁠 것 같다. ‘경애하는 지도자에게’ 한국어판을 7월 말 출간할 예정이다. 9월에는 미국과 캐나다로 북 투어(Book Tour)를 떠난다. 7월 8일 서울 강북의 뉴포커스(북한 전문 인터넷 매체)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 외국에서 더 유명한 것 같다. 책에 대한 반응이 어땠나.

    “서구에서 내 책에 이렇듯 주목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랜덤하우스도 이 정도일지는 몰랐다더라. 책 덕분에 해외 언론에서 칼럼을 써달라는 요청도 많이 온다. 북한 인권에 관심 가져준 게 고마울 뿐이다. 영국 권위지 더타임스가 나와 나의 책을 다루면서 북한을 ‘나치’라고 표현했다. 유럽 사람이 국가 시스템과 관련해 가장 혐오하는 낱말이 나치다. ‘경애하는 지도자에게’를 읽은 이들은 어떻게 나치 같은 정권이 21세기에도 살아남아 있을 수 있느냐고 안타까워했다. 서구인이 북한의 잔악한 실상을 문학으로 접하고 충격 받은 것 같다. 북한 정권이 유럽과의 관계를 개선하려 노력한다. 그 같은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것도 같다.

    덧붙여 말하고 싶은 게 있다. 유럽에서 놀란 것은 인권에 대한 관심이다. 신문 1면에 가나의 인권 문제, 리비아의 현황 같은 기사가 실린다. 언론이 인권, 평화, 자유 같은 보편적 가치에 주목한다. 1면에서 외국의 인권 문제를 다루는 한국 언론을 본 적이 없다. 정치인이 비생산적으로 다투는 얘기나 누가 돈 받았느니 하는, 궁극의 삶, 나아가야 할 세상과는 무관한 주제가 주로 다뤄진다. 한국이 아직 후진적이어서 그런 것 같다. 한국 언론과 서구 언론을 비교하면서 선진 사회가 되려면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보편적 가치에 무게중심을 두는 게 선진국이다. 한국 언론은 같은 민족인 북한 인권에 대해서도 무관심하다. 아직 선진 사회가 되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경애하는 지도자에게’는 영국 랜덤하우스에서 10만 부, 미국 사이먼앤슈스트에서 26만 부를 출간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영국에서는 출간 직후 온라인서점 아마존 아시아 전기물 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책은 통일전선부에서 근무할 때의 경험과 주민의 실상을 다룬다. 선전선동 문학을 쓰던 문필가가 실상에 눈뜬 후 새 삶을 선택하는 과정도 담겼다.

    “나의 탈북은 수령문학 탈출해 현실문학 뛰어든 것”


    美 11개 출판사가 판권 경쟁

    ▼ 랜덤하우스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내 딸을 100원에 팝니다’라는 제목의 시집을 2008년 한국에서 출간했다. 이 시집 덕분에 2012년 런던 올림픽 때 더 포이트리 파르나소스 축제에 참가했다. 시인 올림픽 비슷한 행사다. 런던 올림픽에 참가한 204개 나라에서 각 1명씩 204명을 초청했다. 행사 직전 영국 옥스퍼드대가 렉스 워너 문학상 수상자로 나를 선정했다. 에이전트들이 축제에 찾아와 계약을 하자고 제안했다. ‘경애하는 지도자에게’는 당시 맺은 계약의 산물이다. 잘 팔릴 책을 고르는 능력으로 먹고사는 에이전트들이 독자의 주목을 받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랜덤하우스는 영국판 출간 직후 프랑스, 폴란드, 체코, 네덜란드, 스웨덴, 아랍에미리트연합, 대만 출판사와 판권 계약을 맺었다. 9월 미국판을 출간하는 사이먼앤슈스트는 북미에서 판권 경매에 뛰어든 11곳 출판사 중 하나다.”

    사이먼앤슈스트는 힐러리 클린턴 회고록 ‘어려운 선택들(Hard Choices)’을 출간한 곳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10만 달러 수준에서 논의하던 ‘경애하는 지도자에게’의 계약금은 ‘꽤 큰(great) 6자리 숫자(백만 달러 단위)’로 치솟았다. 랜덤하우스와 계약금, 인세는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그는 말했다.

    가난한 나라의 부유한 왕

    그는 김일성종합대를 졸업한 후 통일전선부에서 근무했다. 2004년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후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일했다. 2010년 12월 이 연구소에서 퇴직했다. 이듬해 12월 5080만 원을 투자해 북한 전문 인터넷 매체 뉴포커스를 창간했다.

    그와 신동아의 인연은 깊다. 국가안보전략연구소에서 일할 때 신동아에 다수의 글을 실었다. ‘프룬제 아카데미아 사건과 6군단 사건’(2006년 3월호) ‘親김일성 세력 제거작업 심화조 사건의 진상’(2005년 10월호), ‘김일성 사망 직전 父子암투 120시간’(2005년 8월호) 제하 기사의 익명 필자가 그다. 북한학자들이 쓰는 학술논문이 지금껏 이들 기사를 인용한다.

    ▼ 북한의 대남 공작기구에서 일했다. 정확하게는 시인(詩人), 아니 선전문필가로 일했다고 해야겠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나.

    “통일전선부에서 일할 때 신동아를 열심히 읽었다. 공작부서 관료는 한국 월간지를 연구해야 했다. 열두 권을 읽으면 한 해 한국에서 벌어진 일을 이해할 수 있었다. 김일성, 김정일을 비판하는 대목은 공작부서 일꾼도 읽지 못하게 먹칠을 해놓는다. 창가에서 해당 페이지를 햇볕에 비추면 먹칠로 가려놓은 부분도 읽을 수 있다. 호기심이 동해 먹칠한 부분을 더 꼼꼼히 읽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느냐면, 대남 공작이 아니라 북한 주민을 세뇌하는 일을 했다. 김일성 부자의 감성 독재를 뒷받침하는 시를 썼다. 통일전선부에서 내가 사용한 필명이 ‘김경민’이다. 북한 주민에게 김경민은 ‘남조선 시인’이다. 김일성, 김정일을 찬양하는 한국의 시를 가짜로 만들어낸 것이다. 북한은 물리적 독재에 의해서만 유지되는 곳이 아니다. 감성 독재가 더욱 무섭다. 정서나 사고마저 수령유일주의로 유인한다. 나 역시 통일전선부에서 일하면서 다른 세상을 보지 못했다면 감성 독재의 노예가 됐을 것이다.”

    ▼ 노동신문 1999년 5월 22일자에 실린 서사시(敍事詩) ‘영장의 총대 위에 봄이 있다’의 필자가 당신이다. 서사시는 발흥기·재건기의 민족이나 국가의 웅대한 정신을 신(神)이나 영웅을 중심으로 읊은 시다. ‘영장의 총대 위에 봄이 있다’는 어떤 내용이었나.

    “김정일이 1998년 말 ‘남조선까지 아우르는 선군정치와 관련한 대남 심리전을 전개하라’고 지시했다. 노동당 각 부서에서 서사시 경쟁이 붙었다. 북한에서 내로라하는 시인으로 선전선동부 조선작가동맹 김만영 오영재, 인민무력부 조선인민군창작사 신병강, 만경대학생소년궁전 부총장 명준섭이 있었다. ‘남조선 문학’ 부서는 통일전선부에만 있었다. 내가 일한 5국 19부 101연락소가 시 문학을 하는 곳이다. 101연락소에 시인이 8명 있었는데, 우리도 훌륭한 서사시를 써내야 했다. 김정일의 선군정치를 남한 시인의 위치에서 어떻게 묘사해야 할지 오랫동안 고민했다. 한국 잡지를 읽으면서 아이디어를 낸 게 광주 망월동 5·18 묘역과 평양 신미리 애국열사릉을 포개는 것이었다. 누구의 총에 사람이 죽었나, 민족의 총이 누구의 손에 있어야 하는지 시에 담았다.”

    ▼ 한국에서는 내란 음모 사건으로 재판받는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이석기 씨와 생각이 같은 이나 그 시에 감동받았을 것 같다.

    “북한에서는 달랐다. 무엇보다도 김정일이 마음에 들어 했다. ‘영장의 총대 위에 봄이 있다’ 덕분에 김정일을 만날 수 있었다. 7명이 함께 ‘경애하는 지도자’를 만났다. 알코올을 넣었는지, 어떻게 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불이 붙은 아이스크림이 후식으로 나왔다. 인민은 굶는데 먹는 것 갖고도 별의별 짓을 다한 것이다. 가장 가난한 나라에 가장 부유한 왕이 사는 모순이라고나 할까.”

    “나의 탈북은 수령문학 탈출해 현실문학 뛰어든 것”


    ▼ 북한에서 말하는 주체사실주의 문학이라는 것은 도대체 뭔가.

    “북한에서는 현실문학이 존재하지 않는다. 수령문학이 전부다. 주인공은 김일성, 김정일 두 사람뿐이다. 3대 세습 이후엔 김정은도 포함됐을 것이다. 개인 우상화, 지령창작, 집체장착이 북한 문학의 3대 요체다. 예컨대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는 김일성이 쓰거나 구술한 것이 아니라 4·15문학창작단에서 집필한 것이다. 나의 탈북은 수령문학에서 탈출해 현실문학의 바다에 뛰어든 것이다. 더타임스가 ‘경애하는 지도자에게’를 평하면서 클래식(classic)이라는 단어를 썼다. 그 낱말을 보고 울컥했다. 인류가 저주해야 할 정권을 다룬 고전으로 오랫동안 읽힐 책이라고 논평한 것 아닌가. 사람은 문학을 통해 감성을 배운다. 북한 문학에는 두 개의 감정밖에 없다. 수령에 대한 충성과 적에 대한 증오가 그것이다. ‘경애하는 지도자에게’는 전체주의 언어를 벗어나 현실의 언어를 들고 책상 앞에 앉아 쓴 글이다. 이데올로기를 벗어던진 사실주의 문학은 보편적이다.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강연할 때 500석이 가득 찼다. 한 독자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도 운 적이 없다. 그런데 당신은 나를 울린 사람 중 한 명이다.’ 또 다른 독자는 ‘미안하다. 나는 지금껏 북한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했다’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이 책이 나의 인생을 바꿨다. 내가 뭘 해야 하는지 가르쳐달라’는 분도 있었다.”

    “北 인권 외면하는 南 현실 안타까워”

    ▼ ‘경애하는 지도자’의 첫 독자인 번역자의 반응은 어땠나.

    “울었다고 했다. 왜 이제껏 어떤 한국인도 북한 현실을 문학 작품으로 쓰지 않았느냐고 묻더라. 한국의 내로라하는 작가들은 북한 인권에 몰지각하다. 이른바 진보를 자처하는 이가 더욱 그렇다. 북한의 인권 상황을 수작(秀作)의 소설로 써내면 노벨상도 받을 것이다. 미국 작가 애덤 존스가 북한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고아원 원장의 아들’로 2013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주인공인 고아원 원장의 아들 ‘박준도’는 인민 배우와 사랑에 빠지면서 자유를 열망하는 캐릭터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미국 NBC 토크쇼를 녹화했는데 존스가 패널로 나왔다. 녹화를 시작하기 전 내가 농담으로 말했다. ‘이 자리에는 두 명의 북한인이 있다. 하나는 나다. 또 다른 하나는 ‘박준도’다. 그런데 박준도는 미국인처럼 생겼다.’ 한국 작가가 북한을 소재로 한 소설을 세계에 내놓아 상을 받으면 좋겠다. 북한의 현실만큼 세계인이 주목할 스토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 다음 작품도 영어로 발표할 것인가.

    “영어로 발표해야 더 많은 독자가 읽을 수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쓰려고 한다. 여성의 왜곡된 성을 다룰 것이다. 성은 인간의 본능과 관련한 것이다. 북한의 독재는 성과 사랑도 강요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본능마저 왜곡하는 체제에서 어떻게 여성으로서의 삶을 버텨내는지와 관련한 이야기를 쓸 것이다. 북한 여성의 삶을 해원(원통한 마음을 풂)하는 작품을 남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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