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호

배창호가 떠나려 한 그 바다가 보고 싶다

남애항과 ‘고래사냥’

  • 글 · 오동진 | 영화평론가 사진 · 김성룡 | 포토그래퍼

    입력2015-06-24 15: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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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래사냥’이 만들어진 1984년, 대학가에선 광주민중항쟁의 여파가 이어지고 있었다. 녹화사업이니 학원안정법이니 해서 시위가 그치지 않던 혹독한 군사독재 시절. 이 영화엔 일탈과 방황이라는 화두를 통해 우회적으로 시대를 비판하고 풍자하려는 배창호의 의지가 담겼다.
    배창호가 떠나려 한 그 바다가 보고 싶다
    세상은 참 우연의 연속이다. 이 연재를 위해 남애항에 갔다 온 것은 이미 지난달이다. 배창호 감독이 ‘고래사냥’을 찍은 곳이고, 사람들이 몰리지 않는 기간에 가면 호젓한 느낌이 좋았던 기억이 남은 곳이다. 그런데 그곳, 남애항을 다녀온 직후 배창호 감독에게 사고가 났다. 6월 1일 아침 6시 즈음이었고, 강남의 무슨 역인가 아무튼 지하철로에서였다. 영화계는 충격에 빠졌다.

    지난 몇 년 사이 우리는 많은 이를 잃었다. ‘겨울 나그네’의 곽지균 감독과 드라마 ‘모래시계’의 김종학 감독, 그리고 ‘301, 302’의 박철수 감독. 곽 감독과 김 감독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박 감독은 불의의 자동차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많은 사람은 이들의 죽음을 개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구조적인 쪽으로 생각한다. 크게는 이 사회가, 좁게는 영화계나 쇼 비즈니스계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것이다. 배창호 감독에게 사고가 났다는 소식은 그래서, 영화계를 패닉으로 몰고 가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도무지 원고가 한 줄도 나아가지 못했다. 병원으로 그를 찾아 가서 만나고 온 다음에는 더더욱 그랬다. 배 감독은 상태가 좋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그의 영화에 대해서 쓰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결국 배창호를 대중의 품으로 다시 돌려보내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러려면 그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배창호를 잊힌 감독으로 방치해선 안 될 일이다. 그는 여전히 뛰어난 ‘작가형 감독’이며 앞으로 훨씬 오래 영화를 해야 할 인물이다.

    배창호가 떠나려 한 그 바다가 보고 싶다

    군사독재 시절 청춘들의 일탈과 방황을 그린 영화 ‘고래사냥’

    초원의 빛, 꽃의 영광

    배창호가 떠나려 한 그 바다가 보고 싶다

    배창호 영화의 특징은 ‘예술적 순결성’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그와 나는 감독과 제작자로 만났다. 영화평론가로서의 삶 말고도 나는 종종 저예산 영화를 만드는 제작자로 활동했는데, 2009년 뜨겁던 한여름 복판에 그와 나는 ‘여행’이라는 148분짜리 영화를 만들었다. 수작(秀作)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극장 배급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일부 영화제나 기획전에서 소개됐을 뿐 나중에 TV를 통해서도 대대적으로 방영되지 못했다. 어쩌면 그의 유작이 됐을지도 모를 영화 ‘여행’은 아직도 그냥 묻힌 작품 취급을 받고 있다.



    배창호 감독은 윌리엄 워즈워드의 시 ‘초원의 빛’을 유별나게 좋아한다. 이 시는 영화 ‘여행’에서도 어김없이 사용됐는데, 그 시구를 떠올리면 이번 사고와 연결돼 마음속 깊은 곳을 떨리게 한다. 왜 이 사람이 이 시를 좋아했고 유창하게 외우고 다녔는지, 그 속내를 짐작하게 만든다.

    한때는 그리도 찬란한 빛이었건만 / 이제는 속절없이 사라진 /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 우리는 슬퍼하지 않으리 / 오히려 강한 힘으로 살아남으리 / 존재의 영원함을 / 티 없는 가슴으로 믿으리 / 삶의 고통을 사색으로 어루만지고 / 죽음마저 꿰뚫는 / 명철한 믿음이라는 세월의 선물로

    순수 문예주의의 복원

    ‘여행’은 제주도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여행 3부작 옴니버스 영화다. 사진학과 졸업반의 두 남녀 대학생이 졸업작품전을 위해 제주도에 여행을 왔고(1편), 제주도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여학생은 자신을 버리고 집을 나간 엄마를 찾아 육지로 올라가려고 하지만 결국 자신이 사는 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엄마를 찾게 된다는 것이며(2편), 남편과 아이의 뒤치다꺼리로 일상을 허비(했다고 생각)해온 한 여인이 제주도에서 이틀간의 꿈같은 휴식을 보낸다는 이야기(3편)다.

    세 편의 에피소드 모두 상업영화권이 구사하는 이런저런 논리와는 멀어도 한참 먼 내용이다. 특히 2편의 잔상이 기억에 많이 남는데, 엄마를 찾아 나서는 아이의 이런 저런 과정에서 감독은 오히려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자신 앞에서 쩔쩔매는 엄마에게 아이는 울고불고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과거의 문제로 싸우지 않는다. 엄마는 결국 마음속 파도를 막아내지 못하지만, 아이는 요즘 아이들 말마따나 ‘쿨하게’ 엄마를 달랜다.

    배창호 영화의 특징은 일종의 예술적 순혈주의, 더 나아가 종교성마저 느껴지는 순결성에서 찾을 수 있다. 단순한 듯 보이는 2편의 에피소드는 그의 영화가 진실로 퓨어리즘, 곧 순수의 결정체를 위해 죽자 사자 하며 내달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사람들은 대개 이 2편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워즈워드의 시는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가정을 ‘잠깐 버리고’ 나온 중년의 여인이 잊고 살던 시성(詩性)을 회복하는 이야기 속에 등장한다. 이 주부(배창호 감독의 부인으로 연극배우 출신인 김유미 씨가 맡았다)는 제주도 호텔의 벤치에 홀로 앉아 상념에 빠진다.

    그녀는 잘 안다. 지나간 세월은 잡을 수 없고 후회한들 소용없다는 것을. 그녀는 자신이 곧 아이와 남편 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역시 잘 안다. 삶은 지속돼야 하기 때문이다. 워즈워드의 ‘초원의 빛’이야말로 바로 그 점을 얘기하는 것이다. 워즈워드의 시 전문이 극중 인물의 내레이션으로 읽혀지는 대목은 배창호의 영화가 마치 순수 문예주의의 복원을 꿈꾸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역설적으로 신선한 경험이 된다.

    배창호의 ‘사고’를 꿈에도 예상하지 못한 채 남애항으로 가던 길목은 뜨거운 태양이 본격적으로 내리꽂히기 직전인 요즘 같은 계절에는 진실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이 길은 아예 1박2일의 여행 코스를 잡는 것이 더 좋다. 후다닥 눈만 만족시키고 돌아올 것이 아니라 입과 혀까지 달래주기에 딱 좋은 여행길이다. 들를 곳은 동해 연안 도시들이다. 자연산 회가 넘쳐나는 곳이라는 얘기다. 멍게 맛조차 여느 도시에서 먹는 맛과 확연히 다르다. 그러니 시간을 조금 여유 있게 잡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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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대형 화재로 소실됐다 최근 복원된 낙산사.

    나무관세음보살

    이른 아침 7시쯤 서울을 출발해 맨 처음 간 곳은 낙산사다. 그리고 ‘고래사냥’의 촬영지인 남애항에서 가볍게 회를 먹고 하조대에서 낙조를 보기로 했다. 당일로도 다녀올 수 있는 코스지만 동해의 풍광이 쉽게 놔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낙산사는 알려진 대로 몇 해 전에야 복원 공사가 완성된 터였다. 2005년 양양군 일대에 대형 화재가 발생했고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됐다. 낙산사가 유명한 것은, 특이하게도 해변에 조성된 절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세워졌다. 신라 의상대사 시절에 지어진 절이다. 서기 600년대라는 얘기다. 상상이 가는가. 당시 사람들이 무슨 수로 이 절벽에 이런 절을 지었을까.

    절에 얽힌 이야기도 신화를 듣는 듯 신비롭고 미스터리하기까지 하다.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의 계시를 받고 지은 절이라고 하는데, 의상이 하루는 바닷가 동굴에 관음보살이 머물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친견하고자 이곳을 찾았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관음보살로부터 수정 염주를 받은 후 이를 안치한 곳이 낙산사라는 것이다. 그가 보살을 직접 봤다는 얘기다.

    의상대(義湘臺)는 의상대사가 당시 면벽 수도한 절벽 위에 세운 정자다. 홍련암(紅蓮庵)은 관음보살이 바다에서 붉은 연꽃을 타고 솟아오른 자리 옆에 지은 암자다. ‘믿거나 말거나’라고 하겠지만, 낙산사에 가면 이 두 곳을 꼭 찾아가 보게 된다. 관음보살은 현실 세계엔 없는 존재일지 몰라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있는 존재일 것이다. “나무관세음보살…”을 읊조릴 때의 그 관음보살이니까.

    배창호가 떠나려 한 그 바다가 보고 싶다

    ‘고래사냥’의 촬영지 남애항.



    역설의 정치학, 변방의 정치학

    남애항 부둣가는 지금 공사가 한창이다. 이런저런 편의시설을 새로 만들고, 부두 정비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한쪽에 즐비하게 늘어선 횟집도 아직 본격적인 휴가철이 아니어선지 다소 한가해 보였다. 정박한 배들이 뱃머리를 살짝살짝 흔들어대며 망중한을 즐기는 듯한 표정이 재밌다. 나중에 하조대에 가서 더 탄성을 지르기는 했지만 남애항에도 그에 준할 만한 전망대가 제대로 갖춰져 있다.

    하조대나 남애항이나 전망대 바닥은 대형 통유리로 돼 있어 바닥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미국 애리조나 주 그랜드캐니언을 미니급으로 살짝 베껴온 것 같은데, 그런대로 스릴이 있다. 발밑 유리 저 아래로 한가한 바위들과 그것들의 궁둥이를 철썩철썩 후려치는 파도가 보인다. 방파제 테트라포드도 누군가가 툭툭 던져놓은 듯하지만, 그 나름 질서를 지니고 해변 마을을 지킨다. 저 멀리 등대가 보이는데, 거기에 이르는 길이 오후의 느슨한 햇빛을 받고 게으름 피우듯 연결된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배창호 감독이 ‘고래사냥’을 찍은 때는 남애항 풍광이 이렇지 않았을 것이다. 전망대는 언감생심이고, 등대로 이어지는 길도 지금처럼 신작로 같은 느낌은 아니었을 거다. 횟집들은 남루하고 동해의 물길도 차갑고 음흉했을 것이다.

    시대가 그랬다. ‘고래사냥’이 만들어진 때는 1984년이다. 대학가는 ‘광주사태’라 불리던, 광주민중항쟁의 여파가 계속되고 있었다. 녹화사업이니 학원안정법이니 뭐니 해서 연일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배창호는 그 혹독한 군사독재 시절 일탈과 방황이라는 화두를 통해 젊은이들로 하여금 세상과 맞서게 하려 했다. 당시 그의 영화엔 영국과 미국이 1960~1970년대에 유행시킨 앵그리 영맨, 비트 제너레이션의 문화적 트렌드가 깔려 있다. 이른바 ‘배창호 식’으로, 그러니까 우회적으로 그 시대를 비판하고 풍자하려던 그의 의지가 담겨 있다.

    모두들 기억하는 ‘고래사냥’의 줄거리를 복기하면 이렇다. 포주들에게 착취당하던 벙어리 창녀 춘자(이미숙)가 있고, 이 여자를 구하려고 아무 상관없는 병태(김수철)가 끼어들게 되는데, 그를 돕는 사람이 자칭 거리의 도사라 불리는 거지로, 병태의 멘토가 되는 민우(안성기)다. 어쩌면 아무런 현실적 개연성이 없어 보이는 이 영화의 줄거리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탈(脫)정치’를 통해 정치를 얘기하려 하는 배창호 감독 특유의 ‘역설의 정치학’이 읽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배창호의 눈에 당시의 정치나 사회는 한마디도 얘기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정치의 정(政)자는 꺼내지도 말되, 세상에서 가장 소외된 인간들을 통해 이 사회의 모순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때론 코믹한 이미지이긴 하지만 그의 영화에 거지가, 창녀가, 왕따가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변방의 정치학’을 구현한 셈이다.

    표류하는 듯, 좌초하는 듯

    영화는 기억하지 못해도 송창식의 노래는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송창식이 동명 타이틀 곡으로 부른 노래 가사는 지금 봐도 강력하게 체제저항적이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 /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앉았네 /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 삼등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이 노래는 나오자마자 한동안 금지곡이 됐다. 암울한 1980년대를 생각하면 이 노래를 영화에 쓸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는 생각도 든다. 고(故) 최인호 작가가 만든 이 노랫말은 마치 최인훈의 소설 ‘광장’ 속 주인공처럼 무정부주의적인 냄새를 물씬 풍긴다. 독재자라면 반드시 금지했을 노래다. 다분히 불온하고 불순하다. 영화 ‘고래사냥’ 자체가 사실은 아나키스트적인 영화였던 셈이다.

    흔히 배창호의 작품 세계를 상업영화를 만든 전반기와 급격하게 독립영화로 기운 후반부로 나누는 경향이 있다.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전반이나 후반이나 배창호는 늘 새로운 것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는 늘 한결같았다.

    한국 영화는 1980년대에 이르러 이장호-배창호-이명세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바야흐로 새로운 감각과 스타일을 갖추기 시작했다. ‘고래사냥’을 두고 앞뒤로 만들어진 배창호의 ‘적도의 꽃’(1983)과 ‘깊고 푸른 밤’(1985)이야말로 1980년대 영화의 백미 중 백미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들이다.

    배창호는 이후 ‘황진이’와 ‘꿈’ ‘기쁜 우리 젊은 날’ ‘안녕하세요 하나님’ 등을 통해 마치 표류하는 듯, 그래서 때론 좌초하는 듯했지만 끊임없이 자기 실험과 새로운 미학의 추구를 시도했다. 결국 그는 1인 시네마의 방식으로 자신을 귀결시켰으며 그 결과가 바로 ‘러브 스토리’ ‘정’ ‘길’ 같은 독립영화였다.

    어찌 보면 그는 지난 30여 년의 영화 인생에서 줄기차게 자신만의 ‘길’을 찾으려 한 셈이다. 중견 감독 가운데 배창호처럼 스무 편에 가까운 영화를 연출한 사람은 드물다. 그는 심지어 자신의 조감독 출신인 이명세 감독의 초기 걸작 ‘개그맨’에 주연급 배우로 출연하기도 했다. 독립영화 ‘러브 스토리’ 등 3부작에서는 모두 직접 주연을 맡았다.

    배창호의 ‘길 찾기’는 계속된다

    영화계는 그의 고집불통 예술주의를 비난하고, 매도하고, 결국 등을 돌렸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영화를 만들어왔다. 다만 이번 사고로 그의 예민한 정신세계가 언제든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다는,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음을 보여줬다.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날카롭고 연약한 지적 예술가인 것이다.

    그의 마지막 작품 ‘여행’에서 매 편의 에피소드가 주인공들이 길을 떠나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는 것은,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의 영화적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이 뛰어난 중견 감독이 여전히 길을 찾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배창호는 지금 몹시 외로운 상태다. 그는 죽음의 문턱을 다녀왔다. 그가 찾았다고 생각하는 영화의 길은 또다시 저만큼 멀어진 상태가 됐다. 그는 지쳤다. 삶에 지쳤고 영화 만들기에 지쳤다. 왜 그러지 않겠는가. 아마도 그건 ‘고래사냥’을 찍던 1984년 남애항에서도 느낀 감정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배창호를 돌려받을 수 있을까. 그는 여전히 열아홉 번째, 스무 번째의 영화를 만들어야 하고 만들 수 있는 나이다. 그는 지금 예순둘밖에 되지 않았다. 누가 그를 죽음의 망상으로 몰아넣었을까. 그가 가려고 한 곳은 과연 동해 바다였을까. 그 순간 그는, 삼등삼등 완행열차를 떠올렸을까. 아, 배창호 우리의 배창호. 그를 위해 모두가 기도하는 마음이 돼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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