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후준비라고 하면 흔히 은퇴 이후 필요한 생활비를 마련하는 정도만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은퇴자들을 곤궁에 빠뜨리는 것은 생활비보다 의료비일 때가 많다. 의료비와 생활비는 속성이 다르기 때문에 준비 방법도 달라야 한다. 매월 지출하는 생활비는 그 규모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도 있고 부족하면 어느 정도 줄여 쓸 수도 있다. 하지만 의료비는 언제 아프고 다칠지 모르기 때문에 필요 시기를 예측할 수 없는 데다 단기간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게다가 생명과 연관된 비용이어서 쉽게 줄일 수도 없다. 따라서 저축이나 투자 상품보다는 보험을 활용해 대비하는 게 바람직하다.
계약자, 피보험자 구분해야
그러면 보장성보험은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먼저 부부 각자가 충분한 보장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음은 얼마 전 어머니가 뇌종양에 걸렸다며 상심해 있는 강철희(40) 씨와 상담한 내용이다. 내가 “병원비가 많이 들어갈 텐데 어떻게 할 계획이냐”고 물었더니, 강씨는 “다행히 어머니가 보험을 4개나 가입해둬서 병원비는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며 보험증권을 보여줬다. 그런데 보험증권을 살펴봤더니 보험금을 한 푼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왜 그럴까? 보험계약에 관련된 사람은 크게 계약자, 피보험자, 수익자 셋으로 나뉜다. 계약자는 보험료를 납입하는 사람이고, 수익자는 보험금을 수령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피보험자는 보험사고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다. 즉 피보험자가 아프거나 다쳤을 때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다. 그런데 강씨가 내민 보험증서를 살펴보니, 계약자는 어머니로 되어 있었지만 피보험자가 전부 아버지로 지정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보험금을 한 푼도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보험증서를 한번 꺼내서 확인하시라. 피보험자가 누구로 지정되어 있는가? 병은 남녀를 가려 오지 않는다. 따라서 보장성보험에 가입할 때 부부가 모두 충분한 보장을 받을 수 있도록 피보험자를 분산해두어야 한다.
보험증권을 꺼낸 김에 보장기간도 점검해보자. 보험회사는 보장기간 내에 발생한 질병이나 사고에 대해서만 보장한다. 요즘에야 보험회사에서 ‘평생 보장’ 또는 ‘100세 보장’ 보험 상품을 많이 내놓고 있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보장기간이 70세나 80세에 끝나는 보험이 많았다. 그런데 수명이 늘어나면서 그 이후에도 병원비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생애의료비 분포를 살펴보더라도, 85세까지 생존한 고령자의 경우 평생 사용한 의료비 중 4분의 1(남자 26.1%, 여자 25.3%)을 85세 이후에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경우 70세나 80세에 보장기간이 끝나는 보험에 가입했다면 보험금을 받을 수 없다. 마치 맑은 날 우산을 들고 다니다, 정작 비 오는 날엔 우산을 두고 온 꼴이다.
선진국 주민에게 ‘은퇴’하면 떠오르는 게 무엇이냐고 물으면 ‘자유’라고 답하는데, 한국 사람은 ‘경제적 어려움’이나 ‘두려움’을 떠올린다고 답한다. 이는 결국 은퇴 후 삶에 대한 준비가 얼마나 돼 있느냐 하는 정도 차가 아닐까 싶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말도 있듯이, 지금이라도 노후 생활비와 의료비를 준비하는 데 무엇이 부족하고 어떤 것을 더 준비해야 하는지 꼼꼼히 점검해나가면, 은퇴 후 편안한 노후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