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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는 정규직 10%뿐 ‘차등임금’은 이미 현실

최경환 경제팀 ‘정규직 과보호론’의 맹점

살아남는 정규직 10%뿐 ‘차등임금’은 이미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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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1월 25일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규직에 대한 과잉보호로 기업이 겁이 나서 신규채용을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 정부가 임금피크제 등을 통해 기업의 정규직 채용 부담을 덜어주는 방향으로 노동시장 개혁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정규직의 기득권을 줄여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는 게 과연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될 수 있을까.
살아남는 정규직 10%뿐 ‘차등임금’은 이미 현실

지난 11월 25일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책세미나에서 정규직 과보호와 관련된 의견을 밝히고 있다.

경기 침체의 끝이 안 보인다. 더 심각한 장기 불황이 곧 닥칠 것이라는 불안감도 맴돈다. 어떤 방법으로 어둡고 긴 터널을 헤쳐 나갈 것인지 중지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이 와중에 터져 나온 최경환 경제팀의 정규직 과보호론은 철 지난 유행가를 다시 듣는 듯 시대를 거스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전 세계를 강타한 ‘노동시장 유연화론’과 같은 맥락이다. 공신력 있는 세계 경제기구 중 이제 더 이상 일면적인 유연화를 주장하는 곳은 없다.

최경환 경제팀은 출범 직후인 8월부터 이런 문제인식을 가지고 새로운 경제정책을 발표했다. 임금 상승 둔화로 인한 가계소득 부진이 내수 부진으로 이어지는 일본형 장기 불황 악순환 구조에 주목하면서, 비정규직의 과잉과 차별을 그 중요한 요인으로 지적한 것. 그런데 석 달 후에는 돌연 비정규직 문제의 원인으로 정규직 과보호론을 들고 나왔다. 정규직 해고가 어려워서 기업들이 정규직 채용을 기피하며, 임금도 낮고 해고도 용이한 비정규직을 많이 쓴다는 것이다.

정규직 고용보호를 완화해서 비정규직에게 실질적 혜택이 돌아갈 방법이 무엇인지 답하지 못한다면, 하향평준화만 초래할 뿐이라는 비판을 비켜갈 수 없다. 더구나 법인세 인하 등 기업 투자를 촉진하는 정책을 시행해도 우리 대기업들은 투자는 않고 사내유보금만 쌓아왔고, 외주 하청을 통한 인건비 절감에만 주력해 간접 고용을 확산하며 열악한 비정규직을 양산해왔다. 우리나라는 기업 평균 재직연한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짧은 편에 속하고 정규직도 중도 퇴직이 일상화해 있다. ‘과보호’되고 있다는 정규직은 전체 노동인구의 10% 정도다. 그나마 살아남은 자들이다.

이들을 두들긴다고 해서 노동인구의 절반에 달하는 비정규직의 처우가 나아질 방법은 없다. 더구나 정규직의 보호 약화가 비정규직의 보호 강화로 이어지는 정책 메커니즘은 직접 작동되지 않는다. 둘을 이어주는 고리는 기업이며, 기업의 인력관리 전략에 영향을 미치는 정부 정책이 매개변수다. 기업의 처분에만 내맡겨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입증했는데, 정부는 한가하고 철 지난 얘기를 뭔가 획기적이고 새로운 얘기처럼 하고 있다. 불황 탈출의 방향을 두고 우리 앞에는 두 개의 선택지가 놓여 있다.

첫째, 투자와 고용을 늘리도록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면서 고용 조정을 쉽게 하는 ‘노동 유연화’ 추진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약 10년간 미국과 영국 등 자유시장 정책을 편 국가의 노동시장 성적표는 유럽 대륙의 선진국들보다 나았다. 이들의 경험을 모델로 삼는 것이다. 1998년 IMF(국제통화기금)가 구제금융 조건으로 우리에게 제시한 방안이자, 당시 OECD의 실업 해결 처방책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경험을 살펴보면 유연한 노동규제 체계가 노동시장의 활성화를 가져온다는 이 주장은 잘못됐다. 지금 노동시장 분단구조로 인한 폐해가 이들 나라에서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둘째, 내수 촉진을 통한 경기 활성화에 주목하면서 임금소득 향상을 추구하는 ‘노동시장 안정성’에 주목하는 해법이다. 2008~2009년 미국의 금융위기로 촉발된 전 세계적 불황 시기에 미국, 일본, 중국, 유럽 국가들은 급속한 소득 향상을 통한 경기 촉진책을 편 바 있다. ‘성장을 통한 분배’라는 낙수효과만 강조하던 성장 중심 신자유주의정책에서 ‘분배를 통한 성장’ 또는 소득 주도 성장모델을 반영하는 ‘신자유주의 수정보완정책’의 흐름이다.

신자유주의 수정보완정책이라 함은 금융화, 개방화, 규제 완화, 재정 긴축과 민영화, 노동 유연화 중심의 시장만능주의 경제정책에 바탕을 둔 신자유주의 정책이 2008~2009년 세계적 금융위기 이후 닥친 경기 침체로 확장적 재정정책, 내수 진작과 ‘분배를 통한 성장’의 요소를 보완하면서 이뤄진 변화를 의미한다.

정규직 약화가 비정규직 강화?

미국의 부실 금융기관에 대한 7000억 달러의 공적자금 투입과 금융규제 강화, 그리고 뒤이은 재정 지출 확대 시도, 유럽연합(EU) 차원의 구제금융과 긴축재정 패키지와 이로 인한 사회적 저항, 4조 위안에 달하는 중국의 재정 지출 확대와 내수 진작과 빈곤 감소 프로그램, 일본 아베 정부의 공세적 양적완화와 엔화 평가절하 및 대기업 중심 임금인상을 통한 내수 진작책 등이 그 사례다.

이런 흐름 속에 EU는 유연성과 안정성의 조화를 추구하는 고용전략을 펴고 있다. OECD 등 공신력 있는 경제기구도 유연성 만능의 신화를 더 이상 추구하지 않고 EU와 같은 정책 처방을 제시하고 있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신봉하던 국가들에서도 최근 정책 변화가 뚜렷하다. 미국 오바마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과 공적 건강보험 강화 정책으로 저소득자의 안정성을 강화하고자 하며, 구태를 못 벗어나긴 했으나 일본은 아베노믹스 내수촉진책에 주목하고 있다. 무엇보다 기업 규제 완화가 아니라, 임금소득 향상을 통한 성장방식에 주목하는 전 세계적인 흐름이 열풍의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경환 경제팀의 정규직 과보호론은 출범 초기에 지지한 소득주도 성장모델에서 벗어나 세계적 흐름에 반하는, 유연화 지상주의라는 반대 방향으로 뒷걸음질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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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 | 고려대 노동대학원 연구교수,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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