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월호

국민연금 운용체계 대수술 임박

정부 품 떠나 ‘나홀로 운전’ ‘대박’ 낼까, ‘쪽박’ 찰까

  • 글: 성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4-12-27 10: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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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연금 운용을 둘러싼 논란이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상설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자산 규모 130조원의 ‘큰손’이 새롭게 등장하는 것이다. 게다가 앞으로 자산 운용은 민간 전문가들이 맡을 가능성이 크다. 이헌재-김근태 갈등으로 홍역을치른 국민연금의운명은?
    국민연금 운용체계 대수술 임박
    지금까지국민연금을 둘러싼 논란은 대부분 연금 재정에 관한 것이었다. ‘적게 내고 많이 받도록’ 설계된 국민연금이 도대체 언제쯤 바닥을 드러낼 것인가. 아니면 내가 낸 국민연금을 30년 후에는 제대로 받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그 동안 수많은 입씨름을 벌여왔다.

    그러나 연금 재정 안정화 방안에 관한 이러한 논란들은 30~40년 후에 일어날 일을 대상으로, 아직 확정되지 않은 다양한 경우의 수를 놓고 갑론을박하는 것이어서 일반 국민은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돈을 어떻게 거둬들일 것인가’가 아니라 ‘돈을 어디에 쓸 것인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논란에 불을 붙인 사람은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다.

    김 장관은 ‘하늘이 두쪽 나도’ 국민연금을 지켜야 한다며 ‘콩 볶아 먹다가 가마솥 깨뜨린다’는 말로 연금 가입자의 ‘백기사’를 자임하고 나섰다. 김 장관의 이 인화성 발언은 국민연금 파동의 전선을 ‘재경부 대 복지부’로 선명하게 가르는 데 큰 효과를 발휘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선으로 인해 국민이 국민연금 파동을 ‘부처간 기싸움’으로 인식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김 장관의 발언 파문이 일회성으로 그친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국민연금 운용을 둘러싼 논란의 이면에는 이러한 부처간 기싸움말고도 복합적인 문제가 얽혀 있다. 민간투자법 개정을 통한 국민연금의 공공투자 참여, 새롭게 만들어질 기금운용위원회의 관할권 논란, 수익성과 안전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자산 배분 전략 등 결코 만만치 않은 과제가 담겨있는 것이다.



    ‘BTL’ 방식 둘러싼 논란

    이번 논란은 재경부가 마련하고 있는 종합투자계획, 이른바 한국판 뉴딜정책에 연기금을 참여시키겠다는 계획에 복지부가 반발하면서 시작됐다. 이 논란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재경부가 내놓은 ‘BTL(Build-Transfer-Lease)’이라는 새로운 투자 유치 방식을 이해해야 한다. ‘BTL 방식’은 민간사업자가 사회간접자본이나 공공시설을 지은 뒤 사용자에게 통행료와 사용료를 직접 징수하는 기존 민자사업 방식인 ‘BTO(Build-Transfer-Operation)’와 달리 민간사업자가 건설을 마친 후 소유권을 정부에 넘기고 투자원리금을 임차료 형식으로 받는 것을 말한다.

    기존 ‘BTO’ 방식에서 늘 문제가 된 것은 수요 예측이었다. 민자를 동원해 고속도로나 터널을 지으면서 초기 수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해 예상보다 이용자가 적어 수입이 감소할 경우에도 재정부담을 고스란히 떠안는 것이 BTO 방식의 단점이자 리스크였다는 말이다.

    그러나 개정 민간투자법에 따라 새로 도입될 BTL 방식에서 민간사업자는 시설 소유권을 정부에 넘긴 뒤 확정 이자를 받을 수 있으므로 리스크가 사라진 것이다. 말하자면 국민연금으로서는 수익성과 안전성이 동시에 보장된 또 하나의 투자처가 생기는 셈이다. 정부는 이 경우에 국민연금이 ‘국채수익률+α’의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투자방식에 대한 협의는 9월부터 진행돼 왔다. 복지부도 새로운 투자처를 발굴하는 데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런데 11월 초 느닷없이 김 장관이 공개적으로 반발하고 나오자 기획예산처나 재경부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톰’에게 한방 먹인 ‘제리’

    복지부는 이에 대해 재경부가 기금운용위원회의 의결 등 국민연금 운용 절차를 무시한 채 무리하게 속도를 내는 데 제동을 걸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BTL’ 방식을 둘러싸고 경제부처들과 복지부 사이에 협의과정을 거친 배경을 이해한다면 김근태 장관이 국민을 그렇게 국민들을 놀라게 하는 방식으로 문제제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민심을 읽을 줄 아는 ‘정치인 김근태’의 감각은 예리했다. 경제부처의 맏형답게 ‘늘 하던 대로’ 목표만 앞세워 계획을 추진하는 재경부가 방심한 틈을 타 복지부가 일격을 가한 것이다. 멍청한 고양이 ‘톰’에게 늘 쫓기던 영악한 생쥐 ‘제리’가 불의의 ‘한방’으로 톰을 골탕먹였듯이.

    김 장관은 이를 통해 ‘절반의 승리’를 거두었다. 반면 재경부는 여전히 말만 꺼내놓고 뒤치닥꺼리도 못한 채 속병만 앓고 있는 모습이다. 야심적으로 꺼내든 종합투자계획이라는 카드는 부처간 협의가 원활치 않아 발표 시기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국민연금 투자를 둘러싸고 복지부와 충돌하면서 대국민 홍보에 ‘빨간불’이 켜졌다고 판단한 재경부는 부랴부랴 이 계획을 ‘점프코리아’로 명명하고 별도의 홈페이지를 개설하는 등 국민 홍보와 설득에 나서고 있지만 썰렁하기 이를 데 없는 홈페이지처럼 재경부도 힘이 빠진 모습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정부의 종합투자계획이 도덕적 해이에 따른 비효율만 가져올 것’이라는 내용을 담은 경제전망보고서를 내자 재경부는 더욱 당황하는 눈치다. 또 한나라당은 한나라당대로 재경부가 말하는 ‘BTL’ 방식으로 민자를 유치하더라도 국회의 승인을 받으라고 요구하고 있어 재경부의 속을 부글부글 끓이고 있다.

    현재로서는 재경부가 ‘한국판 뉴딜정책’의 세부 계획을 2005년 2월 이전에는 발표하기 힘들지 않느냐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최근 과천 정부청사 주변에서는 “내년도 경제운용 계획을 짜느라고 정신 없어야 할 재경부가 연말에 이렇게 한가해 보이는 것은 처음”이라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결국 재경부가 ‘한국판 뉴딜정책’이라는 ‘선공’을 통해 복지부를 제압하려 했지만 복지부의 ‘역공’을 받은 이후 오히려 전전긍긍하려는 듯하다.

    국민연금위원회 상설화 합의

    현재 복지부 산하 국민연금관리공단이 맡고 있는 국민연금 운용을 누가 대신 맡을 것이냐를 놓고 벌어지는 논란은 뉴딜정책 투입 논란보다 ‘기싸움’의 성격이 더 강하다. 현재만 해도 130조원, 2035년에는 1700조원까지 늘어날 국민연금을 누가 맡아 굴릴 것이냐를 결정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때쯤이면 국민연금 적립금은 국내총생산(GDP)의 40%를 뛰어넘게 된다. 현재는 15% 수준.

    지금까지 당정청(黨政靑)이 합의한 안을 바탕으로 한나라당과 원탁회의 등을 거쳐 이견을 조율한 결과, 기금 운용에 관한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를 상설화하고 민간전문가의 참여를 늘린 뒤 자산운용기구는 따로 떼내어 전문성과 독립성을 높인다는 데까지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상설조직으로 변신하는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를 보건복지부 산하에 둬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반면, 한나라당은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복지부로부터도 독립해야 한다는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 김덕룡 원내대표는 예산안 처리에 협조를 당부하기 위해 방문한 이헌재 부총리에게 ‘기금운용위원회 독립기구화’를 직접 주문했다.

    민주노동당도 복지부로부터 독립된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구성 법률안을 제출했고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서도 ‘정치적 독립 방안 보장’을 주장하고 있어 한나라당의 주장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참여연대 등은 국민연금의 안정적 운용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재경부 등 경제부처의 입김으로부터는 물론 주관 부처인 복지부로부터 독립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복지부나 열린우리당은 운용위원회가 정부의 통제를 벗어날 경우 책임 소재가 모호해질 우려가 있다며 한나라당이나 참여연대, 민노당 안(案)에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명분과 달리 복지부는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를 독립시켜놓을 경우 당초 취지와는 달리 기금관리기본법이라는 통제수단을 갖고 있는 기획예산처나 재경부의 영향력 아래로 흡수될 것을 내심 염려하는 눈치다. 복지부 관계자도 “책임 소재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소속은 복지부에 두지만 민간이 중심이 되어 독립적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물론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상설화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현재 국민연금관리공단 기금운용본부의 법적 지위를 격상하거나, 국민연금의 민간 위탁운용 비율을 크게 높이고 정부가 할 일을 줄이면 굳이 운용위원회를 상설화해 사무국 등 복잡한 별도 조직을 두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목소리는 2004년 6월 촛불시위로까지 이어진 국민연금 파동에서 나타났듯이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워낙 큰 탓에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일단 조직을 수술함으로써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데는 정부나 정치권이 모두 의견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위원장에 장하성 교수 등 거론

    따라서 당정청 안(案)이 그대로 통과되면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무려 130조원의 자금을 주무르는 국내 최고의 ‘큰손’으로 떠오를 것이 분명하다. 증시로부터 끊임없는 러브콜의 대상이 될 것이고 외국인 투자자들에게는 경계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당초 참여연대 등은 ‘금융통화운영위원회’ 정도의 위상을 갖는 독립적 기구를 주장해왔지만 위원회가 복지부 산하에 설치될 경우 영향력은 어느 정도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굳이 비교하자면 정부측 위원과 민간위원으로 구성된 공적자금관리위원회(공자위)와 비슷한 위상을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정청 안이 통과되어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보건복지부 산하에남더라도 정부측과 민간위원측이 공동위원장을 맡는 공적자금관리위원회와는 달리 기금운용위원장을 민간 전문가가 맡을 가능성이 크다.

    독립성 논란으로 홍역을 치른 마당에 복지부 출신 관료를 앉히기가 부담스러울뿐더러 복지부 내에서도 사무국이라면 모를까 위원장 자리를 노리는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설령 공동위원장 체제가 되더라도 공자위처럼 민간위원장이 모든 회의를 주재하고 정부측 위원장은 참여하지 않는 ‘사실상’ 민간기구처럼 운영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130조 원이나 되는 국민의 노후자금을 각종 이해관계자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할 수 있는 위원장에 누구를 앉힐 것인지도 또 하나의 관심거리다. 물론 위원장의 자격요건을 엄격하게 정하고 별도의 추천위원회를 거침으로써 전문성과 중립성을 동시에 보장한다는 데는 정부여당과 야당이 의견을 함께하고 있다.

    위원장 후보로는 아무래도 정부, 정치권, 그리고 증권업계 등의 영향에서 모두 자유로운 학계 출신의 전문가가 가장 적합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시장에서 검증된 자산운용 전문가를 앉힐 경우 공공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일부에서는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장을 지내면서 소액주주 운동을 벌여온 고려대 장하성 교수나 증권연구원장과 코스닥 위원장을 역임한 서강대 최운열 교수가 거론되기도 한다. 특히 국민연금이 증시 투입 비중을 높이면서 주식시장에 영향력을 확대할 경우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국민연금=민족자본’으로 비칠 가능성이 적지 않은데 장하성 교수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을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적격으로 꼽힌다.

    한편 위원회가 수립한 자산 배분 전략에 따라 실제로 주식 채권 등 금융자산에 국민연금을 투자, 운용하는 일을 맡기 위해 투자전문회사나 투자공사 형태의 별도법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는 여야와 시민단체가 모두 동의하고 있어서 법이 통과되는 대로 국민연금 투자회사를 만들기 위한 작업은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주식 비중 8%에 불과

    사실 국민연금 운용과 관련해 크게 관심을 모으는 것은 ‘누가’ 이 돈을 굴리느냐보다는 ‘어떻게’ 굴리느냐, 즉 자산 배분을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다. 현재 국민연금은 채권에 85%, 주식에 8.4%를 투자하고 있다. 나머지는 공공 및 복지 부문에 투자한다.

    그러나 금융권에서는 국민연금이 지금과 같은 보수적인 투자행태를 지속할 경우 채권 시장의 구조가 왜곡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금융연구원 남재현 연구위원은 “이 상태로 가면 국채시장에서 국민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5년에는 50% 이상을 차지하고 2025년에는 67%에 이를 것”이라며 “사회간접자본(SOC)에 대한 투자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금융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이 채권을 매입하는 월말이면 금리가 급락하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국민연금이 채권 위주의 보수적 운용으로 일관하다 보니 오히려 시장이 왜곡된다는 논리다.

    그러나 국민연금측은 이러한 지적에 대해 ‘국민연금은 정부가 지급을 보장하는 ‘확정급여형’ 기금이므로 주식 같은 위험자산 투자 규모는 일정한 범위로 통제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다.

    결국 논란의 초점은 국민연금 운용의 제1원칙을 수익성에 두느냐 안전성에 두느냐의 문제로 모아진다. SOC를 포함한 공공투자나 주식투자 비중 확대를 주장하는 재경부는 국채 수익률 이상의 수익성을 확보하면서 안전성을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고, 복지부는 국민의 쌈짓돈인 국민연금은 안전성이 가장 큰 목표라며 재경부의 ‘과속’을 비판하고 있다.

    물론 수익성이 올라가면 결과적으로 적립금이 늘어나기 때문에 가입자의 부담이 줄어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기금 고갈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데다 일부 국민 사이에서 ‘국민연금 환급론’까지 나오는 마당에 수익성 위주의 투자는 근본적으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현재 국민연금 운용을 맡고 있는 국민연금관리공단을 제외하면 전문가들은 대부분 국민연금 적립액이 지금처럼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채권 위주의 투자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는 데에 동의하고 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장인 중앙대 김연명 교수(사회복지학)도 재경부가 추진하는 종합투자계획 같은 정책적 투자에 연기금이 참여하는 것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국민연금 운용체계 대수술 임박


    “국민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쪽으로 투자하면 결과적으로 사회적 부(富)가 커지는 것이므로 문제 될 게 없다. 단기적으로 수익률이 떨어지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이익이다.”

    문제의 초점은 SOC 투자 비중이나 금융자산에서 주식 비중을 확대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투자 리스크를 줄여 안정적이면서도 수익률을 높이느냐로 모아진다. 게다가 현행 국민연금은 앞으로 30년동안 계속 적립되었다가 10여 년에 걸쳐 급속히 소진되는 구조를 갖고 있어 주식시장에 투자했다가 단기간에 빠져나오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에도 대비해야 하는 어려움을 갖고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과감한 민간 위탁 운용을 통해 수익성도 높이고 투자 위험도 분산하는 전략을 써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현재 10조원 규모의 주식투자금 중 위탁투자금은 절반이 조금 넘는 5조6000억원 수준. 그러나 주식투자 비중이 워낙 낮으므로 위탁투자의 비중도 국민연금 전체 규모에 비하면 5%도 채 되지 않는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문형표 선임연구위원은 “미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캘퍼스)은 해외투자의 80% 이상을 위탁투자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 자산운용을 정부가 직접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문제는 풀리지 않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위해 투자위원회가 결정한 자산 배분 전략에 따라 복수의 민간 자산운용사에 위탁 운용하는 방식이 가장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자산을 수많은 바구니에 나눠 넣으면 위험을 분산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 경우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민간 자산운용회사의 운용 실적을 평가하고 감독하는 일에 그치게 된다. 문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기관투자가 노릇을 하려 하지 말고 민간 기관투자가를 육성하는 일을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국민연금을 정부가 맡아 운용한 경우와 민간에 위탁해 운용한 경우를 비교해보면 어느 방식이 훨씬 효율적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세계은행(World Bank)이 1994년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민간에 맡겨 연금을 운용하는 쪽이 정부가 운용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수익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300쪽 그래프 참조). 그래프에서 가장 높은 수익률을 낸 것으로 조사된 칠레는 국민연금 운용을 완전 민영화한 대표적 사례.

    한편 열린우리당 일부에서도 국민연금의 해외 위탁운용을 대폭 확대하는 구상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능력이 검증된 해외 자산운용사를 통해 해외 투자에 나선다면 이 자산운용사들이 경쟁적으로 서울에 사무소를 내면서 외국인 투자 활성화 효과도 동시에 얻을 수 있다는 점도 거론되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국내 자산운용 시장의 활성화라는 부수적 성과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제도는 정부가, 운용은 민간이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의 효율성 논쟁은 경제 규모 확대와 금융시장의 전문화에 따라 이미 민간 부문의 승리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경우 김근태 장관의 표현대로 국민들의 ‘쌈짓돈’이라는 차원에서 마냥 효율성을 좇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1981년 세계 최초로 연금을 민영화해 가입자들이 운용회사의 수익률을 비교해보고 자신의 돈을 맡길 회사를 선택하게 한 칠레에서도 최근 들어 부작용이 생겨나고 있다. 운용회사간 과다한 경쟁으로 발생한 마케팅 비용을 가입자들에게 전가하면서 연금에 사각지대가 생겨나는 등 고수익의 ‘빛’에 가려진 ‘그늘’이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연금 제도는 정부가 맡고 운용은 민간에 맡기는 2원화 방식을 검토해볼 만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공의 안전성과 민간의 효율성을 조화한 제3의 방안인 셈이다. 그러나 연금제도 개혁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시간은 많지 않은 형편이다. 재경부냐 복지부냐 하는 ‘밥그릇’싸움이나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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