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호

‘합병’ 예선 치른 뒤엔 ‘돈 버는 경영자’ 본선 혈투

산 넘어 산 ‘이재용號’

  • 강지남 기자 | layra@donga.com

    입력2015-06-16 17: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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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브리스(hubris, 자만심)’가 엘리엇 공격 불렀다
    • “법대로 했다” vs “승계 프리미엄 이용했다”
    • ‘이재용폰’ 갤럭시S6, 절반의 성공?
    • 바이오, 사물인터넷, B2BC…탄탄한 미래사업 될까
    ‘합병’ 예선 치른 뒤엔 ‘돈 버는 경영자’ 본선 혈투
    5월 27일 KBS 인터넷 뉴스에는 ‘19년 새 1000배 이상 몸값 오른 나는 누구?’라는 제하의 기사가 실렸다. ‘나’는 이재용(47) 삼성전자 부회장이 48억 원을 주고 산 에버랜드 전환사채(Convertible Bond).

    그 하루 전날 발표된 제일모직(옛 에버랜드)과 삼성물산의 합병 결의안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새 합병회사(사명은 ‘삼성물산’)의 최대주주(16.5%)가 될 예정이다. 이는 ‘나’라는 존재가 있기에 가능했다. 이 부회장이 가진 제일모직 지분(23.2%)의 본체가 바로 ‘나’이기 때문. ‘나’는 1996년 이 부회장에게 팔린 뒤 곧 주식으로 전환됐고, 동시에 이 부회장은 에버랜드 최대주주가 된다. 지난해 7월 에버랜드는 제일모직으로 사명을 바꾸고 12월 주식시장에 데뷔한다. 9만 원대에서 시작한 주가는 날로 상승해 ‘나’의 시장가격은 5조8975억 원(5월 26일 제일모직 종가 18만8000원 기준)이 됐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7월 17일 주주총회를 거쳐 9월 1일자로 합병을 마무리한다는 계획. 재계 관계자는 “이번 합병이 성공하면 삼성가(家) 3세 경영권 승계 작업의 9할이 완성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합병 삼성물산을 통해 그룹 내 핵심 계열사인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공고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 등의 지분을 합치면 합병 삼성물산에 대한 삼성가(家) 지분은 30%가 조금 넘는다.

    “가장 유리한 시점에…”

    그러나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운용자산 29조 원)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지배구조 재편에 비상등이 켜졌다. ‘이재용의 삼성’이 직면한 첫 과제가 해외자본의 반대를 넘는 일이 된 것이다.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한 엘리엇에 이어 일성신약(2.05%)과 네덜란드연기금자산운용사(APG, 0.35%) 등도 이번 합병안에 반대의사를 밝히고 나섰다. 합병 자체는 찬성하지만 합병비율에는 반대하는 APG는 삼성물산 보유 지분은 적어도 500조 원이 넘는 연기금을 관리하는 세계적 기관이라 영향력이 적지 않다.



    이들 ‘반대파’가 문제 삼는 것은 1:0.3500885로 정해진 제일모직-삼성물산의 합병 비율. 삼성물산의 가치를 너무 낮게 평가한 채 합병 비율을 산정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손해라는 것이다. 경제개혁연대는 논평을 통해 “삼성물산 시가총액은 9조 원대이지만,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만 해도 8조원 대(3월 말 기준)”라고 지적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제일모직 적정 주가는 9만 원대로 추산됐지만 이 회사가 경영권 승계에 활용될 것이란 시장 전망으로 합병 직전 16만~17만 원까지 올랐다”며 “엄청난 승계 프리미엄이 붙은 제일모직 주가를 이용해 이재용 부회장에게 가장 유리한 시점에 합병을 결정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박유경 APG 아시아지배구조 담당이사는 “(삼성 측이) 이 수준의 합병비율에 삼성물산 주주들이 만족할 것이라고 판단했다면 실망”이라며 “합병을 어느 시점에 할지는 이사회가 고려할 수 있는 사안인데, 삼성물산 이사회는 이와 관련해 어떤 행동을 했는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긴급 이사회를 소집해 합병비율을 재산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열린 창문과 도둑

    이에 대해 삼성물산 측은 현재 시장에서 거래되는 주가를 가지고 합병비율을 산정하도록 하는 자본시장법에 따라 ‘법대로’ 했다는 입장이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과거 소버린의 SK 공격 사례에서 보듯 엘리엇은 헤지펀드 속성상 단기 차익 실현이 목적일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며 “주총 때까지 주주들에게 두 회사 합병을 통한 사업적 시너지 효과를 적극적으로 알려나가겠다”고 말했다.

    ‘합병’ 예선 치른 뒤엔 ‘돈 버는 경영자’ 본선 혈투


    ‘합병’ 예선 치른 뒤엔 ‘돈 버는 경영자’ 본선 혈투

    5월 7일 삼성전자 반도체 평택단지 기공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즉 △삼성물산이 가진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에잇세컨즈 등 제일모직 SPA 브랜드들을 세계시장에 진출시키고 △두 회사의 건설 부문을 결합해 경쟁력을 높이며 △바이오시밀러 등 미래수종(樹種)사업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게 되므로(합병 삼성물산은 지분율 51.2%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최대주주가 됨) 두 회사 합병이 장기적으로 삼성물산 주주가치를 높인다는 것이다.

    시장 관계자들은 기존 안대로 합병이 성사된다면 엘리엇이 법적 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한 투자 전문가는 “엘리엇은 법적 수단을 즐겨 활용하는 펀드”라며 “영국 등 법적 시스템이 잘 갖춰진 곳으로 가서 소송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번 합병이 불발되면 삼성은 지배구조 재편에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 관계자는 “경영권 승계 기본 계획이 두 회사 합병에 기초하기 때문에 이 안을 쉽게 포기하진 못한다”며 “외국인의 공격이 삼성물산에 그치지 않고 삼성전자로 확대되면 정말 골치가 아파진다”고 내다봤다.

    엘리엇이 종국엔 차익을 실현하고 삼성물산을 떠날 것이란 시각도 많지만, 한편으로는 헤지펀드가 공격해올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 당사자가 바로 삼성이라는 지적도 있다. 삼성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이번 일을 “휴브리스(hubris·자만심)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고 일갈했다.

    박유경 APG 이사는 “이 정도 사안이면 글로벌 기업에선 위기관리(crisis management) 시스템이 가동돼야 정상인데 삼성물산 이사회는 왜 가만히 있는지 의아하다”고 말했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결국 취약한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려는 삼성 일가의 고집이 문제”라며 “엘리엇의 ‘먹튀’ 가능성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자기가 창문 열어놓은 것은 모른 척한 채 열린 창문으로 들어온 도둑만 탓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융합의 시대’ 파도 타기

    “나는 사는 게 피곤하다고 불평할 자격이 없다. 부담스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운 좋게 좋은 부모를 만나고 훌륭한 선배(경영진)를 많이 만나서 혜택을 많이 보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전자 전무 시절인 2009년 9월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기능올림픽에 참석한 자리에서 “일이 많아 힘들지 않으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세간에 알려진 그에 대한 인물평 키워드는 ‘겸손’ ‘경청’ ‘실리’ ‘현장 중심’ 등이다. 고교 생활기록부에는 ‘명랑하고 쾌활하며 매사에 적극적인 성격’이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 능력과 관련해서는 아직까지도 ‘e삼성 실패’가 언급된다. 삼성그룹의 실질적 수장으로 떠오르는 요즘, 이 부회장의 최우선 과제는 자리에 걸맞은 경영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승우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당장 삼성전자의 미래가 걱정”이라며 “융합의 시대에 대처하는 것이 이 부회장의 당면과제”라고 말했다. 지난해 삼성전자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206조 원과 25조 원으로 전년 대비 매출은 9.83%, 영업이익은 31.97% 하락했다.

    이런 여파인지 삼성전자는 지난 3월 사내 집단지성 시스템 모자이크에 “비전2020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설문을 게시했다. 비전2020은 삼성전자가 2009년 창립 40주년을 맞아 내놓은 장기 목표. 2020년까지 매출 4000억 달러(447조 원), 정보기술(IT)업계 1위, 브랜드 가치 세계 5위로 도약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설문조사에 ‘삼성전자 미래 비전 재정립을 위한 임직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을 기다린다’는 설명이 붙었기 때문에 안팎에서는 ‘비전2020을 수정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전략을 바꾸려는 것은 아니고 그저 점검 차원이었다”고 선을 그었다.

    ‘합병’ 예선 치른 뒤엔 ‘돈 버는 경영자’ 본선 혈투


    ‘바운더리’ 뚫고 나가야

    ‘합병’ 예선 치른 뒤엔 ‘돈 버는 경영자’ 본선 혈투
    지난 4월 출시된 갤럭시S6는 일련의 지배구조 재편과 시기가 맞물리면서 ‘이재용폰’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부회장은 갤럭시S6 출시 두어 주 전에 김포공항에서 기자들을 만나 “카메라 화질 참 좋죠?”라며 초등학생 딸, 어머니 홍라희 리움미술관장과 함께 갤럭시S6엣지로 찍은 사진을 보여줘 뉴스를 탄 바 있다. 아직 정확한 판매량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갤럭시S6 판매는 ‘순항 중’이다. 시장은 연말까지 출시 첫 해 4650만 대가 팔린 갤럭시S4와 비슷한 수준으로 판매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는 갤럭시S5 첫해 판매량(3800만 대)보다 850만 대 많은 수준이다.

    삼성전자 IM(IT·모바일) 부문 출신 인사는 “갤럭시S6의 성공은 삼성전자의 장점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과감한 투자와 빠른 공정으로 배터리 일체형 메탈 케이스를 성공적으로 적용해 저가 중국산 스마트폰과 차별화를 꾀했다는 점에서 ‘제조 강자’ 삼성의 장점을 잘 살렸지만, 여전히 애플과 같은 소프트웨어 혁신이 아닌 하드웨어 개선에 머무르는 한계를 노출했다는 것. 이승우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애플컴퓨터가 사명에서 ‘컴퓨터’를 뗐듯이, 삼성전자도 바운더리를 뚫고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최근 반도체 업계에 메가톤급 인수합병(M&A)이 이어지는 것은 향후 벌어질 반도체 컨버전스에 대한 대비의 일환이다. 삼성전자도 적극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사물인터넷(IoT) 시대의 융합 반도체 시장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 삼성 관계자는 “가까운 미래에 바이오시밀러, B2BC(Business to Business and Consumer·기업과 소비자를 동시 고객으로 삼는 사업) 분야에서 의미 있는 매출이 날 것”이라며 “이들 두 분야는 이 부회장이 오래전부터 관심을 갖고 추진하는 미래수종사업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최근 공장 증설로 세계 3위 규모의 바이오의약품 생산능력을 갖춘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7년부터 본격 가동되고,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제품 개발을 맡고 있는 삼성바이오에피스가 2016년부터 제품 판매를 개시하면 2020년에는 바이오 부문에서 2조 원 가까운 연매출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삼성그룹은 사내방송에서 B2BC를 소개하는 등 이 분야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기술 융합으로 갈수록 개인용 제품과 기업용 제품 구분이 모호해지는 만큼, B2C에 그치지 않고 B2B까지 아우르겠다는 것. 그 일환으로 최근 삼성전자는 B2B 브랜드 ‘삼성비즈니스’(www.samsungb2b.co.kr)를 내놨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 모든 게 비전2020을 향한 노력”이라고 말했다.

    구글, 알리바바와 경쟁하는데…

    바야흐로 ‘3세 경영’ 시대가 오고 있다. 삼성을 포함해 3세 경영에 나선 기업들은 어떤 미래를 만들어갈까. 이승우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지금 3세들의 경쟁 대상은 구글, 알리바바, 샤오미 등 개척자 정신이 팔팔한 창업 세대”라며 “지배구조 재편에까지 신경 써야 하는 3세들이 이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전망했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슘페터적 기업가 정신이 있는 1·2세와 달리 3세는 도전정신을 잃어버리기 쉽다”며 “개인적 역량이 있으면 전문경영인(CEO)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주주로서의 역할만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삼성의 강점 중 하나는 오너가 평소에는 침묵하다 중요한 순간에만 방향을 제시하고 각 사업을 전문경영인에게 위임하는 것”이라며 “비단 삼성뿐만 아니라 여타 기업들도 50대 초반의 젊은 전문경영인에게 적어도 10년쯤 장기간 경영을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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