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다소 극단적인 말들도 두 나라 관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긍이 가는 면이 없지 않다. 현재 중국과 일본은 정상회담을 하지 않고 있다. 매년 양국 정상이 회담을 열던 APEC 정상회담도 지난해(11월 부산회담)엔 불발로 끝났고, 12월의 ASEAN+3(한·중·일) 정상회담과 그 직후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처음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도 중일 정상은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다. 모두 중국측의 거부로 그렇게 됐다.
이런 현상은 지난해 10월17일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 참배 이후 계속되고 있다. 야스쿠니신사가 중일관계 악화를 불러온 핵심 고리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2001년 10월 상하이 정상회담 이후 ‘비공식 절교’에 들어가면서, 자국에서가 아닌 제3국 국제회의에서 ‘기회가 되면 얼굴이나 보자’는 식의,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만남’으로 정상회담의 명맥을 이어왔다. 그렇게 명맥을 유지해 온 회담조차 마침내 완전히 문을 닫으리란 전망은, 2005년 5월 일본을 방문 중이던 우이 중국 부총리가 고이즈미 총리와 하기로 한 회담을 갑자기 취소하고 귀국해버렸을 때 처음 제기됐다. 우이 부총리의 회담취소 결정은, 그의 방일(訪日) 직전 고이즈미 총리가 중의원에서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 “다른 나라가 간섭할 문제가 아니다. 언제 갈지는 적절히 판단하겠다”는 등 신사 참배를 기정사실화한 데 대한 중국 정부의 항의 표시였다.
“A급 전범들을 분리하라”
고이즈미 총리는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관련해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총리대신으로서 자기 나라의 시설에서 평화를 기원하고 전몰자들에게 애도의 뜻을 표하는 것을 비판하는 생각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남들 다하는 전몰자 추도가 무슨 문제냐’는 항변이다. 야스쿠니 문제에 대해 중국은 1985년 나카소네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처음 참배했을 때부터 “야스쿠니신사에 합사(合祀)돼 있는 A급 전범들에 대해서만 별도의 추도시설을 만들라”며 총리의 신사 참배에 비교적 관대한 태도를 취해왔다.
하지만 A급 전범에 대해서만은 강경한 자세를 굽히지 않았다. 전쟁을 주도한 책임자와 일반 참전자를 구별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집권 자민당은 A급 전범에 대한 별도의 추도시설 건립비용을 2006년 예산안에서 제외함으로써 중국의 요구를 거부했다.
중국이 A급 전범 문제를 들고 나온 데는 이유가 있다. A급 전범 중에는 과거 중국 침략을 주도한 인물들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에서 1937년의 난징 학살 책임자로 인정돼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된 마쓰이 이와네 전 육군대장도 그중 한 명이다. 중국측 발표로 30만명이 학살됐다는 ‘난징 학살 전범’을 상대국 총리가 ‘추도’한다는 것은 중국으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행위일 것이다.
그럼에도 후진타오 주석은 지금까지, 제3국에서이긴 하지만, 신사 참배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고이즈미 총리와 대화를 계속해왔다. 감정보다는 국익과 실리를 앞세우며 양국관계를 ‘평화적으로 발전’시켜온 것이다. 그래놓고서는 왜 이 시점에 정상회담까지 거부하며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 참배를 문제 삼을까. 신사 참배를 둘러싼 갈등이 증폭돼오다 ‘드디어 폭발했다’는 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또 고이즈미 총리는 왜 A급 전범 별도분리 요구조차 거부하며 신사 참배를 계속하려고 할까. 자국 내에서조차 아시아 외교를 무시한다는 소리를 들어가며 신사 참배를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문제의식을 출발점으로 ‘전쟁상태’의 중일관계를 짚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