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이전에도 미국에서는 사이버 테러의 위험성에 대한 논의가 없지 않았다. 1999년 미 해군대학원(NPS) 소속 ‘테러-비정규전 연구센터’는 ‘사이버 테러 : 전망과 의미’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펴냈다. 보고서는 조심스러운 낙관론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장난기 어린) 성가신 해킹이 아닌, 정도가 심한 공격에 대한 방어장벽은 현재로선 매우 높다. 일반적으로 테러리스트들은 효과적인 작전을 펴기에 필요한 수단과 인력을 지니고 있지 못한 상태다. 사이버 테러는 현재가 아닌 미래에 일어날 테러이고, (본격적인 테러공격의) 보조수단으로 시도될 것이다.”
테러 근거지 된 도심 인터넷 카페
2000년 10월 NPS는 여러 전문가를 모아 학술회의를 열고 두 번째 보고서를 냈다. 회의 주제는 그동안 무장투쟁을 벌여온 저항집단들이 사이버 테러를 벌일 수 있는지였다. 회의에서 거론된 무장집단은 5개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스리랑카 반군인 타밀 호랑이 해방전선(LTTE), 바스크 분리독립집단(ETA), 콜롬비아 혁명무장군(FARC), 체첸 반군이다.
참석자들은 체첸분리주의 반군이 러시아 주식시장에 대해 사이버 테러를 가했을 때 어떤 결과가 빚어지는지 모의실험을 했다. 그 결과를 보고 만들어진 보고서의 결론은 1년 전에 나온 것과 같았다. “테러리스트들은 사이버 테러에 매력을 느끼겠지만, 그들이 지닌 정보기술은 투쟁전략과 전술에 적용할 만한 단계에 이르진 못했다.”
9·11 테러 1년 전에 나온 이 보고서에서 NPS팀은 “정보통신 혁명으로 말미암아 테러집단이 자신의 메시지를 더욱 쉽게 발표할 수 있게 됨으로써 폭력을 사용할 필요가 줄어들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9·11 이후의 현실은 그런 전망이 잘못됐음을 보여준다. 사이버 공간의 확대가 테러와 폭력을 줄일 것이란 전망은 틀렸다. 비행기에 가득한 연료를 폭발물로 이용한 9·11 테러는 피해규모와 테러전술에 있어 전례가 없는 극적인 것이었다. 오사마 빈 라덴의 알 카에다 추종세력은 일상적으로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
9·11 한 달 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해 수도 카불을 점령할 무렵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무리는 아프간 동부의 중심도시 잘랄라바드에서 가까운 눈 덮인 산악지대 토라보라에 웅거하고 있었다. 미군의 공습과 북부동맹의 군사적 압박이 심해지자 그들은 생존을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그때 알 카에다 간부들의 배낭 속에는 노트북 컴퓨터가 들어 있었다. 그 노트북을 켜면 초기화면에는 9·11 당일 비행기를 몰고 세계무역센터에 부딪힌 모하메드 아타의 얼굴이 나타난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나는 동안 알 카에다는 물리적 투쟁현장을 사이버 영역으로 넓혀간 역사상 최초의 게릴라 운동단체가 됐다. 휴대용 컴퓨터로 무장한 젊은 반미(反美) 전사(jihadist)들은 비밀 근거지 또는 도심의 인터넷 카페에서 투쟁이념과 기술을 퍼뜨린다. 9·11 뒤 아프가니스탄 근거지를 잃었지만 사이버 공간은 그에 버금가는 훌륭한 근거지이자 새로운 훈련장이다.
이라크에서 활동하는 반미 저항세력도 사이버 공간을 적극 활용한다. 폭탄차량을 이용하거나 자살폭탄으로 테러를 벌이거나 매복으로 미군 순찰차량을 기습공격해온 저항세력은 인터넷을 통해 일상적인 군사훈련과 공격기술을 가르치고 배운다. 인터넷의 익명성은 그들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훌륭한 장치다. 스페인 마드리드 열차테러를 비롯, 이집트와 카타르 등에서 벌어진 각종 테러사건도 인터넷을 통해 논의되고 계획됐다.
우주처럼 넓은 사이버 공간의 한구석에서 테러음모를 꾸미는 소집단이 주고받는 e메일을 잡아내기란 제아무리 FBI나 CIA라도 어려운 일이다.
서방 정보기관의 분석으로는, 알 카에다와 그 동조세력은 웹 사이트에 광범위하고 역동적인 훈련교범들을 담은 ‘온라인 도서관’을 지었다. 각종 화공약품을 어떻게 섞어야 살상효과를 높일 수 있는가, 어떻게 위장해야 시리아를 거쳐 이라크로 잠입할 수가 있는가, 미국 병사를 어떻게 죽일 것인가, 깜깜한 사막에서 적의 추격을 받아 도망칠 때 어떤 별을 보며 방향을 잡을 수 있는가 같은 정보가 들어 있다. 이런 내용을 담은 웹 사이트는 대개 아랍어로 씌어 있지만, 파키스탄의 공용어인 우르드, 아프간 언어인 파슈토를 비롯한 여러 언어로도 뜬다.
전투적 웹 사이트들이 보여주는 동영상은 일찍이 오사마 빈 라덴의 알 카에다 기지에서 이뤄진 군사훈련의 복사판이다. 알 카에다 쪽에서 제작한 비디오 필름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행한 훈련상황을 보여준다. 이 필름은 도로에서 벌이는 기습작전, RPG(로켓 추진 총류탄) 사용법, SA-7 지대공 미사일 사격법을 설명한다. 이 필름에선 인질을 어떻게 납치하는가를 보여주는데, 아랍계 훈련교관은 피랍자 역할을 맡은 남녀에게 영어로 “움직여! 움직여!(Move! move!)”라고 외친다.
9·11 이전만 해도 알 카에다 요원들은 군사훈련을 받기 위해 아프간이나 예멘, 또는 아프리카 수단으로 가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의 보급으로 그럴 필요가 줄어들었다. ‘알 카에다의 사우디아라비아 지부’라 주장하는 한 조직은 2004년 인터넷 잡지 ‘무아스카르 알-바타르(칼의 기지)’를 창간하면서 반미 지하드의 잠재적 예비군들에게 이렇게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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