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둥성 타이안에 있는 태산.
‘붉은 수수밭’의 무대는 산둥(山東)성, 구체적으로는 산둥성 가오미(高密)다. 이곳에서 수수밭과 관련된 주요 장면을 찍었고, 나머지는 인촨(銀川)에 있는 중국 최대 규모의 영화 세트장인 서부 영화 세트장에서 촬영했다. ‘붉은 수수밭’은 머옌(莫言)의 연작 장편소설 ‘붉은 수수밭 가족’을 각색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출판된 ‘붉은 수수밭’이란 제목의 번역본 2종은 이 연작소설 중 한 편만을 번역한 것이다. 영화는 전 5편의 연작장편 가운데 ‘붉은 수수밭’과 ‘고량주’ 2편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원작자 머옌은 중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다. 우리나라에도 ‘탄샹싱’ ‘풍유비둔’ ‘술의 나라’ 같은 작품이 번역, 소개됐다. 머옌의 고향이 바로 산둥성 가오미다. 가오미는 머옌에게 있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자 문학의 고향, 그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문학의 공화국’이다. 머옌의 소설은 기본적으로 산둥성 가오미 이야기다. ‘붉은 수수밭’도 그렇다. 장이머우는 산둥성 출신은 아니지만 ‘붉은 수수밭’은 궁극적으로 산둥성 가오미의 이야기라는 점을 제대로 포착해 영화화했다.
산둥성은 한국인에게 매우 친근한 곳이다. 한국에서 제일 가까운 중국이기도 하다. “웨이하이(威海)와 옌타이(煙臺), 칭다오(靑島)가 있는 자오둥(膠東) 반도에서 새벽닭이 울면 인천에 들린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1980년대 중국에서 한국으로 건너 온 화교 대부분이 산둥 출신이고, 우리나라에서 먹을 수 있는 중국요리도 대부분 산둥요리 계열이다.
한국인과 닮은 ‘산둥 호한(好漢)’
산둥요리는 중국 4대 요리 중 하나다. 산둥이 과거 노(魯)나라 땅이어서 산둥요리를 ‘노채(魯菜)’라고 부르는데, 담백하고 재료 고유의 맛이 살아 있는 게 특징이다. 우리나라 중국음식점에서 먹을 수 있는 요리 가운데 닭고기를 재료로 한 것은 라조기, 깐풍기 등 대부분 ‘기’자로 끝난다. 이것은 산둥 지역 사투리가 계(鷄)를 ‘기’로 발음한 데서 연유한다.
한국 사람들이 산둥에 특별한 애착을 느끼는 것은 지리적으로 가까워서만이 아니다. 산둥 사람들은 기질 면에서 한국인과 닮은 점이 많다. 흔히 산둥 남자들을 ‘산둥 호한(好漢)’, 즉 산둥 대장부, 산동 호걸이라고 한다. 기질이 거칠다고 할 정도로 호탕하고, 열정적이고, 다혈질이다. 더구나 그런 기질 탓인지는 몰라도 산둥 사람들은 술을 아주 잘 마신다.
10여 년 전 산둥을 처음 방문해 산둥성의 성도인 지난(濟南)에서 저녁을 먹을 때였다. 접대를 받는 자리였는데, 테이블에 고량주는 가득인데, 고량주를 마시는 작은 잔이 보이지를 않았다. 그런데 식사가 시작되자 맥주컵의 3분의 2정도 되어 보이는 큰 유리잔에 고량주를 가득 따라주는 게 아닌가. 세 번에 나눠 마시라고 하기에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는데, 그것도 잠시일 뿐, 원탁에 앉은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한 사람 한 사람씩 건배를 제의하는 데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붉은 수수밭’은 그런 산둥 대장부, 산둥 호걸의 기질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영화다.
‘붉은 수수밭’의 무대인 가오미에 가기 위해 먼저 칭다오로 간다. 가오미는 칭다오에서 기차나 버스로 1시간30분 거리에 있다. 칭다오 공항에 내려 시내로 들어가는데, 길가에 보이는 것이 온통 한글 간판이다. 베이징과 상하이에 각각 5만여 명의 한국인이 살고 있는데, 산둥에는 8만여 명이 살고 있다. 칭다오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숫자도 약 1만8000개로, 베이징과 상하이에 있는 한국 기업 수를 합친 것과 맞먹는다. 우리나라가 중국에 투자한 금액의 절반가량이 산둥에 집중되어 있다. 칭다오는 산둥 지역 중에서도 한국인이 가장 많이 진출해 있는 곳이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인들이 이곳 부동산에 집중 투자해 부동산 투기 바람을 일으켰고, 지금도 여기저기서 한국인용 아파트가 건설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