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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수수밭(紅高粱)’

원시 열정의 영웅들, 오만한 현대문명에 짓밟히다

‘붉은 수수밭(紅高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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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성의 도시 칭다오

‘붉은 수수밭(紅高粱)’

1988년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한 영화 ‘붉은 수수밭’

칭다오는 이민도시이자 식민도시이고, 중국과 서양, 동양과 서양이 뒤섞인 혼성의 도시다. 상하이와 흡사하다. 칭다오에 들어온 첫 번째 이방인은 독일인이다. 그때가 1897년 11월이다. 아편전쟁(1840) 이후 영국과 미국, 프랑스는 상하이를 비롯한 남부 지방 곳곳을 점령했으니 중국 진출에 있어 독일은 한발 늦은 셈이다. 독일은 칭다오에 군침을 흘렸다. 톈진과 비교하면 베이징에서 멀기는 하지만 부동항인데다 산둥성의 자원이 더없이 탐이 나, 호심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런데 천우신조로 침략을 감행할 기회가 왔다. 독일 선교사 두 명이 산둥성의 한 교회에서 살해당한 것이다. 이른바 ‘교주만 사건’이다. 독일은 이 사건을 구실로 칭다오를 침공해 1897년 11월13일에 칭다오의 주인이 된다. 독일로서는 동아시아 최초의 식민지를 구축하는 영광스러운 날이었다. 지금도 칭다오 해변을 따라 남아 있는 서구식 건물들, 산 정상에 우뚝 서 있는 독일군 사령관 관저 등이 바로 독일 점령 시대의 유물이다.

독일에 이어 일본이 칭다오에 들어왔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일본이 독일군을 격퇴하고 칭다오를 차지한 것이다. 일본인이 칭다오에 몰려들면서 칭다오에 일본 바람이 불었다. 독일 점령 시절에는 316명이던 일본인 숫자가 1921년에는 2만명으로 늘어났다.

사회주의 시장경제 시대를 맞아 이제 칭다오에는 한국 바람이 불고 있다. 독일과 일본은 모두 제국주의 침략의 형태로 칭다오에 들어왔지만 한국인들은 사회주의 시장경제 시대에 개발 열풍을 몰고서 칭다오에 자본주의 성공 신화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한국인에게 칭다오는 새로운 사업 기지이지만, 칭다오에 사는 중국인에게 한국은 어떤 의미일까. 칭다오를 거쳐간 독일인이나 일본인과 달리 한국인은 칭다오에서 중국인과 상생하는 가운데, 일찍이 칭다오 역사에 없던 새로운 시대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그러기 위해서는 칭다오로 달려가는 한국인이 좀더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중국을 만만하게 보지 말 것이며, 칭다오 사람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싼 임금 하나만 보고 무턱대고 칭다오를 황금목장으로 여기지 않는 냉철함도 지녀야 한다. 요즘 칭다오에는 야반도주하는 한국 기업인이 늘고 있다고 한다. 무작정 칭다오에 왔다가 완전히 실패하고 직원들에게 임금도 못 줄 처지로 내몰려 공장까지 내팽개치고 야밤에 도망하는 것이다. 한국 기업을 위해서도, 칭다오를 위해서도 칭다오로 달려갈 계획을 세우는 한국인은 좀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칭다오에 한국 사람이 많은 것은 칭다오의 자연환경이 한국과 비슷한 데도 이유가 있어 보인다. 칭다오는 도교(道敎)의 명산인 라오산(?山)에 에워싸여 있다. 흡사 북한산에 둘러싸인 서울을 보는 듯하다. 한국 사람들은 뒤에 산이 있고 앞에 물이 있어야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느끼는데, 칭다오가 딱 그렇다. 기후가 쾌적하고, 환경이 깨끗하며, 가로수와 녹지가 푸르게 가꿔져 있는 모습이 한국과 매우 흡사하다.

칭다오의 전통 주택은 붉은색 기와지붕에 노란색 벽이다. 이런 전통 주택들이 해변 산등성이를 따라 굽이굽이 늘어서 있다. 중국의 다른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이국적인 풍경, 맑은 공기와 깨끗한 환경, 조용한 해변이 어우러져 멋진 휴양지를 연출하는, 참으로 매력적인 도시가 칭다오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 칭다오는 골목골목 유명 인사가 살았던 옛집이 즐비하다. 유명 작가 라오서(老舍)가 대표작 ‘낙타상자’를 이곳에서 썼고, 근대 초기의 사상가이자 개혁가인 캉유웨이(康有爲)도 여기서 말년을 보냈다.

중국인의 고난이 서린 철길

독일이 칭다오를 차지한 뒤 칭다오에 세 가지가 생겼다. 철도와 맥주, 그리고 해수욕장이다. 1899년 9월 독일은 칭다오와 산둥성 내지를 잇는 철도를 건설하기 시작한다. 산둥성 내지에 있는 석탄을 비롯한 자원을 효과적으로 반출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1903년에는 독일인답게 맥주 공장을 지었다. 전세계적으로 칭다오의 이름을 알린 칭다오맥주가 탄생한 것이다. 칭다오맥주 공장 앞은 맥주 거리라고 한다. 해마다 8월10일 전후에 이 거리에서 맥주 축제가 열린다. 칭다오맥주가 맛이 좋은 것은 독일인들이 전수한 제조 기술 덕도 있지만 칭다오의 명산 라오산의 물맛 덕분이다. 칭다오맥주의 상쾌함에는 독일 식민지 시대 칭다오의 슬픈 역사가 녹아 있다.

칭다오에서 기차를 타고 가오미로 간다. 이 철로 때문에 수많은 중국인이 죽었다. ‘붉은 수수밭’의 원작을 쓴 머옌의 또 다른 소설인 ‘탄샹싱’은 독일이 철도를 건설할 때 저항한 산둥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독일은 1901년 칭다오에서 가오미까지 철도를 건설한다. 그런데 이 철도 공사에 반대한 중국인들이 있었다. “쇳덩어리의 후손인 서양 귀신”이 철로를 놓아 “천지를 깨어나게 하고” 가오미의 “풍수지리를 파괴하고 동네 물길을 망가뜨린다”는 이유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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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현대문학 gomexico@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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