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핵실험 직후인 2006년 10월10일 오전, 히로시마 피폭자들이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원폭위령비 앞에서 항의 농성을 벌이고 있다.
‘비핵국가 일본’ 원칙이 도전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1964년 중국이 최초로 핵실험을 단행하고 미국이 베트남전쟁에 개입하자, 일본 정부는 비밀리에 몇몇 학자들로 구성된 위원회에 핵무장 비용과 이익을 검토하는 연구를 지시했다. 핵 옵션에 대한 또 다른 비밀연구가 1995년 방위청에 의해 수행된 바도 있다. 1994년 ‘북한 핵 위기’ 직후의 일이었다. 두 보고서 모두 일본은 미국의 안전보장 제공에 지속적으로 의존해야 하며, 핵무기 개발은 미일 관계를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냉전 종결 이후 아시아 지역의 안보환경이 변하면서 핵무기 개발 반대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책집단이 등장했다. 1998년 북한의 탄도미사일 실험을 계기로 일본 열도는 탈냉전이라는 환경이 이전보다 더 안전하다는 생각을 버리게 됐다. 2006년 북한의 중거리 미사일 실험과 핵실험은 잠재적 공격에 대한 일본의 두려움을 강화시켰고, 여당 주요 간부들까지 핵무기 보유에 관한 공개 토론을 요구하고 나섰다. 미국과 인도가 핵의 민간분야 이용에 관한 합의를 맺자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약화가 초래될 것이라는 우려도 일본 내에서 확산됐다.
중국의 급속한 군 현대화와 무기체계의 발전도 우려를 배가시키고 있다. 일본은 중국의 미사일 발전과 잠수함 전력, 핵 전력의 근대화를 아시아 지역의 명시적인 우려로 지적해왔다. 중국의 군사비 지출은 증가일로인 반면 일본의 방위비는 정체 혹은 감소 추세에 있다. 중일 관계는 개선조짐에도 불구하고 근본적 불신과 갈등요소를 안고 있다.
일본의 핵에너지 프로그램
세계 3대 핵에너지 이용국인 일본에서 원자력 에너지는 전체 에너지원의 35%를 차지한다. 55개의 경수로형 원자로(4958만kW)를 보유하고 있고, 두 개의 원자력 발전시설이 건설 중이며, 향후 10여 년 안에 7기가 추가 건설될 예정이다. 완전히 자주적이고 자립적인 핵연료 공급 사이클을 완성한다는 것이 일본의 정책목표다.
일본의 민수용 핵 발전 프로그램에서 가장 논쟁이 되는 부분은 재처리 플루토늄의 방대한 재고량과 고도의 핵연료 사이클 두 부분이다. 플루토늄은 우라늄을 원자로에서 사용하고 난 이후 얻게 되는 부산물이다. 사용 후 연료에 포함된 플루토늄을 그대로 무기로 사용할 수는 없지만, 재처리 과정을 통해 원자로급 플루토늄을 분리해낸다면 잠재적으로는 바로 핵무기로 전용할 수 있다.
재처리 플루토늄의 전세계 재고량은 군사용, 민수용을 합해 현재 500t 정도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가운데 민수용 재처리 플루토늄의 재고량은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일본의 경우 자국 내에 보관 중인 민수용 플루토늄 재고량 6.7t과 해외에 위탁 보관 중인 38t의 재처리 플루토늄이 있다. 이는 1000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엄청난 양이다. 일본의 민수용 플루토늄 재고는 2020년까지 70t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