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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행 성형관광단 모집합니다 미얀마에도 큰 부자가 많~아요”

‘경제 빗장’열어젖힌 기회의 땅 미얀마

“한국행 성형관광단 모집합니다 미얀마에도 큰 부자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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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양곤 땅값 서울 뺨쳐… 1평 7000만원
  • ● 미국-중국이 격돌하는 인도양의 전략적 요충
  • ● ‘투자 1위’ 중국, ‘영향력 1위’ 일본, 한국은…
  • ● 한류 덕분에 한국인 호감도 급상승
“한국행 성형관광단 모집합니다 미얀마에도 큰 부자가 많~아요”

활기찬 휴양도시 삥우린 풍경.

한국인에게 미얀마의 이미지는 무겁고 음울하다. 1983년 버마(미얀마의 옛 국호) 아웅산 국립묘지 폭파사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8월 8일 미얀마 양곤으로 향하는 에어아시아 AK850편. 미얀마는 중국과의 국경무역을 제외하면 육상을 통해 외국인의 입국을 허락하지 않는 색다른 국가다. 국경을 접한 태국과 인도에서조차 항공로를 이용해 입국해야 한다. AK850은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출발했다. 기자가 앉은 자리 양쪽에 허름한 차림의 중년 남성과 고급스러운 슈트에 롤렉스 시계를 찬 청년 사업가가 앉았다. 서로 조심스러워하던 세 명의 남성은 이륙 1시간이 지나자 말을 섞기 시작했다. 한국인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는 한국인이에요. 태국과 말레이시아에서 10여 년간 사업을 했답니다. 이번에 미얀마에 가는 이유는 살 집을 구하기 위해서죠. 진작 구했어야 하는데 미적거리는 바람에 좋은 기회를 놓친 것 같아 아쉽네요. 요즘 미얀마 집값이 폭등했거든요. 미얀마는 저에게 기회의 땅이 될 거예요.”

‘롤렉스 청년’은 중국계 미얀마인이다.

“저는 미얀마 사람입니다. 그렇게 안 보인다고요? 정확히는 ‘버미스 차이니즈’, 즉 화교 집안이에요. 미얀마는 저의 사랑하는 조국이랍니다. 부모님은 양곤에서 보석 비즈니스를 하고 계셔요. 저는 화교 학교를 거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대학을 나왔고 현재는 화장품 사업을 합니다. 미얀마의 한류 붐을 혹시 아시나요? 정말로 뜨겁습니다. 많은 여성이 한국에 가서 성형수술을 하고 싶어 해요. 놀랍다고요? 미얀마에도 부자는 정말 많아요.”

전기 없는 야생 도시



“한국행 성형관광단 모집합니다 미얀마에도 큰 부자가 많~아요”

미얀마 양곤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삼성전자 휴대전화 광고.

청년은 영어에 능숙했다. 한국행 성형관광단을 모집해 돈을 벌 계획이라는 소리를 듣고 머릿속이 잠시 복잡해졌다. 도대체 미얀마가 서 있는 지점은 어디일까? 군부독재가 50년간 이어졌으며 2007년 민주화 시위 때는 시민이 학살당했다. 아웅산 수치 여사가 2011년이 돼서야 정치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을 만큼 정치 후진국이면서 아시아의 빈국 중 하나다.

1시간 50분 만에 비행기는 양곤 공항에 미끄러져 들어갔다. 비가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다. 이 지역은 우기(雨期)와 건기(乾期)가 명확하게 구분된다. 특히 6월부터 9월까지는 거의 매일 비가 내린다. 한국인 사업가는 이렇게 말했다.

“미얀마를 직접 보면 깜짝 놀랄 거예요. 치안이 훌륭하고 경제 내공도 탄탄합니다. 쌀과 보석을 국경무역을 통해 중국과 교환하는데,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한답니다. 미얀마는 당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풍요로운 나라예요.”

양곤 국제공항의 입국 수속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비자를 갖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쉽게 통과할 수 있다. 비자 발급 수수료는 미얀마 정부가 재정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미얀마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내국인보다 생활비가 최소 2배가량 더 든다. 외국인은 각종 입장료는 물론이고 버스요금, 심지어 거주용 전기료도 현지인보다 2배가량 더 내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기자는 한 교민의 집을 숙소로 이용할 예정이었는데 집주소와 연락처를 수첩에 적어놓지 않은 것. e메일에 기록이 남아 있는 터라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인터넷만 연결되면 해결되는 일인데, 국제공항인데도 와이파이(Wi-Fi)가 터지지 않았다.

미얀마 한인 사회는 사람 수가 1000명 남짓밖에 안 된다. 공중전화로 한국인을 찾아 기자가 신세를 지기로 한 교민의 집주소와 연락처를 수소문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공항에는 ‘놀랍게도’ 공중전화가 없었다. 사설 전화를 이용해야 하는데, 업체 직원이 모두 퇴근했다는 것이다. 공항 경비원이 기자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안.녕.하.세.요”라고 서툰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면서 휴대전화를 빌려줬다. ‘한류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군데 전화를 걸어봤지만 기자가 찾는 교민의 연락처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누군가 “인터넷 카페에 가보라”고 조언했다. 공항 앞에 모여 있는 택시기사들은 시내까지 10달러를 받는다고 했다. 물가를 생각하면 엄청난 폭리다. 칠흑같이 어두워진 도심을 헤매다 찾아간 인터넷 카페에는 한국에서 10여 년 전에 쓰던 중고 컴퓨터가 놓여 있었다. 인터넷에 접속하려는 순간 컴퓨터 전원이 갑자기 꺼졌다. 정전이었다. 그렇게 20여 분을 기다렸을까. 전기가 복구됐다. 이튿날 만난 사람들은 “운이 좋았다”고 덕담을 건넸다. 보통은 다음 날 아침까지 ‘먹통’이 된단다.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도착한 교민의 집도 컴컴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손전등에 의지해 샤워를 하는 기분이 무척이나 묘했다.

양곤의 황량한 풍경

“불과 수개월 전만 해도 도심까지 차로 15분이면 달려갔어요. 그런데 이제는 1시간이 걸리네요. 도로 공사가 연거푸 이뤄지는 데다 자동차 수가 폭증해서 그렇습니다.” 김균배(56) 미얀마중앙사회교육원 원장은 한숨을 내쉬면서 이렇게 말했다.

2011년 미얀마가 국제사회에 빗장을 열면서 중국, 일본에서 들여온 중고차가 순식간에 거리를 가득 메웠다. 15년 넘게 미얀마에서 생활한 김 원장도 일제 자동차 한 대를 구입했다. 자동차, 휴대전화를 비롯한 소비재 수요가 급증세라고 한다.

명문대학인 양곤대 주변 풍경은 당혹스러웠다. 1930~50년대에 지은 빌딩이 완공 이후 단 한 번의 페인트칠도 안 한 것처럼 낡은 외관을 한 채 서 있었다. 비가 그친 도로는 울퉁불퉁했다. 도처에 웅덩이가 파여 있었다. 길에는 시커먼 매연을 내뿜는 구식 자동차가 내달렸다. 자동차 운전자는 대부분 롱지(Longyi)라는 이름의 전통 치마를 입은 사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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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곤=정호재│동아일보 기획특집팀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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