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병두 총장(오른쪽)과 유화선 시장.
아직도 손병두(孫炳斗·66) 총장이 어렵기만 하다는 유 시장은 1974년, 당시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과장이던 손병두 총장을 처음 만난다. 청년 유화선은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에서 학훈장교 출신을 우선적으로 뽑는다는 신문광고를 보고 지원해 합격했다. 당시 삼성그룹 회장비서실엔 전국의 우수한 두뇌들이 모여 있었다. 서울대 법대와 상대 출신이 주를 이루는 회장비서실에서 사회학과를 나온 키 작은 신입사원 유화선은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그러던 그에게 임무가 맡겨졌다. 비서실 내에서 새로 홍보업무를 담당하게 된 손병두 과장이 직원간 의사소통이 어느 정도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기획한 ‘사내 직원간 커뮤니케이션’ 프로젝트가 그에게 떨어진 것.
“프로젝트를 기획했는데 일을 맡길 만한 적임자가 없었어요. 대부분 법대, 상대 출신이니 설문지를 만들고 여론조사를 해본 사람이 있어야죠. 그런데 새로 입사한 똘똘하게 생긴 유화선이 마침 사회학과를 나왔더군요. 그래서 초짜 신입사원에게 큰일을 맡기게 됐죠. 사실 큰 기대를 하진 않았어요.”
손병두 총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엄하고 지독한 양반’
“과장님이 저를 부르시고는 대학 다닐 때 여론조사 방법론을 배웠냐고 물으시기에 리포트도 작성해봤다고 대답했지요. 그랬더니 열심히 해보라면서 프로젝트를 던져주셨어요. 제가 봐도 아주 중요한 일이었는데….”
그는 사내에서 ‘지독한 양반’이라고 소문 나 있던 손 과장을 대하는 게 어려웠다. 어떻게 하면 마음에 들게 일을 해 낼까 고심하며 설문지를 작성하고, 직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취재해 보고서를 만들었다. 하루 한 시간만 자면서 만들어낸 보고서지만, 손 과장에게 제출해놓고는 노심초사했다.
“보고서를 받아 보고는 깜짝 놀랐어요. 거의 완벽하게 처리했더군요. 여관에서 작업하며 혼자 끙끙대더니 결국 ‘작품’을 만들어 왔어요. 유화선을 다시 봤죠. 유화선은 그렇게 첫 테스트에 합격, 저와 많은 일을 함께 했어요.”
상사가 유능한 부하 직원을 만나는 것도 복이고, 부하 직원이 유능한 상사를 만나 일을 배우면서 성장하는 것 또한 큰 복이다.
“그때는 기회를 잘 잡아서 이미지를 업그레이드해야겠다 하는 생각은 없었어요. 오로지 어떻게 하면 과장님한테 야단 덜 맞고, 잘했다고 칭찬받을까 고민하면서 열심히 했을 뿐이죠. 그래서 더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과장님이 일에 있어서 얼마나 엄격하고 지독하셨나 몰라요.”
당시 삼성비서실 분위기는 딱딱하고 엄숙했고, 그 정점에 손병두 과장이 있었다.
그 시절 야근을 밥 먹듯 했는데, 그와 손 총장이 함께 저녁을 먹을 때면 메뉴는 어김없이 김치찌개였다. 두 사람은 밥을 한 알도 안 남기고 싹싹 긁어 먹으며 학창시절 도시락밥이 김치국물로 얼룩졌던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손 총장은 그에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뒤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고학했던 과거도 들려줬다.
유 시장과 손 총장은 직장에서 매일 얼굴을 마주쳤을 뿐 아니라 집도 가까웠다. 둘 다 신림동의 18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삼성 사우촌에 살았기 때문이다. 유 시장은 그 시절 부인과 손을 꼭 잡고 산책하는 손 총장을 부러워했고, 지금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