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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木壽)’ 신영훈

“인격을 담아내는 이 세상 유일한 집이 한옥입니다”

‘목수(木壽)’ 신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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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木壽)’ 신영훈

신영훈 선생은 우리 문화와 전용의 총체적 집결지가 한옥이라고 강조한다.

“지금 김 선생 입은 그게 양복이요? 우리 치수에 맞게 만든 21세기 한복이라고 해야 옳은 거 아니겠소? 걸핏하면 전통한옥이라고 말들 하는데 전통은 뭐고 한옥은 또 뭐야? 물으면 대답을 한 마디도 못하면서 전통한옥이라고 말만 하거든. 사는 방법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잖아. 어떻게 먹고 입고 잠자고 아이 낳고 사느냐가 문화이고 그게 우리에게 가장 편리한 방식으로 이어져 내려온 게 전통이지. 고구려 집과 신라 집은 같았을 리가 없지. 백제와 조선도 달랐고. 그러면 어느 게 전통한옥이라는 거야?”

거칠게 말한다면 한국 사람이 입는 옷은 다 한복이고 한국 사람이 사는 집은 다 한옥이라고 할 수도 있으리라. 사람이 중심이지 껍데기가 중심일 수 없다는 말이다. 다만 개화기 이래 우리는 무엇이 우리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문화’인지 연구하고 토론해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을 생략한 채 너무나 급작스럽게 남 하는 방식을 그대로 좇은 것이 문제다. 이제 이만큼 살아왔으니 남의 잣대 아닌, 우리 몸과 마음에 가장 잘 맞는 집과 옷과 음식은 무엇인지 궁리하고 공부할 때가 됐다는 것이 신영훈 선생 말씀의 요지라고 나는 이해했다.

서양 문물에 비판 없이 경도된 오늘의 사조 또한 머잖아 끝날 때가 올 것이다. 문화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그럴 때 우리 고유의 미덕과 장점을 되찾으려 해도 자칫 다 사라져버리면 큰 탈 아닌가, 당장 교육현장에서 그걸 가르쳐 인재를 기르는 일이 시급하다는 것이 신영훈 선생의 문제의식이고 초조함이고 울분이었다.

“몸뎅이에 안 맞는 옷을 억지로 입을 수 없잖아? 그 몸뎅이가 들어가 사는 것이 집인데 집도 몸뎅이에 맞게 지어야 편안하고 싫증이 안날 거 아니겠어? 인제 아파트에 싫증나서 튀어나오는 사람이 점점 늘어날 거라고. 아이들이 집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것도 집이 제 몸에 안 맞아서 그런 거야. 새로 우리에게 맞는 집을 지으려 해도 뭘 알아야 할 거 아냐? 대학 건축과에서 한옥은 아예 취급을 안 해. 한옥만 그렇겠어? 안 봐도 훤하지. 음식도 의복도 음악도 예법도 제대로 가르치는 데가 없는 거 같애.

언제까지 이런 엉터리 교육들을 시킬 거야? 얼마나 더 해야 직성이 풀릴 거야 ? 학교에는 왜 보내고 공부는 왜 시켜? 형제끼리 사촌끼리 이웃끼리 의지하고 사는 법을 배우고 자기 삶을 즐겁게 만들기 위해 공부하는 거 아냐? 요새는 학교에서 함께 사는 법 대신 남을 누르고 이겨야 한다고 가르치잖아? 사람이란 자기 생리에 따라, 개성에 따라 집도 옷도 음식도 저한테 맞아야 행복하고 즐거운 법이거든.



제 집에 살면 당당하고 신명이 나지만 남의 집에 세를 살면 어깨가 처지고 풀이 죽잖아? 그런데 서양놈들 하는 대로 따라 한다 해서 그게 진짜배기로 즐거워지겠어? 넓은 아파트에 산다고 꺼떡거려쌓지만 백년 이백년 그렇게 살 수 있겠어? 벌써 싫증나서 튀어나오는 사람이 숱한데?”

설명할 수 없는 이끌림

집은 한 민족의 총체적인 문화가 담긴 소중한 유산이고 자료다. 최순우 선생의 말씀대로 ‘조선시대 주택은 우리 민족이 쌓아온 생활문화의 기념탑이고 우리 생활에 가장 가깝고 여전히 새로우며 앞으로도 새로울 수 있는 한국미의 요소를 듬뿍 지녔다’.

그러나 우리가 한옥 살림집의 소중함을 채 알기도 전에 그것들은 무너지고 헐리고 물속에 잠겼다. 그 자료를 알뜰히 정리하기는커녕 몰가치하고 미개한 것으로 몰아 소홀히 대접했다. 광복과 전쟁 후, 급하게 복구된 블록집에서 1970년대 새마을 주택을 거쳐 오늘의 빌라와 아파트에 이르기까지 우린 날림으로 지은 서양집에서 60년 넘게 살림을 꾸려왔다. 다행히 신영훈 선생과 그의 명콤비 김대벽(사진가) 선생 같은 이가 있어 수천의 집이 실측과 도면과 사진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정보화사회의 개성 있는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산업사회의 몰취미한 집을 선호하지 않는다. 첨단 고층빌딩 숲을 대견해하지도 않는다. 그리운 한옥!

한옥이 서양집보다 더 나은 주거공간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한옥이 암만 홀대받아도, 짓는 기술을 가르치는 학교가 없어도, 한옥은 꾸준히 명맥을 이어왔다. 최근에는 새로운 한옥 붐이 일어나고 있는 게 확실하다. 신영훈 선생의 책을 사러 교보문고에 갔더니 서점 한 코너가 온통 한옥에 관련한 책이다.

그러나 이제 도시에 한옥을 짓기란 아예 불가능해 보인다. 어쩌면 좋을까. 신영훈 선생에게 그 답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도시에 어울리는 21세기형 한옥을 그가 찾아내준다면?

“경제적인 목적에만 주력한 지금의 아파트는 과도기적인 집일 수밖에 없어. 아파트에는 구수하고 능청스러운 구석이 없잖아. 지금처럼 되바라지게 까발려놓고 살면 머잖아 한계를 느끼게 돼 있어. 그 기세에 밀려 부부가 갈라서는 일도 흔하게 돼버렸지. 현명하지 못하다는 걸 깨달았다면 이젠 스스로를 추슬러 참답게 살아볼 필요가 있겠어 없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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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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