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주교가 정치의 어떤 측면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것으로 (일반 국민이) 혹시라도 오해할까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인권은 바로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이고 사람이 조작할 수 없는 신성한 권리입니다. 인권은 생명의 시작이고 끝이죠. 그중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좁은 의미의 인권도 있고, 넓은 의미의 인권도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모든 권리, 그것은 하느님의 영역입니다.
하느님의 영역을 인간이 함부로 침해하는 것에 대해서는 천주교가 발언을 하지요. 어떤 때는 정치적 견해와 병행할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습니다. 교회의 일관된 생각은 하느님에서 비롯된 신성한 인권을 존중하자는 것이죠. 과거에는 정치적인 측면에서 인권이 훼손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 발언한 거고, 근래에는 제가 배아(胚芽)의 인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천문학 오류는 인정하지만…
▼ ‘배아의 인권’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천주교는 배아도 인간 생명이라는 교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계 역사에서 종교와 과학이 갈등을 빚었을 때 종국적으로 과학이 승리한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소위 지동설(地動說)에 대한 종교재판도 그런 사례지요. 과학자들 중에는 줄기세포 연구에 가톨릭이 지나치게 보수적이어서 과학 발전에 장애가 되지 않겠느냐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갈릴레오 사건은 물리과학 분야지요. 우리 교회가 천문학 분야에서 오류를 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생명은 신비예요. 저는 생명은 인간이 조작할 수 없는 분야라고 봅니다. 물질 측면에서는 우리가 실험을 할 수가 있는데, 생명은 실험의 대상이 아니죠. 배아줄기세포는 사람이 인공적으로 조작할 분야가 아니라고 교회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지금 황 위원처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그러나 우리 교회가 성체줄기세포 연구를 지원함으로써 줄기세포 연구 분야가 더 넓어졌어요. 배아에서 바로 줄기세포를 만드는 것은 어떻게 보면 쉽지요. 그렇게 해서는 안 되니까 다른 게 있을까 하고 찾다가 성체줄기세포로 눈길이 간 겁니다. 과학 발전에 장애가 된다는 표현엔 조금 어폐가 있습니다.
생명체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생명의 현상은 과학적으로 증명되는데, 생명 자체는 우리 감각으로는 모르는 거예요. 생명 현상은 인간의 인식능력을 초월한 겁니다. 우리가 생명을 엉뚱하게 조작했다가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죠.”
▼ 황우석 박사가 논문 조작으로 추락하기 전에 추기경께서 황 박사를 만난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대화를 나눴습니까.
“난치병 환자의 치료를 위해 우리 모두 노력하자는 데 대해서는 뜻이 같았지요. 줄기세포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까지도 공감했어요. 그런데 줄기세포를 어디서 추출하느냐 하는 문제에서 내가 ‘배아로부터 줄기세포를 얻는 것은 안 되고 성체줄기세포 연구는 가능하다’고 분명하게 얘기했습니다. 상당히 강한 수준의 얘기가 오갔지만 큰소리가 나진 않았어요. 배아줄기세포에 문제점이 없지 않다는 것을 황 박사가 인정했죠. 황 박사도 내 얘기에 동의하면서 성체줄기세포가 확실한 단계에 이르면 자기 연구는 스톱하겠다고 하더군요.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함으로써 성체줄기세포 연구가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정 추기경은 진홍색 수단(가톨릭 성직자의 평상복)과 주케토(가톨릭 성직자가 쓰는 빵모자) 차림이었다. 주케토는 탁발 수도사들이 정수리를 햇볕과 추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쓰던 것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성직자의 위계(位階)에 따라 수단과 주케토의 색깔이 다르다. 교황은 흰색, 추기경은 진홍색, 주교는 자주색, 사제는 검은색이다. 교황의 흰색은 하느님의 대리자임을 상징한다. 진홍색은 순교자의 피다. 피를 흘려서라도 교회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투신하라는 의미다. 검은색은 하느님과 교회에 봉사하기 위해 세속의 자신을 죽였다는 뜻.
정 추기경이 주교 시절 찍은 사진을 보면 머리숱이 많아 앞머리가 자주색 주케토 밖으로 밀려나와 있다. 그러나 추기경도 세월을 붙잡을 수 없었던지 지금은 빨간 캡 밑에서 바로 이마가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