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머리를 승려처럼 바싹 깎았다. 고등학생처럼 해맑은 얼굴이다. 고미술품 진위논란이란 태풍의 눈 속으로 들어선, 치열한 싸움판에 뛰어든 주인공이라기엔 너무 젊다. 표정과 태도가 섬약해 보일 정도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의 내용은 결코 여리지 않다.
“두려워요. 겁나지 않을 리가 있습니까. 오랫동안 진품인 줄 알던 작품을 가품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폭탄을 던지는 것과 같아요. 그런 일을 했으니 당연히 떨리죠. 그러나 살찐 것하고 부은 것은 다른 거잖아요. 고름이 찼으면 짜내고 수술을 해야지요. 그래야 남아 있는 팔다리를 건강하게 회복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불안하세요?”
“예, 언제 칼 맞을지 몰라요, 하하. 그래서 사람 많은 데는 안 나가려고 해요. 두렵긴 하지만 내게는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지금 충분히 가난해요. 돈이나 직위가 탐나지 않아요. 가난하게 공부하는 것이 좋아요. 그런데 겁날 게 뭐가 있겠어요?”
머리를 바싹 깎은 이유는 스스로 세상과 타협하지 않기 위해서라 한다. 1주일에 한 번씩 제 손으로 제 머리카락을 밀면서 세상의 유혹과 위협에 허물어지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단다. 하루 두 끼, 깍두기나 김을 반찬으로 소박하게 먹고 외출도 거의 않는다. 지난 몇 년간 연봉 400만원 정도로 버텼다. 그러면서 책을 준비했다. 고서화 감정에 대한 사회적 발언의 방법으로는 책이 최고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 앞에 놓인 ‘진상(眞相)-미술품 진위 감정의 비밀’이란 책이 그 결실이다.
지폐 속 가짜 그림
계상정거도는 퇴계 생존시 도산서당의 주변 산수를 담은 작품이다. 정선이 1746년에 그렸다고 알려져 있고 그동안 겸재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던 그림이다. 그런데 이 그림이 가짜란다. 세상에는 진짜와 가짜가 있다. 진짜를 만드는 사람이 있고 가짜를 만드는 사람이 있다. 뭐가 진짜이고 뭐가 가짜인지를 구분하기가 점점 더 어렵다. 비단 서화만 그런 게 아니다. 감정법을 전문으로 공부하지 않고서는 섣불리 진위를 논할 수가 없다. 아니, 소문난 미술사학자들도 진위를 헷갈릴 만큼 가짜를 만드는 이들의 수법이 지능화하고 있다.
1000원짜리 지폐 속 겸재 그림을 암만 들여다봐도 나는 그게 진품인지 가품인지 구분할 수 없다. 매사가 그렇겠지만 특히 예술품은 아는 만큼 보일 뿐이다. 그는 어떤 근거로 위작이라 판단했을까.
“이건 정교한 위작도 아니에요. 정선 그림에 이런 식으로 하늘을 가리는 그림은 없어요. 따라 그리다 보니 산이 커져버려 하늘 둘 자리가 없어진 거예요. 이 그림은 임모위작이에요. 진작(眞作)을 옆에 놓고 따라 그린 거죠. 따라 그리다 보면 긴장이 풀려서 원래보다 커지게 마련입니다. 아니, 무슨 산이 이렇습니까. 겸재는 작품 수준이 대체로 균질해요. 정교하죠. 산을 굴곡 있게 그리지 이렇게 흐리멍텅하게 구릉처럼 그릴 리가 없다고요. 정선은 획을 삐쳐서 그려요. 빠르고 힘차죠. 이 그림은 70대의 겸재가 그렸다기엔 필체가 너무 느리고 필획의 격이 떨어져요. 겸재 그림에선 폐필(쓸데없는 붓질)이 거의 없어요. 그런데 이건 폐필투성이잖아요.
이 나무 방향을 보세요. 방향이 다 달라요. 대체 바람이 어디서 분다는 겁니까. 겸재라면 이런 그림 안 그립니다. 산을 장표(표구) 부분까지 튀어나오게 그릴 리 없죠. 위조품은 화가의 작품세계를 손상하고 왜곡합니다. 가짜를 상품으로 거래하는 것도 죄악이지만 예술품의 품격을 떨어뜨린다는 게 더 큰 재앙이죠. 계상정거도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작품을 공개해야 합니다.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 기탁해놨다지요. 문화재니까 그걸 꺼내 우리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