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드 에반스 미국 국가경쟁력위원회 부회장.
“미국은 몰락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최신호는 미국인 10명에 8명이 ‘미국이 하루가 다르게 몰락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한다. 그 배경에는 부시 대통령이 작용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낮다는 닉슨 대통령보다도 낮다. 그러나 많은 미국인은 불합격점인 대통령보다는 미국의 미래를 더 걱정하고 있다.
미국의 이 같은 고민의 계기가 된 것은 중국의 부상이다. 1980년대 후반 중국이 기지개를 켜면서 미국의 불편함은 심화됐다. 이 시기에 맞춰 등장한 것이 국가경쟁력위원회(COC·Council on Comp- etitiveness)다. 지난 1986년 시카고대학, 스탠퍼드 대학, 조지타운 대학 등 주요 대학 총장과 메릴린치 회장, 월마트 회장, 듀폰 회장 등 기업인, 노동계와 시민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결성한 미국 내 유일의 국가경쟁력 관련 공동협의체다. ‘미국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통합적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는 이 단체는 이른바 ‘지속가능한 경쟁력(sustainable competitiveness)’을 높이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그로부터 꼭 22년 뒤인 2008년 봄, 마침내 한국에서도 이명박 정부가 ‘국가경쟁력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출범시켰다. 이명박 정부가 미국의 COC를 벤치마킹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공교롭게도 기구 명칭은 꼭 같다. 필자는 최근 미국 워싱턴 DC의 백악관이 바라다보이는 고풍스러운 빌딩에 자리 잡은 국가경쟁력위원회를 찾아, 이 위원회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채드 에반스(Chad Evans) 부회장과 두 시간에 걸쳐 대담했다.
그는 조지아의 에머리 대학에서 경제학을, 조지타운 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했다. 미국의 혁신 어젠다를 창조해낸 국가혁신 이니셔티브(National Innovation Initiative·NII) 등을 이끌고 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마이클 E 포터(Porter) 교수와 함께 ‘경쟁력 지수(the competitiveness index)’ 개발에도 앞장섰다.
▼ 국가경쟁력 때문에 세계 각국이 난리다. 한국에서도 ‘국가 선진화’라는 화두가 대두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가장 경쟁력이 있어 보이는, 부자 나라 미국이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같은 현상이 왜 빚어지고 있나.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선 언론이 평가하는 미국을 한번 보자. 한때 로마에 비견되던 미국이 지금 완전히 ‘그로기 상태’다. 가장 경쟁력 있다는 세계 최강국, 미국이 이렇게 휘청거릴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리더십 부재는 심각한 문제다. 부시 대통령의 지지도는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 사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로 촉발된 미국의 경제위기에 우려의 시선이 많다.
“은행은 무너지고 달러 가치는 끝없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이라크에서는 의미 없는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는 이제 옛말이 되고 말았다. 유럽은 물론이고 아시아 신흥국가들도 이제 미국의 지배력을 공공연히 비웃고 있다. 뭣 때문일까. 미국이 힘과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경쟁력은 글로벌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필요충분 조건이 되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영국도 위기의식을 느끼며 잰걸음이다. 이미 6년 전인 2002년 총리실 산하에 국가전략청(strategy unit)을 발족시켜 최근 ‘영국의 생존전략 지침서’ 등을 발간하는 등 장기전략 수립에 골몰하고 있다. 독일, 프랑스, 싱가포르, 홍콩도 국가경쟁력이라는 화두에 매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