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호

‘애니콜’ ‘아이리버’ 만든 세계적 산업 디자이너 김영세

“또라이, Why not?, What if?가 창의력 3대 키워드”

  • 글: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입력2005-06-28 13: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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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망은 기회를 자석처럼 끌어당긴다”
    • 디자인은 1%의 시장을 보고 뛰어드는 모험
    • ‘심플 쌈빡’ ‘화장기 없는 미인’이 성공 디자인 요체
    • 디자인의 업(業)은 요리, 디자이너는 요리사
    • 이건희 삼성 회장과 하루 종일 디자인 얘기
    ‘애니콜’ ‘아이리버’ 만든 세계적 산업 디자이너 김영세
    영국이자랑하는 롤스로이스와 재규어가 독일과 미국의 자동차 회사로 넘어갔을 때, 자동차 종주국의 자존심은 한껏 구겨졌다. 그러나 영국은 중후장대한 자동차 산업은 버렸을망정 자동차 디자인 산업에선 손을 떼지 않았다.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 GM과 크라이슬러 그리고 포드의 핵심 디자이너들이 모두 영국인이란 사실만 봐도 그렇다. 자동차 산업의 ‘머리’를 빼앗기지 않은 영국은 막대한 부(富)를 창출할 디자인 산업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천재급 디자이너를 찾아라!”

    요즘 한국에서도 디자인 산업의 중요성이 새삼 부각되고 있다. 지난 4월 삼성 이건희 회장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최고 경영진에서 일반 사원까지 디자인의 의미와 중요성을 다시 깨닫고, 세계 일류에 올라선 삼성 제품을 명품으로 만들라”고 계열사 사장들에게 당부했다. “천재급 디자이너를 확충하라”는 이 회장의 지시에 삼성 임원들은 인재를 찾느라 분주하게 눈을 번뜩이고 있다.

    이제 디자인은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촉매제일 뿐 아니라 소비자가 겉모습만 보고도 어느 회사 제품인지 알 수 있도록 기업의 정체성을 각인시키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 김영세 이노디자인 사장은 가히 보배 같은 존재라 할 만하다. 세계적인 디자이너들과 어깨를 겨룰 수 있는 한국인 디자이너인 그는 한국 제품뿐만 아니라 한국의 미(美)를 세계에 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디자인한 MP3 플레이어 ‘아이리버’는 올해 초 라스베이거스 전자쇼에서 기조연설을 한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이 들고 나오면서 명성을 날렸다. 또 그의 작품인 태극 문양을 새긴 펜과 명함케이스는 미국 시카고 현대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그는 세계적인 디자인상을 숱하게 탔고, 경제적으로도 성공했다. 그와 손잡은 레인콤은 일약 MP3 업계의 ‘무서운 아이들’로 성장했고, 삼성 LG 동양매직 등 국내 유수 기업이 그와 함께 일하고 있다. 최근 그는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담은 책 ‘이노베이터’(랜덤하우스중앙)를 펴내 주목받기도 했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일하는 김 사장을 서울 청담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얼굴이나 옷 스타일을 보면 대충 나이를 짐작할 수 있지만, 김 사장의 나이는 좀체 짐작하기 힘들었다. 가슴 바로 위까지 단추를 풀어낸 흰 와이셔츠와 짧지만 멋스럽게 세워 올린 머리 스타일은 20대 후반 같고, 얼굴은 40대 초반처럼 보였다.

    -나이를 물어보면 실례입니까.

    “신문을 보면 꼭 괄호 열고 나이를 적던데. 나이에는 세 종류가 있다고 봅니다. ‘쯩(주민등록증)’ 까면 나오는 나이가 있고, 외모에서 풍기는 나이가 있어요. 마지막이 가라오케 나이예요(그는 말을 하다 말고 두 곡의 노래를 멋들어지게 불렀다). 꽃 피는 동백섬에 봄은 왔건만, 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 우네…(젓가락이라도 두드려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이내 그는 다른 노래로 옮겨갔다). 좋은 사람 사랑했었다면 헤어져도 슬픈 게 아니야 이별이 내게 준 것은 곁에 있을 때보다 너를 더욱 사랑하는 맘….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면 40~50대로 올라가고, 박효신의 ‘좋은 사람’을 부르면 20대가 돼요. 가라오케 나이로 치면 나는 20대이고, 외모로 보면 ‘변장’을 잘하니까 30대 후반이고, ‘쯩’ 나이는 알아서 생각하세요(참고로 그는 1950년생이다).”

    1%의 변화, 99%의 불안

    ‘애니콜’ ‘아이리버’ 만든 세계적 산업 디자이너 김영세
    -모든 분야가 그렇겠지만, 특히 디자이너에겐 차이를 만드는 능력이 가장 중요할 텐데, 나름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또라이’가 되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는 대개 튀는 행동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데, 거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현실의 한계를 인정하고 조금 찾다가 없으면 바로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Why not?(왜 안 돼?)’의 문화가 없기 때문인 것 같아요. 왜 이런 물건이 없을까, 왜 아무도 안 만들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 불편함을 참지 말고 해결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하죠. 다른 디자이너들이 ‘내가 왜 진작 이 생각을 하지 못했지?’ 하면서 안타까워하면 그 디자인은 반드시 시장에서 성공합니다. 디자인은 1%의 시장을 보고 뛰어드는 모험이에요. 1%는 한 방울의 물감이 바닷물에 떨어진 것처럼 미미한 것이 아니라 마치 한 방울의 향수가 커다란 방 전체를 새로운 향기로 채우는 것과 같은 위력을 갖습니다. 좋은 디자인을 쓰는 1%를 보고, 나머지 99%의 기업이 불안해하기 때문이죠.

    하나 더 보태자면 ‘What if?(만약∼이라면)’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자주 합니다. 나에게 미래의 프로젝트를 주는 거예요. 다음에 디자인을 한다면 어떻게 할까, 좀더 장기적인 미래를 그린다면 어떻게 할까. 이럴 땐 편안한 의자에 앉아, TV를 켜놓고-물론 보지는 않습니다-깊은 생각에 빠져듭니다. 이러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새록새록 나오고, 피로도 풀려요.”

    -문제는 그런 ‘또라이’를 알아줄 사람을 만나는 것일 텐데요.

    “열정이 있으면 꼭 만납니다. 열망(desire)이 운명과 만남을 주선하는 것 같아요. 내가 그랬어요. 커서 뭐가 될까하고 고민하던 열여섯 살 때 친구네 가서 미국 디자인 잡지를 보고 ‘이거다’ 했거든요. 말하자면 운명을 만난 것인데, 그래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게 됐죠(의사인 그의 부친은 아들이 미대를 간다고 하자 극구 말렸다고 한다. 미술 계통은 그때만 해도 배고픈 직업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는 고집을 꺾지 않고 서울대 산업디자인학과에 들어갔다. 그 뒤 미국 일리노이 대학원에서 공부했고, 그 대학 교수도 역임했다).

    미국에서 창업하고 어려움을 겪을 때도 운명적인 만남이 있었어요. 골프백을 디자인하고 제작까지 마쳤는데, 10만달러나 쏟아부은 골프백의 판로가 막막했어요. 돈 빌려준 벤처 캐피털리스트는 갚으라고 난리죠. 생각다 못해 직접 골프 상품 박람회가 열리는 플로리다로 날아갔습니다. 막판까지 간 거죠. 전시회장 한옆에 초라하게 부스를 차려놓으니 처량한 생각이 절로 들어요.

    힘의 원천, 조직에서 개인으로

    그런데 한 노인이 아주 오랫동안 내가 디자인한 골프백을 보는 겁니다. 뜨거운 시선을 느낄 수 있었어요. 나중에 알았는데, 미국 굴지의 플라스틱 제조업체인 플램보사(社) 회장이었어요. 그의 초청을 받아 전용기를 타고 플램보 공장을 방문했습니다. 그는 나더러 ‘아이디어가 독특하고 재능 있는 디자이너 같다’고 격려해줬어요. 그러면서 ‘디자이너가 판매에 얽매이면 많은 일을 놓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이 말이 마음에 와 닿았어요.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맞아요. 열망이 있으면 기회가 따라오는 것 같아요. 필연이기도 하고 운명이기도 하고, 우연이지만 열망의 에너지가 컸다고 할까요. 열망은 미래를 자석처럼 당겨주는 것 같아요.”

    ‘애니콜’ ‘아이리버’ 만든 세계적 산업 디자이너 김영세

    스크린이 회전되도록 고안한 김영세 사장의 스케치를 제품으로 실현시킨 삼성 애니콜 휴대전화.아래는 MP3 아이리버와 목걸이형 MP3를 스케치한 그림.

    -창업을 하면서 디자이너로서 명성을 떨치게 됐는데, 창의적인 감성을 발현하려면 언젠가는 모두 창업을 해야 할까요?

    “모두 창업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골치가 아파지는데요, 핵심은 이겁니다. 조직의 힘이 개인의 힘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 개인의 역할을 인정해주는 사회로 가야 한다는 거죠. 한국 기업의 중심이 하드파워(hard power)에서 소프트파워(soft power)로 넘어가야 할 시점이에요. 일부는 벌써 그렇게 가고 있어요. 예를 들어볼까요. 한국이 2002년 월드컵에서 4강에 올랐을 때 나는 큰 변화를 발견했어요. 축구팀보다 축구 선수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거든요. 이영표, 안정환, 박지성 같은 개인들이 부각됐어요. 그전엔 그러지 않았어요. 한국팀이 어느 팀을 이겼다, 졌다는 얘기만 있었죠. 팀 단위에서 팀 플레이어로 흥미가 바뀌는 것, 이게 인간주의예요. 21세기 변화의 핵심은 힘의 원천이 조직에서 개인으로 옮겨간다는 겁니다. 이런 변화가 한국의 회사 조직에서 나타나야 하는데, 아직은 분위기가 딱딱해요.”

    -김 사장이 경영하는 이노디자인은 개인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 회사 디자이너들은 모두 회사의 주주이자 파트너예요. 능력 있으면 20대에도 거부(巨富)가 될 수 있어요. 우린 사장과 직원, 회사와 근로자가 아니라 똑같은 직원과 직원이라는 생각으로 일합니다.”

    -국내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학생들이 가장 가고 싶은 직장으로 이노디자인을 꼽는데, 입사하려면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합니까.

    “디자인에 인생을 거는 열정이 가장 중요해요. 다음으로 재능이 있어야 하는데, 재능은 꼭 학점하고 상관있는 건 아닙니다. 어쨌든 재능은 기본적인 겁니다. 난 사람을 뽑을 때 꼭 지원자의 미래 희망을 들어봅니다.”

    -‘아이리버’를 생산하는 레인콤 양덕준 사장과의 일화가 재미있던데요. 기존의 MP3와 다른 모양의 디자인을 궁리하던 중 프리즘 모양의 MP3를 고안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잖아요. 그때 레인콤 엔지니어들이 김 사장에게 제품 크기를 1mm만 늘려줄 수 없냐고 요구하자 양 사장이 “꾸겨넣어!”라고 했다죠? 경영진의 디자인 마인드가 없다면 디자이너로서 꿈을 실현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른 기업의 경영자들은 어떻습니까.

    “삼성, LG 같은 대기업 경영자는 디자인에 대한 애정이 남다릅니다. 9년 전 경기도 안양의 골프클럽 옆, 말 타는 곳에서 삼성 이건희 회장을 만났어요. 이 회장은 나와 하루 종일 디자인에 대해 얘기를 나눌 만큼 열정적이었어요. 디자인의 중요성, 그리고 ‘아름다운 것이 결국 이긴다’는 얘기를 나눈 기억이 납니다. 그때 이 회장은 산업의 큰 그림을 그린다든지, 미래가 어떻게 될지 예측하는 뛰어난 경영자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구자홍 전 LG전자 회장(현 LG전선·LG산전 회장), 동양매직 이영서 사장과도 디자인에 관해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보기 좋고, 쓰기 편하고, 만들기 쉽게

    -천호균 쌈지 사장, 아침이슬의 김민기 학전소극장 대표와 경기고 동기시죠? 내로라하는 패션회사 대표, 한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 그리고 세계적인 디자이너를 배출한 게 눈에 띄는군요.

    “우연이 아니었을까요. 우연히 같은 시간에 그런 사람들이 모인 것 같아요(김 사장은 대학 시절 김민기씨와 ‘도비두’라는 듀엣활동을 했다. 천 사장과는 사업 파트너로 쌈지의 운동화 구두, 텅슈즈를 함께 제작한 바 있다).”

    ‘애니콜’ ‘아이리버’ 만든 세계적 산업 디자이너 김영세

    김영세 사장의 바람은 그가 디자인한 모든 제품에 ‘디자인 바이 이노’를 새겨넣는 것이다.

    -사무실 탁자나 의자 등 곳곳에 ‘디자인 바이 이노(Design by Inno)’라는 로고가 새겨져 있네요.

    “‘디자인 바이 이노’를 사용하는 ‘이노족(族)’을 확산시키고 싶어요. 우리가 디자인한 모든 상품에 ‘디자인 바이 이노’를 새겨넣을 겁니다. 제 추산으로 지금까지 ‘이노스런’ 디자인을 소비한 사람은 세계적으로 2000만명쯤 된다고 봅니다. 우리가 디자인한 MP3, 휴대전화, 신발, 옷, CJ에서 출시한 칼국수, 오뚜기의 맛있는 밥을 소비한 사람이 그 정도 돼요.

    디자인은 마술과도 같습니다. 마약 중독자처럼 한 번 빠지면 디자이너의 매력에 끌려 다니게 돼요. 이젠 누가 만들었는가보다 누가 디자인했느냐가 소비자의 구매 이유가 되고 있어요. 소비자의 개성이 강해져서 그렇습니다.”

    -‘이노스럽다’는 것은 어떤 겁니까.

    “한마디로 ‘심플 쌈빡’하다는 거죠. 디자인은 간결해야 합니다. 군더더기가 없어야 진정한 아름다움이 보입니다. 화장기 없는 미인과 같아요. 간결한 것은 경제적입니다. 생산 공정이 간결해지면 제조원가에서 경쟁력이 생겨요. 그러면 최종 혜택이 소비자에게 돌아갑니다. 더 아름답고, 더 값싼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이것이 디자인 정신이에요. 디자인이 좋아서 많이 팔리면 생산물량이 많아지고, 가격경쟁력이 생깁니다. 디자인은 장식이 아니에요. 디자인은 보기 좋고, 쓰기 편하고, 만들기 쉬워야 한다는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합니다.”

    미래를 여는 힘은 내부에 있다

    -레인콤의 MP3 ‘아이리버’와 삼성 휴대전화 ‘애니콜’ 디자인을 맡고 계신데, 요즘 MP3는 카메라, 휴대전화는 물론 전자사전 기능까지 갖춘 복합 디지털 기기로 변신하고 있습니다. 휴대전화 역시 마찬가지예요. 휴대전화와 MP3 중 어떤 것이 살아남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 다 살아남을 것 같아요. 시야를 넓혀서 세계 시장을 보면 소비자들은 어느 한 가지 유행을 쫓아가지 않습니다. MP3를 좋아하는 소비자가 있고, 휴대전화를 좋아하는 소비자가 있어요. 입맛이 다양하기 때문에 각각의 시장이 있습니다. 너무 성급하게 결론 내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디지털 컨버전스(convergence·융합) 시대에 생존하려면 누구보다 앞서서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이야깃거리 중 하나가 디자인이죠. 디자인의 업(業)은 요리에 비유할 수 있고, 그렇다면 디자이너는 요리사예요. 같은 재료를 써도 음식을 맛있게 요리하는 주방장이 있잖아요. 성공한 경영자는 맛과 멋을 가미한 제품을 재빨리 내놓는 사람입니다. 타임 투 마켓(Time to Market·적절한 시간에 시장에 제품을 내놓는 것), 선두주자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디자인에도 때가 있어요. 빠를수록 좋아요. 창의적이면서도 빨라야 하죠.”

    -쉴새없이 머리를 쓰려면 몸 관리가 필수일텐데, 어떻게 체력관리를 합니까.

    “골프는 치는데, 일부러 열심히 하는 운동은 없어요(업계에는 그의 골프 실력이 상당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냥 나를 자유스럽게 놓아두려고 노력합니다. 일하는 시간도 특별하게 정하지 않아요. 몸을 편안하게 하려고 세계에서 가장 편한 의자로 정평이 난 의자(허먼 밀러사의 애론 체어)를 사용해요. 몸과 마음이 자유로울 때 아이디어가 나와요.”

    -한국이 디자인 강국이 되려면 당장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이노디자인이 한 것처럼 하면 됩니다. 소프트 파워를 발휘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성공하면 됩니다. 중국이 하드웨어는 쫓아올지언정 소프트웨어 경쟁력까지 따라오지 못하게 앞서가야 합니다. 정부가 정책적인 측면에서 도와줄 수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내면에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거예요. 개개인에게 파워가 숨어 있어요. 형태를 만드는 것은 쉽지만, 내면의 힘을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미래를 이끌어가는 파워는 내재해 있음을 경험하는 것이 필요해요.”

    인터뷰 말미에 사진을 몇 장 찍으면서 김 사장과 별생각 없이 나눈 얘기는 또 다른 그의 이면을 엿보게 했다. 그는 “미국에서 직장에 다니는 딸이 요가를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데, 요가 선생이 되겠다고 욕심을 부려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순간 30여 년 전 김 사장의 부친이 아들의 미대 진학을 반대했다는 얘기가 생각났다. 말해놓고도 그걸 눈치챘는지, 그는 금세 씩 웃으며 “사실, 걱정 안 해요. 지가 알아서 잘하겠지 뭐”라고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버지들의 마음은 다 같은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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