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똑같은 차’ 타자고는 안 하면서 ‘똑같은 교육’ 받게 하자고?
- 민사고가 ‘귀족학교’인 건 맞다, 그러나…
- 전교조 업은 ‘개방형 이사’ 한두 명이 私學 휘저을 수도
- ‘대통령과 임기 같이한다’던 교육부총리, 벌써 4명째
- 학생 학습권만 강조할 게 아니라 사학 교육권도 존중해야
- 전교조 집단연가엔 유연 대처, 사학 행동엔 초강경 대처하는 정부
강원도 횡성 민족사관고등학교(이하 민사고) 진입로 오른편에는 15개의 동상 좌대(座臺)가 세워져 있다. 주인공을 기다리는 좌대마다 ‘민족사관고 출신 노벨상 수상자’라고 새겨져 있다. 이 학교 설립자 최명재(崔明在·78)씨의 교육관을 엿보게 한다. 세상에, 욕심도 크지.
이돈희(李敦熙·68) 민사고 교장은 2003년 2월 서울대 교수를 정년퇴직하고 나서 이 학교 교장으로 취임했다. 교육계에서 그만큼 다채로운 경력을 가진 사람도 찾기 어렵다. 서울대 사대 교육학과를 나와 2년가량 중학교 영어 교사를 했다. 미국 웨인주립대에서 교육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모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사범대학장, 교육개발원장, 대통령자문교육위원회 위원장, 교육부 장관을 두루 거쳤다.
개정 사립학교법(이하 사학법)이 국회를 통과해 공포됐지만 사학재단은 반대의 목소리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 종교계까지 가세한 사학법 논란은 교육제도에 대한 관점의 차이를 넘어 진보와 보수 진영의 대결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개정 사학법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이 10여 년 전부터 줄기차게 요구한 내용을 거의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게 사학재단의 시각이다. 이 정부 들어 전교조의 발언권이 강해지면서 사학법을 비롯해 대학입시, 평준화 정책 등 각종 교육 법규와 제도에 전교조 이데올로기가 스며들고 있다. 정부는 사학을 달래기 위해 자립형 사립고(자사고) 확대방침을 발표했다. 그러나 전교조는 민사고, 상산고 같은 자사고를 ‘귀족학교’라며 반대한다.
병술년 1월1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뒤편의 광장아파트 이 교장 자택을 찾았다. 뜨거운 교육 현안에 관해 의견을 듣는 자리를 민사고로 정할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이 교장은 방학을 맞아 여의도 집에서 쉬고 있었다. 광장아파트는 1978년 완공됐다. 튼튼하게 지어진데다 관리가 잘돼 아직도 쾌적한 고급 아파트의 외관을 지니고 있다. 이 교장은 이 아파트에 20년 넘게 살고 있다.
이 교장은 한복을 입고 있었다. 민사고 학생과 교직원들은 학교에서 한복을 입는다. 애국조회가 있는 월요일에는 정장 한복,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생활한복, 주말에는 자유복을 입는다.
자리에 앉자 안주인이 유자차와 과일을 내왔다. 자녀들은 출가하고 50평 아파트를 두 내외가 지킨다.
“교육개발원장을 하던 1996년 초 최명재 회장이 찾아온 적이 있어요. 영재고등학교를 개교(1996년 3월1일)하는데 교육개발원 영재교육본부에서 학생 선발, 교육 내용, 학교 운용에 관해 연구해달라고 했습니다. 초기에 연구비로 8000만원을 받았고, 후에 과학영재교육 국제세미나 개최 지원비로 1억원을 받았습니다. 서울대 교수들을 중심으로 자문교수단을 만들어 가끔 최 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월 교육비 150만원 정도
서울대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쉬던 2003년 8월경 최 회장이 중간에 사람을 놓아 교장을 맡아달라고 하더군요. 평생 교육이론을 연구한 사람으로서 현장 공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마치 과학자가 연구를 위해 실험실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교장을 맡았죠.”
이 교장은 자사고와 인연이 깊다. 김영삼 대통령 때 교육개혁위원회에서 제2소위 위원장을 맡아 초·중등 교육과 교원 교육에 관한 정책연구를 담당했다. 그 위원회에서 사립학교를 평준화제도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재정적으로 자립할 수 없는 부실 사학이 많아 일부 사학을 선발해 자사고를 만드는 방안을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김대중 대통령 때 김우중 대우그룹 전 회장의 형인 김덕중 교수가 새교육공동체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습니다. 그러다가 교육부 장관이 됐고 후임으로 제가 위원장이 됐죠. 1999년 대통령에게 자사고 설립을 건의했죠. 공동체 위원장 하다가 교육부 장관이 됐을 때 기자들이 자사고에 관해 물어 몇 마디 했더니 ‘동아일보’에서 1면 톱기사로 ‘자사고 도입 방침’이라는 기사를 실었어요. 담당부서에서 추진하다가 내가 장관을 그만뒀고 한완상 부총리 때 민사고가 첫 케이스로 시범학교가 됐죠.”
전국에는 6개 자사고가 있다. 그중 광양제철고, 포항제철고, 울산청운고는 사원 자녀 학교 형태로 운영된다. 명실상부한 자사고로는 민사고와 상산고가 꼽힌다.
-자사고의 등록금이 일반고의 세 배이고 기숙사비도 받으니 서민층 자녀는 다니기 어렵겠군요.
“민족사관고만 놓고 보면 실제로 귀족학교가 돼 있어요. 최 회장이 초기에는 파스퇴르유업에서 생기는 이익금으로 학교를 지원했습니다. 30명의 학생을 선발해 완전 무상으로 교육을 시켰습니다. 학비 부담이 없으니 계층에 관계없이 올 수 있었죠. 그러나 외환위기로 파스퇴르가 부도나 학교 지원이 어렵게 됐죠. 그래서 기숙사비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 자립형 사립고가 되고부터는 수업료도 받았죠. 한달 평균 수업료 20여 만원, 학교 운영비 20여 만원, 그리고 기숙사비를 합하면 월 150만원 가까이 됩니다. 저소득층에서는 부담하기 어렵죠.
저소득층 자녀들은 들어오기도 어려워요. 학교 성적만 가지고는 안 되니까요. 토플과 각종 경시대회 성적을 함께 평가하지요. 민사고 입시를 준비하는 학습이 필요하잖아요. 민사고 학생들 중에는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 준비를 한 경우도 있어요. 그러려면 학원 비용이 만만찮겠지요. 그래서 귀족학교가 됐어요.
자사고는 정부가 일절 지원을 안 하니까 저소득층 아이라고 해서 별도로 책정해 줄 수 있는 장학재정이 없죠. 교장으로서 문제점을 느끼고 있습니다. 중산층 이상 가정의 자녀들도 저소득층 아이들과 교우관계를 가져야 그 세계를 이해하는 경험이 생기죠.
고민하다가 ‘덕고 장학생’이라는 제도를 만들었어요. 일정 비율의 학생을 저소득층 자녀들 중에서 선발한다 하더라도 공부할 준비가 안 된 학생을 받아봐야 오히려 열등감만 형성되기 쉽죠. 덕고 장학생은 다른 학교 2학년 아이들 가운데 뛰어난 잠재력을 지닌 저소득층 자녀들을 방학 때 데려다가 교육하는 제도지요. 학교에 재정이 없으니까 기업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지방자치단체에도 공문을 보냈죠. 덕고 장학생 30명을 목표로 세일즈를 했는데 겨우 열두세 명 정도 확보했어요. 내가 평생 선생만 한 사람이라 가깝게 지내는 기업인이 적고….”
민사고는 덕고산(德高山·해발 1125m) 자락에 둥지를 틀고 있다. 민사고가 들어서려고 그랬는지 산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교가(校歌)도 ‘덕고산 정기 뻗어 머문 곳이 어디인가’로 시작한다.
자립형 사립고가 조기 유학 대안
-정부가 자사고를 20개 정도로 확대하는 방침을 발표했어요. 서울 강북에서 중앙고, 이화여고와 강남의 중동고가 자사고로 전환할 준비를 하고 있지요. 중동고는 은평뉴타운으로 옮겨가 려는 의사를 갖고 있는 모양입니다.
“자사고를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민족사관고 입시 경쟁률이 4대 1 정도 됩니다. 까다로운 지원자격을 충족시키고 나서도 4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하니까 엄청나게 어렵죠. 내신 반영비중은 이전보다 낮춰서 상위 5% 안에만 들면 되지만 토플 점수, 경시대회 성적이 따라붙어야 하죠. 2004년 신입생부터 150명을 뽑고 있는데, 150명으로 딱 자르고 나면 아까운 아이들이 떨어집니다. 민사고가 두 개쯤 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횡성 산골에 있는 민사고 학생들은 가족과 떨어져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한다. 기숙사 학교(boarding school)의 강점은 무엇일까.
“우선 등하교에 소모되는 시간이 없죠. 일반 고등학교 학생들은 등하교에 두 시간은 걸릴 거예요. 우리 학교는 8교시 체제로 운영하죠. 8시 반부터 시작해서 5시 반에 8교시가 끝나요. 우리는 2시간을 IR(Individual Research)시간으로 써요. 자기들이 공부하고 싶은 것을 공부하고, 클럽 활동을 하기도 하고, 교사가 정규교육 과목 이외의 것을 가르치기도 하죠. 다른 학교 학생들이 학교 오고 가는 시간에 하는 셈이죠.
기숙사에서 친구하고 시간을 보내는 집단생활의 장점도 있죠. 학교 안에 클럽이 80여 개 있어요. 공부하다가 친구나 상급생의 도움을 받죠. 우리 학교의 교육과정도 좋지만 아이들이 만들어놓은 분위기가 민사고의 가치입니다. 그게 대단합니다. 월요일 아침 애국조회 시간에는 시상을 합니다. 교내외의 토론대회, 스피치대회, 작문대회, 과학 전시대회, 봉사대회에서 받아온 상을 전달하는 데 30분 걸려요. 그래서 시상 시간을 줄이느라 요새는 상장 내용을 다 읽지 않아요. 기숙사 학교니까 그게 가능하죠.”
앞서가는 사람에게 마음껏 달리게 하면 자신에겐 물론 사회와 인류에도 이익이 되죠. 뒷사람이 못 따라오니 앞사람을 세워놓고 기다리라는 식으로 하면 안 돼요. 능력 있는 사람의 길을 열어줘야죠.
“어떻게 보면 민사고 같은 학교가 외국 유학을 부추길 수도 있죠. 그러나 어릴 때 생각 없이 외국에 나가는 것보다는 민사고에서 민족전통 교육을 함께 받는 것이 좋다고 볼 수 있죠.
미국 미시간주에 크랜브룩이라는 명문 고교가 있는데 600명 학생 중 동양계가 60명이고 그중 40명이 한국 학생이라고 합니다. 국내에서 유학 간 아이들이죠. 다른 명문고에도 그런 학생이 많다고 봐야죠. 그런 아이들이 민사고 국제반에서 하는 것보다 특별하게 잘하는지 그건 모르겠어요.
민사고 국제반의 경우 학교 프로그램이 괜찮아 외국의 일류 대학에 가더라도 적응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어요. 지금까지 적응에 실패한 졸업생은 없습니다. 너무 일찍 외국에 가서 적응에 실패하는 것보다는 여기서 안전하게 준비해 가면 좋죠. 중학교부터 기러기 아빠처럼 야단법석을 떨면서 외국 보낼 필요가 있나요. 외국에서 중학교 마치고 민사고에 들어오려는 학생도 적지 않습니다. 어린 자녀를 외국으로 보내면 부모들이 불안하고 불편하기도 하고….”
올해 美 명문대 40명 합격 예상
민사고에서는 2006학년도부터 무(無)학년제를 실시한다. 2006학년도 입학예정인 민사고 국제반의 평균 토플성적은 271점. 만점 받은 학생도 있고 290점 이상인 학생이 20명이다. 이런 학생들에게 고교 1학년 영어 과정을 가르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영어의 경우 시험으로 이수 인정을 하고 대학 수준의 교과목을 가르친다.
-설립한 지 오래된 일반고가 자사고로 전환하자면 어려움이 많지 않을까요.
“민사고는 학교를 새로 만들어 전부 새로운 교사들로 출발했습니다. 일반고는 교사의 질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죠. 내신도 불리합니다. 민사고 학생들은 대학입시에서 자기 능력에 상당하는 평가를 못 받고 있어요.
민사고는 국내반과 국제반이 반반 정도 되는데, 국내반 아이들이 그런 문제를 안고 있죠. 과기대, 포항공대에서 조기 졸업생을 받습니다. 민사고 학생들이 2학년 마치고 조기 진학을 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최근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도 조기 졸업생을 수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국제 경시대회나 국내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민사고 학생이 많습니다. 대학들이 학생 선발에서 특기적성을 고려하죠. 이과 학생 중에는 대학 간판을 따지지 않고 어느 대학교든 의과대학, 치과대학, 한의과대학으로 지원하는 수가 적지 않습니다. 내신이 불리하지만 이런저런 제도 때문에 틈새를 찾고 있죠.”
‘민족사관고(民族史觀高)’라는 교명부터 억센 고집불통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초기에는 ‘민족사관고(民族士官高)’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민족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길러주겠다는 최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이름이다.
민사고가 이름처럼 국수주의적인 것은 아니다. 민사고는 2006학년도 입시에서 국제반 학생 47명 가운데 18명이 하버드, 프린스턴, 스탠퍼드, 코넬, 듀크, 시카고 같은 미국 명문대에 합격했다. 수시모집 합격자들이다. 지난해에는 수시 3명, 정시 24명이 합격했다. 올해는 수시·정시를 합해 40명 가까이 합격할 것으로 예상한다.
-전교조의 핵심 이데올로기는 평등입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나 못하는 학생이나 평준화 학교에서 똑같은 교육을 받자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돈 있는 사람이 좋은 차를 타는 것과 돈 있는 사람이 좋은 교육을 받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비슷한 것 같아도 상당히 다릅니다. 돈 있는 사람은 안전하고 안락하고 신분을 과시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차를 타지만, 탄 것 그 자체만으로 사회에 큰 기여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죠. 자동차세를 좀 많이 내는 것 외에는 사회 공헌도가 별로 없어요. 그저 웰빙을 위해 돈을 쓰는 것이죠. 교육은 그렇지가 않아요. 좋은 교육을 받은 사람은 개인적으로 출세하고 돈 벌고 명성을 얻지만 기업인, 정치지도자, 과학자, 예술가, 종교지도자로서 사회에 기여하게 되지요. 똑같은 자동차 타자는 이야기는 안 하면서 교육은 똑같이 받자고 하면 교육에 의해 생산되는 사회적 가치의 상당한 부분을 포기하게 됩니다.
서울대, 민사고생 못 데려가 고민
돈 있는 사람이 좋은 차를 타듯 돈 많은 사람만 좋은 교육을 받아야 하느냐는 검토해볼 문제지요. 누가 좋은 교육을 받느냐, 좋은 교육을 받는 사람을 어떻게 선발해야 하느냐, 이것은 우리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만 좋은 교육 자체가 필요 없다고 하면 국가 경쟁력 혹은 인류에 돌아오는 사회적 가치를 포기하자는 거지요. 좋은 교육 자체를 없애버림으로써 좋은 교육받는 사람이 없는 사회가 평등사회라고 생각한다면 어리석죠.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전교조가 그런 이념을 갖고 있지요.”
강원도 횡성에 있는 민족사관고등학교 전경.
“가난한 집의 우수한 아이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면 좋은 사회가 아니라고 봐야 합니다. 그로 인한 빈곤의 대물림, 사회계층의 대물림 현상이 생겨나는 것은 나쁘죠.
못사는 사람이 잘살게 되기도 하고 잘사는 사람이 더 잘살게 되면 괜찮은데, 잘사는 사람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예요. 못사는 사람이 늘 못사는 것도 문제지만, 못사는 사람이 더 못살게 되는 것도 문제고요. 그러니까 계층이동이 활발한 사회를 좋은 사회로 볼 것이냐, 아니면 모두가 비슷하게 평등화한 사회를 좋은 사회로 볼 것이냐는 분명히 한번 생각해볼 문제지요.
그렇다고 해서 교육과 관련해, 우리 사회에서 빨리 가는 사람을 보고 ‘너 왜 이렇게 빨리 가느냐, 뒤에 오는 사람이 따라올 때까지 기다려라’고 하거나, 다른 사람보다 특출하게 고개를 들고 있으면 ‘다른 사람은 다 숙이고 있는데 왜 너만 고개 쳐들고 있느냐’고 하면 어떤 현상이 생겨나겠습니까. 창의력과 능력을 가진 개인이 사회적인 제재를 받아 성장할 수 없게 되고, 사회도 진보하거나 더 좋은 복지를 누릴 수 있게 하는 힘이 없어져버린단 말이에요.
앞서가는 사람에게 마음껏 달리게 하면 자신에겐 물론 사회와 인류에도 이익이 되는 거죠. 뒷사람이 못 따라오니 앞 사람을 세워놓고 기다리라는 식으로 하면 안 된단 말이에요. 능력 있는 사람의 길을 열어줘 창의력과 능력을 발휘하도록 해야죠. 그러면 필연적으로 앞서가는 사람과 뒤에 가는 사람의 격차가 나타납니다. 정부는 뒤처진 집단을 도와주고 관리하면 되죠. 교육정책의 초점은 앞서가는 집단을 견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뒤처진 집단을 보살펴 처지지 않도록 하는 데 있어야죠.”
-자사고의 성공을 위해 정부에 건의할 것이 있다면.
“국민공통 기본교육과정은 자격증을 소지한 교사가 가르치도록 국가가 요구하고 있죠. 그 외의 교육과정의 운영에서는 자격증에 구애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납입금을 자율화해야 합니다. 비싸게 받는 학교도 나오겠지만 너무 비싸면 학생들이 안 올 테니까요. 다만 저소득층 자녀들을 일정 비율 선발해 장학금을 지급하라는 요구는 할 수 있겠죠. 그리고 자사고 학생들이 내신에서 불리하지 않도록 해줘야죠. 대학입시를 대학자율에 맡겨야 합니다.”
대학 입학 문 여러 개 만들어야
그는 “서울대에서 민사고 아이들이 탐나 데려가고 싶지만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합디다” 하고 말했다.
아파트 분양과 대학입시처럼 자주 바뀌는 제도도 없다. 그만큼 관심이 높고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일 것이다.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엔 대책이 있다. 정부에서 정책을 내놓기가 바쁘게 그 정책의 수요자들은 규제를 빠져나가는 구멍이나 우회로를 찾아낸다. 이돈희 교장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대학입시제도는 무엇일까.
“학생이 대학에 들어가는 통로가 다원적이어야 합니다. 종래에는 총점제였어요. 내신, 수능시험 성적에다가 논술, 면접시험 합쳐서 성적순으로 줄을 세워서 합격시키는 시스템이었단 말이에요. 최근에 와서는 바뀌었죠. 서울대의 경우 지역균형 선발, 수시모집의 특기적성 선발, 그 다음에 정시에서 뽑지요. 영어, 수학 잘하는 ‘범생이’ 아이들은 그 성적으로 대학에 들어갈 수 있게 하고, 수능시험에 강한 아이들은 그걸로 대학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지요. 문학, 과학, 체육, 음악 등의 어느 하나에 심취된 아이들은 성적 관리하기가 어려워요. 그러나 잠재적인 영재성이 있거든요. 과제 집착력이 강하지 않습니까. 대학에 못 들어가면 그 잠재적 영재성이 다 죽어버립니다. 그런 특별한 능력이 있는 아이들은 그 능력으로 대학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죠. 입학 문을 여러 개 만들어두어야 합니다.”
학습권만 일방적으로강조해서는 안 되며 교육권도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합니다. 자기 교육관에 의해 공정하게 양심의 가책 없이 학습을 시킬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야 합니다.
“과거에 대학의 입시 부정이 많았잖아요. 대학이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정상운영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편한 대로 학생을 선발하려고 하니까 고등학교 교육을 망칠 수도 있죠. 실제로 어느 해 일류대학 가운데 한 대학이 입시에서 수학을 뺀 적이 있어요. 그러면 수학은 못하지만 다른 걸 잘하는 아이들이 몰려올 수도 있죠. 그러면 대학은 어떨지 몰라도 고등학교의 수학교육은 망치는 것 아니겠어요?
거기에다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을 조장해선 안 되겠지요. 당장 본고사가 부활되든가, 시험문제가 어려워지면 과외를 부추기게 되겠죠. 이런 것을 억제하기 위해 정부가 대학의 학생선발에 관여해왔어요. 그러나 정도가 지나칩니다. 우리 사회에 가난한 사람이 불리하거나 부유층이 유리해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소위 평등주의적인 분위기가 팽배해 정부 정책이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정부가 학생의 선발을 기본적으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지시하기보다는 대학이 자율적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원칙을 세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고등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해치고 부정입학이 재발하거나 사교육을 부추길 때는 정부가 재검토를 요청할 수 있겠죠. 1차적으로는 개별 대학이 선발의 원칙을 정하고 정부가 승인하는 방식으로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2대 걸쳐 사학 키우다 가산 탕진
민사고 얘기를 하면서 설립자 최명재씨를 빼놓을 수 없다. 약간 기인(奇人)과에 속하는 인물이다. 그는 경성경제전문학교(서울대 상대 전신)를 졸업하고 한국은행에 근무했다. 4남2녀의 장남이었는데, 은행원 봉급으로 대가족을 부양하기가 힘겹자 1960년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인 한국은행에 사표를 던지고 나와 택시 운전을 했다. 2년 만에 택시 한 대를 샀고, 6년 만에 택시 다섯 대를 보유한 차주가 돼 정비공장까지 차렸다.
1970년대엔 이란에 진출, 트럭 50대로 수송단을 구성해 프랑스 파리에서 테헤란까지 석유메이저 걸프사의 유전(油田) 자재와 생필품을 실어 날랐다. ‘자루에 퍼 담을 정도로’ 돈을 벌었다. 그러나 한국인 통역에게 배신당해 사업권을 빼앗겼다. 배신자에게 트럭을 비싼 값에 팔고 권리금까지 챙겨 귀국했다. 이란 왕실에 붙어 수송권을 빼앗아갔던 통역은 호메이니 회교혁명으로 팔레비 왕정이 무너지면서 깡통을 찼다.
그는 이란에서 번 돈으로 강원도 횡성 땅 32만평을 사들여 목장을 차렸다. 일본을 드나들며 저온 살균법 책자를 읽고 파스퇴르 우유를 만들었다. 그는 한국 우유의 고급화에 기여했다는 평을 받는다. 회장이 직접 쓰는 독특한 광고, 기존 업체들과 벌인 ‘진짜 우유, 고름 우유’ 전쟁, 거대언론 J일보를 상대로 한 소송으로 숱한 화제를 뿌렸다. 그는 2000년 제주도 호텔에서 사우나를 하다가 화상을 입은 뒤로는 휠체어에 몸을 의지해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의 부친 최현묵은 1936년 전답을 팔아 향리에 사립 보통학교를 건립했다. 이 때문에 집안이 어려워졌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사학 건립의 꿈을 물려받아 민사고를 세웠다. 사학을 키우다 가산을 탕진한 2대의 내력이다.
-최 회장이 민사고 설립 후 지금까지 사재(私財)를 많이 썼다지요.
“시설비로만 투입된 돈이 700억원 이상이라고 합니다. 학교 부지가 38만5000평인가 됩니다. 그중에서 학교가 쓰는 건 한 10만평 정도 될 겁니다.”
-파스퇴르유업으로부터 지원이 끊기고 나서 재정적으로 어렵지 않습니까.
“학교운영이 워낙 고비용 구조로 돼 있습니다. 학급당 학생수가 15명입니다. 교사 대 학생 비율이 6대 1이 채 안 됩니다. 세계적인 명문학교들도 이에 못 미칩니다. 부시 대통령 부자(父子)가 다닌 필립스 아카데미 앤도버 고교도 학습지도를 하는 교사만 따지면 그 비율이 13대 1 수준입니다. 민사고 교사들의 수업시간은 주 12∼18시간입니다. 기숙사에서 조리, 제빵, 세탁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학교 시설관리 및 행정을 담당하는 직원이 15명입니다. 교사의 봉급은 일반고교의 150%죠.”
-최 회장은 좋은 인수자가 나타나면 학교를 그냥 넘겨주겠다고 한다면서요.
“삼성에서 한때 인수를 고려했다는 얘기가 들리던데 구체적으로 행동을 취한 적은 없어요. 이쪽에서 삼성에 의사를 물은 적도 없고요. 몇몇 기업과 대학이 관심을 보인 적은 있습니다. 학교를 원래 계획대로 완성하자면 지금도 300억∼400억원을 들여야 합니다. 내일 당장 지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게 부담스러울 수는 없죠. 그러나 기업이 학교를 인수하려면 주주와 노동조합 등 고려해야 할 곳이 많아요.”
-최 회장의 건강은 어떤가요.
“화상을 입은 뒤로 외부 활동은 거의 안 해요. 학교에도 잘 안 나오세요. 외부 활동이 없으니까 한정된 정보를 접하겠죠. 학교 일에는 일절 간섭 안 해요. 최 회장의 장남인 최경종씨가 학교의 행정실장을 하면서 시설과 재정의 관리를 맡고, 학사(學事)에 관해서는 교장인 저한테 완전히 맡겨놓고 있습니다.”
똑같이 해주는 게 평등 아니다
민사고 교사 중 전교조에 가입한 교사는 단 한 명도 없다. 학교에서 가입하지 못하게 압력을 넣은 것은 아니다. 그러한 행위는 전교조법 위반이다. 아마 전교조 성향의 교사들은 민사고로 오지 않는 것 같다.
-전교조 교사들이 이념적 편향 교육을 한다고 우려하는 학부모가많습니다. 일부 전교조 교사들이 만든 학습자료 중에는 세계화 반대와 친북 반미의 내용을 담은 것도 있더군요.
“교사는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죠. 자신의 생각으로만 아이들을 편식(偏食)시키는 것은 교육자의 자세가 아니죠. 과격한 진보세력의 주장에는 수용하기 어려운 점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민족국가로서 통일해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해 북한 정권의 독재노선을 지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통일을 실현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보수세력 혹은 미국을 배척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북쪽의 인권 문제와 민주적이지 못한 정권 세습제도, 그리고 그 사회의 총체적 빈곤을 세상이 다 알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세력은 북쪽 정권의 이상을 실현하는 일을 방해하는 건 악의 세력이라고 보는 거죠.
두 번째는 미국에 대한 태도입니다. 미국은 로마제국 이후 가장 강력하게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라고 볼 수 있죠. 현실적으로 그런 미국에 대해 불필요한 저항 감정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입은 혜택이 있잖아요. 우리가 전쟁에 졌으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또 한국이 경제성장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소비자들이 우리 수출품을 사줬죠. 원조도 하고. 많은 인력이 미국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 나는 것을 예방해줬습니다. 솔직히 말해 적지 않게 미국 덕분으로 이만큼 살고 있는 거죠.
물론 그 과정에서 수모도 많이 겪었고, 어느 면에서 피해라고도 할 만한 부분도 없지는 않죠. 그래서 때로 미국을 비판할 수도 있지만 미국에서 받은 혜택을 잊어버리거나 무시해버리려는 것은 우리 자신을 기만하는 행위일 뿐입니다. 그런데 교사들이 학교에서 의도적으로 반미교육을 한다든가 북한 찬양 교육을 하는 건 지나치지요.”
-사고가 충분히 성숙단계에 이르지 못한 학생들에게 기계적인 평등 이데올로기의 프리즘으로 사물을 바라보게 하는 교육을 우려하기도 합니다.
“평등이라는 개념을 실현하는 사회의 제도적인 기술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아요. 똑같이 해주는 것이 평등이 아니죠. 발 크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똑같은 신발을 나눠주는 게 평등인가요. 발에 맞는 신발을 신겨야 합니다. 그러니까 평등은 그냥 기계적으로 같게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가 자아실현을 추구할 때 불리하거나 유리함이 없도록 사회제도를 만들어주는 것이 평등이죠. 평등을 탄력성을 지닌 개념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죠. 반목이나 적개심 혹은 보복을 통해 평등을 실천하려고 하는 것은 더 큰 문제지요.”
학습권과 교육권의 균형
이 교장은 서울대 사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부산 낙동중학교에서 1년가량 영어 교사를 했다. 대학원을 마치고 부산 대동중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군에 입대했다. 그는 “선생님 안 해본 사람들보다는 선생님들 내부의 분위기를 아는 편이죠”라고 말했다.
-교육계의 가장 큰 현안이 개정 사학법입니다. 개방형 이사에 대해 정부는 사학이 투명해지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말하고, 사학은 자율성을 침해한다고 대립하고 있습니다.
“부실 사학이 소수라고 보면 소수고, 다수라고 보면 다수죠. 부실 사학의 투명성과 공공성을 높여야 한다는 말에 잘못은 없어요. 그런데 사학들은 전교조 집단을 두려워합니다. 건학(建學)이념과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이사회에 들어오면 학교가 흐트러진다고 보는 거죠.
7명의 이사진 중에 한두 사람밖에 안 들어가는데 뭐 그렇게 대단하냐고 하지만 산술적으로만 계산할 일은 아닙니다. 중요 의사결정을 할 때는 다수결로 하지만 한두 사람이라도 이사회에 들어와 있으면 모든 것을 다 문제 삼을 수 있죠. 이것은 왜 그랬느냐, 저것은 왜 그랬느냐, 이거 내놔라, 저거 내놔라…. 순수하게 학교운영의 투명성을 위해 그런다면 괜찮은데 학교가 수용하기 어려운 이데올로기와 물리적 힘을 지닌 전교조라는 큰 조직이 배후에 있다면 경계심리가 작용하는 것은 당연하죠. 그러니 사학들이 반대하는 겁니다. 학교 재단법인에서 필요해 스스로 어떤 인사를 초청하는 경우는 문제가 안 되는데, 법인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다른 의지에 의해 천거된 구성원이 들어오면 배후세력을 배경으로 사학을 휘저을 수가 있지요.”
이돈희 민사고 교장(왼쪽)은 교사와 대학 교수, 교육개발원장, 교육부 장관을 두루 거쳤다.
“배우는 권리도 중요하지만 아무 곳에서나, 어떤 상태에서나 학습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대로 된 교육여건이 충족됐을 때 가능합니다. 일방적으로 학습권만 강조해서는 안 되며 교육권도 균형 있게 고려돼야 합니다. 자기 교육관에 의해 공정하게 양심의 가책 없이 학습을 시킬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야 합니다. 교육권이 침해당하면 좋은 학습을 제공하기 어렵습니다. 전교조 교사들의 집단연가에 대해서는 유연하게 대처하다가 사학들의 행동에 대해서는 경직되고 초강경으로 대처했습니다. 이 정부의 정책 노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죠. 공정하게 해야죠.”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입법 중에서도 사학법은 여론의 지지가 다른 법안에 비해 높은 편이죠. 제가 듣는 이야기로는 돈 받고 교사 채용하는 비리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어요. 설립자는 콩나물 장사해서 번 돈으로 학교를 세워놓고 세상을 떠났는데 친인척들이 이사장, 교장을 번갈아 하며 크고 작은 비리를 저지르는 학교들도 있어요. 교장, 교감 임명하는데도 거액의 사례비가 관행화한 학교가 있다고 합니다.
“사립학교법 개정에 반대하는 사학들도 투쟁의지에 못지않은 자정(自淨) 노력을 보여줘야 합니다. 내가 직접 방문해서 알아본 미국의 사립학교들도 법인의 전입금은 별로 없어요. 아예 수익용 재산 자체가 없어요. 기부금을 받아 학교재정에 보태죠. 학생 납입금이 70%, 기부금이 30% 정도 됩니다. 우리는 학교 세울 때도 설립자가 투자를 했고, 그 학교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수익용 재산을 형성해서 운영합니다.
일단 학교법인에 내놓은 재산은 되찾을 수 없습니다. 학교 문을 닫으면 국고에 귀속됩니다. 돈을 내서 학교를 세웠지만 기업처럼 수익을 찾아갈 수 없지요. 찾아가는 길이 뭐냐? 아들, 딸, 사위를 교장이나 수익사업체의 장을 시키고 혹은 학교 안에 문방구와 매점 차리는 길밖에는 없는 거예요. 학교를 사업체로 생각하고 거기다 돈 내놓고 넣어놓은 재산만큼 뭐를 받아가려고 하면 받을 길이 없어요. 큰 재산 넣어놓고 운영에서 아무런 자유권이 없으면 그것도 답답하겠지요.”
우리 사학은 準공립학교
인터뷰가 두 시간을 넘기면서 이 교장이 조금 피로한지 상체를 소파에 기대고 말했다. 필자가 “피곤할테니 잠시 쉬었다가 하자”고 제의했으나 이 교장은 “그냥 계속하자”고 했다. 속기사가 나중에 쉼 없이 쏟아놓는 말을 받아적느라 팔이 아파 혼났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립학교라고 하지만 학생을 별도로 선발하는 것도 아니고, 교원 봉급도 정부에서 지원해줍니다. 가장 중요한 교육과정을 국가가 편성합니다. 요즘에는 프라이빗 스쿨(private school)이라는 말을 잘 안 쓰는 편이죠. 대신에 인디펜던트 스쿨(independent school)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독립학교죠.
영국에서는 사립학교를 퍼블릭 스쿨(public school)이라고 부릅니다. 영국의 상류사회에서는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가정교사를 둬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까 불편을 느낀 귀족들을 중심으로 학교를 세워 공동교육을 한 거죠. 개념의 혼동 때문인지 영국에서는 최근 퍼블릭 스쿨 대신에 인디펜던트 스쿨이란 말을 씁니다. 영미의 사립학교들은 학생의 선발, 교사의 임용, 교육과정이 공립학교와 다릅니다. 교사 자격증을 필요로 하지도 않고 학생을 자율적으로 선발합니다. 국가 교육과정을 따르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우리나라는 공립과 사립에 차이가 없죠. 우리 사학은 엄밀히 말해 준(準)공립학교라고 할 수 있죠.”
-선진국에서도 공립은 평준화제도로 가고 사학에는 완전히 자율을 주고 있지 않습니까.
“서양의 경우 공립학교는 프랑스혁명 이후에 생겨난 제도라고 볼 수 있죠. 자력으로 교육을 받을 수 없는 하층 서민계급의 자녀들에게 일정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해주는 제도로 공립학교를 시작합니다. 그 뒤에 국가적 제도라는 의미가 부여되죠. 소위 내셔널리즘(민족주의)이라는 정치적 목적이 실리는 거죠. 그 나라 그 민족의 전통, 민족우월의식, 애국심을 고취하고 국가와 민족의 문화적인 유산들을 체계적으로 전달하고, 나아가 부국강병의 인력을 양성할 목적으로 공교육제도가 자리를 잡게 됐습니다.
국가가 계획하고 공공재원으로 운영하는 학교에 일류학교 이류학교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점에서 공립학교에 평등주의 원칙이 적용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죠. 그러나 국가적 목적으로 경쟁력을 가진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엘리티즘(elitism)이 공교육 과정에 들어옵니다. 우리 제도에서 특수목적 학교가 그것인데 과학고, 체육고, 외국어고는 국가사회가 필요로 하지만 평등주의에서 실현할 수 없는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학교 제도라고 봐야죠. 평준화의 예외적인 부분이죠.
사립학교는 종교적 사유라든가 혹은 교육에 대한 특별한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학교를 세워 인재를 양성하는 기관이에요. 영국의 사립학교에는 이튼, 윈체스터, 해로우 같은 귀족학교도 있지만 사립학교가 반드시 귀족학교여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옛날에 미국에서 공부할 때 방문한 사립학교는 학생들이 트레일러 하우스(trailer house)에서 공부했습니다. 전체 학생이 100여 명 되는 학교였습니다. 저소득층 자녀가 많더군요.”
그는 강의하듯 답변을 길게 했다. 평생을 공부하고 강의한 분야여서 그런지 막힘이 없다.
학교가 학원보다 경쟁력 앞서야
-교육부 장관 시절 “학원 강사들은 학생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는데 교사들은 연구를 소홀히 한다”고 말했다가 한국교총과 전교조로부터 감히 교사를 학원 강사하고 비교하느냐는 항의를 받고 사과했더군요.
“사과가 아니라 해명을 했죠. 장관 그만둘 때 기자들이 ‘꼭 하고 싶은 말이 없느냐’고 묻더군요. ‘여러분이 내가 선생들이 학원 강사만큼도 공부 안 한다고 말했다고 기사를 썼는데 내가 누구요? 나는 교육학자요. 교육학자가 학원 강사 모르고 학교 교사 모르겠소?’라고 했지요. 그때 내가 충격 받고 기분이 안 좋았죠.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고 전해들은 말로 부정확하게 기사를 썼으니까요.
영어학원에 있는 선생님이 새로운 지도법을 공부하기 위해 모여서 밤새도록 토론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런 토론을 1년에 몇 번씩 한다는 거였죠. 학원 강사들이 공부를 열심히 안 하면 고객이 다 도망가버리고, 학원이 문 닫을 테니까요. 교사들도 앞으로 언젠가는 저렇게 열심히 해야만 살아남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 선생님들은 정년까지 신분이 보장돼 있으니 당장은 새 것을 배우기 위해 억척스럽게 공부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단 말이죠.
분명히 학교가 학원보다 교육경쟁력에서 뒤지면 안 되죠. 그래서 우리 선생님들도 학원의 선생님들 못지않게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어떻게 조성할 수 있겠느냐, 의욕을 어떻게 높일 수 있겠느냐, 이런 이야기를 했죠.
그 자리에 참석한 기자가 쓴 기사도 아니었어요. 전해 듣고 쓴 기사가 나갔고 그 다음에 그걸 받아서 신문마다 실었어요. 그걸로 사설도 쓰고….”
교육정책, 여전히 조령모개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7년 대통령선거 기간에 “다른 장관은 몰라도 교육부 장관은 나와 임기를 같이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에서 무려 7명의 교육부 장관이 교체됐다. 평균 재임기간 8.6개월. 이돈희 장관은 처음 6개월 동안은 공부하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도 5개월(2000년 8월31일∼2001년 1월28일)만에 갈렸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를 오래 해 신세진 사람이 많았다고 하지만, ‘단명(短命) 교육 수장’은 노무현 정부에 와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참여정부에서 윤덕홍, 안병영, 이기준, 김진표 4명의 교육부총리가 배출됐다. 김진표 부총리가 지방선거에 출마하면 다섯 번째 부총리가 나온다. 백년대계(百年大計)여야 할 교육정책이 조령모개(朝令暮改)가 되는 데는 교육부총리가 자주 바뀌는 것과 무관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자기와 임기를 같이한다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을 깨뜨려야 할 상황이 여러 사유로 발생할 수 있지요. 장관이 시원치 않아서 바꾸기보다는 정치적인 상황에 따라 소모해버리는 거죠.
장관이 자주 바뀌다 보니 교육 정책을 일관되게 수용하기 어려움을 교육부 안에서 느낄 수 있었어요. 새 장관이 취임해 한두 사람만 인사이동을 하려 해도 연계해 돌아가기 때문에 상당한 규모의 인사가 불가피합니다. 정책 수행의 과정이 다 문서화돼 있는 것은 아니어서 머릿속에 담아둔 사람이 이동하면 머릿속의 것을 다 가지고 가버려요. 다음에 오는 사람은 남아 있는 문서를 가지고 정책을 해석하며 빈 그릇을 새로 채우지요. 새로 채워진 것은 입안할 때와는 상당히 다른 정책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아지죠.
사회적인 부서에서 일하다가 교원 부서에서 일하고 그다음에 특수교육과에 가고 혹은 유아교육이나 교육재정으로 빙빙 돌아가지요. 공무원의 전문성이 약화됐어요.”
역대 대통령들은 ‘교육 대통령’이라는 말을 듣기 위해서였는지 대통령 직속 교육 자문위원회를 번번이 새로 만들었는데 그때마다 이름이 바뀌었다. 교육개혁심의위원회(전두환), 중앙교육심의위원회(노태우), 교육개혁위원회(김영삼), 새교육공동체위원회(김대중), 교육혁신위원회(노무현). 새교육공동체는 무엇이고 개혁과 혁신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새교육공동체위원회는 문민정부에서 만들어진 개혁안을 거의 대부분 수용하고 약간 보충하는 안을 내는 정도였죠. 일종의 정책수행 지원위원회라고 볼 수 있어요.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는 교육개혁에 관한 한 일관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도 ‘교육개혁 방안들은 다 개발되어 있으니 잘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거든요. 노무현 정부는 이전의 것을 거의 완전히 차단했죠. 이 정부의 혁신위원회는 과거 위원회와 운영방식이나 내용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여담으로 묻는 겁니다만 김대중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이 부총리로 승격되면서 이 교장께서 유임될 것으로 관측되다가 갑자기 한완상 부총리로 바뀌었어요. 그 경위가 궁금합니다.
“나는 잘 모르겠어요. 아무튼 예상외로 빨리 끝났어요. 내가 김대중 정권과 아무 연고가 없어요. 내가 그 양반 캠프에서 일했거나, 대통령과 친분이 있던 것도 아니죠. 대통령을 에워싼 인적 구조와 끈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고요. 내가 장관 되는 데 누가 밀어준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누굴 붙들고 뛴 것도 아니죠. 송자 장관이 사고로 나가면서 순전히 교육 전문가로서 발탁된 거죠. 정치적으로 보면 그냥 공짜로 장관 자리를 얻은 겁니다. 김영삼 정부와는 그래도 연고가 있었고 아는 사람도 많았죠. 고향사람이라든가….”
이 교장은 경남 양산 출신으로 부산고로 입학해 동래고를 졸업했다. 그의 교육부총리 후임은 한완상 부총리(현 적십자사 총재). 한 총재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김대중 대통령이 부채의식을 가졌다가 교육부 장관이 부총리로 승격되자 발탁했을 가능성이 있다. 한 총재는 김영삼 정부에서도 통일부총리를 했다. 민주화에 기여한 보상을 양김일노(兩金一盧) 다음으로 많이 받았다.
존 듀이 교육철학 영향 받아
이 교장의 전공은 교육철학이다. 응접실 책꽂이에 서던일리노이 대학이 출판한 존 듀이 선집 26권이 꽂혀 있다.
-존 듀이의 교육사상을 간략하게 소개해주시죠.
“내 정신에 담겨 있는 교육철학은 존 듀이 철학이라고 해도 괜찮을 정도로 그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듀이는 교육을 인간의 성장을 관리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교육은 지식 주입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능력이 사회 환경 속에서 가장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지요. 각자가 지닌 이지적, 예술적, 기능적 탁월성을 계발하면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기회를 공정하게 마련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지요.”
-학창 시절에는 주로 어떤 책을 읽었습니까.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톨스토이 작품들을 즐겨 읽었어요. 고교시절에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리나’ ‘부활’ 같은 인도주의 작품을 즐겨 읽었습니다. 초·중·고교 때는 위인전을 읽었어요. 위인전을 읽으면서 나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죠. 그분들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생활하고 공부하는 거죠. 워싱턴, 링컨, 에디슨, 나폴레옹의 위인전이 기억납니다.”
이 교장은 교육자 집안을 이뤘다. 큰딸은 이윤미 홍익대 교수(교육학)이고 큰사위는 이성균 울산대 교수(사회학)다. 둘째 딸은 이윤정 고려대 교수(의류학)이고 둘째사위는 시애틀 워싱턴 대학에서 포스트 닥터(경제학) 과정을 밟고 있다. 아들은 워싱턴대에서 MBA 과정을 이수 중이다.
그는 “딸들이 아버지 공부하는 것을 보고 공부를 한 것 같고, 공부하면서 만난 공부하는 사람만 데려왔어요”라고 했다. 모두 연애결혼이다.
이 교장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한때 기독교가 아닌 종교단체가 세운 대학에서 총장으로 모셔가려 했으나 종교적 이유로 사양한 적이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자 부인이 나와 “무척 오래 이야기를 나누시는군요”라고 말했다. 마침 둘째딸 이윤정 교수가 친정을 찾았다. 사진으로 보니 자매가 쌍둥이처럼 닮았다. 이 교장이 “저녁을 먹고 가시라”고 권했다. 식사를 함께하는 것도 인터뷰의 내용을 살찌울 수 있는 방법이지만 일요일 오후 가족들의 저녁식사를 번거롭게 하는 것 같아서 사양했다.
그는 문간에 나와 “일요일에 일하는군요”라고 말했다. 네 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끝내고 나니 신정(新正) 일요일의 짧은 해가 기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