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 그대로 보석처럼 아름다운 여성 댄스그룹 ‘쥬얼리’의 리더 박정아. 3년여 공백을 딛고 복귀한 지 3주 만에 가요계를 평정한 그가 음악에 대한 열정과 가족사, 감춰진 내면 세계를 담담하게 들려줬다. 화려한 댄스가수의 뒷모습, 소탈한 ‘인간 박정아’의 숨은 매력을 찾아봤다.
한 방송국 가요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에 오르는 순간 쥬얼리 리더 박정아(27)의 눈에선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조명을 받아 빛난 눈물은 이름 그대로 ‘보석’처럼 아름다웠다. 흔해빠진 설정의 눈물도, 단순한 기쁨의 눈물도 아니었다. 동료의 탈퇴, 팀 해체설 등 힘겨운 시간을 견뎌낸 벅찬 감동의 눈물이었다. 강철이 단련을 받으며 더 단단해지듯 보석은 시련을 통해 더욱 아름다운 빛을 품는다.
여성 댄스그룹이 유행처럼 쏟아져 나온 적이 있다. 그들 대다수는 SES나 핑클에 가려 이내 사라졌다. 하지만 쥬얼리는 달랐다. 자신들만의 독특한 음악을 선보이며 가요계에 꽤 깊게 뿌리를 내렸다. 특히 리더 박정아는 오락 프로그램 MC, 라디오 DJ, 솔로 활동, 연기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며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169cm의 키에 늘씬한 몸매, 서글서글한 이목구비가 남성들을 사로잡았고, 털털한 이미지와 솔직한 태도는 여성들의 호감을 샀다. 무엇보다 그는 가창력 있는 가수다.
록과 댄스 사이
아스팔트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정도로 따뜻한 봄 날씨였다. 되레 실내가 추운 모양이다. 사진촬영을 위해 겉옷을 벗고 있던 그가 “저, 추위에 되게 약해요”라며 몸을 떨었다.
“원래 추위를 타는데다, 신인시절 추운 데서 뮤직비디오를 찍은 후론 추운 게 너무 싫어요. 1월에 민소매 티셔츠 하나 입고, 쇠로 된 액세서리를 온몸에 치렁치렁 걸치고 노래하는데, 차가운 쇠가 살갗에 닿을 때마다 지릿지릿 저려올 정도였어요.”
화려해 보이는 연예인의 모습 뒤엔 이렇듯 남모를 고통이 있는 모양이다.
앨범 이야기가 먼저 화제에 올랐다.
“3년 만에 복귀하는 데다, 멤버들도 바뀌어 걱정을 많이 했어요. 팬들이 외면하면 어떡하나…. 그런데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뜨거워요. 1위 했을 때는 기분이 묘했어요.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막 서럽기도 하고….”
▼ 뭐가 그렇게 서러웠나요.
“모르겠어요. 8년 동안 이 일을 하면서 힘들었던 순간들도 떠오르고…. 아무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었어요.”
▼ 타이틀곡 ‘One more time’이 이렇게 뜰 줄 예상했나요.
“뮤직비디오 찍기 나흘 전에야 노래를 받았어요. 이틀 동안 녹음하고 이틀 동안 춤 연습 해서 찍었죠. 처음엔 복고적인 느낌이 강해 과연 잘될까 싶었는데, 워낙 사운드가 좋아서 프로듀서와 우리 멤버들 모두 ‘이거다!’ 했어요. 멜로디가 대중적이고 중독성이 강하잖아요. ‘노래가 별로…’라고 하시던 분들도 이미 리듬에 맞춰 다리를 흔들고 있을 정도였어요.”
‘One more time’은 이탈리아 출신 가수 인그리드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곡이다.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유로댄스 스타일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쥬얼리는 이 노래를 우리 감성에 맞도록 소화했다.
▼ 과거 쥬얼리는 주로 댄스음악을 했고 솔로로 활동할 때는 록을 했는데, 이번엔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시도했군요. 전혀 다른 장르를 소화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노래 부르는 스타일이 많이 달라요. 솔로 앨범을 낸 후에 록에 젖어선지 조금 무거워졌나 봐요. 예전의 귀엽고 상큼한 목소리가 없어졌어요. 이번 앨범을 녹음할 때 ‘세상을 다 아는 사람처럼 노래를 부른다’며 ‘나는 아직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마음으로 부르라는 주문을 많이 받았어요.
록은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이라 좋고, 쥬얼리 음악은 멤버들과 함께 불러서 좋아요. 저 혼자는 이런 노래를 못 부르지만 쥬얼리로는 할 수 있잖아요. 쥬얼리 음악도 단순한 댄스음악은 아니에요. 5집까지 내는 동안 똑같은 느낌의 타이틀곡은 하나도 없어요. 여러 가지 음악적 시도를 할 수 있어서 좋아요.”
▼ 솔로 앨범은 계속 낼 건가요.
“이번 앨범 활동이 끝나면 가을쯤 록발라드로 돌아가려고요.”
최장수 여성 댄스그룹
쥬얼리는 2001년 결성됐다. 그동안 두 번이나 멤버가 바뀌는 시련을 겪었다. 지금 멤버는 지난 가을에 꾸려졌다. 새 멤버들은 스물한 살로 원래 멤버인 박정아, 서인영과는 나이차가 좀 난다.
▼ 새 멤버들과는 호흡이 잘 맞는 편인가요.
“꼭 친해져야, 서로를 속속들이 알아야 팀워크가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무대 위에서 궁합이 잘 맞느냐가 제일 중요해요. 저와 인영이는 8년 동안 같이 했고, 새 멤버들도 인영이가 솔로 활동할 때 랩과 백댄서를 하면서 호흡을 맞췄어요. 큰 문제는 없다고 봐요.”
▼ 새로 들어온 멤버들 군기도 잡고 그러나요.
“아직까지는 동생들이 저희를 어려워해요.”
▼ 그럼 합숙생활할 때 불편하겠어요.
“저희는 합숙생활 안 해요. 각자 집에서 출퇴근해요. 1기 때부터 각기 개성이 너무 달라서 모여 살면 사사건건 부딪칠 거 같아서요. 만났다 헤어지고 다시 웃으면서 만나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 요즘 소녀시대, 원더걸스 등 솜털 보송보송한 소녀그룹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어느새 저희가 최장수 여성그룹이 됐어요. 과거엔 몰랐는데 지금은 책임감을 갖는다고 할까요. 가요계 발전을 위해선 새로운 스타도 필요하지만 우리처럼 중심을 잡아줄 가수들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여성 댄스그룹의 한계와 가능성을 절감했을 텐데요.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해야죠. 콘셉트도 잘 잡아야 하고요. 청순에서 시작해서 섹시로 나가는 게 대부분인데, 식상하다는 느낌을 주진 않아야죠.”
예전 음악팬들은 노래만 좋으면 그 가수를 좋아했다. 그런데 이젠 오락 프로그램에 나와 웃음을 줘야 노래도 함께 뜬다. 가수도 노래만 잘하는 게 아니라 끼가 있어야 살아남는 시대다.
새 멤버를 보강해 3년여 만에 5집 앨범을 낸 쥬얼리.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인데, 점점 악수(惡手)의 쳇바퀴를 도는 것 같아요. 노래하는 무대가 많아야 되고 노래만으로 사람들이 좋아해줬으면 좋겠는데, TV 출연을 해야 노래 홍보가 되니 나와서 웃겨야 되고…. 그게 큰 스트레스죠.”
▼ 갈등이 많았나 봐요.
“내가 아닌 나를 보여줘야 하니까요. 제가 털털하기는 해요. 지저분한 냄비를 대충 휴지로 닦고 라면 끓여 먹을 수 있어요. 그렇다고 푼수는 아니거든요. 그런데 방송에 나가면 푼수가 되어야 해요. 하기 싫은데 안 할 수는 없고, 하고 나면 후회하고…. 쥬얼리 멤버였던 (이)지현이도 ‘당연하지’ 코너에 출연하면서 ‘난 남에게 상처 주는 거 정말 싫은데, 방송이 날 이렇게 만들어’라며 속상해하더군요.”
▼ 가요계가 오랜 침체를 겪고 있는 데 대해 가수들은 불법 다운로드가 원인이라고 하는데, 가수들에게도 잘못이 있지 않을까요.
“가수들이 앨범을 제대로 만들지 않았다고 하고 싶진 않아요. 대부분 앨범 재킷에서부터 곡 순서에 이르기까지 심혈을 기울여요. 앨범을 다 들어봐야 그 가수가 무슨 얘길 하려는지 알 수 있어요. 앨범으로 들으면서 그 가수의 정신세계까지 파악하는 게 진정한 음악애호가의 자세가 아닐까 싶어요.”
▼ 언제부터 가수의 꿈을 꿨습니까.
“아버지(박건희)가 드러머였어요. 하우스에서 드럼을 치셨는데,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그만두셨어요. 나중에 아버지가 ‘자식이 커가는 걸 보니, 이걸로는 너를 키울 수가 없을 것 같아 그만뒀다’고 하시더군요.”
가출해도 학교는 안 빠져
▼ 아버지가 이정식밴드 멤버셨죠.
“예. 제가 처음 오디션을 본 것도 이정식 선생님에게였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재즈 반주에 맞춰 노래를 했는데, 이 선생님이 아버지께 ‘깡이 있다, 가수 시켜도 될 거 같다’고 하셨대요.”
▼ 가수 되겠다는 걸 아버지가 반대하진 않으셨겠군요.
“중학교 때 한동안 방황했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 제가 아빠한테 ‘이제 놀 만큼 놀았고 속 썩일 만큼 속 썩였으니까 그만할게’라고 했대요. 그러면서 음악을 하겠다고 했대요. 카피 밴드에서 보컬활동을 시작했거든요. 아버지는 음악이 힘들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게다가 전 여자라 더 힘들 거라며 말리셨지만 방황하던 제 마음을 잡아준 게 음악인 걸 아니까 심하게 반대하진 않으셨어요.”
▼ 방황할 때 가출도 했나요.
“했죠. 그런데 나쁜 짓은 절대 안 했어요. 제가 되게 도덕적이거든요, 하하. 가출해서도 학교는 꼬박꼬박 갔어요. 외박만 한 거죠. 아버지한테 몽둥이로 맞기도 했어요. 다 큰 여자아이가 집을 나갔으니 얼마나 걱정하셨겠어요.”
▼ 무척 엄하셨나 봐요.
“아빠 혼자서 여자아이 키우려니 힘드셨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절 무섭게 키우셨어요. 지금도 친구들이랑 놀다 밤이 깊으면 아빠한테 전화가 와요. 그러면 전 쫄아서 곧장 집으로 가죠.”
▼ 가수는 어떻게 된 건가요.
“지금 기획사 사장님을 고등학교 2학년 때 만났어요. 오디션을 봤는데 제가 키도 크고 덩치도 좋고 목소리도 성숙하니까 여성 댄스그룹엔 안 맞는다고 봤나 봐요. 그땐 안 뽑았다가 2년쯤 후에 ‘한 번 해보자’며 연락을 해왔어요. 그렇게 해서 쥬얼리가 시작된 거예요.”
▼ 한번 록을 한 사람은 다른 장르, 특히 댄스나 트로트 권유받는 걸 자존심 상해 한다던데요.
“전 카피 밴드에서 놀던 수준이라 자존심을 내세울 정도는 아니었어요. 친구들은 제가 당연히 록을 할 줄 알았는데 춤을 추고 하니까 깜짝 놀라면서 ‘너무 멀리 돌아가는 것 같다’고 했어요. 그러다 솔로로 활동하며 록을 하니까 ‘그럴 줄 알았다, 이제야 너답다’고 했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이 대중의 사랑을 받으면 정말 좋죠. 그게 아니라면 나 혼자 좋은 음악보다는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물론 그 음악엔 자기만의 생각, 색깔, 이야기가 있어야죠.”
▼ 댄스그룹 리더로서 본인의 춤 솜씨는 어떻게 평가합니까.
“인영이처럼 요염하게 추진 못하지만 3년 가까이 트레이닝을 했으니 뻣뻣하진 않아요. 연습실에선 제가 ‘보아’라고 불릴 만큼 잘 췄어요(웃음). 춤도 성격을 닮는 것 같아요. 섹시하지 않은 사람이 섹시한 춤을 추면 어색하잖아요.”
“임신부 보면 부러워요”
뜬금없이 “결혼했느냐”고 물었다.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애가 있느냐”고 다시 묻자 “없어요” 하며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박정아씨 미니홈피에 들어가 봤는데요” 하자 그제야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싸이월드 미니홈페이지 메인 화면엔 그가 사랑스럽게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사진이 떠 있다.
“조세현 작가가 찍은 거예요. 지난해에 국내 입양문화 활성화를 위한 사진전을 했는데, 좋은 행사라 참가했어요. 재작년에 배우 김정은씨가 누드로 아이를 안고 찍어 화제를 모았던 행사예요. 그때 상업적이라는 비난을 받았나 봐요. 김정은씨는 입고 있던 옷이 아기의 연약한 피부를 자극해 아기가 아파하니까 벗은 건데, 오해가 있었던 거죠. 처음엔 ‘나도 다 벗고 찍어야 되는 거 아냐?’ 하고 걱정했는데, 그냥 찍더라고요. 아기가 너무 예뻤어요. 임신하신 분들 보면 정말 부러워요. 얼마나 예쁘고, 얼마나 행복할까 싶어요.”
▼ 여성을 위한 콘서트에도 참가하고, 유방암 예방을 위한 핑크리본 캠페인 전국투어도 했더군요. 평소 여성 문제나 소외된 이웃에 관심이 많은가요.
“좋은 취지의 일은 다른 스케줄을 미루고라도 하는 편이에요. 하고 나면 왠지 뿌듯하거든요. 단, 정치 쪽 일은 절대 안 해요.”
박정아에겐 아픈 개인사가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가 이혼을 했다. 몇 년 전엔 당뇨를 앓던 어머니가 부분기억상실증을 앓는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 그런 쪽에 관심을 갖는 건, 개인사도 작용한 게 아닐까요.
“그랬을 수도 있죠. 하지만 개인사와 상관없이 누구나 하고 싶지 않을까요? 다큐멘터리에서 지구 온난화 때문에 북극 빙하가 녹아 북극곰이 빙하에 오르려고 위태롭게 헤엄치는 걸 보면 누구나 눈물이 맺히잖아요.”
등산으로 다져진 부녀의 정
▼ 어머니의 건강은 어떠신가요.
“그냥 ‘많이 좋아졌다’고만 써주시면 좋겠어요.”
▼ 자주 만납니까.
“병원에 자주 찾아가고 그래요.”
▼ 부모님 이혼 후 아버님과 함께 살았다고 했는데.
“어릴 땐 왔다갔다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인가, 아빠가 위염으로 밤에 끙끙 앓으시는 걸 봤어요. 그때 ‘내가 어려도 밥을 챙겨 먹을 수 있으니까 아빠를 돌봐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빠랑 살겠다고 했어요. 사실은 여자가 정신적으로 더 약하다는 걸 커서야 알았죠. 어릴 때 알았으면 아빠랑 안 살고 엄마랑 살았을 거예요.”
박정아는 2006년 가을 솔로앨범을 내며 로커로서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영향이 없지는 않았을 거예요.”
▼ 딸들은 흔히 엄마 편이라 당시 아빠에 대한 원망이 컸을 텐데요.
“저는 누구 편도 아니었어요. 지금도 무슨 일이든 양쪽의 처지를 다 수긍하는 편이에요. 부모님이 이혼하신 데에도 다 이유가 있었겠지 그러면서 그냥 속으로 삭인 것 같아요.”
▼ 마음의 응어리를 노래로 풀었습니까.
“맞아요. 노래하고, 친구들이랑 놀고…. 산에 다닌 것도 마음잡는 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산 좋아하는 사람치고 못된 사람 없다잖아요. 아버지는 지난해 엄홍길 대장과 로체샤르 남벽 원정대에 참가하셨을 만큼 산을 좋아하세요. 처음엔 엄마랑 살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아빠를 만났는데, 그때마다 저를 산에 데려가곤 하셨어요.
산을 오르면 마음이 정말 편안해져요. 자일에 의지해 아빠와 함께 암벽을 오르고 나면 그 기분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어요. 산속에 텐트 치고 같이 자기도 하고요. 제가 추위를 많이 타니까 아빠가 밤새 따뜻하게 안아주셨어요. 아빠에게 전 늘 아기죠. 얼마 전까지도 천둥 치면 무섭다고 베개 들고 아빠 옆에 가서 잤어요.”
“사랑은 있을 때 지켜야 하는데…”
▼ 매주 산을 탔으니 까무잡잡한 선머슴 같았을 텐데, 쫓아다니는 남자들이 있었나요.
“있었죠. 집 앞에서 꽃 들고 있는 오빠 많았어요. 지하철 타고 가면 쪽지를 건네는 아이도 많았고요.”
▼ 그동안 섹시하다기보다는 털털하고 중성적인 이미지를 풍겼는데도 접근하는 남자 연예인이 많았던 모양이죠.
“(눈을 흘기며) 저도 여잔걸요.”
▼ 그런 일을 겪으면 기분이 어때요.
“남자 연예인들은 그런 게 있어요. 한번 찔러보고 안 되면 마는 거요. 그런 심보를 가진 이들은 대시한 남자 명단에 넣고 싶지도 않아요. 전 연예인을 사귀어본 적이 없어요. 연예인이라 싫은 건 절대 아닌데, 딱 이 남자다 그런 느낌이 없었던 것 같아요.”
▼ 반대로 본인이 쫓아다닌 경우는 없고요?
“제가 좋아한 경우요? 없어요. 아! 홍경민 오빠는 제가 좋아했어요. 이성으로도 그렇고, 선배로서도 그렇고요. 근데 이성보다는 선배로서 좋은 게 더 강했죠. 경민 오빠랑 저는 비슷한 면이 많아요. 얘기하다 보면 느껴요. 그래서 잘 따르고 좋아했는데 갑자기 스캔들이 나니까 너무 미안했어요.”
▼ 사랑에 빠져본 적이 있나요.
“사랑은 있을 때 지켜야 되는 거 같아요. 그냥 내가 좋아서, 이기적인 생각인지도 모르고 사람을 만난 적이 있어요. 저는 제가 연예인이니까 상대방이 제게 맞춰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밖에서 영화도 못 보고, 밥도 못 먹고, 사람들 있는 데는 같이 못 가고 그랬죠. 그래도 전 행복했는데, 상대는 그렇지 않았나 봐요. 지쳤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헤어진 적도 있어요.”
▼ 약속을 잘 지킨다고 소문이 났더군요.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아예 안 해요. 저는 남의 도움도 잘 안 받으려는 스타일이에요. 너무 자립심 강하게 컸는지 모르겠어요. 그것 때문에 남자친구와도 많이 싸웠어요. 그래도 빚지는 거 같아서 싫어요. 남자친구가 나 때문에 신경 쓰는 거 자체가 미안했고요.”
▼ 사랑하면 서로 의지하고 싶고 도와주고 싶고 그런 거 아닌가요.
“그걸 이제야 알았어요. 과거에는 몰랐어요.”
‘즐겁게 살자’
▼ 진면모를 잘 모르겠어요. 털털하지만 예민한 것 같고, 그러면서도 낙천적이고….
“저는 제가 대단히 노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사람들도 저를 편하게 여기는 줄 알았고. 그런데 의외로 제 속을 모르겠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 예민한 B형인가요.
“24년 동안 B형인 줄 알고 살았는데 A형이래요. 몇 년 전 우연히 초등학교 때 생활기록부를 봤는데 A형이라고 써 있더라고요. 그걸 보고 쥬얼리 멤버들이 ‘그럼 그렇지, 그렇게 소심한 언니가 무슨 B형이야’ 하더군요.”
▼ 좌우명이 있다면?
“제가 하는 일은 뭐든 분명한 이유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그 이유를 찾는 게 더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즐겁게 살자’가 제 좌우명이에요, 하하.”
▼ 그룹 이름이 ‘쥬얼리’니까 나름대로 자신을 상징하는 보석을 정해놨을 것 같은데요.
“제 탄생석이 자수정이에요. 자수정은 성실함과 정직함의 상징이래요. 가수활동도, 인생도 꼭 그랬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