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호

감성 영화 ‘청포도사탕’ 주연 박진희

“모범생 같다고요? 저도 한때 일탈해봤어요”

  • 김지영 기자│kjy@donga.com

    입력2012-09-20 17: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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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 쓰는 사람과 평생 함께하고파
    • 한때 깊어지던 우울증, 명상으로 극복
    • 20대 중반 성장통 겪으며 자아 성숙
    • 술은 현재진행형, 담배는 과거형
    • “똑 부러져 보이지만 실수 많은 덜렁이에요”
    감성 영화 ‘청포도사탕’ 주연 박진희
    배우 박진희(34)를 만난 건 8월 21일 오후 6시 서울 왕십리에 있는 한 카페에서였다. 마침 이날 오전에는 그가 출연한 영화 ‘청포도사탕’ 시사회가 열려 인터뷰를 하기 전에 내용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스크린 나들이는 ‘친정엄마’ 이후 2년 만인 데다 그가 맡은 여주인공 선주는 밝고 씩씩한 기존의 이미지와 상반된 캐릭터라 여느 때보다 더 큰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극 중에서 박진희는 결혼을 앞둔 은행원 선주로 등장한다. 겉보기에는 평온한 삶이지만 선주에겐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상처가 있다. 누구에게도 솔직히 털어놓지 못한 17년 전의 그 상처는 어린 시절 친구 소영(박지윤 분)과 재회하면서 되살아나고 선주는 견디기 힘든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자아를 찾아간다.

    전체적으로 전개가 빠른 작품은 아니지만 선주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은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을 만큼 팽팽하게 이어졌다. 인간의 고뇌를 섬세하게 건드리는 박진희의 내면 연기는 그중에서도 백미로 꼽을 만했다. 특히 과거의 진실과 맞닥뜨리는 게 두려워 옛일을 파헤치는 소영에게 분노를 터뜨리는 장면이나, 소영을 가이드하기로 한 사실을 숨기고 다른 일로 출장 가는 것처럼 속이는 남자친구의 거짓말을 태연하게 받아주는 장면에서는 객석에서 욕설이 튀어나올 정도로 영화에 몰입하게 했다.

    그로부터 여섯 시간이 지나 박진희를 만났을 때도 그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박진희가 선주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연스레 이런 질문이 튀어나왔다.

    “영화 찍으며 위로받은 느낌”



    ▼ 선주는 왜 거짓말하는 애인에게 아무 말도 못한 건가요?

    “화낼만한 지점들이 있지만 선주는 대놓고 표현하지 못하는 성격이에요. 제게도 비슷한 면이 있었어요. 연인과 문제가 있어도 제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참는 게 둘 관계에서는 별로 좋은 일이 아니에요.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설령 부끄러운 일일지라도요. 그래야 관계가 더 오래 유지되는 것 같아요.”

    ▼ 그런 깨달음을 얻은 계기가 있었나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했어요. 불편한 감정을 숨기고 마냥 참는 것이 누군가를 오래 만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요. 그렇다고 아무 때나 화내진 않아요. 화낼만한 일이면 한두 번은 참지만 그게 쌓이면 어느 순간 폭발하더라고요. 요즘은 폭발하기 전에 평정심을 찾으려고 해요. 그게 최선이죠.”

    ▼ 극 중 배역에 너무 몰입하면 감정을 추스르기가 힘들다던데 어땠나요?

    “촬영 후반부에 선주 아파트에서 여러 신을 찍었는데 중요한 장면이 많았어요. 그걸 다 찍고 새벽 4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가는데, 너무 헛헛해서 감독님한테 문자를 보냈어요. 선주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까 되게 아쉽고 마음이 먹먹하고 그렇다고요. 감독님도 저랑 똑같은 감정을 느꼈다고 하시더라고요.”

    ▼ 영화 말미에 애인에게 이별을 고할 때 기분이 어떻던가요?

    “마음이 정화된 듯 카타르시스 같은 것을 느꼈어요. 전 우리 영화가 서른 살에 성장통을 겪는 선주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성장통을 겪는 과정에서 소라가 17년 전에 있었던 사건을 선주에게 자꾸 일깨워주는데, 선주는 그 기억을 완전히 잊어버렸거든요. 억지로 잊었겠죠. 두려움이나 충격이 너무 크면 회피하고 부정하게 되잖아요. 어느 순간에는 그런 기억이 없다고 믿게 되고요. 선주는 어릴 적 친구 소라를 만나면서 17년 동안 잊고 살았던 열세 살 때의 아픈 기억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고, 다시 한 번 알을 깨고 나오는 고통을 느껴요. 아픈 만큼 한 단계 성숙하게 되고요.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저도 위로받는 느낌이었고 한 단계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 선주처럼 친구 때문에 아파본 경험이 있나요?

    “그럼요. 스무 살에 연기활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어요. 중고등학교 때는 친구 때문에 한 번씩 상처를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잖아요. 저도 그런 적이 있죠. 중고교를 같이 다닌 절친한 친구가 있어요. 그런데 그 친구에게 남자친구가 생긴 뒤로 연락이 끊겼어요. 학창시절에 친하게 지낸 친구들이 있는데 그 무리하고도 연락을 끊었고요. 그땐 어렸기 때문에 ‘사랑하는 친구니까 이해해야지’ 그런 좋은 시선으로 보지 못했어요. ‘어떻게 남자 때문에 연락을 끊을 수 있지?’ 하는 배신감이 들었어요. 내 친구를 남자친구한테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이었으니까요. ‘네가 연락을 끊어? 나도 끊는다!’ 하고 지내다 3년 만에 우연히 그 친구를 만났어요. 강남 신사동 길에서요. 멀찍이서 걸어오는 그 친구를 한눈에 알아보겠더라고요. 근데 연락이 끊겼을 때처럼 미운 마음이 드는 게 아니라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그랬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3년 동안 제 마음의 키도 자랐을 거고, 너무 좋아했던 친구이기도 해서 서로 웃으며 재회했죠. 그 뒤로 다시 친해져서 자주 만나요. 그 친구는 결국 남자친구랑 결혼해서 잘살고 있어요. 얼마 전에 둘째 낳아서 보러 갔다 왔어요.”

    ▼ 친구를 사귀면 오래가나요?

    “좀 오래 사귀는 편인 것 같아요. 지금도 만나는 학창시절 친구가 예닐곱 명은 되는데 한 명은 초등학교 때 친구고, 나머지는 다 중학교 때 친구예요. 사회생활 하면 친구가 많이 생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더라고요.”

    ▼ 학창시절 친구들을 몰고 다녔나요?

    “그렇진 않았어요. 그냥 무리 중 하나였죠. 튀지도 얌전하지도 않고, 공부도 중간 정도 하는 평범한 아이였어요. 어릴 적부터 밝고 활달하긴 했는데 앞에 나설만한 정도의 리더십은 없었어요.”

    ▼ 그때부터 배우를 꿈꿨나요?

    “전혀요. 고교 때까지는 선주처럼 살았던 것 같아요. 선주가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특별함이나 일탈을 꿈꿔본 적이 없는 것처럼, 저도 특별한 길을 갈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어요.”

    ‘여고괴담’은 첫사랑 같은 작품

    그의 데뷔작은 1997년에 방영한 드라마 ‘스타트’다. 고교를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다. 학창시절 내내 연예인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삶을 살던 그가 어쩌다 이 길로 들어선 걸까.

    “졸업식을 하고 나서 대학 가려고 재수를 했어요. 딱히 꿈이 있어서가 아니라 다들 대학 가니까 나도 가야지, 하는 선주 같은 마음이었어요. 그러던 차에 매니저로 일하던 오빠 친구가 놀러와 아르바이트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묻더라고요. 돈 많이 준다기에 학원비 벌 요량으로 시키는 대로 드라마 오디션을 봤는데 너무 감사하게도 감독님이 절 뽑아주셨어요. 그 작품이 ‘스타트’인데 한 1년은 일하면서도 큰 애정이 없었어요. 그저 나중에 결혼하면 아이에게 자랑할 만한 추억 정도로 여겼죠.”

    ▼ 그럼 연기가 절실해진 건 언제부턴가요?

    “1998년에 ‘여고괴담’이라는 영화를 찍고 나서였어요. 이듬해 동덕여대 방송연예과에 들어간 것도 연기를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고요. 연기를 잘하고픈 욕심과 제 능력의 괴리를 이겨내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연기하며 갈망하고 갈증 났던 부분을 학교에서 전문적으로 배우면 해소될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 롤 모델이 있었나요?

    “막연히 김혜자, 고두심 선생님처럼 되고 싶긴 했죠. 연기자라면 누구나 닮고 싶어 하는 훌륭한 배우의 대명사니까요. 그분들처럼만 된다면 배우로서 더 바랄 게 없어요.”

    ▼ ‘여고괴담’으로 떴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얼떨떨했어요. 저 자신에게 놀라기도 했고요. 왜냐면 제가 연기한 소영이가 저와는 동떨어진 캐릭터였거든요. 공부를 굉장히 잘해서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정신과 치료를 받을 정도로 마음에 상처가 많은 아이였는데 카메라 앞에서 소영이를 연기하면서 새로운 절 발견했어요. 나도 연기를 잘할 수 있겠구나 하는 막연한 가능성을 봤다고 할까요. 지금도 ‘여고괴담’으로 절 기억해주시는 분이 많은데, 저한테도 그 작품은 평생 잊지 못할 고마운 작품이죠.”

    ▼ 데뷔 후 꾸준한 사랑을 받았지만 인기라는 게 부침이 심한데 힘든 적은 없었나요?

    “인기에 연연하기보다는 주어진 소임에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아온 것 같아요. 스무 살에 우연히 데뷔해서 처음 한 영화가 너무 잘됐고, 처음 찍은 광고도 반응이 너무 좋았고, 인기라는 걸 실감할 겨를도 없이 바쁘게 지내다보니 20대 중반에는 내 시간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당시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도 있었고요. 사람의 성격은 왜 일관되지 않고 때와 장소, 상대에 따라 변할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 무렵 선택한 작품이 ‘러브토크’였는데 영화 찍으면서 성장통을 좀 겪었어요. 그러고 나니 한결 성숙해져서인지 연기로 할 이야기가 많아지더라고요.”

    박신양, 이범수 열정에 감동

    이후 그는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넘나들며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연기를 소화한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영화 ‘궁녀’(2007) ‘친정엄마’(2010), 드라마 ‘돌아와요 순애씨’(2006) ‘쩐의 전쟁’(2007) ‘자이언트’(2010) 등은 20대 중반에 겪은 성장통의 결실인 셈이다.

    ▼ 밝고 소탈한 성격이 성장통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됐나요?

    “어느 정도 도움이 됐겠죠. 워낙 긍정적인 편이라서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미련을 두지 않거든요.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제한돼 있는데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도 있잖아요.”

    ▼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뭔가요?

    “여러 번 연애를 해봤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마지막 연애더라고요. 작품도 그래요. 작품 수가 20~30편이다보니 하나를 꼽긴 어렵지만 가장 근래에 찍은 거라 아직 감정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청포도사탕’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첫 영화인 ‘여고괴담’은 첫사랑처럼 생각만 해도 애틋한 작품이고요.”

    ▼ 연기 호흡이 잘 맞았던 상대 배우를 꼽는다면…?

    “빈말이 아니라 신기할 정도로 모두 잘 맞았어요. 지금까지 함께 일한 상대 배우 중에서 두 번은 만나고 싶지 않은 배우가 없을 정도로요. 다들 다시 만나도 너무 좋을 것 같아요.”

    감성 영화 ‘청포도사탕’ 주연 박진희
    ▼ ‘쩐의 전쟁’의 박신양과 ‘자이언트’의 이범수는 연기 색깔이 다른데 함께 연기해보니 어떻던가요?

    “두 분이 달라 보여도 같은 지점이 있어요. 연기에 대한 열정이 두 분 다 대단하거든요. 옆에서 보고 있으면 저 나이에, 저런 경력을 가졌을 때 나도 저렇게 열심히 몰입하려고 노력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보고 배울 게 많은 분들이죠.”

    ▼ 실수해본 적 있나요?

    “굉장히 많이 하죠. 잘 덜렁대고 덤벙거려요. 기억력도 진짜 없고요. 작품에서는 똑 부러진 역을 많이 했는데 실제로는 그렇질 못해요. 뭐든 적당히 해요. 가끔은 좀 더 부지런했으면 좋겠다, 명확했으면 좋겠다, 똑 부러졌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해요.”

    ▼ 지금껏 스캔들이 없었던 걸 보면 자기관리를 똑 부러지게 잘한 것 같은데요.

    “잘 못해요. 자기관리를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은데, 그러질 못했어요. 훌륭한 배우가 되고 싶으면서도 소소한 행복을 아는 사람이고 싶거든요. 배우로서는 하지 말아야 할 행동들, 안 하면 더 좋았을만한 선택을 한 적도 있고요. 예를 들면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것도 그중 하나죠. 그때가 굉장히 바쁠 때였는데 논문 쓰느라 1년을 쉬었거든요. 배우생활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진 않았지만 인간 박진희로서는 굉장히 행복했어요. 기본적으로 인간 박진희가 행복해야지 휼륭한 연기를 하는 배우 박진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후회는 없어요.”

    ▼ 왜 하필 사회복지학을 선택했나요?

    “실은 오래전부터 공부해보고 싶은 분야였어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많이 봤고,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일을 하다보니 제가 받은 만큼 돌려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좋은지를 배우려고 공부를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있고 신났어요. 정말 열심히 공부했거든요. 고3 때 그 정도로 했으면 재수 안 하고 좋은 대학 갔겠다싶어요.”

    “휴지 대신 손수건 갖고 다녀요”

    그가 연세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치며 ‘연기자의 스트레스와 우울 및 자살생각에 관한 연구’를 논문으로 써낸 사실이 최근 화제가 됐다. 이 논문은 “같은 연예인으로서 접근성이 좋으니 다뤄보라”는 지도교수의 권유로 쓰게 된 것이지만, 그 역시 배우 이은주를 비롯한 여러 스타의 자살 사건을 접하며 연예인 우울증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터였다.

    ▼ 우울증을 경험한 적이 있나요?

    “우울증까지는 아니지만 가벼운 증상은 겪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해소방법을 모르니까 점점 더 빠져들고 더 우울해지고 그랬는데 명상하고 자연과 함께 지내면서 좋아졌어요. 명상할 땐 휴대전화를 끄고 나한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요. 산에 있는 수련원에 가기도 하고, 산세가 좋은 곳을 찾기도 하는데 얼마 전에는 경북 문경에 있는 정토수련원을 다녀왔어요. 아침 일찍 일어나서 화두를 정해 조용히 명상하다보면 어느 순간 제 자신과 맞닥뜨리게 돼요. 영화에서 서른 살 선주가 17년 전 열세 살 선주를 만나서 성장하는 것처럼, 어느 순간 정신이 맑아져요. 무기력감이나 우울한 감정에서 절 건져주는 것 같은 기분이죠.”

    ▼ 연예인이 우울증에 잘 걸리는 이유가 뭔가요.

    “연예인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우울증을 앓고 있고 그 수도 계속 늘고 있어요. 하지만 연예인은 보는 눈이 많아 자신의 처지나 감정을 감추고 살기 때문에 우울증에 더 깊이 빠질 수 있어요. 우울증을 겪고 있어도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에 증세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모르고 지내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는 거죠.”

    그동안 여러 작품에서 불의에 맞서는 캐릭터를 연기한 그는 실제로도 의협심이 남다르다. 일산 자유로의 파손된 도로 때문에 자동차 타이어 펑크사고가 자주 일어나자 당국에 항의해 보상을 받아냈고, 하천에 폐수를 무단 방류하는 것을 목격하고 인터넷에 고발 글을 올려 이를 바로잡기도 했다. 이런 그에게 개그맨 이경규는 ‘신고소녀’라는 별명을 달아줬다.

    그에 관한 훈훈한 일화는 이뿐만이 아니다. 2005년부터 3년간 서울 가양동의 한 복지관에 성금을 기탁하고, 2007년에는 서해안 원유 유출 사고 현장에 가서 기름 제거 작업에 참여했다. 이 모든 ‘선행’은 비밀리에 진행됐으나 목격자들이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서 알려졌다.

    ▼ 모범생 이미지가 강한데 실제로는 어떤가요?

    “보통 얘기하는 착하고 건강한 이미지가 저한테 분명히 있어요. 학창시절을 굉장히 평탄하고 평범하게 보냈고 그런 삶을 좋아하고요. 그렇다고 해서 일탈을 전혀 안 한 건 아니에요. 남한테 상처 주기도 했고요. 돌아보면 내가 그때는 왜 그랬을까, 왜 좀 더 크게 생각하지 못하고 안일하게 굴었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일이 부지기수예요.”

    ▼ 술, 담배 못하죠?

    “되게 잘해요. 술을 무척 좋아하고 잘 마셔요. 주량이 소주 한 병 정도 돼요. 담배는 ‘발효가족’이라는 드라마 하면서 끊었어요. 배우는 행복한 캐릭터를 연기하면 행복해지고, 우울한 캐릭터를 연기하면 우울해지는데, ‘발효가족’에서 맡은 배역이 되게 행복하고 밝은 아이였어요. 그때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행복했어요(웃음).”

    ▼ 환경지킴이, 그린배우로 불리는데 어떤 친환경 생활을 실천하나요?

    “쓰레기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고 휴지 대신 손수건을 갖고 다녀요. 일회용 수저도 안 쓰고요. 물도 보온병에 담아가지고 다녀요. 일상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친환경 수칙은 될 수 있으면 지키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 환경을 사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특별한 계기는 없어요. 제가 환경 이야기를 하면서 늘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환경을 아끼고 지구를 사랑하는 일도 교육에서 비롯된다는 거예요. 부모님이 딱히 그런 교육을 하신 건 아니지만 근검절약 정신이 투철하셔서 어릴 때부터 불 끄고 물 아껴 쓰라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듣고 자랐어요. 어머니는 지금도 비가 오는 날이면 집에 있는 모든 고무대야를 마당에 늘어놓고 빗물을 받아 쓰세요. 설거지할 때 마지막 헹구는 물로 화분에 물을 주시고요.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다보니 그런 게 저도 몸에 뱄어요.”

    ▼ 박진희 씨 같은 ‘소셜테이너’가 최근 부쩍 늘었는데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나요?

    “개인적으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소셜테이너들이 하는 모든 활동을 좋다고만은 할 수 없지만 성격이 긍정적이라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크게 보여요. 연예인은 대중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는 부류니까 어떤 사회적 이슈나 문제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자, 좋은 일을 도모해보자는 취지의 활동을 색안경 끼고 볼 필요는 없다고 봐요.”

    “최선을 다해 행복하자”

    한동안 그는 동덕여대 방송연예과 선배인 방송인 박경림과 절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었다. 아직도 둘이 가깝게 지내느냐고 묻자 그의 대답이 시큰둥하다.

    “경림 선배가 유학 가면서 연락이 좀 뜸해졌어요. 지금도 안 친한 건 아니지만 절친이라고 얘기하면 경림 선배가 기분 나빠하실 수도 있어요(웃음). 함께 일한 동료, 선후배들과 두루두루 친한 편이에요. 그중에서도 가장 친한 연예인은 탤런트 최정윤 씨고요.”

    최정윤(35)은 지난해 말 네 살 어린 사업가와 결혼했다. 친한 친구의 결혼식을 보면서 그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궁금했다.

    ▼ 친구에게 자극받아 빨리 시집가고 싶지 않던가요?

    “친구가 행복하게 사는 거 보면 ‘아, 예쁘다’ 하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아직 결혼이 절실하게 와 닿지 않아요.”

    ▼ 감정 표현에 솔직한 편인가요?

    “솔직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될 수 있으면 솔직해지려고 노력하는 거죠. 요즘에는 많이 솔직해졌다고 생각해요. 말하고 싶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다’고 솔직히 얘기하거든요. 거짓말로 둘러대는 게 아니라 제 의사를 분명히 밝힐 수 있을 정도로 솔직해진 거죠.”

    ▼ 남자친구에게도 솔직한 편인가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연애 패턴이 선주 같았는데 이제는 솔직한 게 좋다고 생각하고, 솔직해진 것 같아요.”

    ▼ 연애 경험이 연기에 도움이 되나요?

    “연애뿐만 아니라 어떤 경험이든 연기에 베이스가 될 수 있어요. 그 결과가 실패든, 성공이든 상관없이요. 배우여서 참 좋은 이유 중 하나죠. 연인과 이별하거나 사랑할 때 느끼는 모든 감정, 심지어 내가 계획한 일을 이루지 못했을 때 밀려오는 좌절감까지도 연기에 활용할 수 있거든요. 일부러 이런 감정을 내야지 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제 연기에 묻어나는 거죠. 모든 경험을 연기로 발현할 수 있다는 건 배우라는 직업의 큰 매력이죠.”

    ▼ 연애가 현재진행형인가요?

    “아뇨. 끝난 지 오래됐어요.”

    ▼ 어떤 사랑을 꿈꾸나요?

    “그런 건 없어요. 이상형이 있어도 이상형을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누구를 만나든 주어진 상황에 충실하려고 해요.”

    ▼ 평생 함께할 사람은 이런 사람이면 좋겠다, 하는 건 있나요?

    “글 쓰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실제로 만나본 적은 없는데 감성적으로 통하는 데가 있을 것 같아요. 제가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글 쓰는 분들은 활자로 표현하는 거잖아요. 표현하는 방식은 다르더라도 감성이 비슷해서 잘 맞을 것 같아요.”

    ▼ 쉴 때는 주로 뭐하나요?

    “제 또래 친구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보내요. 영화도 보고, 친구들 만나서 차 마시며 수다 떨기도 하고, 책도 읽고, 운동도 하고 그래요. TV 보며 뒹굴뒹굴하기도 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질문을 던졌다. 다시 태어나도 배우를 할 것이냐고. 그는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켜만 준다면요(웃음). 배우생활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오래도록 하고 싶어요. 제 좌우명이 ‘최선을 다해 행복하자’인데, 평생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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