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 영화이지만 ‘그랑프리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이 콤플렉스를 평소 스스로 “콤플렉스가 많다”고 말하던 김기덕 감독이 일거에 해소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김 감독은 수상의 순간에도 과거 자신의 아픈 기억을 떠올렸다.
“상을 받는 순간 청계천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구리 박스를 들고 다니던 열다섯 살의 내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경북 봉화군에서 차남으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만 나온 장남보다 차남이 더 배우면 안 된다”는 아버지 뜻에 따라 10대 때부터 청계천 주변의 공장에서 일했다. 군 제대 후 유럽을 떠돌며 거리의 화가로 지냈고 학교 등에서 정규 영화 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 그의 이런 독특한 인생 역정이 창조적 파괴력의 원천이 됐다. 영화전문지 ‘버라이어티’ 전직 기자인 미국인 달시 파켓 씨는 “영화는 학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김기덕 감독의 다른 경험이 다른 감동을 준다”고 평가했다.
김 감독은 이번 수상으로 세계적 거장 반열에 올랐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아웃사이더’다. 상영관을 못 잡는 문제는 그를 항상 괴롭힌다. “‘피에타’도 사실 예전 영화들처럼 묻힐까봐 걱정이 됐어요. 정말 여기서 관객들이 봐주지 않는다면 오라는 나라는 많을 거니 거기 가서 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죠.”
국내보다 유럽서 알아준다고 하지만 ‘김기덕 마니아’들은 그에게 영화를 만드는 힘이다. “이 상을 받은 것에 가장 깊이 축하해주는 분들은 소리 없이 지지해준 내 영화의 관객이 아닌가 합니다. 외국에 나가면 받는 질문이 ‘한국에서는 인기가 없고 유럽에서 인기가 있는데 기분이 어떠냐’는 것이었죠. 그때마다 저는 ‘아니다, 한국에서도 프랑스나 미국만큼 영화를 지지하고 아껴주는 팬들이 있다’고 말했죠.”
‘피에타’는 김 감독의 이전 작품보다 대중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역력히 드러난 작품이다. 그는 더 많은 관객과 손을 잡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했다.
“다음 영화도 대중적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재미있고 의미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죠. 내가 제작하는 ‘신의 선물’은 이미 촬영이 됐고 ‘붉은 가족’은 남북 이야기인데 10월에 촬영에 들어갑니다.”
그는 “앞으로 모든 언론과 접촉을 끊고 강원 홍천군의 움막에서 시나리오 작업에 몰두할 것”이라고 했다. 태양열로 전기를 만들어 쓰는 이 집에는 화장실도 수도도 없다. 오로지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