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정원 판단 실패로 통일 초석 호기 잃어
- 남재준 전 원장, 국정원 직원들에게 ‘포획’
- 객관 아닌 주관에 따라 정보 해석해 정책 수립
- 정권의 사냥개 아닌 야생의 늑대 돼야
구해우 전 국가정보원 북한기획관은 7월 29일 사석에서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구 전 기획관은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의 추천으로 국정원에 들어가 올해 초까지 북한 문제를 다뤘다.
‘신동아’는 구 전 기획관에게 박근혜 정부 1기 국정원의 대북정책 방향과 관련한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는 직무상 얻은 정보와 관련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는 조건으로 요청을 수락했다. 국정원법은 전·현직 직원이 직무상 취득한 비밀을 누설하면 처벌하게 돼 있다.
국정원 고위인사(1급)가 현직에서 물러난 직후 언론 인터뷰에 응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구 전 기획관은 “잘못된 정책 판단 탓에 통일의 초석을 쌓을 호기를 잃은 것 같다”면서 “정보가 아닌 정책과 관련해 할 말은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구 전 기획관은 20년 넘게 북한 문제에 천착해왔다.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고려대 대학원에서 북한 개혁·개방을 주제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0년대 초반 SK텔레콤 북한담당 상무로 남북경협 현장에서 뛰었다. 미국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 객원연구원을 지냈다. 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 윤영관 서울대 교수,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2001년 미래전략연구원을 꾸릴 때 산파 구실을 했다. 국정원에서 근무하기 직전에는 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을 맡았다.
인터뷰는 7월 31일, 8월 7일 서울 종로구 미래전략연구원 사무실에서 두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국정원 메커니즘에 포획”
▼ 국정원의 북한 관련 핵심 직책에서 일한 것으로 아는데.
“남 전 원장이 취임 직전 함께 일하자고 제의했다. 의기가 투합했다. 올 초 대북정책과 관련한 견해 차이로 사직할 때까지 1차장(해외 및 북한담당) 산하 북한담당기획관으로 일했다. 국정원장을 보좌하면서 대북정책과 관련해 조언했다. SK텔레콤 북한담당 임원으로 일할 때부터 북한, 중국에서 북측 인사를 수십 차례 만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 개인적인 채널로 확보한 정보를 국가기관이 획득한 정보와 비교·분석하는 유익한 경험을 했다.
국정원은 정부 어느 부처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두터운 인적·물적 자원을 갖고 있다. 또한 남북통일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할 조직이다. 국정원에서 일하면서 국가와 정부 차원에서 통일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파악할 수 있었다. 다만 통일을 실천적, 구체적으로 추진해나가야 할 중차대한 시기에 의미 있는 정책을 실제적으로 구현하지 못한 것에 깊은 아쉬움을 갖고 있다.”
▼ 남 전 원장은 안보관이 투철한 인사다. 또한 강한 보수주의자다. 가까이에서 본 남 전 원장은 어떤 사람인가.
“남 전 원장은 투철한 애국심을 가졌을 뿐 아니라 국가를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헌신적인 사람이다. 안보 문제에 대한 높은 식견, 공직자가 가져야 할 청렴성에서도 남 전 원장에 비견할만한 사람을 찾기 어렵다. 참된 보수주의자다. 존경할만한 분이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다만, 21세기 국정원은 변화한 시대적 조건 속에서 일해야 한다. 한국 사회는 세계화·정보화·민주화됐다. 복잡한 사회 현실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에 기초해 조직을 개혁하면서 일해야 한다. 감사원에서 20년 넘게 근무한 후배가 ‘수많은 원장이 거쳐갔지만 하나같이 취임 후 3~6개월이 지나면 감사원 직원들의 논리와 메커니즘에 포획됐다. 단 한 번도 예외가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국정원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한다. 남 전 원장 또한 예외가 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 남 전 원장은 소문난 ‘강골’ 아닌가.
“강골이건 아니건 상관없다. 북한문제에 대한 깊은 식견이 부족하면 보고하는 사람에게 의존하게 마련이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남재준 전 국정원장이 지난해 6월 10일 청와대 외교안보장관 회의에 앞서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현 대통령국가안보실장), 김장수 당시 대통령국가안보실장(왼쪽부터)과 대화하고 있다.
“막연한 바람으로 움직여서야”
▼ 염돈재 전 국정원 1차장(2003~2004년)은 ‘월간조선’ 8월호 인터뷰(‘원장들이 국정원 망쳤다’ 제하 기사)에서 “군 출신과 외교관은 국정원 책임자로 부적합하다”고 했다.
“염 전 차장 인터뷰 기사를 읽어봤다. 국정원 경험이 없는 사람이 원장을 맡았을 때 문제가 많았다는 게 골자다. 염 전 차장의 이야기를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관피아’라는 단어가 회자된다. 순수 국정원 출신 간부만으로는 개혁을 해내기 어렵다. 정치 개입이 일어난 데도 중앙정보부 시절 이래 국정원 간부들의 관성이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외부 인사와 국정원 출신이 상호보완적으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남 전 원장은 취임 이후 1급 간부 거의 모두를 해임하고 군 출신 측근을 요직에 배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 전 기획관 역시 군 출신은 아니지만 측근 그룹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 수행 과정에서 남 전 원장의 역할은 지난해 말까지 무소불위에 가까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통령이 가장 신뢰하는 정보는 국정원의 정보일 수밖에 없다. 구 전 기획관은 1기 국정원과 관련해 ‘우파주관주의’ ‘Wishful Thinking(막연한 바람)’이라는 표현을 썼다.
“남 전 원장이 재임할 때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봉쇄·압박을 통해 북한을 붕괴시켜 통일을 추진하는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 때 대북정책에 영향력이 컸던 김태효 전 대통령대외전략기획관 주도로 추진돼 별다른 성과를 남기지 못한 정책과 비슷하다.
이 같은 정책은 우파주관주의의 산물이다. 김 전 기획관이 추진한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이 실패한 것은 ‘객관’적으로 정보를 해석해 정책을 수립한 게 아니라 자신이 믿는 생각에 따라 ‘주관’적으로 해석해서 ‘Wishful Thinking’을 바탕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한반도가 가진 지정학적 조건을 고려할 때 봉쇄·압박만으로 정책 변화를 강제하거나 붕괴를 이끌어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 북한이 중국과의 관계가 다소 소원해지자 일본, 러시아와 관계 개선, 협력 확대에 나선 것에서도 봉쇄·압박정책의 한계를 확인할 수 있다.”
▼ 박근혜 정부와 ‘1기 국정원’의 대북정책이 성과보다 한계가 더 많았다는 얘기인가.
“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과 이명박 정부의 봉쇄·압박정책이 가진 한계를 뛰어넘어 통일을 실질적으로 준비하는 대북정책을 마련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데도 정권 초기부터 지금껏 이명박 정부 식의 봉쇄·압박정책을 답습하는 데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최근엔 북한과 관련한 중국의 역할에 과도하게 기대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북핵 및 북한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노력이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우려스럽다.”
집단적 사고의 늪
▼ 지난해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한반도에 위기가 고조됐다. 평양은 전쟁 위협에 나서면서 개성공단 폐쇄마저 단행했다. 박근혜 정부는 ‘원칙 있는 협상’을 거쳐 개성공단을 재가동하는 등 위기 국면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않았나. 국민도 다른 분야와 달리 대북정책, 외교정책에는 높은 점수를 줬다.
“정부가 북한의 3차 핵실험과 개성공단 폐쇄에 맞대응한 과정은 원칙 있는 협상을 했다는 점, 위기관리를 잘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대북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통일이어야 한다. 역사적 과제를 고려할 때 좀 더 능란하고 전략적인 대응이 필요했다. 중국의 부상 등 동북아 정세가 급변한다. 통일을 위해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남북 간에 벌어지는 사건마다 전략적 시각에서 조망해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 박근혜 대통령은 1월 “통일은 대박”이라고 강조했다. 3월에는 독일 통일의 상징 격인 드레스덴에서 대북 구상을 내놓았다. 북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통일은 대박이라는 어젠다를 제시한 것은 시의적절했다. 보수와 진보를 넘어 모든 국민에게 통일의 긍정성을 알리고 의지를 북돋는 차원에서 선명한 어휘를 내놓은 것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구체적인 정책과 해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드레스덴 구상 또한 이명박 정부의 ‘통일항아리 운동’ ‘비핵개방3000구상’과 차별성을 만들어내기 힘들 것이다.”
▼ 똑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만 모여 집단적 사고의 늪에 빠져 정보를 해석하면 결과물은 주장(主張)이 돼버린다. 노무현 정부 대북정책의 ‘이념 과잉’이 대표적이라고 하겠다. 장성택 숙청 후 남 전 원장은 집단적 사고를 바탕으로 김정은 체제가 불안정해졌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정책을 수립한 것 같다. “2015년 통일을 위해 다 같이 죽자”는 남 전 원장 발언이 외부에 알려지기도 했다.
“장성택 숙청은 평양 내부 정세뿐 아니라 북중관계 남북관계 한중관계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일대 사건이다. 2009년 5월 북한의 2차 핵실험 두 달 뒤에 열린 중국 공산당 한반도공작소조(조장·시진핑) 회의 이후 중국의 대북정책은 투트랙(Two-Track)으로 진행됐다.
한편으로는 북핵 문제 악화를 방지·관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 내부에 친중세력을 확산해 정권의 변화를 추진하는 것이었다. 북한 내 친중세력의 핵심인사가 누군가? 정성택이다. 김정은 체제의 친위세력이 장성택을 숙청한 것이 사태의 본질이다.
장성택은 거칠게 말해 연남생에 비유할 수 있다. 고구려 말 권력투쟁에서 밀린 연개소문의 아들 연남생이 당나라와 협력해 고구려에 칼을 겨눈 사례와 비교해 해석이 가능하다. 장성택은 중국을 이용해 권력을 공고화하려 했으나 실패한 것이다. 요컨대 장성택 숙청 사태 이후 김정은 체제는 불안정성이 커질 가능성보다는 오히려 안정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조선일보’가 지난해 12월 보도한 국정원 핵심간부 송년회에서의 남 전 원장 발언은 우파주관주의의 실체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정보 해석이 Wishful Thinking에 따라 이뤄졌다고도 할 수 있다. 장성택 숙청으로 북한이 불안정해졌으니 압박을 더 강화해 김정은 체제를 와해하고 통일을 이루자는 게 골자다. 북한을 봉쇄·압박할 것이 아니라 평양 내부 정세와 북중관계를 분석해 한국의 통일전략에 기초해 전면적 대북 개입에 나섰어야 했다.”
南 “2015년 통일” 발언 배경
‘조선일보’는 지난해 12월 24일 남 전 원장이 핵심 간부 송년회에서 “우리 조국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통일시키기 위해 다 같이 죽자”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한 송년회 참석자는 ‘조선일보’에 “2015년에는 자유 대한민국 체제로 조국이 통일돼 있을 것” “국가보안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조국 통일을 위한 ‘구체적 플랜’도 논의했다”고 밝혔다. 남 전 원장은 이 보도 내용을 부인한다. 국정원 안팎에 따르면 장성택 사후 국정원 내부에서 정책 방향을 두고 논쟁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절대 다수 의견이 평양을 더 압박해 붕괴시키자는 쪽이었다고 한다. 군 출신 인사들이 특히 그렇게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맹동주의 문제점 증명돼”
구 전 기획관은 이렇게 말했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에 기초해 북한체제를 고립시키고 봉쇄·압박하면 통일이 이뤄진다는 것이 우파주관주의의 요체다. 이건 더 나아가면 ‘우파맹동주의’가 된다.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것에서 우파주관주의, 우파맹동주의 문제점은 확인·증명됐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조건에 대한 몰이해와 북한체제에 대한 깊이 있고 구체적인 인식이 부족했던 것이다.”
▼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 핵 개발을 사실상 방조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명박 정부의 봉쇄 정책 또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대로 놔두면 북한 핵이 파키스탄 모델로 나아가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장성택 사후 전면적 대북 개입에 나섰어야 한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뜻인가.
“북한은 파키스탄과 유사한 형태로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되려 한다. 2003년부터 북한이 파키스탄 모델로 핵 개발을 추진했으니 대응이 필요하다고 역설했으며, 2009년 5월 2차 핵실험 이후에는 북한이 파키스탄 모델에 진입했다고 분석한 바 있다. 북한이 핵 개발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햇볕정책도 봉쇄·압박정책도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앞서 말했듯 중국은 2009년 7월 이후 북핵이 악화, 확산하지 않게 관리하면서 북한 내 친중파 확산을 통한 정권의 변화를 꾀했다. 앞서 말했듯 그 과정에서 중국이 지목한 핵심 인물이 장성택이다.
한국은 2009년 5월 2차 핵실험 이후 중국보다 더 적극적·전략적·종합적으로 투트랙을 운영했어야 했다. 6자회담 참가국과 함께 북핵의 동결 및 확산 방지 정책을 추진하면서 개혁·개방을 이끌어내는 방안을 마련했어야 했다. 미국과 전략을 공유하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역외가공지역을 인정하는 조항을 활용해 개성공단과 같은 특구를 대폭 늘렸어야 했다.
한국이 참여한 특구가 5개 정도 마련되면 김정은 체제는 필연적으로 정권 진화(Regime Evolution)의 길을 밟게 된다. 이 과정에서 북한 내 개혁·개방 추진 세력을 육성해낼 수 있다면 그것이 통일로 가는 길이 될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이 같은 방향의 개입 정책을 구사하는 것이 ‘통일 대박’의 길이라고 믿는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한반도 주변 정세를 고려할 때 6자회담 참가국(한국 북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에 1991년 두만강유역공동개발에 참여한 몽골을 더해 7개국이 최우선적으로 나진·선봉특구를 공동 개발하면 큰 성과를 내리라고 본다.
이와 함께 북한의 자생적 개혁·개방 추진 세력을 어떻게 육성할지 구체적인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 국정원이 이 같은 공작에 앞장서야 한다. 북한 개혁·개방이 중국 주도로 이뤄지는지, 한국 주도로 이뤄지는지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은 바뀔 것이다. 중국이 주도하면 남북의 분단은 고착화할 것이다. 한국이 주도하면 통일의 길이 열린다.”
“중국에 환상 갖는 건 더 위험”
▼ 8월 7일 통일준비위원회(위원장·박근혜 대통령) 첫 회의가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 주재로 열렸다. 7월 18일 취임한 이병기 국정원장은 대북 온건파로 분류된다. 대북정책 기조가 변화하리라는 관측이 나온다. 박 대통령은 통일준비위원회 첫 회의에서 “북한 고립이 목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박근혜 정부 ‘2기 국정원’과 통일준비위원회 활동이 본격화하면 대북정책의 흐름이 바뀔 수 있다고 보지만, 수정된 대북정책의 내용이 중국의 역할에 대한 과도한 기대, 다시 말해 ‘중국 환상론’과 결합해버리면 ‘유사(類似) 햇볕정책’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중국 환상론은 통일에 도움 주는 게 아니라 분단 고착화에 기여할 뿐이다. 중국의 전략을 오판하면 한반도의 미래에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 중국 환상론이 우파주관주의보다 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구해우 전 국정원 기획관은 “북핵 및 북한 문제에 대해 중국의 역할을 바라는 것은 환상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 정치권 인사들에 따르면 남 전 원장은 북한 문제 해결과 관련해 중국의 역할을 기대하는 박 대통령의 생각에 대해 ‘그것은 실제가 아닌 허상일 뿐’이라면서 부정적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그로 인한 갈등도 있었다고 들었다.
“대(對)중국 외교를 두고 박 대통령과 남 전 원장의 의견이 달랐다. 남 전 원장은 중국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여겼다. 중국에 대한 남 전 원장의 비판적 태도와 정책적 소신이 경질의 중요한 배경이었다고 본다. 중국과 관련해 나는 남 전 원장과 생각이 비슷하다.
중국은 한미동맹 균열 전략을 단계적으로 관철해왔다. 한국을 중국 쪽으로 끌어당기려는 것이다. 5월 상하이에서 열린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에서 한 중국 인사가 한국 외교관에게 조공 외교를 권유하는 듯한 발언을 해 속내를 드러낸 적도 있다. 중국은 한중정상회담을 의도적으로 미국 독립기념일을 끼고 진행해 한국이 미국보다 중국을 환대한다는 식의 모습도 연출해냈다. 하얼빈의 안중근기념관은 한미일 동맹을 균열시키는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중국의 이 같은 일련의 행동은 왕후닝의 작품인 것으로 보인다.”
CICA는 1992년 카자흐스탄의 제안으로 결성된 지역안보협의체로 중국, 러시아 주도로 26개국이 참여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5월 21일 CICA 기조연설에서 “CICA를 아시아 안보 대화 협력의 플랫폼으로 만들어 지역안보 협력을 위한 새로운 틀을 건설하자”고 제안했다. 미국을 배제한 중국 주도의 안전보장 체제를 아시아에 구축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시 주석은 7월 3, 4일 한국을 국빈 방문했다. 미국 독립기념일은 7월 4일이다. 왕후닝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원 겸 정책연구사무소 주임(부총리급)은 시진핑 주석의 핵심 책사다. 1995년부터 정책연구사무소에서 중국의 ‘국가 대전략’을 연구해왔다.
“곡학아세하는 일부 좌파”
구 전 기획관의 주장을 계속 들어보자.
“지난해 12월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을 접견한 자리에서 ‘미국의 반대편에 베팅하는 것은 좋은 베팅이 아니다’라면서 ‘미국은 계속 한국에 베팅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편에 설 것인지, 미국 편에 설 것인지 확실히 하라고 강조한 것이다. 말실수가 아니다. 미국 핵심부가 가진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조건에서 한미동맹이 확고하지 않으면 통일은 고사하고 혼란의 수렁에 빠질 것이다. 한중협력을 확대하더라도 외교에서의 우선순위는 분명히 해둬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좌파 학자는 공공연히 ‘중국이 강성했을 때 한반도가 평화로웠으며 조공외교가 경제적 번영을 가져다줬다’고 선동한다. 중국이 강성하던 한나라 무제 때 고조선이 멸망하고 한사군이 설치된 것, 당나라 태종 때 고구려가 침략당하고 결국 멸망한 것, 원 제국이 등장해 고려를 지배한 것, 청 제국의 등장과 함께 병자호란을 겪은 것 등 피의 역사를 덮어둔 채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것이다.”
그는 “박근혜 정부에서 북한 문제 해결과 관련해 중국의 역할을 과도하게 기대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 가장 우려스럽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중국 환상론이 한미동맹의 미래와 동북아 질서의 변화에 가져올 악영향에 대해 냉철하고 정확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정부는 한중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 원칙에 합의한 것을 과대평가한다. 북중관계를 면밀히 들여다보면 평양에 대한 베이징의 개입은 매우 제한적이다. 특히 장성택 숙청 이후 북핵 및 북한 문제에 대해 중국의 역할을 바라는 것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될 것이다.
한중FTA 협상에서도 중국이 주장해온 서비스 분야의 포지티브(원칙적 미개방 후 개방 분야 별도 지정) 방식에 양보하는 등 체결 자체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FTA는 단순한 경제협정이 아니라 국가안보 전략과 긴밀히 연관돼 있다. 한중FTA는 중국과의 경제 및 안보관계뿐 아니라 미국, 일본과의 경제 및 안보관계, 나아가 국가의 종합전략에 기초해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중국이라는 블랙홀에 급속히 빨려들어가고 말 것이다.”
“해외·북한파트, 국내파트 분리해야”
▼ 굴기(堀起)한 중국에서 민족주의가 발호하는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중국뿐 아니다. 민족주의가 발호하는 것이 21세기의 특징 중 하나다. 우크라이나와 중동 사태, 중국과 베트남 및 필리핀의 갈등에서도 이런 특징이 확인된다.”
▼ 국정원은 적으로부터 국가를 지키는 안보의 보루이면서도 북한과 대화의 길을 열기도 한다. 민간 출신으로 국정원 내부를 들여다본 몇 안 되는 북한 전문가로서 국정원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무엇이라고 보나.
“국정원이 정권의 안보기구가 되거나 정보 관료조직으로 전락하면 국가의 안전을 보장하면서 통일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없다. 국정원 공작원은 어떤 어려운 조건에서도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야생의 늑대와 같아야 하는데, 국민의 눈에 비친 이미지는 정권의 사냥개 또는 정보 공무원에 가깝다고 하겠다.
국정원 개혁을 이뤄내려면 좌파와 우파, 보수와 진보가 당파를 초월해 개혁안을 이끌어내야 한다.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연방수사국(FBI)처럼 해외·북한파트와 국내파트를 분리하는 게 현명하다고 본다. 그러려면 검찰권 등 사법개혁을 동반해야 해 여야 합의가 필수적이다.
해외·북한파트와 국내파트의 분리는 북한·해외정보를 담당하는 요원을 국내 정치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 공작활동에 집중하게 할 수 있다. 국정원은 정부 조직 안에서 국가안보실, 국방부, 외교부, 통일부와 협력해 통일전략, 국가전략을 입안해야 한다. 또한 국정원은 정보 수집 및 공작활동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통일 이후를 내다본 해외정보 수집 및 공작활동을 강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