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호

연쇄정상회담;北의 숨은 그림 찾기

‘북핵 족집게’ 이수혁 의원이 본 ‘핵 폐기 절차’

“핵, 팔아버릴까? 좀 남길까? ‘韓美가 줄 것’ 표 만드는 중”

  •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8-04-22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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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VID’ 작명한 주인공·초대 6자회담 수석대표

    • “미국이 북한에 통 크게 줄 수도 있다”

    • 제재에 손들었다? “트럼프 주장일 뿐”

    • “동결 시시하게 봐선 안 돼…봉인하고 카메라 갖다놓는 폐기 직전 단계”

    • “北 ‘핵무기는 동결 대상 아니다’ 주장할 것”

    • ‘주한미군 철수’ ‘핵우산 철폐’도 北 협상 카드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이수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5년 북핵 협상의 산증인이다. 1997년 주미대사관 공사참사관으로 근무하면서 남북한 비공식 외교 경로인 뉴욕 채널을 개설했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가 이뤄진 후 그 연장선상에서 1998년 시작된 4자회담에 참여했다. 노무현 정부 때는 6자회담 초대 수석대표로 2년간 북핵 협상 최전선에 섰다. 6자회담 수석대표를 지낸 후 독일대사와 국가정보원 1차장을 역임했다. 

    그는 지난해 9월 3일 북한 6차 핵실험 직후 진행된 신동아 인터뷰에서 “북핵을 해결할 ‘제네바 북·미회담 시즌2’가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핵 위기가 최고조로 치달은 순간에 북·미회담을 예상한 것이다. 그의 분석은 족집게처럼 들어맞았다. 역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4월 10일 신동아와 가진 대담에서 그는 북한의 태도 변화가 “혼란스러운 것을 넘어 현란하다”면서 “미국이 북한에 통 크게 줄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미국이 북한을 폭격할 것 같았고 김정은과 트럼프가 말을 날카롭게 주고받았다. 다들 불안해하지 않았나. 상황이 이렇게 바뀌었으니 ‘현란하다’는 표현 외에 다른 수식어를 찾을 수 없다. 북한 핵은 급성이 아닌 치명적 만성 질환이다. 언론과 야당, 일부 전문가가 북·미관계를 피상적으로 분석했다고 하면 과한 평가겠으나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당신 주장대로 흘러간다’고 말하니 뿌듯하다.”

    “훨씬 큰 칼 손에 쥔 北”

    북한이 대화로 선회한 까닭은 뭘까. 두 갈래로 나눠볼 수 있다. ‘①제재가 작동했으며 군사 옵션에 대한 두려움이 김정은을 협상으로 이끌었다’ ‘②제재는 효과를 발휘하지 않았다, 협상에 나온 것은 핵능력 완성에 대한 자신감’이라는 주장이 있다. 

    “북한이 제재 조치에 손을 들었다는 것은 트럼프의 주장이다.” 

    제재가 북한을 움직인 게 아니다? 



    “제재의 효과는 크나 제재가 결정적 요인이라면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제재가 가해지리라는 것은 예상된 사안이다. 제재가 이렇게 심할 줄 몰랐다? 그것은 아닌 것 같다. 제재가 강해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은 틀렸다고 본다. 제재의 강도가 이 수준일지 북한도 알았으며 그렇기에 더 빨리 핵무기를 만들어야겠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고 본다. 현재는 ‘How to make it(핵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성공했기에 ‘How to use it(어떻게 사용할지)’에 나선 단계다.” 

    핵무력을 완성해 더는 할 게 없으니 핵을 갖고 협상에 나섰다? 

    “핵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북한이 가진 협상 카드가 약하다. 25년간을 되돌아보면 북한은 온갖 합의를 했다가 깨곤 했다. 핵무기를 만들어놓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How to make it에서 How to use it 단계로 넘어가면 북한이 훨씬 큰 칼을 갖게 됨으로써 협상에서 유리하다. 핵 완성은 협상 전략으로서 추구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두 번째(협상에 나온 것은 핵능력 완성에 대한 자신감)에 더 무게를 둔다.” 

    ①의 경우라면 한국 처지에서 앞으로의 국면이 상대적으로 낙관적이겠으나 ②의 경우라면 상황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협상이 성사되지 않으면 제재는 안 풀린다. 언론에서는 합의 전에도 제재가 풀릴 듯 보도하기도 하던데,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떤 형태든지 합의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제재를 풀기 어렵다. 협상이 진행 중이니 제재를 해지하자? 미국은 그런 방법을 택하지 않을 것 같다.”

    “되돌아보면 다 쇼(show)”

    ‘핵-경제 병진노선’ 관철을 위해 북한이 시간 벌기에 나선 건 아닐까. 

    “그런 분석이 나오는 건 북한이 지금껏 그래왔기에 당연하다. 25년간 핵을 완성하고자 시간 벌기를 해왔다. 협상하다가 몰래 개발하기도 하고 사찰을 받는 척하기도 했으며, 실제 사찰도 받았고, 냉각탑을 폭파하기도 했다. 되돌아보면 다 쇼(show)였던 면이 강하다. 사찰을 받으려 했으나 강경파가 계속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수도 있으며 미국의 진정성에 의심을 가졌을 수도 있다. 현 국면은 복합적인 이유가 있기에 시간 벌기용으로 볼 수는 없으나 다층적인 면에서는 북한에 시간이 필요했다고 본다. 북한의 반응과 협상에 임하는 자세를 보고 얘기해야 한다. 예단해서는 안 된다.” 

    지난해 9월 6차 핵실험으로 ‘How to make it’은 완료됐다? 

    “핵무기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대기권 재진입을 확인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국제사회가 믿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됐다. ICBM이 대기권에 재진입하다 타버렸든, 성공했든 그 자체로 엄청난 기술이다.” 

    북한의 핵무력이 완성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면 미국이 지금처럼 움직이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 

    완성했으므로 더 도발할 것도 없다? 

    “그렇다. 이제는 협상밖에 없다. 어떻게 쓰지? 팔아버릴까? 아니면 조금 갖고 나머지를 팔까? 이런저런 매트릭스를 만들지 않겠나. 가로, 세로 금 그어 주고받을 것, 미국이 줄 것, 한국이 줄 것, 일본이 줄 것, 매트릭스를 만들 것이다. 그러니까 그게 협상이다.” 

    그는 CVID라는 약어를 작명한 당사자다. 2003년 11월 워싱턴 한·미·일 3자 협의 때 처음 썼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내정자가 3월 14일 25년의 핵 협상사를 실패의 역사라고 규정하면서 “실패의 매듭을 끊고 CVID를 이끌어내겠다”고 밝힌 데서 드러나듯 CVID는 관철할 목표가 됐다.

    “존 볼턴 아주 터프(tough)…리비아식 해법 바랄 것”

    CVID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를 가리킨다. 한국인인 그가 영어로 길게 얘기하는 게 불편해 머리글자를 따 축약했는데 미국 측 인사들도 “당신이 만든 표현”이라면서 ‘저작권’을 인정해줬다고 그는 설명한다. 

    북한이 플루토늄탄, 우라늄탄, 수소탄을…. 

    “3종 세트.” 

    3종 세트를 ‘갖춘 격’ 정도로 북한을 다뤄야 하겠다. 

    “나는 갖췄다고 보는 게 우리가 오히려 편하다고 생각한다. 북한을 핸들링 할 때도 그게 더 좋다.” 

    왜? 

    “다 갖고 있다고 했으니 다 포기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그래야 더 엄한 사찰을 할 수 있다. 실험에 성공하지 않았다, 탄이 없다고 하면 어떻게 추궁하나. 핵무기도 사찰해야 할 것 아닌가.” 

    그는 2011년 펴낸 ‘북한은 현실이다’라는 제목의 저서에서 ①북한은 붕괴하지 않는다 ②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③중국은 북한을 버리지 않는다 는 세 가지 가설을 제시하고 입증을 시도했다. 

    북한은 입때껏 붕괴하지 않았으며 김정은-시진핑(習近平) 정상회담에서 드러났듯 중국도 북한을 버리지 않을 것 같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가설도 유효하다고 보나. 

    “세 가지 가설은 북한의 태도를 바꾸려면 고도의 협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내놓은 것이다. 북한은 과거에도 비핵화를 언급했으나 숨어서 핵을 개발하지 않았나. 이번에는 미국 대통령과 직접 담판을 해보겠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좋은 카드를 쥐었다고 여기면서 고자세로 협상에 임하려 할 것이나 트럼프가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새로 취임한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내가 겪은 바를 바탕으로 볼 때 아주 터프(tough)한 사람이다. 볼턴은 리비아식 해법을 강요할 것이다.”

    일괄타결 vs 단계적·동시적 비핵화

    이수혁 의원은 25년 북핵 협상의 산증인이다. [지호영 기자]

    이수혁 의원은 25년 북핵 협상의 산증인이다. [지호영 기자]

    론 존슨 미국 상원 국토안보위원회 위원장은 4월 10일 미국의소리(VOA) 방송과 인터뷰에서 “단계적, 동시적 비핵화는 김정일과 김일성이 이용한 방식으로 미국은 더 이상 북한을 믿고 기다릴 수 없다. 북한은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형태로 핵 프로그램을 폐기해야 한다”면서 “김정은은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형태로 핵 프로그램을 포기할 때까지 제재가 완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또 “북한이 검증 가능한 형태로 (핵무기를) 포기하기 전에 제재를 완화해준다면, 미국은 전임 행정부들이 그랬듯 또다시 북한에 놀아나게 된다”고 덧붙였다. 

    CVID가 가능하긴 한 얘기인가. 김정은이 언급한 ‘단계적, 동시적 비핵화’는 어떤 의미라고 해석해야 하나. 북한과 중국은 ‘단계적, 동시적 비핵화’에 합의한 형국이다. 

    “단계적, 동시적 비핵화는 매우 미묘한 문제다. 일괄타결, 단계적 타결을 두고 그간 논쟁을 해왔다. 노무현 정부 때 내가 단계적 해결 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말했더니 노 대통령조차 ‘외교관이 하는 일과 정치인이 하는 일이 다르다. 정치인들은 모든 문제를 탁 내놓고 모두 합의하자고 한 후 각론을 포함해 포괄적으로 타결한 후 각론을 실행한다’고 말씀하더라.” 

    일괄타결(Package Deal)은 비핵화·평화체제·북·미관계 정상화 등을 한 바구니에 넣어서 합의하는 방식이다. 

    “외교와 정치는 다르다. 국내 정치는 국내적 요소만 감안하면 되므로 협상이 비교적 쉬우나 국제 문제는 그렇지 않다. 국가의 생존과 관련한 문제일수록 굉장히 복잡하기에 포괄적 합의를 하더라도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상징하듯 단계적 과정을 거치면서 포괄적 합의가 무의미해져버리는 경우가 많다. 외교관들은 현실적이고 비판적인(critical)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 

    행동 대 행동으로 하나씩, 하나씩 갈 수밖에 없다? 

    “단계와 단계를 짚고 넘어가서 하나씩 해결하면서 신뢰를 쌓고 나중에 이뤄놓은 결과가 포괄적이 되는 방법을 택하는 게 외교다.”

    “동결은 사실상의 폐기 직전 단계”

    미국이 실패의 전례가 있는 그런 방식을 받을까. 

    “예단하고 싶지 않다. 단계적이냐 포괄적이냐는 원론적 문제는 아니다. 방법은 협상의 내용이나 속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핵 폐기에 합의한다면 ‘포괄적 합의’라고 볼 수 있겠으나 어떻게 포기시키느냐 하는 더욱 심각한 문제가 남는다. 일괄타결이든 아니든, 핵 동결 등 적당한 수준이 아니라 핵을 폐기하겠다는 데 합의가 이뤄지면 그때도 단계적 협상 과정이 중요하다.” 

    동결→불능화→폐기로 이어지는 각 단계마다 보상하는 방식의 협상은 6자회담을 거치면서 한 차례 실패하지 않았나. 

    “용어 3개로 범주화해 다루니 동결, 불능화, 폐기가 따로 존재하는 것 같으나 동결은 폐기로 가는 과정에서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앞으로 가던 차가 후진하려면 정지하는 순간이 있어야 한다. 그 지점이 동결이다. 과거에는 동결이 비교적 간단했다. 시설과 비축 물질, 기술적인 프로그램을 동결하면 됐다.” 

    지금은? 

    “WMD(화학무기·핵무기·중장거리미사일 등 짧은 시간에 대량의 인명을 살상할 수 있는 무기)가 문제의 핵심 아닌가. 동결 자체가 지난(至難)한 것이다. 동결을 선언했다고 가정하자. 핵무기 개수, 스펙이 다 제출돼야 한다. 핵무기를 검증하는 과정을 생각해보라. 개수, 스펙은 물론이고 보관 장소까지 다 파악하는 것이다. 또한 각 무기의 성능을 확인해야 한다. 이 같은 과정이 쉽겠나. 핵을 폐기하려면 핵무기를 보여줘야만 하는데 보여주는 단계가 동결이다. 동결을 시시한 것으로 봐서는 안 된다.” 

    그는 “사실상의 폐기 직전 단계인 핵 동결부터 치중해야 한다”고 봤다. 

    핵 동결이 대화의 입구, 핵 폐기가 대화의 출구라는 표현은 정치적 수사일 수는 있으나 현실에는 부합하지 않는다는 얘기로 들린다. 

    “지금은 How to make it이 끝난 단계다. 핵무기를 사찰하고, 검증하고, 봉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동결이 뭔가? 봉인하고 카메라 갖다놓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무기를 쓸 수도 없다.”

    “북·미수교? 인권 문제도 변수”

    2005년 6자회담 9·19 공동성명에 합의한 후 이행을 위한 초기 조치(2·13 합의)에 동의하는 데만 15개월이 걸렸다. 북한과 미국이 핵 폐기에 합의하면 완료까지 얼마나 걸릴까. 10년 이상을 내다보는 이들도 있더라. 

    “김정은이 얼마만한 결기로 결심했는지에 따라 다를 것이다. 속도가 빠르면 내부 반발이 심할 것이다. 북한이라고 김정은 생각대로만 되겠나. 완료 시점을 예측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협상 과정이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적 입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다만 각자 목표치는 있을 것이다. 트럼프로서는 재선에 도전하기 전 해결됐으면 좋겠다는 목표치가 있을 것이다.” 

    북한이 ‘통 큰 결심’을 한 것이라면 상당히 빠를 수도 있다? 

    “협상은 굉장히 복잡한 고차원의 게임이다. 예컨대 북한이 1년 안에 끝내자고 나오면 트럼프가 정치적 계산을 할 수도 있다. 국내 정치적 효과가 가장 클 때가 언제인지 고려하는 것이다.” 

    표현이 거칠지만 한국 처지에서는 비핵화를 ‘적당한 가격’에서 사야 한다. 

    “협상 용어로 퀴드 프로 쿼(quid pro quo·보상 또는 대가로 주는 것)라고 한다.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은 협상이 아니라 전쟁이다. 협상은 주고받는 것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무엇을 줄 것이냐? 북한이 요구하는 것을 일단 들어봐야 한다. 협상 테이블에는 요구 조건을 들고 오지 않겠나. 체제 보장을 요구할 것이다, 체제 보장의 방법으로 평화협정을 요구할 것이다, 같은 얘기는 전문가들이 추측하는 것일 뿐이다.” 

    북·미수교, 주한미군 철수, 대북 무력 불사용 공약, 핵우산 제공 철폐 등이 거론된다. 

    “요즘에는 북·미 불가침 조약 얘기는 하지 않는다. 내가 김계관(북한 외무성 부상)을 설득하면서 불가침 조약은 되지도 않을 일이라고 말해줬다. 미국은 어느 나라와도 불가침 조약을 맺은 바가 없다. 미국 상원에서 통과가 안 된다. 세계의 슈퍼파워가 작은 나라에 불가침을 선언해줄 리가 만무하다. 무력 불사용은 유엔 헌장에 명시된 것으로 실제적 의미는 없다.” 

    북·미수교는 어떻게 보나. 

    “북한은 미국이 수교에 합의해놓고 실제로는 수교하지 않을까 봐 우려하는 것 같다. 미국은 핵 문제 외에도 양자 관계에서 관심 사항이 다 해결돼야 수교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양자 관계에서 미국의 관심은 북한 인권 문제다. 북한이 이 같은 사정을 잘 알고 있다. 북측이 나한테 핵무기만 폐기하면 수교가 되는 것이냐고 숫제 물은 적이 있다. 워싱턴에 확인했다. 미국은 양자 관심이 해결되는 시점이 수교하는 시점이지 어느 한 건 해결됐다고 그렇게 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북측에 그대로 전해줬다. 북·미수교는 북한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다. 미국과 수교를 맺어야 체제가 보장된다고 볼 것이다. 평화협정을 맺더라도 미국이 북한을 승인해주지 않으면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대목에도 함정이 있다. 과거 북·미가 연락사무소 설치에 합의했는데 실현되지 않았다. 미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게 아니다. 미국은 설치하려 했는데 북한이 연락사무소가 공작 행위를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했다. 북한의 관심사가 분명하고 말로는 북·미수교를 강조하나 북한 나름의 정치적 고려가 필요할 것이다. 이것은 개인적 경험에서 나온 분석이다.”

    “과거의 데자뷔가 될 것”

    주한미군 철수, 더 나아가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 철폐를 요구하리라는 전망도 있다. 

    “북한이 요구할 수는 있으나 미국이 들어주느냐는 별도의 문제다. 국제정치 역학상에서도 주한미군 철수는 이뤄지기가 어렵다. 중국도 한미동맹의 긍정적 효과를 이해하며 북한도 이해하는 측면이 있다. 북한이 선언적으로는 주한미군 철수시켜야 한다, 핵우산도 걷으라고 협상 카드로 계속 이야기하겠으나 우리가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건 뭐…. 어떤 것이 토의되리라고 예측할 수 있지만 그 토의가 곧 그렇게 되리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김정은-트럼프 회담에서 괄목할만한 합의가 이뤄졌다고 가정하자. 이행 과정 협의는 4자(남·북·미·중)와 6자(남·북·미·중·일·러) 틀 중 어떤 게 더 효율적일까. 

    “나는 과거의 데자뷔가 될 것이라고 본다. 현재까지가 ‘시즌1’이고 지금부터 ‘시즌2’가 시작된다. 양자 회담이 열릴 테고 4자, 6자회담이 순서는 바뀔지 몰라도 리바이벌될 것이다. 4자회담의 어젠다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남북 간 군사 긴장 완화였다. 그때 평화체제 등이 실현됐더라면 이렇게까지 오지 않았을 텐데 평양이 시간을 벌고자 회담을 중단하고 결국엔 농축우라늄 문제가 불거져 6자회담이 만들어졌다. 일본과 러시아가 추가된 6자회담을 두고 4자로 하느냐, 6자로 하느냐, 심지어 8자(호주와 유럽연합 추가)로 하느냐까지 생각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 남북한 문제만 보면 4자 회담이 좋다. 그런데 핵문제는 국제적 관심사인 데다 일본에도 영향을 준다. 일본이 참여해야 일본이 비용을 댈 수 있다.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할 때도 일본이 참여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갈 수도 있다. 

    “합의하려는 의지가 약했기에 산으로 간 것이다.” 

    6자회담은 동결 리스트 작성 단계에서 좌초했다. 

    “이번에도 핵 폐기와 관련해 리스트를 보고하는 과정에서 북한이 ‘핵무기만은 동결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것을 사용하지는 않겠지만 사찰할 일은 아니다’라고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핵 물질을 다 공개하고 플루토늄을 얼마 생산해 얼마만큼 썼다, 농축우라늄은 어떻다 하더라도 핵무기 자체만은 안 된다는 입장을 견지할 것이다. 그건 풀어야 할 사안이다.” 

    당근을 주든, 압박을 하든…. 

    “그렇다. 미국이나 중국이 관리할 수 있다면 (기왕의 핵무기를) 포기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포기 수준에 다다르게 할 방법이 나올 수 있다.”

    후세인·카다피 전례

    가장 긍정적인 시나리오는 뭔가. 

    “정상들이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로 합의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일괄타결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디테일 협상에 들어가야 할 문제다.” 

    협상 과정이 길까. 

    “그렇게 보는 게 합리적이다. 경험칙에 따르면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존 볼턴 안보보좌관이 참여함으로써 적당한 선의 타결은 없을 것이다.” 

    북한도 머릿속이 복잡하겠다. 

    “How to make it 시기보다 How to use it이 더 복잡하다. 트럼프가 볼턴을 그 자리에 앉혔기에 머리가 더 복잡할 것이다. 세계사적으로 지도자가 허망하게 무너져버린 경우를 많이 보지 않았나.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가 어땠나. 후세인은 땅굴 속에서 꺼내졌고, 카다피는 매 맞아 죽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한반도 역학 구도가 어떻든 간에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각오할 상황이 아니다. 두 나라가 감당할 수가 없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엉거주춤한 상태가 장기적으로 가는 것이다. 다행히 트럼프가 그럴 성격이 아니다. 나는 트럼프가 막말할 때마다 외교적으로 괜찮은 전술(Tactic)이라고 말해왔다.” 

    미치광이 이론(Madman Theory·상대가 자신을 미치광이로 여기게 해 협상을 유리하게 이끄는 방식)이라고 보는 것 같다. 

    “그렇다.” 

    트럼프가 업적을 이뤄낼 수도 있겠다. 

    “그러려고 최대한 노력할 것이다. 미국이 북한에 통 크게 줄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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