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우회적 접근’이 주는 교훈

병법의 대가 손빈, 라이벌의 간휼을 이겨내다

‘우회적 접근’이 주는 교훈

2/5
손빈이 위나라 수도 대량(大梁)에 도착하자 혜왕은 기뻐했다. 그럴수록 방연은 빨리 손을 써야겠다고 작심했다. 그래서 국가 안보의 책임자인 자신이 위나라의 파멸 위기를 재빨리 예방한다는 구실로 손빈을 체포했다. 그러고는 손빈이 위나라에 와 있던 제나라의 특사와 내통하고 동조자를 규합해 국가를 전복하려 한다는 죄명을 날조하여 그를 가혹하기 그지없는 빈형(?刑)에 처했다.

빈형이란 무릎뼈를 제거하고 얼굴에 큰 흉터를 만드는 형벌이다. 관습상 이런 형벌을 받은 사람은 영원히 공직에 오를 수 없으며, 국왕은 만나지도 못하게 되어 있었다. 그후 방연은 손빈의 도주를 막고자 엄중한 감시망을 붙여놓았다.

손빈은 고통과 절망으로 최악의 상태에 빠졌고 정신이상을 가장해 살아남으면서 하늘의 도움과 우연의 배합을 기다렸다. 그런데 60억 인류의 지문이 각기 다른 것처럼 사람마다 개성에 차이가 있고, 인간성도 한결같지 않다. 감시인 중에 동정하는 자가 생겼고 대화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그들의 정보에 의하면, 제나라에 새 군주가 즉위했는데 그가 위왕(威王)이고, 인재의 발견과 등용에 매우 적극적이라고 했다. 또 제나라의 새 특사가 이곳 대량에 도착했다고 알려줬다.

허점을 보아 감시망을 빠져나온 손빈은 제나라 특사를 만나 사정을 이야기했다. 특사는 이를 기특하게 여기고 또한 동정하여 손빈을 마차 한구석에 숨기고 제나라로 돌아갔다. 마침내 손빈이 풍부한 학식과 경험, 뛰어난 지능을 살려 전국시대의 중국 천하에 명성을 떨칠 역사적 기회가 온 것이다.

귀국한 손빈은 잠시 전기(田忌) 장군의 저택에 기거하게 됐다. 전기는 위왕의 친척으로 국방장관 격이었다.



마차 경주의 지혜

전기는 손빈을 자주 만나 군사와 정치에 관한 대화를 나누면서 그 지식과 경험, 통찰력에 탄복하고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전국시대 중엽에 접어들면서 군대의 으뜸 병종도 과거식 전차를 에워싼 보병으로부터 기동력과 돌격성을 중시하는 기병으로 바뀌던 무렵이었다.

그런 새로운 풍조를 반영하듯, 운동경기에 돈을 거는 ‘내기’도 각종 경마로 옮겨갔다. 장교들 사이에선 ‘말 타고 활쏘기’가 유행했다. 그러나 왕족과 고급귀족들 사이에선 각자가 3대의 4두마차를 출장시키는 경주가 유행했다. 손빈도 몇 번 그 경주를 관람했다. 보아하니 쌍방이 출장시키는 각 3대의 마차는 상·중·하로 구분되는데, 동급이라면 말의 주력에 별 차이가 없었다. 물론 큰돈을 거는 내기이니 이겨야 좋다. 그래서 손빈은 꼭 이길 계략을 짜서 전기에게 건의했다.

“우리 측의 가장 느린 마차를 상대방의 가장 빠른 마차와 겨루게 하십시오. 그리고 우리 측의 가장 빠른 마차는 상대방의 두 번째 빠른 마차와, 우리 측의 두 번째 빠른 마차는 상대방의 가장 느린 마차와 경쟁케 합니다. 그러면 합계해서 2대 1로 반드시 이깁니다.”

전기가 그의 건의를 따랐더니 어김없이 이겼고, 내기 돈을 크게 거둬들일 수 있었다. 국왕과 한 내기에서도 승리하니, 위왕은 그 비결이 무엇인지 몹시 궁금했다.

손빈의 그러한 계략은 20세기 들어 1940년대 이후에 발달하기 시작한 기획연구인 신흥학의 원칙과 완전히 일치한다. 예컨대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人工頭腦學)나 경영학의 ‘경영전략 연구’니 ‘기획 업무론’은 한결같이 성공을 위한 인력 및 물적 자원의 효율적 사용에 관해 ‘종합성 안목에서의 합리적 안배’를 강조한다. 쉽게 풀이하면 손빈의 경마 이론과 같다.

처음엔 수학자와 통계학자들이 이를 연구했으며, 과학기술의 새 분야로 간주되다 마침내 경영학과 군사학에도 운용되기에 이르렀다. 최근엔 무역 자유화와 농업보호정책 간의 모순과 당착에 대한 해결방안 모색에도 원용되고 있다. 다만 한층 더 폭넓고 깊이 있는 보상·보조·홍보 대책이 아쉽게 느껴진다.

다시 손빈의 고사(故事)로 돌아가서, 그의 발상을 볼 적에 뚜렷한 것은 ‘상대를 알고 스스로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 百戰不殆)’고 가르친 손무의 일깨움에 대한 충실한 터득이다. 이는 적과 나의 ‘힘 관계’와 그 포치(布置)를 알고 변화의 가능성을 탐구한다는 뜻이다. 나아가 ‘상대방이 생각지 않던 방법을 채택해야만 대승을 거둘 수 있다(以奇制勝)’는 원칙에 대한 슬기롭고 대담한 실천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그래서 한국인도 익히 아는 중국 삼국시대의 영웅 제갈량 또한 감탄하면서 이렇게 썼다.

“손빈의 그 실천은 바로 군사이론의 진수이지, 결코 단순한 경마이론이 아니다.”(兵說也, 非馬說也…. 諸葛亮集, 兵法).

마침내 위왕이 전기에게 필승의 연유를 묻자 전기는 손빈의 지혜라고 정직하게 찬양했다. 위왕은 손빈을 초대하여 만나기로 했다. 위왕과 전기 두 사람 모두 기량이 큰 대인이었다.

2/5
박동운 언론인
목록 닫기

‘우회적 접근’이 주는 교훈

댓글 창 닫기

2023/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