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단계에서는 분단체제의 평화적 관리정책을 추진하고, 2단계에서는 포괄적 접근을 통한 냉전구조 해체와 ‘사실상의 통일’을 이룩한다. 즉 김대중 정부는 단기적으로 북한의 장기생존 가능성을 가정하고 무력도발 불용, 흡수통일 배제, 화해·협력 추진 등 대북정책 3원칙을 표방하면서 북한의 체제위기를 평화적으로 관리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중·장기적으로는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를 통해 통일의 첫 단계(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서는 중간단계)인 남북연합단계를 실현하기 위해 포괄적인 접근정책(포용정책)을 추진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여야간 정권교체를 통해 집권한 김대중 정부는 출범 이후 새로운 통일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대북포용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했다. 그 이유는, 첫째, ‘법적 통일’은 후대로 미루고 남북한간 화해·협력을 통한 공존·공영을 모색하면서 경제공동체 건설과 상호왕래 등 ‘사실상의 통일’을 지향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정부는 통일정책보다는 대북정책(햇볕정책·포용정책)에 주력했다. 따라서 새로운 통일방안을 제시해 북한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둘째, 보수주의를 표방하던 자민련과의 공동정권이라는 한계와 새로운 통일방안에 대한 국민적 합의 도출 과정에서 발생할 국론분열과 혼란 등에 대한 우려 때문에 새 통일방안을 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즉, 이념적 지향이 서로 다른 국민회의(새천년 민주당)와 자민련의 공동여당이 국민적 합의에 기초한 통일방안을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셋째, 노태우 정부가 만들고 김영삼 정부가 보완·발전시킨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비교적 잘 만든 통일방안이란 점에서 이를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김대중 정부의 대북·통일정책은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계승하면서 김 대통령이 야당시절 주장했던 ‘김대중의 3단계 통일론’에 따라 추진됐다. 이는 “통일은 시작은 서두르되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김 대통령의 지론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제로섬에서 윈윈으로
3단계 통일방안의 첫 단계는 남북연합(1연합 2국가 2체제 2정부)이고, 2단계는 연방(1연방국가 1체제 2지역자치정부), 3단계는 완전통일(1국가 1체제 1정부)이다. 통일국가는 21세기의 세계적 조류에 따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사회복지를 구현할 체제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연방제에 대한 ‘오해’ 때문에 대선(大選)에서는 ‘3단계 통일방안’을 공약으로 제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는 ‘3단계 통일방안’에 따라 임기 중 첫 단계인 ‘남북국가연합’의 실현을 지향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정부는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의 남북관계를 윈윈 게임(win-win game)으로 전환하기 위한 구상을 햇볕론에 입각한 대북포용정책으로 구체화하고 이를 일관성 있게 추진했다. 그 결과 남북 당국 간에 신뢰가 조성됐고, 드디어 분단 55년 만인 2000년 6월13~15일 평양에서 첫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남북한 최고지도자간의 담판에 따라 ‘6·15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함으로써 남북관계 개선의 극적인 돌파구가 마련됐다. 그리고 남북정상회담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의혹으로 형성된 한반도 문제의 국제화를 막고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 즉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 해결구도가 정착될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이 주변 4강의 대(對)한반도 영향력 경쟁을 촉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남북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한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고 있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6·15남북공동선언에 서명함으로써 남북한은 화해협력, 공존공영의 새 시대를 열었다. 남북의 두 정상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열린 정상회담에서 공동선언문을 만들어냄으로써 상호이해 증진과 남북관계 발전 및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기틀을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