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의 핵실험 강행으로 서울 증시가 크게 흔들린 2006년 10월9일, 서울 여의도 한국증권선물거래소에서 직원들이 급락한 주가 그래프를 살피고 있다.
1단계로 이 대통령의 당선 이후 3월26일까지, 북한은 새 정부에 ‘6·15공동선언과 실천강령으로서의 10·4정상선언’의 이행을 촉구하며 관망했다. 새 정부가 이에 응하지 않자 2단계로 북한은 3월27일 개성공단 내에 있는 경제협력협의사무소(경협사무소)에서 한국 측 당국자 11명을 추방하며 실력행사에 나섰다. 이후 서해 미사일 발사실험, 이 대통령에 대한 실명(實名) 비난, 군부의 대남협박 등이 이어졌다.
7월11일 발발한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으로 3단계가 시작됐다. 이 사건으로 추락하던 남북관계는 지표면에 충돌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8월26일 북한 외무성이 핵 불능화 중단을 선언하면서 올해 들어 상당한 진전을 보이던 북미관계도 정체 또는 악화될 기류에 휩쓸렸다. 8월27일에는 탈북 위장 여간첩 원정화 사건이 터졌고 군 내부에 침투한 간첩 용의자가 50여 명이라는 사실이 군 수뇌부의 비밀 메모를 통해 밝혀지면서, 추락해 불이 붙은 기체에 기름을 끼얹는 형국이 됐다.
일련의 사건들은 북한이 한국인에게 얼마나 현실적인 ‘위험(risk)’인지를 깨닫게 해줬다. 햇볕정책을 펼친 10년 동안 정부는 같은 민족으로서 북한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데 치중했다. ‘적’으로서 북한의 부정적인 모습은 상대적으로 덜 부각됐고, 북한이 주는 위험은 무시되거나 평가절하됐다.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에 대한 현장조사를 마치고 돌아온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이 7월16일 오전 서울 계동 현대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는다면
50대 여성 관광객을 북한 군인이 총으로 사살한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은 북한이 한국인의 생명과 안전에 위험요인이라는 사실을 전체 한국인에게 각인시켰다. 사건은 예견된 일이었다. 대남 비방을 계속하던 북한은 6월22일 남북군사회담 북측 대변인 명의의 담화를 발표하고 한국 정부가 지난해 10월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3통(통행 통신 통관) 합의’를 이행하지 않아 금강산 관광사업과 개성공단사업에 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금강산·개성 위기론’의 시작이었다.
북한은 이틀 뒤인 6월24일부터 오전 시간엔 개성공단 입주기업 등이 남측으로 인력과 물자를 이동하지 못하도록 막는 등 압박하기 시작했다. “북한이 이명박 정부를 압박하고 대북정책을 바꾸기 위해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등 남북의 접촉면에서 긴장을 고조시킬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정보 당국자의 분석이 나온 것이 이 사건 직후인 25일의 일이다.
한 대북 정보 관계자는 사건이 터진 직후 “북한 당국은 1, 2개월 전부터 금강산 등 ‘남북의 접촉면’에서 일하는 당국자들을 상대로 ‘규정대로 엄격하게’ 사무를 처리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안다”며 “이번 사건도 큰 틀에서 ‘접촉면에서의 긴장 유발’이라는 전술의 연장선 위에 있다”고 해석했다. 더 적극적인 해석도 나왔다. 보수 성향의 한 정보 관계자는 “북한이 남북관계의 긴장을 유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건을 일으킨 것”이라며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하려 했으나 올림픽을 앞둔 중국의 눈치가 보여 동해를 택했다”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