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의 주 내용은 평양에서 당 간부들에게 점을 봐줬다는 탈북자 장모씨 인터뷰였다. 원정화가 북한 점쟁이에 대해 기자에게 들려준 얘기는 기사 앞부분에 짧게 언급됐을 뿐이다. 대부분의 탈북자 기사가 그렇듯 신변 안전을 고려해 그의 이름은 ‘김정희’라는 가명으로 처리했다.
원정화를 기자에게 소개한 사람은 탈북자의 자립 정착을 도울 목적으로 설립된 특수법인 북한이탈주민후원회에서 일하는 김모(47) 상담팀장. 역시 탈북자인 김 팀장은 북한 출신 역술인을 찾는 기자에게 “몇 달 전 (후원회에) 찾아와 상담했던 여자가 있는데, 북한에서 교화소(교도소) 직원이었다”라면서 “교도관이었으니 점 봐주다가 잡혀온 점쟁이를 많이 만나봤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북한의 점보기 실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아니나 다를까, 원정화는 기자에게 자신의 전직을 ‘교도관’이라고 소개했다.
“(저는) 교도소 간수여서 점쟁이를 많이 만날 수 있었어요. 북한에선 점을 봐주다 들키면 잡혀오거든요. 사회주의를 파괴하는 반국가적인 미신행위로 간주합니다. 하지만 중앙당이나 인민보안성 차원에선 점을 볼 수 있어요. 중앙당 서기실에 ‘특별서기’라는 직제가 있었는데, 김정일 위원장의 신수를 봐주는 일을 한다고 들었어요. 인민보안성에서도 ‘예심국’이라는 부서에선 신점으로 범죄를 식별하는 일을 합니다. 그러나 개인이 점을 보는 건 허용하지 않아요. 제가 교도관이었을 때 북한 당국은 미신과의 투쟁을 국가적인 사업으로 펼치고 있었습니다.” (신동아 2007년 3월호 기사 중에서)
빨간 재킷에 검은 가죽바지
기자가 만난 원정화는 160cm가 안 되는 작은 키에 깡마른 몸매였다. 상의는 빨간색 재킷을, 하의는 검은색 가죽바지를 입고 나타났다. 긴 생머리를 뒤로 묶은 단정한 스타일이었으며 짙은 화장에 검은 마스카라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북한 교화소 생활을 털어놓던 그는 인터뷰 도중에 대뜸 이렇게 얘기했다.
“제가 근무하던 감옥에는 용하다는 점쟁이가 많이 잡혀왔어요. 그중 한 점쟁이가 제 과거를 잘 맞히기에 정말 용하다 싶었어요. 하루는 그 점쟁이가 저에게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몇 년 후 남쪽으로 가게 된다. 남쪽 가서 이름을 날릴 것이다’라고. 전 그 점쟁이 말대로 몇 년 후 중국으로 탈북했고 남한까지 오게 됐어요.”
기자는 2007년 초여름까지 원정화를 세번 만났다. 첫 번째는 취재원으로였고, 두 번째는 일자리를 찾고 있는 또래 여성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고, 세 번째는 그가 들려주는 북한 이야기가 매우 흥미진진했기 때문이다.
특이했던 건 처음 만날 때만 휴대전화로 만날 장소와 위치를 확인했을 뿐, 나머지 두 번은 따로 연락을 하지 않고 미리 얘기된 약속 날짜와 장소에서 만난 것이다. 모두 강남역 근처 식당이거나 카페였다.
그는 유독 강남역 근처를 좋아했다. 그는 “강남이 움직이기 편하다”라면서 “산본에서 딸과 둘이 살고 있다”고 자신의 거처를 알려줬다. 그와의 대화에서 아직까지 뚜렷하게 기억하는 건 “열심히 돈 벌어서 걱정 없이 편하게 살고 싶다”는 걸 지나치게 강조했다는 점.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돈 욕심 많아 보이는 30대 여성이라고 생각했다. 사회주의 나라에서 살다가 자본주의 나라로 와서는 돈의 위력을 절실히 느꼈나 보다 싶었다. 기자는 원정화란 여자에게서 특별한 낌새를 채지는 못했다. 더욱이 간첩이라고는….
그로부터 1년6개월이 흐른 지난 8월, 인터넷과 언론을 통해 ‘위장 탈북자 이중간첩 원정화’라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기자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가 간첩이었다니. 순간 배신감보다는 몇 가지 의혹이 뇌리를 스쳤다.
원정화가 정말 간첩일까. 만약 그가 간첩이라면 그토록 어설프게 행동했던 건 다 연기였단 말인가. 그가 자신을 간첩이라고 주장하는 건 아닌가. 혹시 간첩이고자 하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