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수장학회
핵심 측근들은 “평소 어법이 아니다. 뭔가 단단히 마음먹고 한 말 같다”고 했다. 박 위원장은 사람을 평가할 때 상당히 신중한 편이다. 자극적인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 이날도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대해선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여 들으면서 소통을 강화하는 게 참 중요한 자세라고 생각하고, 소통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훌륭하다”고 호평했다.
박 위원장이 작심한 배경은 뭘까. 정치철학 발언은 “문재인 고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문 고문이 정수장학회를 ‘장물’이라고 표현했는데…”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에서 나왔다. 박 위원장은 이어 이렇게 말했다.
“(정수장학회) 이게 장물이고 또 여러 가지로 법에 어긋나거나 잘못된 것이 있으면 벌써 오래전에 끝장이 났겠죠. 정수장학회에 대해선 제가 관여해 결정을 내릴 상황이 아니죠.”
문 고문과 문성근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 등 ‘문·성·길’ 3인방은 4·11 총선을 앞두고 부산일보 지분을 100% 소유한 정수장학회에 대해 공세를 취하고 있다. 특히 문 고문은 “장물을 남에게 맡겨놓으면 장물이 아닌가. 머리만 감추고는 ‘나 없다’하는 모양을 보는 듯하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안티 박근혜’의 구심점
정수장학회는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 초기인 1961년 부산지역 사업가인 김지태(1982년 사망) 씨로부터 부산지역 땅 10만 평, 부산일보 주식 100%, MBC 주식, 부산MBC 주식을 ‘헌납’ 받아 설립한 재단이다. 김 씨는 1976년 자서전에서 “각종 양도서에 강제로 날인이 이뤄졌다”며 헌납을 강요받았다고 주장했다. 그의 유족들도 재단을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박 위원장은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이름자 하나씩 따서 명명된 정수장학회에서 약 10년간 이사장을 지냈다. 노무현 정권 때인 2005년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헌납 과정에 대한 진상조사를 추진하자 “정치 탄압”이라고 반발하며 이사장에서 물러났다.
후임으로 박정희 대통령 시절 의전·공보비서관을 지낸 최필립(84) 이사장이 선임됐다. 이를 두고 야권과 일부 언론은 박 위원장이 정수장학회에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최 이사장은 박 위원장이 육 여사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했던 1970년대부터 박 위원장과 인연을 맺어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후 다른 측근들이 박 위원장에게 등을 돌릴 때도 최 이사장은 의리를 지켰다고 한다.
정수장학회 문제가 다시 불거진 계기는 지난해 11월의 부산일보 노사 갈등이었다. 당시 정수장학회 비판 기사 게재 문제로 회사가 신문 발행을 중단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앞서 부산일보 경영진은 정수장학회의 사회 환원과 사장 후보 추천제 도입을 요구한 이호진 부산일보 노조위원장을 면직했다. ‘정수장학회 재단 사회 환원 촉구’ 기사를 지면에 실으려 한 이정호 편집국장도 대기발령 조치했다. 결국 부산일보 사장은 사퇴했다. 이후 정수장학회는 이명관 기획실장을 신임 사장으로 임명했다.
이때부터 야당과 재야단체는 정수장학회-부산일보 문제를 정치적 이슈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부산일보 노조가 편집권의 독립을 요구하며 정수장학회와 각을 세웠지만 지금은 차기 대권 유력주자인 박근혜 위원장에 대한 공격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안티 박근혜’ 진영은 정수장학회 문제를 박정희 정권의 폭거, 재산 강탈의 상징으로 삼는다.
논쟁의 핵심 규명돼야
정수장학회 문제를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명확하다. 첫째는 박 위원장이 여전히 정수장학회에 관여하느냐, 부산일보 인사에 개입하느냐, 아니면 이사장에서 물러난 후 완전히 손을 뗐느냐 여부다. 둘째는 박 위원장이 이사장 재임 중 장학회 자금을 사사로이 썼느냐 여부다.
이 부분은 정치적으로 중요하다. 첫 번째 대목은 50년 전 정수장학회 설립 과정에 대해선 일단 논외로 치더라도 박 위원장이 완전히 사회로 환원시켰느냐의 진실 문제다. 두 번째 대목은 유력 대선주자로서의 도덕성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