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화여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초선인 새정치민주연합 서영교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 춘추관장을 지냈다. ‘친노’로 불리기도 하는 그가 같은 여성의 처지에서 박 대통령의 실책을 비판했다.
“이제는 대통령 수첩에 있는 예비 명단도 바닥났을 터이니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청와대의 인사 시스템도 믿기 어려운 것 같다. 비선 추천을 통해 자리를 채우려다 거듭 실패하고 있다”며 ‘문고리 권력’을 강력 비판했다.
그렇지만 ‘인물 고갈론’에 대해서는 경계했다. “아직 총리나 장관감이 여럿 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여권 내에서만 찾아봐도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강창희 전 국회의장 등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청문회를 통과할 만한 총리 후보가 있는데도 박 대통령은 찾지 않는다. 인사청문회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벌써 레임덕 분위기
▼ 박근혜 정부 장·차관들을 대통령 눈치만 살피면서 출세만 하겠다는 사람으로 보는가.
“그런 것도 아니라는 게 더 한심하다는 이야기다. 일단 부름을 받았으니 그들은 ‘있으라고 할 때까지 있겠다’는 듯한 느낌을 준다. 새 정부가 출범해 1년 반 정도 지났으면 힘이 가장 왕성할 때인데 그 반대인 것은, ‘있으라고 할 때까지만 있겠다’고 생각한 이가 많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벌써 레임덕 얘기가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 박 대통령의 내공이 약하다고 보는가.
“아니다. 강하다고 본다. 그분은 선거에 강한 모습을 보였고, 최초로 여성 대통령이 됐다. 천막당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당을 살려낸 것을 보면 대단한 내공을 가진 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대통령후보가 되기 위해 사퇴하기 전까지 5선을 하면서 대표발의한 법안이 연간 한 건뿐이라는 것이 문제다.
국회의원이라면 그 정도의 내공으로도 할 수 있겠지만, 대통령처럼 국가를 이끌어갈 자리에 오를 사람은 사람을 볼 줄 알고, 부릴 줄 알고, 정책에도 정통해야 한다. 그분이 국회의원과 여당 대표를 할 때는 미처 살펴보지 못했던 부분이, 대통령을 하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검증되는 것이다.”
▼ 박 대통령은 퍼스트레이디 구실을 하며 국정 운영 경험을 쌓지 않았는가.
“그 부분만 보면 안 된다.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15대 국회의원이 될 때까지 그분은 근 20년을 혼자 있었다는 데 더 주목해야 한다. 아버지의 영향권 안에서 퍼스트레이디를 대신한 것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에 대한 여론이 안 좋은 상태에서도 뚫고 나가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자립’이 더 중요했다는 뜻이다. 활발하게 활동하며 사회를 경험해야 할 황금 같은 시기를 은둔하듯 보낸 것이 그의 사고 폭을 좁게 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다.
사실 박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 김정일을 만나기 전까지는 큰 중량감을 주지 못했다. 한 때 당에서 밀려나기도 했고, 스스로 탈당도 했으니 자기 계보는 물론이고 친한 사람조차 없어 보였다.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대통령이 됐어도 국민과 어울리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발표만 하는 식이다. 그러니 인사를 할 때마다 데려올 사람이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리되지 않은 말을 거침없이 쏟아낸 것이 문제였어도 공부하고 노력하는 모습은 보여줬다. 박 대통령에게서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은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비서진을 힘들게 했다. 학자들을 불러 이야기를 듣고 토론도 많이 했다. 그리고 자기 방식으로 나쁜 것을 고치고 복지정책을 만들겠다고 한 적이 많았는데, 그것이 문제를 일으켰다. 그에 비하면 박 대통령은 공부를 많이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대통령 취임 한 달 만에 그는 150여 개의 공약 가운데 무려 70개(47%)를 바꿨다. 내용을 후퇴시킨 것이 29개, 아예 삭제해버린 것이 41개였다. 그 때문에 대통령선거를 할 때 과연 공약을 가슴으로 이해하고 내놓았는지 의심이 든다. 표를 얻기 위해 고민 없이 공약을 내놓은 것이 아니었는지 생각한다.
노 전 대통령과 박 대통령에게 공통으로 필요했던 것은 ‘숙려(熟慮)’다. 숙려가 무엇인가? 그 정책에 숨어 있는 보이지 않는 맹점을 찾아내 대책을 세우고, 그 정책을 제대로 펼칠 조직을 만드는 기간이다. 숙려 기간 없이 펼친 정책은 강한 역풍에 직면한다. 세월호 참사 후 국가안전처를 만들겠다고 한 청와대의 발표가 대표적이다. 노 전 대통령은 시간이 없다고 생각해 서둘렀다. 박 대통령은 시간이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은데도 숙려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 두 대통령 가운데 누가 더 외로워 보이는가.
“노 대통령은 불쑥불쑥 의견을 밝혀서 그렇지 측근은 많았다. 총알을 대신 맞아주겠다고 한 사람도 있었다. 타깃이 노 대통령에게만 쏠려서 문제가 커졌던 것뿐이다. 그에 비한다면 박 대통령은 비난을 대신 맞아줄 측근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김기춘 실장 외에는 이렇다 할 보좌진이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방패 구실을 하던 이가 이정현 수석인데, 떠나고 말았다. 충신인데 밀려났다는 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