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태 검찰총장이 지난 5월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관피아 척결’ 관련 전국 검사장회의를 주재했다.
취업 제한은 없다?
관피아 문제의 심각성은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위해 균형을 잡아야 할 골격계일부(퇴직 공직자)가 그 임무를 마친 뒤 호흡 순환계와 결탁해 영양소를 특정 부위로만 실어 나르는 데 있다. 영양소를 제때 공급받지 못한 근육과 피부는 괴사하고, 너무 많은 영양소를 공급받아 나 홀로 과대성장한 세포는 ‘암’으로 변질돼 몸 전체의 생존을 위협한다. 일부 대기업으로 경제력이 집중돼 사회문제가 되면서 경제민주화 요구가 거세진 것도 이 때문이다.
국민 눈에 전현직 관료들이 ‘이익’을 매개로 뭉친 마피아 조직으로 비치는 주된 이유는 공직자가 퇴직 후 재취업을 통해 그들만의 이해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다. 퇴직 후 2년 이내에 민간 기업에 취업한 공직자의 재취업 사례를 살펴보면 관피아 문제가 현실 속에 얼마나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알 수 있다.
# 경찰- 대전에서 경찰서장을 두루 지낸 A씨는 2012년 말 퇴직하고 6개월 뒤 경비전문업체 S사 충청본부 상근고문으로 취업했다. 퇴직 전 강원도와 경기도에서 경찰서장을 지낸 B씨 역시 2011년 2월 말 경찰청을 퇴직한 뒤 1년 6개월 만에 S사 경기본부 고문으로 취업했다. 경비업법은 경찰청장과 각 지방경찰청장에게 경비업체 허가는 물론 지도와 감독권을 부여한다. 특히 관할 경찰서장은 경비업 배치 허가 업무를 담당한다. 그 때문에 경찰서장 출신 인사가 경비업체에 취업한 것은 밀접한 직무 연관성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국방부- 국방부 미군기지이전사업단에 근무한 C씨는 2012년 7월 말 퇴직하고 하루 뒤에 곧바로 H산업개발 부장으로 취업했다. C씨가 H산업개발에 입사한 지 10개월 뒤인 2013년 5월 H산업개발 컨소시엄은 1263억 원 규모의 용산 주한미군기지이전 기지차량정비시설 및 다운타운지역 지원시설 건설공사를 수주했다.
기무사령부 방산지원실장과 모 기무부대장을 지낸 D씨는 2012년 말 전역한 뒤 한 달 만에 S탈레스 고문으로 재취업했다. S탈레스는 통신전자와 레이더 등 군 첨단장비를 개발하는 방위산업체로 기무사령부 방산지원실장 직무와 업무 연관성이 매우 높다. 국군화생방방어사령부 연구소장과 참모장을 지낸 E씨는 2011년 3월 전역한 뒤 1년 3개월 뒤 K패션머티리얼에 취업했다. 고기능성 원사와 원단을 제조하는 K패션머티리얼은 군사용 복합소재와 스마트 군복 개발 등에 참여한 업체로 국방부와의 업무 연관성이 깊다.
# 특허청- 특허청의 화학생명공학심사국장을 지낸 F씨는 2011년 10월 퇴직 후 다섯 달 만에 D합성 사외이사로 취업했다. D합성은 화학 관련 개발업체로 계면활성제 관련 각종 특허를 보유한 회사다. D합성이 보유한 특허는 주로 화학생명공학심사국에서 담당한다.
# 환경부- 자원순환정책과장을 지내고 지방환경청장으로 퇴임한 G씨는 2012년 5월 퇴직 후 두 달 만에 한국플라스틱자원순환협회 부회장에 취임했다. 환경부 자원순환국은 1회용품의 사용과 과대포장 등을 규제하는 부서로 1회용품 업체들이 회원사로 가입한 협회와의 업무 연관성이 매우 크다.
보험사로 간 경찰간부들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관피아의 폐단을 막기 위해 ‘(공직자가)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 부서 업무와 밀접한 관련 있는 사기업체에 퇴직일로부터 2년간 취업할 수 없도록 규정(제17조 1항)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재취업을 금지한 공직자윤리법 규정이 제대로 가동되는지 의문이 들게 한다.
시민단체 참여연대가 2006년부터 해마다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승인한 공직자의 재취업 실태를 분석한 결과,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퇴직 전 업무와 밀접해 취업해서는 안 될 민간 기업에 취업한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일례로 2012년 6월 1일부터 2013년 5월 31일까지 1년 동안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밀접한 업무 연관성이 없어 취업이 가능하다고 확인해준 퇴직 공직자 재취업 288건 가운데 부처 업무 특성상 해당 업무를 특정하기 어려운 감사원과 국가정보원, 대검찰청, 법무부 퇴직자 42건을 제외한 246건 중 52%에 해당하는 128건이 부처 업무 관련 업체 또는 단체에 취업한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전체 조사대상의 10.2%인 25건의 경우 퇴직 전 부서 업무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